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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94화 (594/624)

제594화

593화-불가능을 가능으로 (6)

세상이 크게 요동친다.

그것이 또 다른 존재의 개입에 의한 것임을 눈치챈 순간, 연화는 두 눈을 크게 떴다.

“흡!”

연화의 다급한 손짓과 함께 흐트러지려는 영력이 제자리를 찾는다.

뛰어난 제어 능력.

과연 설천위의 제자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훌륭한 대처였으나, 안타깝게도 상대는 그것만으로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주군의 명을 받아 네 혼을 거두러 왔노라.]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낸 존재와 마주한 연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느껴지는 기운부터가 인간과는 동떨어진 존재라는 것이 느껴졌다.

괴이.

아마 악귀겠지.

생각해 보면 이상하긴 했다.

이 난리 통에 황궁을 점령하고 펼치는 대대적인 계획에 어째서 다른 악귀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그나마 모습을 보인 건 공간을 조종하는 악귀인데, 그것만 해도 충분히 이상했다.

이만한 계획에 악귀의 개입이 없다는 건 아무래도 말이 안 되니까.

특히, 사혈천이라는, 악귀를 통합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세력이 있는 만큼 이런 대규모 계획에 악귀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 특이한 점이었다.

더불어, 음지의 세력엔 무공 고수들도 많은데 지금 황궁에서 날뛰고 있는 건 죄다 축생의 힘에서 파생된 괴물들뿐이다.

대체 어째서?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이상할 게 없는 이 싸움에 왜 상당수의 전력이 배제됐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연화는 답에 도달하기까지 생각을 계속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당장 눈앞에 나타난 장수의 모습을 한 악귀가 창을 휘두르고 있었으니까.

“흡!”

곧바로 반응한 연화는 전신에 휘감은 붉은 기류와 함께 앞으로 쏘아졌다.

창을 상대할 때 중요한 건 거리를 내주지 않는 것.

전투의 기초를 확실하게 지키며 단숨에 거리를 좁힌 연화는 근접전에 돌입했다.

그녀가 휘감은 붉은 기운은 창이 되고 때로는 방패가 되어 연화의 움직임을 보조했다.

내지르는 주먹을 상대가 막으면 후폭풍이 되어 상대를 몰아붙였고, 상대의 창을 막으면 막은 부위에서 폭발하며 적을 덮쳤다.

반대로, 상대가 공격을 피하고 반격하면 그 반격 부위에 응집해 공격을 막아 냈다.

완벽한 공방 일체의 지원.

자신의 모든 공격과 방어에 도움을 주는 강화된 괴연천식의 힘으로 연화가 착실하게 적을 몰아붙이는 그 순간.

“흐응, 드디어 왔구나.”

하늘 위에서 격전을 이어 나가던 언여휘의 목소리와 함께 전장에 서 있던 이들이 감각을 곤두세웠다.

본능.

현경이라는, 무림의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경지에 이십 대 초중반에 도달한 천재들의 본능이 그리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이목이 단숨에 저 멀리, 제도 너머로 향했다.

거대한 움직임.

그것이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황도 호위군. 정예 중의 정예인 병력이지.”

언여휘의 웃음과 함께 발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너희는 포위됐어.”

이미 승산은 이쪽에 있다는 듯, 입꼬리를 비트는 언여휘의 모습에 그녀와 대치하고 있던 소윤혜가 미간을 찡그렸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황궁의 병력이 지금 전부 회군한 것이라면 이쪽이 압도적인 열세가 될 확률이 커진다.

머릿수라는 것이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데다 황궁의 정예라면 기본적인 무예 정도는 익히고 있을 가능성이 컸으니까.

거기다 장수들은 꽤나 높은 수준의 고수들일 테니 그들과 정면충돌하는 순간, 거센 저항에 맞부딪치게 될 터.

시간은 시간대로 끌릴 것이고, 힘은 힘대로 빠질 것이다.

게다가 저들마저 언여휘가 펼친 이 거대한 술법에 제물로 들어온다면…….

‘……못 버틸 것 같은데.’

지금도 아슬아슬한 상태를 유지하며 언여휘의 대법을 막고 있는 설천위가 그것까지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만약 조금이라도 대법이 성공해 언여휘가 흐름을 가져가게 되는 순간.

설천위는 급속도로 밀릴 것이고, 그런 상황에 설천위가 직면하는 순간, 이 전투는 압도적인 열세를 맞을 것이 뻔했다.

기이한 긴장감이 흐르던 그 순간.

“후우.”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주현운의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제도 전체로 뻗어나가던 주현운의 자성영역이 사라졌다.

“어머, 포기하게?”

“아니, 딱히 필요 없어졌을 뿐이야.”

언여휘의 물음에 덤덤하게 대답한 주현운은 천천히 검을 뽑았다.

“내가 돕지 않더라도 문제없을 것 같으니까.”

주현운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와 함께 세상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제도의 하늘 위로 떠오르던 혼들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기관이 천천히 움직이는 듯한 굉음과 함께 세상에 요동치던 혼들이 짓눌리기 시작했다.

“꺄하하하! 이런 무식한 인간 같으니라고!”

설천위가 어떤 방법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인지 깨달은 언여휘의 광기 어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식하게 힘으로 찍어 누르면 그 인간들이 제대로 눈이나 뜰 수 있을 것 같아?”

대법을 그냥 통째로 힘으로 찍어 눌러서 진행을 역으로 되돌리고 그 대법에 붙잡힌 혼들을 본래의 몸으로 되돌린다.

말이야 가능한 일이지,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인간의 혼은 매우 나약한 존재다.

괜히 지독한 원한을 가지고 이승에 남은 원귀조차 형체를 유지하지 못한 채 소멸하거나 악귀가 되는 게 아니었다.

혼을 감싸 줄 육체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의 혼은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가 된다.

그런 혼들이 과연 이 대법의 힘을 억지로 밀어낼 정도의 압력에 견딜 수 있을까?

답은 당연하게도 ‘아니오.’였다.

그것도 그냥 안 되는 게 아니라 절대 불가능에 가깝다.

아마 이 방법으로 대법을 파훼한다고 해도 제도 전역에 혼이 망가진 폐인들만 가득 찰 뿐이다.

“천위! 그건 조잡한 자기만족일 뿐이야!”

언여휘의 조롱으로 가득 찬 외침에 대답한 것은 당연히 설천위가 아니었다.

“그건 네 착각이지.”

설천위의 바로 앞.

드문드문 파고드는 괴물들의 피로 흥건한 단검을 천으로 닦아 내던 백유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너도 들었잖아?”

서하영과 함께 구복의 공격을 견뎌 내던 그 순간.

백유는 똑똑하게 들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

“…….”

딱딱하게 굳어 버린 언여휘의 미소를 보며 백유는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게 우리 천위가 걷는 패도(覇道)거든.”

쿵!!

천지가 요동친다.

순리와 천륜을 비틀고 세상을 뒤집으려 했던 대법이 한 인간의 손에 의해 비틀리고 추락한다.

“천위이이이!!”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결국 고성을 터트린 언여휘가 양팔을 뻗었다.

축생의 곤옥을 제어하던 인형까지 동원해 기어코 무너지는 균형을 다잡는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

흐름은 이미 설천위에게로 넘어왔다.

산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인간의 손으로 막을 수 없듯이.

대법의 흐름이 한 번 꺾이자 언여휘의 힘으로도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설천위가 만들어 낸 흐름대로.

강제로 뽑혀 나왔던 혼들이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는 자신의 육체로 되돌아간다.

막을 수 없다.

그것을 직감한 언여휘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고, 상황을 인지한 구복이 더욱 날뛰는 것을 철백과 서하영이 어떻게든 틀어막는 그 순간.

[역시, 인간 따위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었다.]

멸시로 가득한 목소리와 함께 세상이 흔들렸다.

자신을 가로막은 악귀와 싸우던 연화가 눈을 부릅뜰 정도로 강렬한 존재감.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오한에 전신의 피부가 곤두선다.

입술이 단숨에 메마르고, 두 눈은 똑바로 고정되지 못하고 격렬하게 사방을 방황한다.

언젠가 느껴 본 적 있었던 감각에 연화는 이를 악물었다.

배에 힘을 주고, 자신의 전신에 두른 괴연천식의 힘으로 단숨에 영압을 흩어 버렸다.

이 자리에 있는 인간들 중에서 가장 먼저 평상심을 되찾고 고개를 치켜든 연화의 눈에 하늘 위에 선 존재가 똑똑히 들어왔다.

여인.

화려한 궁장을 입고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여인은 놀랍도록 아름다웠으며, 동시에 놀랍도록 기괴했다.

백옥 같은 피부, 선명한 이목구비, 보라색으로 일렁이는 눈동자.

그 모든 것들이 똑바로 자신의 발 아랫것들을 내려다본다.

오만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그 존재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것들을 내려다봤다.

[혈교주 그놈도 그렇고, 언여휘 네년도 그렇다. 인간이라는 태생은 어찌할 수 없이 천박하구나.]

영적인 존재가 뿜어내는 압박감에 적응하지 못한 일행들이 아직 고개를 땅에 처박고 있는 그때.

홀로 빳빳하게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던 연화는 자연스럽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 또한 연화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탐이 나는구나. 저쪽은 먹었다간 탈이 나겠지만, 너는 아니구나.]

탐욕.

그 눈동자에 담긴 너무나도 선명한 감정에 연화는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꺼져요!”

단주님에게 받은 힘이 목적인가?

그렇다면 더더욱 뺏길 수 없지.

이를 악문 연화가 전투를 위해 자세를 다잡는 사이, 존재의 압박을 극복해 낸 이들이 하나둘 전투태세를 취했다.

그리고.

[크하악!]

“쯧.”

존재의 압박감에 서하영이 정지한 틈을 타 그녀를 노린 공격으로 철백의 움직임을 유도해 결국 철백에게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 구복이 하늘을 뒹굴었다.

듬성듬성 털이 빠지고, 날카롭게 정렬되어 있던 이빨도 몇 개나 빠진 초라한 몰골이었지만, 구복의 눈은 아직 살의를 잃지 않고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초라하구나.]

다만, 하늘에 나타난 존재의 조롱에는 차마 대답할 낯이 없었는지, 무시로 일관한 구복은 자신의 힘으로 육체를 수복하는 데 집중했다.

남아 있던 심장마저 불태워 만들어 낸 육체다.

이 전투에서 저기 저 괴물 같은 인간들을 몇 정도는 잡아먹지 못한다면, 이 전투에서 승리하더라도 존재조차 유지하지 못 하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구복은 개의치 않았다.

[생각을 바꾼 거냐?]

[아니, 딱히 그렇진 않다.]

구복의 물음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존재는 가슴께로 손을 올려 부채를 펼쳤다.

[단지 탐이 나는 것이 생긴 것뿐이다.]

탐이 난다.

무엇을 탐내는 것인지 금세 짐작한 구복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네년이야말로 진정한 짐승이다. 달기.]

[흥, 천박하기는.]

[인간의 틈바구니에 끼어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을 즐기는 네가 할 말이더냐.]

[여흥인 것이지. 인간들이 개미를 갖은 방식으로 죽이는 것을 즐기는 것과 비슷하니라.]

덤덤하게 인간을 개미에 비유하는 달기였으나, 일행은 그런 달기의 말에 차마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달기다.

옛 역사에서부터 언급되는 악녀.

분명 인간이라 들었는데.

물론, 그 끝이 확실하지 않아 죽었니, 살았니 이야기들이 많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신화적인 이름의 등장 때문인가.

일행들 모두가 어설프게 고민하던 그 순간.

“뭐, 달기 언니가 뭐라 생각하든 상관없어.”

[천박하구나.]

“나야 뭐 원래 그런 년이니까.”

달기의 말버릇 같은 경멸에도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한 언여휘였지만, 지금은 솔직히 달기에게 고마웠다.

전에 설천위의 공격을 막을 때 손을 보태 준 것도 의외였지만, 이런 순간에 나타나서 도움을 줄 줄이야.

반쯤 유흥 삼아 이 자리에 온 거나 다름없는 달기의 입장을 생각하면 더더욱 놀라웠다.

애초에 이 황궁에 직접 찾아온 건 축생의 곤옥으로 일을 진행하던 구복과 그에게 축생의 곤옥을 넘기며 일을 종용했던 언여휘뿐이었다.

다른 자들은 연옥이 열리면 대충 콩고물이나 주워 먹을 생각만 할 뿐 직접 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성공하면 좋고, 실패하더라도 더 힘을 모아 뒤를 준비하면 될 일이니까.

그래서 혈교의 수장도 이곳에 오지 않았고, 다른 음지에 숨어 있는 괴이들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로지 달기만이 유흥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이 자리에 찾아온 것이다.

언여휘나 구복이 허튼수작을 부려도 자신은 얼마든지 막아 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거기다 만사에 흥미를 잃어 시큰둥한 태도로 일관하던 달기가 직접 자신의 형상을 드러내고 힘까지 풀어내고 있다는 건 상당히 좋은 징조였다.

달기와 구복이 힘을 합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날뛰는 어린 괴물 녀석들을 반 이상 죽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할 일은?

설천위가 깨어나지 못하도록 붙잡는 거다.

“천위야, 조금 더 놀아 볼까?”

본격적으로 힘을 풀어내기 시작한 언여휘의 인형들이 대법의 진행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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