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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93화 (593/624)

제593화

592화-불가능을 가능으로 (5)

자성영역(自省靈域).

술사의 전유물인 그것을 대체 주현운이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의문은 둘째 치고.

“이건 무슨……?”

영문을 알 수 없는 영역에 서하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봐 왔던 자성영역은 좀 전에 설천위가 만들었던 것처럼 공간 전체를 감싸는 형태의 것이었다.

말 그대로 일정 공간을 자신의 영역(靈域)으로 만드는 기술.

술사의 공간이 된 그곳에서 술사는 자신이 갈고닦은 술법을 자연스럽게 펼치는 것은 물론 권능의 영역에 도달한 힘까지 발휘한다.

그것이 자성영역이고, 기술 이름에 ‘역(域)’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이유일 텐데…….

딱히 큰 변화라고 할 것이 없는 주현운의 자성영역에 서하영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너…….”

술사로서의 경지가 다른 언여휘는 눈을 게슴츠레 뜬 상태로 주현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진짜, 짜증 나.”

주현운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언여휘의 불평과 동시에.

“안 되지.”

주현운을 향해 달려드는 괴물을 그대로 양단해 버린 소윤혜가 찰칵 소리와 함께 도를 납도했다.

보이지 않는 빠르기.

오로지 베는 것에만 집중해서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던 예전의 도와는 다른 그 모습에 서하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데?”

“흠.”

그녀의 근처에서 호흡을 고르던 백유도 의아하다는 듯 턱을 쓸었지만, 지금은 그런 의문을 해소할 때가 아니었다.

“그쪽은 맡길게요!”

어떻게 상황이 흘러가는지 모르겠지만, 재능파 셋이 동시에 정신을 차렸고 이곳에 도착했다.

특히, 주현운은 언여휘조차 움직여야 할 정도의 술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역량을 만들어 왔고.

문율과 소윤혜의 전투력.

주현운의 술법 견제.

이 두 가지만으로 이쪽의 숨통이 한결 트이게 됐다.

특히.

“이 정도면 가도 되겠는데?”

“……그래도 될까요?”

“문제없지.”

히죽 웃으며 서하영의 어깨를 두들긴 백유는 한 손으로 단검을 돌리며 그녀의 등을 밀었다.

“자기 남자는 스스로 챙겨야지.”

철백에게 지원을 가도 된다.

그런 백유의 허락에 서하영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단숨에 허공을 박찼다.

단숨에 뛰어올라 바람을 전신에 휘감은 서하영은 그대로 몸을 비틀었다.

창을 쥔 손을 당기고, 몸을 말아 극한까지 힘을 모은다.

도약을 위해 굽힌 두 다리의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고.

마치 녹슨 활차를 억지로 돌리는 것 같은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육체가 한계에 도달했다.

이 이상 힘을 모을 수 없다.

한계라고 외치는 육체의 목소리와 마주한 순간.

─────!!

소리조차 뛰어넘은 도약이 시작됐다.

허공을 박차는 발에서 시작된 가속은 단숨에 전신으로 뻗어나갔다.

창을 내세워 전신에 휘감은 바람은 마땅히 그녀를 방해했어야 할 공기의 흐름조차 갈라 버렸다.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 기이한 궤적이 생겨났다고 느낀 순간.

콰가가가가가각!!

그녀의 창은 이미 구복의 등에 도달해 있었다.

등 뒤에서 심장을 노린 창이 정확하게 구복의 등에 꽂혔다.

창을 휘감은 바람이 나선 형태의 홈이 난 송곳처럼 격렬하게 회전하며 구복의 등에 박히기 시작했다.

살점이 튀고, 피가 튀었다.

하지만, 단숨에 모아서 터트린 힘이란 것은 결국 끝이 있는 법.

공기의 저항은 바람의 힘으로 없앨 수 있지만, 강인한 구복의 육체에 의한 저항은 쉽사리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크르르르.]

여전히 철백의 팔뚝을 문 상태이기에 그르렁거리는 소리밖에 내지 못하는 구복이었으나, 그가 대충 내지른 뒤차기에 서하영은 다급하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대충 내지르듯 허공을 가르는 뒤차기여도 맞았다간 그대로 턱뼈가 으스러질 위력이었으니까.

일단 거리를 벌린 서하영이 다시 침착하게 자세를 갖추는 사이, 철백은 구복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더했다.

자신이 이놈을 놓쳤다간 서하영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니까.

그렇게 철백과 서하영의 합공이 시작되고, 철백에게 묶인 구복의 저항은 더욱더 격렬해졌다.

“……하아.”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축생의 곤옥으로 병력을 쏟아 내던 언여휘는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겁쟁이 같으니라고.”

고작해야 철백과 서하영.

실질적으로 철백 하나에게 발이 묶여서 고전하고 있는 구복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진짜 어처구니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니, 짐승이란 것이 왜 저리 뒤를 생각하는지.

“신화시대의 전투에는 뒤가 없었다던데, 다 거짓말이었네.”

그야말로 태초의 시대.

신들조차 서열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고, 온갖 것들이 설치던 시대.

그 시대의 전투는 오로지 총력전뿐이었다.

적을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먹힌다.

적을 처리하기 위해 쏟아부은 힘은 적을 먹어 치우는 것으로 채운다.

그렇기에 어떤 자비도, 어떤 격식도 없었던 시대였다.

구복은 그 시대조차 견뎌 낸 괴물이었고.

그렇기에 기대하고 있었고, 그래서 축생의 곤옥을 넘겨 일을 맡겼던 것인데…….

“결국, 시간이 흘러 육체를 잃고 소멸에 직면한 겁쟁이일 뿐이네.”

역시 저것도 완전하지 않았다.

구복에게 다시금 실망한 언여휘는 그를 계획에서 다시금 제외시켰다.

원래도 계획의 발판 정도로만 여겼던 구복이었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낮은 취급을 했다.

설천위가 모은 괴물들은 족히 열이 넘었고, 그중 고작 하나도 처리하지 못하는 구복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었다.

그러니.

“그러다가 사라지렴.”

용기를 잃은 사자가 굶어 죽듯.

너 또한 그렇게 끝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 판단하며 구복에게서 아예 시선을 거둔 언여휘는 자신이 만들어 낸 괴이들과 싸우는 자들을 바라봤다.

수백의 손으로 적을 쓸어버리고 있는 문율.

설천위의 곁에서 어떤 적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고 있는 백유.

주현운의 곁에서 마찬가지로 적의 접근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는 소윤혜까지.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검에 팔을 걸친 채 덤덤한 자세로 서 있는 주현운이었다.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에는 그 어떤 조급함도 담겨 있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겠으나, 늦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 담긴 눈동자.

“정말 귀찮은 것들을 키워 냈구나, 천위.”

지금 극한까지 벼려진 주현운의 감각이 제도 전체를 수색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언여휘는 미간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자성영역(自省靈域).

술사들조차 평생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이 힘을 무인이 사용한다는 건 둘째 치고, 그 특이한 발동 방식에 언여휘도 조금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자성영역은 확실하게 선을 그어 자신만의 공간을 지정하고 그 공간에 영력과 심력을 쏟아부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구조다.

당장 설천위와 자신도 그렇게 사용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주현운의 자성영역은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완벽한 영역(靈域)을 포기하고 광활한 영역(靈域)을 고른 방식.

순수하게 보조의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자성영역이기에 가능한 특이한 변주였다.

자성영역이 가지는 절대적인 위력을 무(武)로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바탕에 깔리지 않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형태였다.

문제는 그것이 꽤나 까다로운 형태로 다듬어졌다는 거다.

다른 것에 개입하지 않는, 오로지 자신만을 강화하는 형태의 영역(靈域).

힘의 구현 방식을 제한했기에 나오는 압도적인 범위.

“……짜증 나네.”

지금 대법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인형이 그에게 감지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을 직감한 언여휘는 재차 고민했다.

구복은 손발이 묶였고.

자신이 이 인형으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의 수준은 지금이 한계다.

축생의 곤옥을 제어해 그 힘을 적당히 운용하는 것.

딱 여기까지가 한계인데, 지금 이 수준으로는 눈앞에 있는 어린 괴물들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하지?

힘을 풀어?

아니야.

그 방법은 최후의 최후까지 아껴야 한다.

인간인 자신이 반신의 종자들과 비견되려면 그 정도 패는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힘을 아끼면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

설천위를 성공적으로 공격해서 저 집중을 깨뜨리면 된다.

지금 설천위가 하고 있는 일은 살얼음판을 걸어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약간의 균열만으로 설천위가 하는 모든 발악을 저지시킬 수 있다.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은 실낱같은 틈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지금 쓸 수 있는 패를 두고 언여휘가 고민에 빠진 그 순간.

“응?”

기이한 영력의 파동에 언여휘는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듯 낯선 감각.

곧바로 파악되지 않는 영력의 흐름에 언여휘의 눈에 의문이 떠오른 순간.

[크르르르르.]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세상이 뒤바뀌었다.

하늘이 뒤집히고, 대지가 치솟는다.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 환상임을 금세 눈치챘으나, 언여휘의 얼굴은 크게 밝아졌다.

“꺄하하하하하! 구복!! 훌륭하네!”

터져 나오는 웃음.

마지막으로 남은 심장마저 불태운 구복의 힘에 언여휘의 입가가 쭉 찢어졌다.

저거라면, 얘기가 다르지.

쾅!! 쾅!!

구복의 어깨 위로 솟은 성성이의 팔이 철백의 안면을 난타한다.

모든 일격이 땅을 뒤흔들 정도로 위력적인 주먹질.

철백조차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릴 정도로 강렬한 주먹질이 거듭됐다.

“하앗!”

그런 구복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서하영이 다시금 공격을 퍼부었지만, 본래보다 더 단단해진 구복의 육체는 서하영의 공격을 당연하다는 듯이 견뎌 내고 있었다.

구복의 육체가 단숨에 한층 더 강화됨으로써 깨진 힘의 균형.

이대로 질질 끌려가다간 죽도 밥도 안 될 거라는 직감에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은 구복의 반항이 상황을 역전시켰다.

철백과 서하영의 공격은 생채기 정도에 그치고.

구복의 공격은 착실하게 철백의 힘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점점 더 허공에 튀는 피가 늘어나고, 구복을 붙잡은 철백의 손아귀에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급변한 상황을 인지한 소윤혜와 주현운이 도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그 찰나의 순간.

백유가 움직였다.

철백에게 몰입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에 집중하던 백유이기에 가능한 반응.

설천위의 목을 노린 송곳을 잡아채 자신의 왼쪽 옆구리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자유로운 오른팔로 단검을 휘둘러 단숨에 적을 난자했다.

순식간에 썰려 흩어지는 파편.

하지만, 상대를 훌륭하게 토막 내 버린 백유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손맛.

적을 벴다는 손맛이 너무 약했다.

당연히, 죽였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고.

헛손질.

자신의 공격이 단순히 허공을 가른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은 백유는 망설임 없이 뇌전을 쏟아 냈다.

적을 처리했는지 아닌지 확신이 없으니 일단 설천위의 주위 전체를 뇌전으로 채워 버린 거다.

그 단순하면서도 무식한 해결법에 다시금 설천위를 노리던 존재는 다음 기회를 노리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구경만 할 줄 알았더니?”

허공에 일렁이는 존재를 발견한 언여휘의 이죽거림에 백유를 비롯한 다른 이들 모두가 미간을 찡그렸다.

끝까지 구경만…….

“아우! 다들 왜 이렇게 빠르신 거야!”

순간, 깊어지려는 생각을 깨는 목소리에 모두가 놀라 아래를 내려다봤다.

당연하다는 듯 허공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인간은 본디 쉽게 땅을 벗어날 수 없는 법.

열심히 달려온 연화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다.

뒤늦게 나타난 아군을 비웃던 언여휘까지도.

“흐음?”

숨을 고르며 영력을 일으키는 연화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언여휘는 손을 움직였다.

그놈이 왜 갑자기 제군(帝君)들을 움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지에서 치솟는 영력에 언여휘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신의 턱을 스치고 지나가는 붉은 가시.

그것이 얼마 전 우공의 공간을 무너트린 뒤 설천위가 축생의 유정들을 말살시키는 데 사용한 혈주의 힘임을 깨달은 언여휘의 눈이 커지는 순간.

[저 계집은 내 것이다.]

그녀의 귓가로 들려온 목소리와 함께 세상이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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