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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91화 (591/624)

제591화

590화-불가능을 가능으로 (3)

축생과 하나가 된 구복을 상대로 영역을 펼친 설천위는 그 안에서 자신의 힘을 터트렸다.

얼음과 불로 이루어진 수만의 날붙이.

음과 양을 뒤흔들며 존재를 비트는 압력.

중력의 힘을 비틀어 공간 곳곳에 퍼트린 괴리감.

아마 평범한 존재였다면 이 공간에서 생존하는 것 자체가 힘들 극악의 영역이었으나, 축생의 곤옥과 합일한 구복은 달랐다.

순백으로 타오르는 화염도, 칠흑을 품고 솟구치는 빙산도.

그 어떤 것도 구복을 위협하지 못했다.

중력이 달라 비틀리는 공간은 너무나도 강한 육체적 힘에 효능을 잃었고, 음과 양이 비틀려 생겨난 영력의 비틀림 또한 놈의 육체를 뚫지 못했다.

힘들게 만들어 낸 영역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설천위는 구복을 상대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너무 둔한데.”

말 그대로 너무 둔했다.

수많은 사지를 만들어 내 위압적인 외형을 취한 것은 맞지만, 그 움직임이 너무 느렸다.

중심이 되는 거대한 사지를 움직여 공격하는 것은 충분히 위협적이고, 뒤따라 움직이는 무수히 많은 팔다리의 공격도 위협적인 건 맞았지만…….

[확실히 느리구나.]

[거대한 육체를 얻는다는 것이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구나.]

문제는 현경의 영역에 도달한 존재에게 그 속도는 너무나도 느리다는 것이었다.

특히, 상대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영압이나 저주 같은 것이 설천위에겐 통하지 않다 보니 그 단점이 더욱 크게 부각되고 있었다.

만약 상대가 평범한 현경의 고수이거나 술사였다면 얘기가 전혀 달랐겠지만…….

“이래서 사람은 많은 걸 할 줄 알아야 한다니까.”

이런 미래를 짐작하고 억지로 육체를 단련해 온 설천위가 아니던가.

죽을 고생을 해 가며 육체를 단련시킨 보람이 절로 느껴지는 결과였다.

다만, 그렇다고 마냥 여유를 가질 순 없었다.

상대가 서서히 변하고 있었으니까.

일단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금세 웬만한 술사는 눈 깜짝할 새에 죽여 버릴 정도의 속도에 도달할 거다.

현경급의 고수라도 긴장해야 할 정도의 속도까지.

거기다 팔다리의 움직임이 점차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기둥이 되는 큰 팔다리만이 아니라, 몸 전체에 돋아난 팔다리들 전부 움직임이 점차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하나둘 움직임이 부드러워지고 점점 더 공격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아마 학습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성을 잃은 것이지 지성을 잃은 건 아니니까.

구복의 자아는 없다고 해도 짐승도 사냥에 계속 실패하면 발전한다.

그러지 못한 짐승은 도태되어 버리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후우, 그년이 움직이기 전에 처리해야지.”

언여휘.

지금은 또 사라졌지만, 대체 무슨 짓을 준비하고 있을지 몰랐다.

그렇다면 최대한 여유를 되찾아 언제든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게 옳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당연히 눈앞에 있는 구복을 정리하는 거다.

가볍게 호흡을 고른 설천위는 자신이 있던 자리를 휩쓸어 내는 구복의 공격을 피하며 도를 쥐었다.

이제는 검보다 훨씬 자주 써서 익숙해진 도를 손에 쥐고, 설천위는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자세를 낮추고, 허리춤에 위치한 도에 정신을 집중한다.

그리고.

“흡!”

벤다.

자신을 으깨 버리기 위해 날아오는 구복의 다리를 그대로 베어 버린 설천위의 궤적을 따라 불길이 치솟는다.

상처를 태우는 불꽃에서 매캐한 연기와 함께 좋지 못한 냄새가 퍼져 나간다.

[기아아아아아!]

발악하는 구복을 얼음이 덮치고, 조금이나마 더뎌진 움직임 사이로 설천위가 파고들었다.

자신의 무술은 현경에게 밀릴지는 모르지만, 심상을 담는 심검의 영역에선 그들보다 확실한 장점이 있었다.

[훌륭하구나.]

과함도 모자람도 없는 깔끔한 궤적에 담기는 것은 오로지 상대의 죽음뿐.

생을 가르는 설천위의 일격에 소백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현경에 오른 뒤로 설천위의 실력은 이미 소백진이 나무랄 수 없는 영역에 도달한 상태였다.

단순한 기술적인 측면은 지적할 부분이 있고 또 할 수도 있지만, 완성된 형태에서는 딱히 그가 나무랄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뭐랄까, 화가가 실제처럼 그리는 것은 실제와 다르다고 지적할 수 있지만 기묘한 미(美)를 담는 것은 화가의 역량이니 옆에서 나무랄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경지에 오른 설천위의 실력이기에 딱히 소백진이 나무랄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후우.”

호흡을 뱉어 내는 것과 동시에 안으로 파고들었던 설천위가 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피하고 벤다.

그 간단한 행위만으로 설천위는 착실하게 적의 전력을 깎아 내기 시작했다.

수천 개의 사지를 하나씩 쳐 내고 가끔씩 드러나는 몸체에도 긴 상흔을 남긴다.

베고 또 벤다.

아무리 술법적인 능력이 일취월장해도 결국 최후의 순간 홀로 적을 상대할 때 의지하는 것은 이 육체구나.

몸에 쌓은 기술과 경험만이 나를 지탱하는구나.

자신이 쌓아 온 세월이 헛되지 않음을 다시금 깨달으며 설천위는 침착하게 구복을 몰아붙였다.

축생과 합일된 시점에서 말도 안 되는 재생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구복이었지만, 죽음을 선사하는 설천위의 심검은 착실하게 구복에게 죽음을 안겨 주고 있었다.

베여서 자신의 일부를 잃을 때마다 그것 때문인지 아니면 발전하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구복의 공격 또한 점점 빠르고 날카로워졌다.

거기다 사방을 짓누르는 영압은 더더욱 강해지고 놈이 내뿜는 힘은 기이하게 설천위를 압박했다.

하지만.

“흡.”

무시했다.

설천위는 완벽에 가까운 영역 제어 능력으로 자신의 주위를 꽉 잡아 놈의 권능과 힘에 거부하고 자신의 공격을 강행했다.

베고 또 벤다.

어느새 구복의 재생력이 따라오지 못해 그 상처가 몸에 남게 되고, 끔찍했던 모습이 이젠 참혹한 모습으로 변해 가던 그 순간.

우웅!

기이한 떨림에 설천위의 손이 멈췄다.

구복은 여전히 움직였기에 설천위는 몸을 비틀어 회피했지만, 이어서 드러난 구복의 빈틈에 도를 휘두르진 않았다.

직감.

조금 전 언여휘의 수작에 당하지 않고 차분하게 상황을 타개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직감이 다시금 움직였다.

지금 눈앞의 구복에 집중하면 안 된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영역을 깨트렸다.

백과 흑이 뒤섞인 구체의 결계가 무너지고, 그 안에 갇혀 구복을 태우고 얼리던 힘이 솟구쳐 주변을 위협했다.

누구나 공포를 느껴야 하는 풍경이 펼쳐졌지만, 그 어떤 놀람의 목소리도, 공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희미한 이질감을 느끼며 설천위는 즉시 움직였다.

영력을 뿌린다.

오른쪽 다리는 반쯤 굽힌 상태로, 왼쪽 다리는 앉은 다리를 하듯 접는다.

오른손은 단전 앞에 두고, 왼손은 가슴께에 올려서 검지와 엄지로 원을 그렸다.

불가의 그것과 같은 자세를 취한 설천위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지배.

단숨에 뿜어낸 영력이 제도 전체로 뻗어 나간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인지하고 대응한다.

대법에 의해 강제로 혼이 빠져나온 이들의 육체를 영력으로 붙잡고 그들의 몸에서 빠져나온 혼을 억지로 붙들었다.

불가능을 억지로 가능으로 바꾼다.

그것이.

자신의 패도(覇道)이니까.

혼자의 힘으로 제도 전체에 수년에 걸쳐 펼쳐 놓은 대법을 억누른다.

대법이 진행되는 것을 틀어막고, 놈들의 계획이 진행되는 것을 저지한다.

쾅!!

몸을 뒤흔드는 크나큰 충격에 설천위는 천천히 한쪽 눈을 떴다.

눈앞에 다가온 구복의 주먹을 받아 낸 철백과 백유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겨우 입을 연 설천위가 짧게 한마디를 토해 냈다.

“버텨……!”

내가 이 대법을 찢어발길 때까지.

* * *

버텨.

친우의 그 한마디에 철백은 뻐근한 육체를 이리저리 비틀며 가볍게 호흡했다.

“흠.”

버텨?

버티라고?

고작?

“무시하지 마라.”

언제부터 내가 너에게 보호받기만 하던 존재였던가.

네가 나를 한 번 구했으니.

이번에는 내가 널 구할 차례다.

두 주먹을 움켜쥔 철백은 자신과 백유의 반격에 물러났다가 다시금 달려드는 구복을 향해 돌진했다.

쾅!!

길게 뻗어 낸 주먹이 구복의 앞발과 맞부딪쳐 그것을 튕겨 낸다.

뒤이어 따라오는 나뭇가지처럼 늘어진 사지들이 그물처럼 엉겨들었으나, 철백은 물러서지 않았다.

잡고, 꺾고, 찢고, 부수고, 때리고.

망아의 짐승이 그 몸을 차지했을 땐 보여 준 적 없었던 섬세한 기술들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철백을 지키는 철책이 되어 모든 공격을 쳐 내고, 적을 저지했다.

“호위를!”

혼자서 구복을 상대하는 철백의 외침에 빈틈을 노릴까 고민하고 있던 백유는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아우, 정말!”

그런 백유 옆에서 답답하다는 듯 소리치는 서하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철백을 돕기 위해 그쪽에 붙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 누구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머저리는 아니었으니까.

“이 양반은 왜 또 이런 미친 짓을…….”

“그게 천위의 매력이지.”

미친 듯 보여도 결국 자신과 모두를 위한 일을 하는 괴짜.

히죽 웃으며 천위의 곁에 선 백유가 기감을 벼리며 주위를 경계하는 그 순간.

“참! 진짜 골칫덩이라니까!”

짜증이 담긴 아이의 목소리와 함께 세상이 비틀렸다.

“흡!”

뇌전을 휘감은 백유의 단검이 사방을 가로지르고, 마찬가지로 바람을 휘감은 서하영의 창이 사방을 베어 냈다.

“진짜, 이런 괴물들을 키우기나 하고…….”

단숨에 자신의 술법을 파훼해 버린 두 사람의 모습에 언여휘가 귀찮고 짜증 난다는 듯 입술을 삐쭉였다.

“이번에는 어린애인가? 다 큰 몸은 어쩌고?”

“천위가 머리를 바스러트려 버린 덕에 복구하기 힘들어서 그냥 포기했어.”

“과연.”

그쪽이 더 확실한가.

괜찮은 방법이네.

고개를 끄덕이던 백유는 다시금 술법을 펼치는 언여휘의 모습에 벼락을 쏟아 냈다.

“근접 전투도 안 되는 그 몸뚱이로 뭘 하려고?”

“뭐 하긴, 천위가 나를 방해하고 있으니까 나도 천위를 방해해야지.”

자신의 목적을 솔직하게 밝히는 언여휘의 태도에 피식 웃은 백유가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이런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은 언여휘가 손을 휘저었다.

순간, 기이한 파동이 일렁이고.

“음?!”

“철 가가!”

철백의 목소리에 서하영의 고개가 번개처럼 돌아갔다.

그리고 그런 서하영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멀쩡한 모습의 철백은 자신의 주먹에 가슴이 함몰된 적을 보며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완연하게 승기를 잡고 있는 철백이 보인 기이한 반응.

그 순간, 기이한 위기감을 느낀 백유가 단검을 휘둘렀다.

[키아아아아!]

[크르르르!]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뛰쳐나오는 맹수들이 백유의 단검에 썰려 토막 났다.

“뭐,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모르겠지만 축생도의 힘은 의외로 동물한테도 쓸 수 있어.”

인간을 짐승으로 만드는 것만이 축생도의 힘이 아니다.

짐승도 결국 인간과 같은 굴레에 있는 생명이니까.

즉.

[키아아아아아!!]

짐승이라고 해도 축생의 힘을 받아 괴물이 될 수 있다.

구복에게서 강제로 뽑아낸 축생의 힘을 우공이 연결한 공간 속 짐승들에게 때려 부어서 괴물을 만들어 낸 언여휘가 빙긋 웃었다.

“과연 너희들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것도 천위를 지키면서?

그런 조롱이 담긴 웃음에 백유와 서하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고, 마찬가지로 상황을 파악한 철백은 어떻게든 빠르게 구복을 마무리하기 위해 거칠게 공격을 쏟아 냈다.

“이런 방법은 저 녀석을 구할 수도 있어서 딱히 하고 싶진 않았는데…….”

뭐, 중요한 건 결과이니까.

어깨를 으쓱인 언여휘는 쏟아지는 짐승의 무리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백유와 서하영을 보며 웃었다.

차오르는 짐승의 무리가 설천위를 향해 그 이빨을 들이대던 그때.

황궁의 하늘 위로 보이지 않는 검이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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