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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97화 (597/624)

제597화

596화-불가능을 가능으로 (9)

“일단 몰아붙일까요?”

“그래.”

서하영의 물음에 천천히 도를 뽑은 소윤혜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예린이 구복을 자신들에게 맡긴 이유.

뻔했다.

철백과 서하영은 구복을 상대하기 위해서.

자신은 구복을 죽이기 위해서.

구복을 베었던 유예린의 참격.

제대로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던 그 공격에서 소윤혜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공격에서 느낀 것이 아니라 공격의 잔향에서 느낀 거지만.

뭐가 됐든, 중요한 건 무엇을 느꼈느냐는 것이다.

아마 다른 이들은 느끼지 못했을 그것.

어쩌면 주현운은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그쪽은 언여휘의 인형들을 찾아야 하니까.

‘내가 해야지.’

재생이 거의 끝나 가는 구복을 향해 걸어가던 소윤혜는 한참 남은 거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런 소윤혜의 움직임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아가는 서하영.

홀로 남은 소윤혜는 호흡을 뱉어내는 것과 동시에, 똑바로 서서 양손으로 도를 쥔 채 자신의 앞에 늘어트렸다.

땅을 향해 늘어뜨린 도를 쥐고, 소윤혜는 천천히 길고 가는 숨을 들이쉬었다.

중요한 것은 베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죽이는 것.’

죽음이다.

[키아아아아아아!!]

재생이 끝나 괴성을 내지르는 구복을 향해 달려든 서하영의 창이 단숨에 구복의 팔을 헤집는다.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는 바람의 날이 구복의 털가죽을 뚫고 그 살을 마구 헤집는다.

자신의 팔을 꿰뚫은 창에 발악하듯 적을 자신의 몸쪽으로 당긴 구복의 손이 서하영을 움켜쥐려는 순간.

“흐으읍!”

그 틈으로 끼어든 철백의 팔이 구복의 팔과 엉켜서 그 움직임을 저지했다.

힘 대 힘.

구복이라는, 세상을 뒤집어엎을 괴물을 상대로 어김없이 다시금 힘 싸움을 벌이는 철백의 모습은 누구라도 기가 질려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이 자리엔 그런 위용을 보고 감탄할 만큼 나약한 사람이 없었다.

자신의 앞에서 구복을 묶은 철백을 확인하자마자, 창을 뽑고 위로 도약한 서하영이 바람으로 자신의 발을 허공에 묶었다.

대지를 디딘 것처럼 구복의 머리 위에서 단단하게 자신을 고정한 서하영의 창이 단숨에 구복을 노리고 낙하했다.

바람을 휘감은 찌르기.

관통당하는 순간, 폭사하는 바람의 칼날에 내부가 난자되어 끔찍한 꼴을 당하게 될 것이 분명한 공격이었으나.

[꺼져라아아아아!! 인간 놈들!!]

어느새 말을 할 정도로 이성을 되찾은 구복의 포효가 그 바람을 흩트려 놓았다.

흔들리는 바람.

단숨에 예기의 기세가 꺾인 창을 구복이 움켜쥐었다.

두 손으로는 철백을 막고, 등에 돋아난 두 팔로는 서하영의 창을 붙잡은 구복은 그대로 창을 휘둘렀다.

이대로 날려 버리리라.

만약 창을 놓는다면 무기를 뺏는 것이 되니 구복으로서는 나쁠 게 하나 없는 투자였다.

구복이 그대로 창을 휘둘러 서하영을 쳐 내려는 그 순간.

“……쯧.”

창을 쥐고 있던 팔을 본능적으로 자신의 앞으로 휘두른 구복은 혀를 차는 소리를 들었다.

저 멀리, 몇 걸음이나 떨어진 곳에서 아까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인간 여자에게서 난 소리.

그리고.

“아우, 힘은 더럽게 강해서는…….”

자신의 창을 회수하고 허공에서 휘리릭 돌아 똑바로 선 서하영의 투덜거리는 목소리까지.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인지하기까지 들려온 적들의 반응에 구복의 두 눈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안광이 붉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것과 달리 흰자위가 없는 짐승의 눈 전체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분노에 솟구친 피가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터져 버린 것이다.

붉어진 눈은 단숨에 피를 머금고,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한 구복이 주둥이를 크게 벌렸다.

쩍 하고 벌어진 주둥이를 바로 마주한 철백은 그 악취에도 덤덤하게 자신의 팔에 힘을 더하는 그 순간.

[감히!! 인간 따위가!!]

그 직전에 소윤혜에게 두 팔이 잘려 버린 구복의 분노가 거세게 터져 나왔다.

그것은 분노이자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경고였다.

조금 전 두 팔로 막지 않았다면, 떨어지는 것은 자신의 목이었을 테니까.

잘려 나간 두 팔의 재생이 더디다는 것이 구복에게 확신을 주었다.

지금 저기서 도를 쥐고 서 있는 계집은 죽음을 다룰 줄 안다.

그리고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다.

자신은 불사에 가까우면서 동시에 많은 목숨을 지닌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죽음 자체를 극복한 것이 아니었다.

가까울 뿐이다.

신화시대에도 그러했고, 나약해진 지금은 더더욱 그러했다.

죽음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고…….

‘일단 물러나야 한다.’

자신은 언제나 죽음을 피해 이 세상에서 살아남았다.

지금도 그랬다.

지금 이 전투를 억지로 이어 나가는 건 하책 중 하책이다.

적이 죽음을 다룰 수 있다는 걸 알아낸 이상, 굳이 이곳에서 힘을 뺄 필요가 없었다.

일단 달기 쪽에 합류해서 상황을…….

“눈이 돌아가고 있다. 짐승.”

똑바로 자신과 마주한 철백의 목소리에 구복은 생각에서 벗어났다.

인간 주제에 자신과 힘 싸움을 하고 있는 괴물.

“죽음을 마주하니 겁먹은 거냐.”

실망이 담긴 목소리.

의문이 아닌 실망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구복의 심사를 뒤틀었다.

[겁먹어?]

생존을 위한 당연한 행동 방식이다.

짐승이란 불리해지면 한 발 빼고, 유리해지면 다시 파고든다.

그 과정에 겁을 집어먹는다든가 두려움을 느꼈다든가 하는 일은 없다.

왜냐고?

겁을 먹으면 움직임이 더뎌지고, 공포에 질리면 발이 얼어붙는다.

그런 나약한 종자들은 진즉에 야생에서 도태되어 사라졌다.

자신은 그런 나약한 종자들과 질적으로 다르다.

강한 존재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끝내 살아남은 존재가 강한 것이다.

모든 형제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신이야말로 최강의 짐승…….

“정신이 오락가락하는가 보군. 조금 전까진 목을 내걸고 죽일 기세였는데.”

[…….]

조금 전까지.

철백의 그 말에 구복은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무언가가 잘못된…….

고개를 돌린 순간, 그리고 저 하늘 위에서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달기와 눈이 마주친 순간, 구복은 깨달았다.

[……달기!!]

대꾸조차 없다.

조롱이 가득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돌리는 달기를 향해 도약하려 했지만, 구복의 몸은 이미 철백에게 단단히 붙잡혀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으나, 네가 변했다는 것만은 확실하군.”

형제의 죽음에 분노해 달려들던 놈이 갑자기 제 살길을 찾기 위해 눈을 돌리는 것은 이상했지만,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죽음을 두 번이나 겪었으니, 충분히 소극적으로 변할 수도 있지.

조금 전까지의 기세가 여분의 목숨을 믿고 날뛰던 것이었다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렇다면 어려울 것도 없지.”

죽음을 각오하고 덤벼드는 짐승은 공포의 대상이지만, 제 살이 갈라질까 두려워 짖기만 하는 짐승은 그저 사냥감에 불과하다.

철 기둥 같은 두 팔로 구복을 더욱 강하게 옥죈 철백이 구복을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순간.

서걱!

날아온 소윤혜의 참격이 그대로 구복의 목을 갈랐다.

이번에는 확실하고 정확하게.

구복에게 세 번째 죽음을 선사했다.

* * *

[어리석은 것.]

자신의 탓이라 착각하는 꼴이라니.

그 어리석음이 즐거운 것이지만.

축생의 곤옥을 한동안 품고 있었으면서 그 영향을 받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과연 짐승이다.

축생의 곤옥은 축생도(畜生道)의 힘이 담긴 기물.

세계를 이루는 파편이나 마찬가지인 물건이다.

그 물건을 몇 년이나 품고 있었는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고 스스로 믿는 꼴이라니.

구복은 살아남은 짐승이지만, 축생도의 짐승들은 살아남는 짐승들이 아니다.

고통받는 짐승들이지.

업의 순환에 묶여 고통받는 죄인들.

그런 죄인들에게 선명한 이성이 남아 있을 리가 있나.

자신이 변했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구복의 행태에 혀를 차던 달기는 이내 신경을 껐다.

자신을 보며 성을 내는 구복의 모습은 즐거운 여흥이었으나, 지금은 더 즐거운 것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나는 너보다는 그 여아가 가지고 싶다만.]

“연화는 어리긴 해도 여아라고 불릴 정도는 아닙니다만.”

위영제군의 목을 베어 내 그 머리를 망나니처럼 쥔 유예린의 대답에 달기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그다지 어린 건 아닌 모양이구나. 느껴지는 피의 냄새는 처녀의 그것이었다만.]

“아이는 아니더라도 어른도 아닌 그런 나이죠.”

뺨을 타고 흐르는 피를 닦아 낸 유예린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주위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최소 셋.’

지금 백유가 상대하고 있는, 양손이 날붙이로 된 제군 이외에도 셋이 더 몸을 숨기고 있었다.

[감각이 날카로운 모양이구나. 숨어 있는 제군들도 찾은 모양이고.]

“사소한 재주 정도죠.”

자신의 부하들의 위치를 전부 들켰음에도 덤덤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일관하는 달기.

그런 달기의 모습에 유예린이 위영제군의 수급을 손에서 놓는 순간.

치솟은 칼날에 유예린이 다급히 물러났다.

반걸음.

고작 반걸음 물러난 것이었지만…….

[이런, 예쁜 얼굴에 흉이 생기겠구나.]

가슴과 뺨을 스치고 지나간 공격에 생겨난 긴 상흔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개나 소나 다 불사군요.”

떨어진 수급에서 멀쩡히 부활한 위영제군의 모습에 가볍게 미간을 찡그린 유예린은 일단 물러나서 태세를 정비했다.

다행히 달려들지 않는 적 덕분에 별 무리 없이 태세를 정비한 유예린은 미간을 찡그리고 상대를 바라봤다.

분명 죽음을 담아 벴다.

아무리 괴이라고 해도 확실하게 죽음을 맞이했어야 할 터인데…….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구나.]

위영제군을 살피는 유예린을 보며 웃음을 흘린 달기는 부채를 살랑였다.

[네 참격은 훌륭했느니라. 전대 위영제군은 확실하게 죽었으니.]

……전대?

[괴이의 죽음은 참으로 비극적이지. 소멸과 같은 말이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

소멸을 맞이한 존재를 거름 삼아 또 다른 존재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 된다.

[십이군 같은 아이들과는 다르다. 이 아이들은 진정한 제군(帝君). 영원불멸로 이어지는 나의 추종자들이니라.]

왕이 죽어도 그 자리가 세습되듯이.

제군들은 주체가 되던 존재가 죽더라도 달기가 심어 놓은 또 다른 존재가 그 몸을 차지하고 되살아난다.

그렇다면.

“……불사나 다름없군요.”

날카로운 눈으로 다시 나타난 위영제군을 살피는 유예린의 평가에 달기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불사와는 아주 다른 이야기다. 참으로 잔인한 소리를 하는구나. 전대 위영제군은 네 손으로 확실하게 끝내 놓고 불사라니?]

잔인한 아이.

혀를 차며 유예린을 나무란 달기는 펼친 부채를 접어 새로운 위영제군을 가리켰다.

[저 아이는 전대 위영제군의 경험과 기술을 이어받았을 뿐, 아예 다른 존재이니라.]

불사란 정말 이루기 힘든 개념이다.

당장 달기 본인조차 제대로 이뤄냈다고 단언할 수 없거늘 부하 따위에게 완전한 불사를 선사해 줬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너는 죽이고 또 죽여야 할 것이다.]

위영제군은 넘쳐나니.

달기의 자신만만한 선언에 유예린은 제군으로 판단되는 적 셋이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달기는 애초에 제군으로 이쪽을 처리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시간 끌기.

제군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였다.

달기는 그 이상의 역할을 제군에게 기대하지 않고,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달기는 뭘 하고 싶은 걸까?

정녕 자신의 부하들과 적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유흥이라도 즐기고 싶은 것일까?

아니, 그렇다면 숨어서 즐기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달기가 직접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무엇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 유예린은 깨달았다.

주현운과 연화.

그 둘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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