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604화 (604/624)

제604화

603화-달기 (6)

“이상할 정도로 숫자가 적어요.”

제도의 외곽을 돌며 축생의 유정들을 찾았던 주현운과 연화는 생각보다 더 줄어든 그들의 숫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갑자기 사라진다는 건 말이 안 되는데…….”

연화의 중얼거림에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던 주현운은 성벽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지금 밖에서 싸우고 있는 게 황군이랬지.”

“네? 아, 그랬죠?”

근데 그게 왜?

고개를 갸웃하는 연화를 두고 자리를 박찬 주현운은 단숨에 성벽 위로 올라섰다.

성벽 위에 오르니 치열한 전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든 성벽을 넘으려는 황군들과 소수의 병력으로 그들을 저지하려 애쓰는 무인들.

정사가 뒤섞인 무인들은 수적 열세를 개인의 무력으로 어떻게든 해결하며 성벽을 지키고 있었다.

거기에.

“흐음.”

전장에서 날뛰는 절대 고수들.

각 단체의 단주급 이상들은 과감하게 성벽을 내려가 전장에서 활약하며 성벽 위 아군들의 숨통을 틔워 주고 있었다.

압도적인 숫자의 공격을 뛰어난 소수가 막아 내고 있는 상황.

이 상황에서 두 세력이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말은 곧 한 가지를 의미했다.

“……몇이나 죽은 거지?”

대체 몇이나 죽어야 이 숫자의 격차를 극복해 내고 성벽을 지켜 낼 수 있는 거지?

오싹한 기분을 느낀 주현운의 눈이 전장을 훑는 사이, 그를 따라 성벽에 오른 연화 또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저희가 할 일이 더 남아 있는 것 같은데요?”

전장에 흐르는 죽음이 명백히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 * *

달기의 영역에서 설천위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막고, 막고, 막고, 막고, 막고, 베고.

몇 번의 수비 끝에 아주 실낱같이 생겨난 틈을 이용한 반격.

그 반격마저도 상대의 뛰어난 방어에 막힌다.

현경과 화경으로 이루어진 적의 방어는 설천위도 쉽사리 뚫을 수 없는 높은 벽이었다.

거기다 마치 한 몸인 것처럼 펼치는 합격술까지.

한 존재의 영향 아래 있는 것들이라고 서로의 생각을 아는 것처럼 딱딱 맞춰 움직이는 탓에 그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적의 공격이 설천위의 흑관을 깨부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정도?

다만.

[처량하구나. 인간.]

고작 그것뿐이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거대한 여우의 몸으로 지붕 위에 앉아 내려다보는 달기의 목소리엔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설천위를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첫 번째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놈이 영력을 회복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즉, 지금 설천위는 영력의 회복이 없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방어에 영력을 소모하고 있다는 소리.

이쪽도 힘을 소모하고 있긴 하지만, 애초에 가지고 있던 여유 자체가 다르다.

설천위가 아무리 효율적으로 힘을 사용한다고 해도 한계는 있는 법.

이대로 시간을 끌기만 해도 설천위의 영력은 점차 약해질 것이고, 무뎌진 흑관은 적의 공격을 막아 내지 못하고 뚫리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끝.

‘역시, 아직 덜 여문 애송이일 뿐이구나.’

달기는 승리가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확신했다.

이대로만 가면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

그런 자신감과 함께 달기는 부하들을 움직였다.

확신을 가진 순간, 방심하지 않고 더 확실하게 짓밟는다.

기세를 타고 병력에 힘을 더한 달기의 의지를 따라 군세가 요동쳤다.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은 더욱 날뛰며 주변의 인간들을 짓밟았고, 짓밟힌 존재들은 바닥을 적시는 피가 되어 그들에게 힘을 더해 줬다.

죽음과 죽음이 이어져 힘으로 변하는 지옥도.

그것이 달기의 힘이자, 그녀가 가슴속에 품은 세상의 구현이다.

모든 것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입꼬리를 비튼 달기의 눈동자 속으로 점점 더 거세지는 공격에 몰리는 설천위가 들어왔다.

막고 막는 것에 지쳐, 어느새 상처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 설천위.

‘아아.’

저 피는 얼마나 감미로울까.

하나둘 방울져서 바닥을 향해 떨어지려는 설천위의 피를 눈에 담으며 달기가 애달픈 신음을 흘리는 그 순간.

“과연, 이런 느낌이구나.”

치밀하게 몰려드는 공세 속에서 설천위가 입을 열었다.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설천위.

그 안일하기 그지없는 동작으로 인해 생겨난 틈을 거한의 창이 꿰뚫었다.

심장이나 목을 노리는 무리수 따위는 두지 않고 심리적 경계가 약한 어깨나 팔을 노린 일격.

꿰뚫리는 순간, 바람구멍이 나는 수준이 아니라 어깨나 팔이 통째로 날아가는 지경에 이를 일격이 설천위를 꿰뚫었다.

아니.

“어때요?”

“나쁘지 않은 감각이다.”

꿰뚫을 뻔했다.

설천위의 앞, 검면으로 거한의 창을 흘려 낸 현태중은 무직한 손맛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보다 훨씬 낫구나.”

“흐음? 아저씨도 그 정도로 체감될 수준인가?”

현태중의 반응에 그 정도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던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상관없다.

반응이 좋으면 좋지 뭐.

[어리석구나. 내가 그것 하나 읽지 못했을 것 같으냐? 네놈이 불러내는 인간이 몇이든 결코 나를 뛰어넘을 수 없다.]

설천위가 사역하고 있는 혼을 실체화시킬 수 있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싸움에 끼어들진 않았어도 언여휘가 벌이는 재롱은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에 와서 화경급 고수의 혼이 몇 명 실체화한들 자신의 계획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그 정도는 이미 계산에 넣은 뒤였으니까.

달기의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뭐, 너무 빨리 판단하지 말라고.”

손가락을 까딱인 설천위는 자신을 공격하는 적을 밀어내며, 혼을 불러냈다.

“허허, 나쁘지 않은 전장이구나.”

“나랑은 안 맞는 게 아닌가…….”

“흠, 달기인가. 과한 상대로군.”

“주군의 명을 받듭니다.”

소백진에 암영의적, 손휘, 흑사까지.

설천위에게 굴복하고 완전히 사역됐던 이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물론 실력이 뒤처지는 암영의적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남들 다 나와서 싸우는데 자신만 처박혀 있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어리석다 못해 기가 차는구나.]

설천위가 불러낸 혼들의 모습에 달기는 헛웃음을 지었다.

[네놈이 그 숫자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혼을 실체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체에 간섭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괜히 악귀의 등급을 결정짓는 큰 요소로 보는 게 아니었다.

영체 상태의 존재가 실체화해 힘을 발휘하는 건 상당한 힘이 필요한 일이고, 달기조차 영역을 펼쳐 효율을 높이지 않는 한 그리 자주 하지 않는 일이다.

영역 없이 자신이 부리는 존재들을 실체화하려면 말 그대로 비효율적이면서도 막대한 영력이 필요하니까.

“아아, 그러니까. 원래 힘을 꽤 잡아먹어서 그리 많이 불러낼 수 없었단 말이지?”

외부에 나도는 녀석들은 술식을 새겨 실체화시킨 거지 설천위가 무식하게 힘으로 실체화시킨 게 아니었다.

청아나 청랑 같은 녀석들은 처음 만들 땐 꽤나 영력이 소모됐지만, 그 이후 유지에는 그다지 큰 힘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각 개체가 독자적으로 영력을 수급할 수 있게 만들어 놨기 때문에 설천위와 연결이 거의 끊겨도 활동할 수 있는 거고.

여하튼, 설천위도 전투만을 위해 현태중, 소백진 수준의 혼을 실체화시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힘은 힘대로 소모하고, 심력도 심력대로 소모하는, 생각보다 그다지 효율이 좋지 않은 기술이다.

무엇보다 설천위가 현경에 오르면서 단순 무력으로도 이미 자신이 거느린 혼들을 뛰어넘어 버린 뒤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필요가 없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숫자라는 것의 의미는 무시할 수 없기에 설천위는 꽤나 꾸준히 방법을 고심해 왔다.

그 결과물이 언여휘와 인왕사해를 막았던 현태중과 소백진이고.

그런데 지금 달기의 영역 속에 들어온 설천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역시 나이를 완전히 헛먹은 건 아닌가 봐?”

[……네놈?]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설천위의 눈빛에 이상함을 느낀 달기는 재빨리 설천위가 불러낸 존재들을 살폈다.

뛰어난 무력으로 자신의 병력들과 팽팽하게 맞서 싸우고 있는 것들.

심지어 자신이 알고 있던 손휘라는 술사 놈도 있었다.

상당히 뛰어난 구성이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었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감히 내 지식을 베낀 것이냐?]

“어허, 베끼다니. 참고한 거라고 해 줄래? 뭐 어디서 인용했는지 주석이라도 달아 줄까?”

히죽 웃으며 손을 까딱이는 설천위.

이내 그가 휘두른 도가 달려드는 적을 베어 냈다.

베어 낸 적을 그대로 발로 밀어서 넘어트린 설천위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적을 짓밟고, 발버둥치는 적을 흑관으로 찍어 눌렀다.

“자, 다시 물어보마.”

발버둥치는 적을 완전히 짓밟아 한 줌 핏덩이로 만들어 버린 설천위는 아직도 지붕 위에 자리를 잡은 채 움직이지 않는 달기를 보며 물었다.

“언제까지 거기서 지켜만 볼 생각이냐?”

똑바로 눈을 마주치고 질문을 던지는 설천위.

그를 덮치는 적들을 설천위를 감싼 혼들이 막아 낸다.

사방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똑바로 자신을 노려보며 묻는 설천위의 모습에 달기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미 말하지 않았더냐? 애송이.]

대지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거세지고, 설천위를 압박하는 적들의 무기에 선명한 보라색 화염이 깃들었다.

[영원히, 닿을 수 없다고.]

* * *

“후우, 꽤나 끈질기군요.”

설천위가 싸우고 있는 영역 밖.

위영제군을 비롯한 다섯 제군들과 싸우던 유예린은 가볍게 호흡을 고르며 소검을 늘어트렸다.

“이 정도로 오래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

[쿨럭, 괴……물…….]

“아녀자에게 실례되는 말을 하는군요.”

전신이 난자당해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위영제군은 한 건물 위의 지붕에 빨래처럼 널브러져 있다.

그 머리 위에서, 몸 곳곳에 피가 묻은 유예린은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저쪽도 거의 끝나 가는군요.”

명불허전이라고 해야 하나.

분명 번개를 다루는데 기이할 정도로 그 사람과 비슷한 힘을 보이는 백유는 훌륭하게 제군들을 박살 냈다.

달려드는 다른 잡것들은 문율이 맡아 주고 있으니, 이제 상황은 얼추 정리됐다고 해도 될 정도.

“문제는…… 저쪽이군요.”

고개를 돌린 유예린은 강렬한 폭음이 터져 나오는 곳을 내려다봤다.

기이한 불안감이 스쳐 지나간 뒤,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변하기 시작했다.

이쪽의 전투에 집중하느라 여태까지 자세히 살필 수 없었지만, 여유가 생긴 지금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그렇기에 고작 한 식경(약 30분)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런 꼴이 됐는지 유예린은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족히 수십 미터는 파인 듯한 거대한 구덩이.

그 주변의 모든 건물들이 내려앉아 잔해로 변해 버린 공간 속에서.

“크아아아아아아압!!”

[키아아아아아아아아!!]

괴성을 내지르는 철백과 괴물이 난타전을 벌이고 있었다.

일격, 일격마다 살을 짓이기고 뼈를 으스러트릴 공격이 서로를 향해 쏟아진다.

그 와중에 철백이 몸으로 받은 충격을 아래로 흘려내고 있었는데, 그 여파만으로 지금 땅이 저렇게 된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지금도 계속해서 땅이 내려앉고 있었으니까.

이대로 가면 황궁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존재의 전투는 강력했고, 또 거칠었다.

“……도와야겠네요.”

이대로 놔뒀다간 황궁이 아니라 제도 전체가 무너질 지경이다.

무엇보다 지금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철백이 슬슬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진즉에 한계에 도달했음에도 억지로 버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뒤로 기절한 서하영을 감싼 소윤혜가 있으니까.

아마 둘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거겠지.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도움을…….

움직이려는 순간, 서늘한 느낌에 몸을 비튼 유예린은 자신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는 소검에 재빨리 반격했다.

단숨에 베어 내는 손맛이 느껴지고, 소검을 내지른 상대가 무너진다.

그리고.

“……어떻게?”

다시금 일어서는 위영제군의 모습에 유예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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