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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600화 (600/624)

제600화

599화-달기 (2)

군세를 일으킨다 함은 당연하게도 다수 대 다수의 전투에서 쓰이는 말이다.

어떤 정신 나간 종자가 한 사람을 위해 군세를 일으키겠는가.

당연히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개인으로는 맞설 수 없는 거대한 적을 없애기 위해 군세를 일으키는 것이 보통이다.

때문에 대다수의 술사들은 식령을 다룬다고 한들 군세라 불릴 정도의 숫자는 절대 사역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만한 숫자가 필요한 적이라면, 그냥 다른 사람과 협동해서 맞서는 게 더 현실적이니까.

한 개인이 군대라고 불러 마땅한 수준의 숫자를 거느리고 다룬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또 그 숫자를 다루는 것도 술사에게 크나큰 부담이 된다.

군세가 필요할 정도로 많은 적이 상대라면, 혹은 군세가 필요할 정도로 거대한 적이 상대라면 당연히 다른 사람과 손을 맞잡는 게 먼저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그런 법칙을 어느 정도 깨부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백의 손을 다루는 문율조차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엄청난 군세가 솟구쳤다.

말 그대로 솟구쳤다.

대지에서 시작된 길쭉한 상흔에서 기어 나온 망자들의 군세는 당연하다는 듯 위로 치솟아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었다.

끔찍하다는 평이 절로 나오는 광경.

하지만 동시에 안도감이 드는 광경.

망자로 이루어진 거대한 무리는 보는 것만으로 공포심을 선사했으나, 저 위에 선 자가 아군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불안은 곧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네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문율이 어찌 생각하든 그 망자의 군세와 마주한 달기는 미간을 찡그린 채 부채를 흔들고 있었다.

의아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군세를 부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조금이라도 더 높은 심상(心象)이.

조금이라도 더 단단한 심상이.

조금이라도 더 확고한 심상이 필요한 것이 자신과 같은 존재들의 싸움이다.

권능에 가까운 힘을 뿌리고, 이치를 벗어난 힘을 휘두르는 싸움에 숫자라는 것은 그저 무의미한 돌멩이에 지나지 않았다.

의미도 없고 힘만 소모할 뿐인 군세를 불러내는 행위가 대체 이 싸움에서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런 의문이 담긴 달기의 물음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도 잘 몰랐으니까.

스킬이란 것은 쓰기 전에는 대충 감만 오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써야 할지까지는 잘 모르는 법이다.

그러니.

“이러려고?”

의문형으로 말하며, 설천위는 자신의 발아래까지 올라온 망자들의 군세에 손을 뻗었다.

정확히는 그 바로 위로 손을 뻗었다.

허공을 설천위가 쥐는 순간.

검의 손잡이처럼 치솟은 망자의 팔을 설천위가 움켜쥐었다.

그리고 뽑는다.

아래에서 위로.

뽑는 것과 동시에 휘두르는 참격.

망자들의 군세를 칼날 삼아, 거대한 참격이 세상을 갈랐다.

망자의 선이 대지를, 허공을, 하늘을 가른다.

닿는 모든 것을 끌어들이며, 죽음으로 이끈다.

흙, 건물, 나무, 작은 들쥐와 새까지.

순식간에 달기가 있는 공간 전체를 집어삼킨 참격이 지나가고.

“……예상했던 것과 너무 다른데.”

패기를 시작으로 탄생한 능력이니, 뭐 패융을 강화해 준다거나 아니면 패기 자체를 강화해 주는 능력인 줄 알았는데.

이름도 천하패도(天下覇道)고.

생각과 다른 힘의 방향에 어색하게 웃은 설천위는 참격의 시작이 된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감상은 감상이고, 전투는 전투다.

애초에 설천위가 달기의 존재를 깨닫고 순간적이나마 대법의 저지를 포기할까 고민했던 이유가 무엇이던가.

달기라는 존재가 가진 위험성 때문이다.

자신이 힘을 보태지 않으면, 누군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그것 때문에 고민했던 것이 아니던가.

그러다 유예린의 등장에 그녀라면 어떻게든 버텨 줄 것이라고 믿고 고민을 그만두긴 했지만.

끼릭!

잠깐 생각을 이어 나가는 사이, 설천위가 쏟아 냈던 참격에서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맞물려 있는 쇳덩이를 억지로 벌리는 것 같은 기이한 소리.

이윽고 점점 더 커지는 소리는 이내 비명이 되었다.

기아아아아아아아!!

망자들이 내뱉는 비명과 함께 완전히 갈라진 참격 속에서 부채를 접고 손톱을 세운 달기가 걸어 나왔다.

[참으로 추잡한 짓을 벌이는구나.]

군세인 듯 속여 참격을 날리다니.

망자의 군세에 집어삼켜지는 순간, 뒤늦게 반응한 탓에 몇 군데 쓸리고 찢겨 나간 달기의 얼굴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삼키고 식혀서 얼음을 만들어 낸 것 같은 표정.

“추잡한 거로는 대빵인 너한테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은데.”

멀쩡하게 나타난 달기의 모습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귀를 후비며 웃은 설천위는 망자가 뒤엉킨 검을 들어 어깨에 걸쳤다.

망자의 군세가 흐르는 검.

껄렁한 태도와 대비되는 숨통을 조이는 살기와 패기.

누가 봐도…….

‘악당이네요.’

‘역시 사파가 어울리는 남자야.’

악당 그 자체인 모습에 유예린과 백유가 속삭였지만, 근처에서 그걸 듣고 있는 문율은 딱히 말을 더하지 않았다.

웬만하면 아니라고 해 주고 싶었지만, 양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솔직히 모르고 봤으면 인세 최악의 악귀가 재림했다고 해도 납득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설천위의 행동에 휘둘리고 있는 것은 허공에 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참 귀찮게 하는군.”

자신과 구복을 그대로 덮쳤던 망자의 군세 속에서 기어코 구복을 놓지 않고 버텼던 철백은 몸에 달라붙은 패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손을 빼서 털어 낼 수도 없으니, 싸우는 내내 달라붙은 상태로 싸워야 할 것 같았다.

그나저나.

“덕분에 한 번 잡았네요.”

“반항이 점점 더 거세져서 힘들어지고 있었는데, 나쁘지 않은 소식이네.”

철백이 이를 악물고 망자의 군세 속에서 구복을 잡고 있는 사이, 유유히 빠져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구복의 목을 베어 낸 소윤혜와 서하영은 만족하고 있었다.

덕분에 반항이 거세지고 더욱 질겨지던 구복의 목을 한 번 더 베어 냈으니까.

고작 단 한 번의 일격.

그 일격에 전장의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괴이는 긴장을.

인간은 안도를.

달기는 물론 달기의 부하인 제군들과 한 번 더 목이 날아간 구복까지.

설천위의 등장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뼈저리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다음으로 가자고.”

어깨에 걸친 망자의 군세를 다시 들어 올린 설천위는 이쪽을 노려보는 달기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너도 꺼낼 게 더 있잖아?”

도발이 섞인 설천위의 웃음에 달기는 쥐고 있던 부채를 단박에 부러트렸다.

[인간, 주제 파악을 못 하는구나.]

“주제 파악을 못 하는 건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아득바득 떠도는 너희들이고.”

죽었으면 어? 저승으로 가든가 하다못해 연옥으로 가든가 해야지.

아니면 다른 공간을 만들어 조용히 처박혀 있거나.

왜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들을 제물로 바쳐서 지들 배를 채우려고 들어?

짜증이 담긴 설천위의 대답에 그를 지그시 응시하던 달기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네놈의 그 오만한 콧대를 꺾어 주마.]

완전히 뻗어진 달기의 손끝이 설천위를 가리켰다.

보라색으로 빛나는 손톱에 기이한 빛이 일렁이는 순간.

[사지를 찢고 귀와 눈을 도려내도 그리 말할 수 있는지 어디 지켜봐 주마.]

그 오만한 혓바닥은 그 뒤에 잘라 낼 것이다.

살의로 충만하다 못해 살의 자체가 죽음으로 형상화된 달기의 힘이 형태를 이루었다.

거대한 여우.

다만, 통상적인 여우의 생김새와 달리 흉포하고 흉악하다는 느낌이 절로 드는 여우는 한껏 곤두선 털을 휘날리며 설천위에게 쇄도했다.

허공을 박차고 달려오는 여우에게 맞서 설천위는 다시금 망자의 군세를 휘둘렀다.

여우와 망자의 군세가 충돌한다.

순식간에 서로 뒤엉키는 망자와 여우.

망자들의 손과 턱이 여우의 털과 가죽을 뜯었고, 여우의 발톱과 송곳니가 망자들의 뼈와 가죽을 짓뭉갰다.

다만 차이점은 망자들은 끝없이 부서지는 것이 전부였지만, 달기가 만들어 낸 여우는 끊임없이 털과 가죽이 재생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밀린다.

여우는 계속해서 전진했고, 망자의 군세는 속절없이 밀려 길을 내주었다.

밀리고 밀려 길을 내주는 망자의 군세를 뚫고 기어코 여우가 참격을 넘어섰다.

[키아아오오!]

날카로운 울음을 토해내며 자신의 앞에서 나타난 여우를 보며 설천위는 피식 웃었다.

“너, 뭔가 잊고 있지 않냐?”

설천위의 웃음과 함께 양옆에서 치솟은 백유와 유예린의 칼날에 여우의 몸이 토막 났다.

눈 깜짝할 새에 여우를 여우의 형상을 하고 있던 무언가로 바꿔 버린 두 사람은 설천위의 옆에 섰다.

“숨은 다 골랐고?”

“그냥 오랜만에 봐서 구경 좀 했던 건데?”

“하나도 안 지쳤어요.”

헤헤- 하고 웃으며 팔에 달라붙는 백유와 그녀를 쏘아보며 반대쪽에 달라붙는 유예린.

두 사람의 행동에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가볍게 둘을 밀어냈다.

“일 다 끝나고.”

“오, 다 끝나고 같이? 천위, 두 번째라고 많이 화끈해졌네?”

“백유, 천박해요. 좀.”

다른 사람들도 듣는데, 진짜…….

부끄러움에 한숨을 내쉰 유예린이 고개를 젓는 사이, 혼자 앞으로 나선 설천위는 이쪽을 노려보는 달기를 보며 웃었다.

“왜? 아니꼬우면 너도 친구 불러. 아, 넌 친구 없지? 새끼, 오래 살면서 친구 하나 못 만들었냐. 괴생 헛살았네, 헛살았어.”

[천박한 도발을 하는구나.]

“어? 도발처럼 느껴졌어? 그럼 네가 친구가 없다는 걸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소린데……. 거 좀 착하게 살지 그랬냐.”

하다못해 착하게는 안 살아도 못되게 살진 말았어야지.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저은 설천위는 망자의 검을 다시 움켜쥐었다.

“조금 걸리는 게 있으니까 너무 힘 빼지 말고 마무리 짓자고. 너도 애쓰다가 이승 하직하는 것보단 편하게 가는 게 낫지 않겠어?”

[헛소리를 길게도 하는구나.]

장난스럽다 못해 경박한 설천위의 태도에 달기는 얼굴을 찡그린 채 손을 들었다.

[네놈이 그리 경박하게 굴 수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야.]

확신이 담긴 달기의 경고에도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영력을 많이 소모해서? 고작 그것만으로 내가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웃음을 흘린 설천위는 망자의 검을 어깨에 걸친 채 입꼬리를 비틀었다.

“너희들은 창의력이 없어, 창의력이. 아니, 역지사지의 정신이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설천위의 검에서 흘러내린 망자의 군세가 천천히 대지를 타고 흐른다.

스킬에서 시작했으나, 아득한 경지에 오른 설천위의 능력은 스킬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그 힘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르르르.]

망자의 군세에서 흘러나오는 용의 울음소리.

그리고 저 멀리 사방으로 뻗어나가던 망자의 군세가 흩어지는 순간.

콰득! 콰득!

무언가가 무언가를 잡아먹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도시 곳곳에 뻗어 있던, 그리고 조금 전까지 우공이 만들어 내던 축생의 괴물들.

“왜 너희만 제물을 바쳐서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들의 영육을 쥐어짜 만들어 낸 영력이 단숨에 설천위를 향해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네놈?]

순식간에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설천위를 향해 모이기 시작하는 영력에 달기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존재의 영력을 흡수한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고작 인간의 혼 따위로 다른 존재의 혼을 흡수한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그런데…….

[설마?]

아득히 먼 옛날, 그것이 가능했던 인간을 떠올리고, 또 고작 몇백 년 전에 그와 비슷한 것을 보여 줬던 인간을 떠올린 달기는 다급하게 힘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막아라!!]

제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설천위를 막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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