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601화 (601/624)

제601화

600화-달기 (3)

설천위가 힘을 모으는 것에 반응해 발작적으로 달려든 달기의 공격은 간단했다.

조금 전처럼 여우를 보낸다.

다만, 이번에는 힘을 아끼지 않고 시원하게 내질러 세 마리나 되는 여우가 설천위를 향해 쇄도했다.

백유와 유예린이 하나씩 맡아도 하나가 남는다는 계산.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을 너무 신경 쓰지 않는 달기의 성격이 계산의 착오를 불러왔다.

[캬오오오!]

대기하고 있던 문율의 손에 휘감긴 여우가 괴성을 내질렀다.

백유와 유예린을 마주한 여우들은 비명을 지를 여유도 없이 피투성이가 되어 몸을 비틀었다.

어떻게 해서든 설천위에게 도달해 이 흐름을 끊겠다는 각오로 가득한 발버둥.

그 발버둥에 식겁할 법도 하건만, 백유와 유예린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침착하게 여우들을 썰어 버렸다.

세 여우를 세 사람이 막아 내는 사이, 달기의 명령을 듣고 달려들었던 제군들이 설천위에게 도달했다.

달려든 제군만 무려 다섯.

화경에서 현경 사이의 제군들의 공격은 아무리 설천위라고 해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나.

“늦었지.”

이미 영력을 회복하기 시작한 설천위가 만들어 낸 흑관은 제군들의 공격을 단숨에 차단했다.

완벽하게 적의 공격을 막은 직후, 설천위가 휘두르는 검에 휩쓸린 제군들의 몸이 그대로 튕겨 나갔다.

정확히 말하면, 군세에 휩쓸려 잡아먹히기 전에 몸을 날린 것에 가까웠지만.

거리를 벌린 제군들이 다시 태세를 정비하는 사이, 자신이 보낸 여우들이 허망하게 사라진 것을 확인한 달기는 고심했다.

어디까지 힘을 끌어내야 하지?

그 계집을 생각하면 저기 구복처럼 멍청하게 있는 힘, 없는 힘을 죄다 끌어내면 안 된다.

짐승처럼 무식하게 행동하면, 결국 손발이 묶여 저리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거다.

지금 밑에서 목이 베이고 있는 구복은 이제 정말로 목숨이 몇 개 남지 않았다.

‘도움 안 되는 버러지 같은 놈.’

고작 인간들 따위에게 손발이 완전히 묶여서 목이나 썰리고 있는 꼬라지라니.

괴이의 수치 중 수치였다.

저놈 말고 차라리 혈주, 그자가 이곳에 있었으면 훨씬 일이 쉬웠을 터인데.

‘설마……?’

언여휘가 설천위를 이용해 혈주를 처리했다는 소문을 떠올린 달기는 기이한 불안감을 느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언여휘가 뛰어난 인간이긴 해도 모든 것을 계획적으로 진행할 수는 없다.

하물며, 고작 인간 따위가 혈주를 제압해 먹어 치울 거라는 계산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계산을 하면 그건 계획적인 게 아니라 미친 거다.

머리가 똑똑한 만큼 언여휘도 그런 계획을 세웠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우연에 의존해 일의 흐름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가장 가능성 있는 가정이 떠올랐지만, 달기는 더 길게 생각을 이어 가지 못했다.

지금 이렇게 생각에 빠진 순간에도 설천위는 사방에 널린 축생의 괴물들과 자신의 부하들을 잡아먹고 힘을 키우고 있었으니까.

군세.

왜 저 힘이 군세의 형태로 구현된 건지 알 것도 같았다.

정말 모든 것을 짓밟기 위한 힘.

[네놈은 시대를 잘못 타고났구나.]

신화시대에 태어났다면, 능히 신이 되어 세상을 굽어봤을 터인데.

설천위를 향한 평가를 한 단계 올리면서 달기는 결국 결심했다.

숨어 있는 언여휘를 경계하다가 눈앞에 있는 인간의 회복을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하책 중 하책.

멀리 보다가 눈앞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꼴이다.

[나를 화나게 한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달기가 손을 뻗었다.

그 손 위로 피어오른 무형의 기운이 형태를 이루고, 그 육체에서 뿜어져 나온 힘이 거대하게 몸을 부풀렸다.

순식간에 완성된 거대한 여우의 형상.

다만, 이전까지 만들었던 분신들과 달리 화려한 문양이 수 놓인 달기의 본체는 기이할 정도로 위험한 빛을 일렁이고 있었다.

연보랏빛의 털 위로 일렁이는 질척이는 검붉은 선.

아름다운 외형을 그 선 하나가 바꿔 놓고 있었다.

절대 접근해선 안 될 위험한 존재로.

존재하는 것만으로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달기의 모습에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럼 이놈들은 부탁할게.”

“맡겨 주세요.”

“잘됐네. 못 끝낸 게 영 아쉬웠는데.”

“달기의 지원이 약해졌으니 그리 많이 죽이지 않아도 끝을 볼 수 있을 거야.”

자신이 파악한 적들의 정보를 말해 주며 설천위는 한 단계 도약해 더욱 위로 올라갔다.

“아, 그리고.”

하늘 위로 올라가며 제군들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는 세 사람을 내려다본 설천위는 무거운 표정으로 경고했다.

“숨어 있는 녀석을 경계해.”

* * *

숨어 있는 녀석을 경계해라.

그 말을 남기고 사라진 설천위가 나타난 곳은 달기의 머리 위였다.

힘을 모으는 동안,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달기의 예상을 가볍게 깬 돌격.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설천위의 참격을 다급하게 끌어모은 영력으로 막아 낸 달기는 그대로 몸을 비틀었다.

쩍 벌린 주둥이가 단숨에 설천위를 향해 쇄도한다.

순식간에 그 안에 설천위가 들어간 순간, 귀신같이 주둥이를 닫는 달기.

하지만.

“거, 짐승들은 왜 하나같이 둔한지 모르겠어.”

이미 그 안에서 빠져나온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구복도 그러더니, 왜 이리 굼뜨게 움직이는지.

물론 구복은 축생과 융합해 완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였으니, 조금 감안해 줄 수 있었지만.

“역시 전투랑 먼 삶을 살아서 그런가, 거머리 할매?”

[누가 거머리라는 것이냐!]

노성과 함께 달기가 일으킨 칙칙한 보라색의 불꽃이 설천위의 발밑에서부터 치솟았다.

다른 괴이들과 비교되는 힘의 운용력이었다.

설천위가 힘이 부족했던 시절부터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괴이들을 쉽사리 박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흑관을 만들어 내는 능력 때문이었다.

사실 자신과 떨어진 곳에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건 상당한 힘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술사와 괴이들은 그것을 은밀하게 해내지 못한다.

설천위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해내니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당장 그의 곁에 있는 술사들만 봐도 그게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연화와 성화린.

둘 다 초월의 경지에 오른 술사인데, 둘 중 누구도 설천위 같은 술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어디에 생겨날지 뻔한 흑관은 너무 적에게 읽히기 쉬워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즉, 설천위는 초월급의 술사들도 까다로워서 잘 쓰지 않는 술법을 햇병아리 시절부터 사용해 왔다는 소리다.

물론 그때는 그렇게까지 은밀하게 펼칠 순 없었지만.

여하튼, 작금에 이르러 설천위의 흑관은 이미 권능의 영역에 들어선 상태였다.

의지를 담는 순간, 그 자리에서 생겨나는 흑관.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술법을 다루는 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달기가 펼치는 불꽃 또한 그러했다.

권능의 영역에 들어선, 전조 없이 세상의 어딘가를 불태우는 불꽃.

자신의 바짓단을 태우는 달기의 불꽃을 발을 털어 떨쳐 낸 설천위는 가볍게 보법을 밟았다.

순식간에 분열하는 설천위의 몸.

[흥, 허튼수작을…….]

영력으로 세상을 보는 괴이를 상대로 하면서 인간의 보법 따위로 눈을 속이려 하다니.

달기가 설천위의 광대 짓을 비웃으려는 순간.

[…….]

달기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설천위의 보법과 함께 늘어난 신형 하나하나가 설천위와 구분할 수 없는 영력을 품고 있었으니까.

이건 이미 제천대성이 쓰는 분신술과 다를 게 없는 수준이었다.

‘어찌?’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사각에서 치솟은 참격에 달기는 몸을 비틀었다.

목을 베고 지나가는 망자의 참격.

털을 쥐어 잡고 살과 가죽을 짓이기며 파고드는 망자의 기운을 단숨에 영력을 뿜어내는 것으로 몰아낸 달기는 차분하게 기운을 돌렸다.

이런 속임수에 능한 적을 상대할 때 조급해지는 건 하책이다.

침착하게, 일어나는 일에 침착하게 대응하기만 하면…….

“역시 싸움 경험이 없으면 티가 난다니까.”

촤악!

순간 자신의 턱에서 솟구친 피에 달기의 눈이 크게 떠졌다.

대체 어떻게?

조금 전의 참격조차 읽어 내고 반응했던 자신인데, 이번엔 어찌?

그런 의문과 함께 이번에는 제대로 깊게 들어와 잇몸과 뼈를 드러낼 정도로 베인 상처가 아려 왔다.

[감히…… 인간 따위가……!]

분노에 찬 달기의 목소리에 허공에서 검을 쥔 채 서 있던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게 왜 쌈박질은 안 하고 약한 사람들이나 괴롭히면서 살았어? 비슷한 수준끼리 싸우고 했어야지.”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 설천위.

불쌍하다는 듯 내려다보는 시선에는 조롱이 가득해서 달기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다.

쉴 틈 없이 도발을 반복하는 설천위의 태도에 기어코 달기가 먼저 반응했다.

[감히 그딴 말을 내뱉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타오르는 화염, 그 화염이 세상 전체로 번지는 것과 함께 공간이 변하기 시작했다.

영역(靈域).

괴이가 만들어 내는 자신의 공간.

달기가 영역을 만들어 낸 순간, 그 안에 홀로 갇힌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괴이와의 싸움은 이것부터 시작이지.

* * *

“후우, 생각보다 더 힘들군.”

제도의 성벽.

성 전체를 포위한 대군과 맞서 싸우고 있던 무림맹주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관의 전쟁이란 이런 느낌이었나.”

적을 죽이는 건 어렵지 않다.

하나둘, 아니 수십을 죽이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수십이 뭔가, 수백을 죽이는 일도 우스웠다.

맹주가 쏟아 내는 검강을 막을 적이 없었으니, 검을 두세 번만 휘둘러도 열 넘게 죽일 수 있었다.

문제는 죽이는 과정 그 자체였다.

살인에 익숙한 무림인이라고 해도 자신이 뿜어낸 검강에 수십 명이 끔찍하게 갈라져 죽는 모습은 쉽사리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과 맞상대하는 살수 몇 명, 맞상대하는 무인 몇 명을 죽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살육의 무게감.

심지어 무(武)의 길을 제대로 걷지도 않은 일반인들을 베어 넘긴다는 건 정파 무림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이들에게 상당한 심적 부담감을 안겨 주었다.

당장 맹주만 해도 그렇고, 그와 함께하는 다른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대법의 영향을 받지 않은 무인들은 하나같이 강한 대주급 이상의 무인들이라 더욱 그랬다.

문제는 그들의 숫자가 적어서 그렇게 죽이고 죽여도 점점 더 적의 포위망이 조여 오고 있다는 점이다.

손속에 사정을 두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점점 더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반드시 무너진다.

사파나 설가가 맡고 있는 곳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으리라.

특히 사존이나 살존, 북존은 몰라도 불존은 지금 심적으로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을 터.

‘……차라리 손을 독하게 쓰는 것이 맞나?’

다른 이들이 무너지기 전에 자신이 완전히 적을 무너트리는 것이 맞는 방법인가?

할 수 있다.

자신이라면, 현경에 오른 무인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대학살로 기록될지도 모르지만, 충분히…….

“으아아아아아!! 불살대!! 돌겨어어어억!!”

순간 저 밑에서 들려오는 괴성에 맹주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성벽 아래서 미친 건지 성벽을 내려간 일단의 무리가 적을 향해 돌진했다.

분명 흑룡단 불살대 소속의 무배춘이었나?

흑룡단의 인원은 전부 머릿속에 넣고 있던 맹주는 단박에 그의 정체를 알아봤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의 정체까지.

전부가 흑룡단 소속의 무인들이었다.

불살대가 아닌 청혈대 소속의 무인들도 드문드문 있었지만.

여하튼, 불살대 소속 전원이 있었다.

“부단주님께서 다른 곳을 맡으신다고 하셨다!! 우리는 이곳을 막는다!! 죽음은!!”

“죄업!!”

“우리가 짊어질 목숨은!”

“우리 하나!!”

기이한 기합과 함께 달려 나간 불살대 무인들은 적과 충돌하자마자 비현실적인 광경을 연출해 냈다.

자신들이 베이고 찔려도 절대 적을 베거나 찌르지 않는다.

때리고, 부수고, 꺾어서.

“흐하하하하하하하!!”

적을 죽이지 않고 제압한다.

불살대라는 오만하면서도 어리석은 이름을 듣고 웃었던 것이 예전 일이거늘, 지금 이 전장에서도 그 이름을 지키려 하는가.

성안에서 괴물들을 상대로도 불살을 지키려던 무해의 부하들이라 이것인가!!

감탄과 함께 답답했던 속이 시원하게 뚫린 무림맹주는 천천히 하늘로 떠올랐다.

그의 별호 정존(正尊).

무림맹의 수좌에 오르며 얻게 된 별호이지만, 그는 사실 본래 쓰던 별호가 더 마음에 들었다.

신풍(神風) 심유.

오랜만에 자유로운 바람을 휘감은 심유는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주제도 모르고 달려드는 황군의 팔다리를 분질러 버리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격화되는 전투 뒤.

“내가…… 가야 한다……!”

겨우 깨어난 황제는 하나 남은 손으로 벽을 짚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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