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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89화 (589/624)

제589화

588화-불가능을 가능으로 (1)

설천위의 도가 언여휘의 목을 가른다.

별다른 방어 없이 그대로 목이 날아가 버린 언여휘가 손을 뻗었다.

“의미 없습니다.”

허공에 떠오른 목이 그대로 둥실 떠올라서 입을 열었다.

섬뜩한 광경이었으나,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금 도를 휘두르던 설천위는 묘한 느낌에 손을 멈췄다.

“몸뚱이는 여기 있지만, 저는 단순한 연결체일 뿐입니다.”

언여휘가 지금 이 순간에 끼어든 것은 거창한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돼서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천천히 몸을 움직인 언여휘가 공중에 떠 있는 자신의 머리를 잡아 목 위에 올렸다.

“하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 자체는 기쁘지 않다고 말할 수 없겠군요.”

“……뭔 짓을 한 거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다소곳한 태도로 대답한 언여휘는 정말로 큰일을 한 건 아니라는 듯 부드럽게 웃었다.

“제가 아무리 힘을 쏟아부어도 지금의 낭군님을 상대하는 일은 불가능하죠.”

“말 돌리지 말고.”

“후후, 저는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요?”

언여휘의 태도에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억누른 설천위는 대답을 듣는 걸 포기했다.

언여휘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들으려고 하다간 그대로 속이 뒤집혀 버릴 것 같았으니까.

‘……뭐지?’

거슬림.

술법을 펼치는 순간에 자신을 자극한 기묘한 감각에 설천위는 자신도 모르게 술법의 발동을 멈췄다.

발동해선 안 된다.

직감의 영역에 의존한 행동이었지만, 설천위는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직감은 이미 예지의 영역에 도달했으니까.

그렇기에 신중하게 움직이기로 한 설천위는 백유와 서하영의 상황을 힐끗 확인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네.’

짐승의 육체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몰아붙이는 적을 상대로 백유와 서하영 모두 쉽사리 여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저쪽은 영적인 존재인지라 두 사람의 공격이 거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통하기는 하지만, 치명상은 입힐 수 없는.

딱 보조의 역할에 걸맞은 상황에서 둘만으로 저 적을 상대하는 건 무리에 가까운 요구였다.

그러니 이 언여휘의 수작에 시간을 길게 뺏겨선 안 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인지한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힘을 펼쳤다.

지금 언여휘가 자신의 주위에 무슨 수작을 부려 술법을 막았는지 파악해 내기 위해서다.

“흐음, 참으로 각박하십니다. 저와 담소를 나누는 것을 그리 싫어하시다니요.”

섭섭하다는 듯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로 접근해 오는 언여휘를 잠시 노려본 설천위는 이내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후후.”

거침없이 안겨 오는 언여휘.

그 손길을 피해 움직인 설천위는 그대로 언여휘의 목을 움켜쥐었다.

“닥치고 있어.”

“어머, 과격하셔라.”

목이 붙잡혀 허공에 몸이 떠올랐음에도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언여휘가 미소를 지으며 설천위의 팔을 쓰다듬었다.

“낭군님, 낭군님은 강하십니다.”

저 낭군님이라는 짜증 나는 칭호를 지적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 중요한 순간에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언여휘의 언행이 신경에 거슬렸지만, 설천위는 애써 무시했다.

그런 설천위의 무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여휘는 자신의 목을 움켜쥔 설천위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부드럽게 포개며 뺨을 비볐다.

“저 구복도 정면 승부를 가리면 상대가 안 되겠지요. 낭군님께서 얼마나 힘을 감추고 계시느냐의 문제이겠지요.”

후후 웃으며, 설천위의 손을 쓰다듬던 언여휘는 천천히 그 손을 내려 설천위의 팔을 쓸었다.

“그러니, 쓰실 수 없습니다. 당신은 싸울 수 없어요. 이미 인세에서 그 힘을 풀어내기엔 너무 강해져 버리셨으니.”

너무 강해져 버렸다.

그런 말을 내뱉는 언여휘의 입가에는 비틀린 미소가 묻어 있었다.

섬뜩하기 그지없는 그 미소와 자신도 모르게 마주해 버린 설천위는 천천히 언여휘의 목을 붙잡은 손을 놓았다.

“과연.”

“어머? 설마 벌써 깨달으신 건가요?”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는데 모를 수가 없지.”

놀라는 척하는 언여휘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던 설천위는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기이한 감각.

아예 지식에 없었던 것이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 언여휘의 놀림 아닌 놀림에 그 정체를 읽어 냈고.

“여기에는 몇이나 썼지?”

“으음. 백 아니, 이백이었나? 죄송해요.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요 인근에 있던 아이들 위주로 엮었으니 삼백은 넘지 않을 것 같네요.”

별거 아니라는 듯 웃으며 손을 휘젓는 언여휘.

그런 언여휘를 지그시 바라보던 설천위는 냉정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그런 설천위의 태도에 언여휘는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달라붙었다.

“진즉부터 알고 있었어요. 우리 낭군님이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 좋은 사람이라는 걸. 나쁜 척하고 독한 척해도 절대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

끈적한 몸짓으로 달라붙으며 언여휘는 설천위의 귓가에 속삭였다.

“솔직히 놀랐어요. 그 상황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도, 혈주를 흡수했다는 것도. 그런데 제가 가장 놀란 게 뭔지 아시나요?”

심장을 간지럽히는 것 같은 달콤한 목소리와 함께 잔혹한 웃음이 흘러나온다.

“높아진 영압의 제어에 성공한 거요. 처음 우공의 영역에 들어가 폭주하던 낭군님의 영압이 깨어난 순간, 놀랍도록 쉽게 사라지더군요.”

심지어 그전에도 아군에게는 피해가 안 갈 정도까지 아슬아슬하게 조절하고 있었고.

이건 놀라운 일이었다.

“하늘에 머리가 닿는 거인은 고작 걷는 것 하나만으로 마을이 무너지고, 산이 뒤바뀌죠. 낭군님께서는 스스로를 인간이라 여기시지만, 이미 그 크기는 하늘에 머리가 닿는 거인이 된 지 오래랍니다.”

후후후 웃으며, 언여휘는 부드럽게 손을 뻗어 설천위의 팔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그러니, 각오를 하셔야죠.”

설천위의 손을 잡고 그대로 들어 올려서 허공을 가리킨다.

자신이 술법으로 끌어들인 아이들의 혼과 생이 연결된 선들이 희미하게 나부끼는 것이 보인다.

“당신의 숨결에 저 모든 것을 끊어 내고 힘을 펼치시죠. 그렇게 된다면 구복도 낭군님의 상대가 되진 않을 테지요.”

언여휘가 설천위의 술법을 봉인한 방법.

그 핵심은 간단했다.

인질.

인근 아이들의 목숨을 연결한 희미한 선들을 이 공간에 넓게 뿌리는 것.

설천위의 힘은 이미 신의 영역에 도달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전력을 꺼내는 순간, 희미하게 허공을 떠다니던 실들은 그대로 끊어진다.

혼이 찢어지는 충격에 직면한 일반인들은 어떻게 될까?

최선이 죽음이고, 최악은 혼의 소멸이다.

멀리서 술법만 펼친다면 이런 수작을 피하겠지.

하지만, 눈앞에 상대가 있고 그 상대에게 동료가 밀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설천위라고 해도 단순하게 도망칠 순 없었다.

선택해야 한다.

무고한 생명을 짓밟고 적을 찢어발겨 동료를 구할지.

동료의 몸이 찢겨 나가는 것을 구경하며 무고한 생명들을 구할 것인지.

너무나 강해져 이제는 거동조차 조심해야 하는 영역에 들어선 설천위를 노린 한 수.

만약, 설천위가 인간의 마음을 버리고 경지에 도달한 존재였다면 통할 리 없는 한 수였지만, 언여휘는 그것이 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애초에 설천위를 움직이는 원동력 자체가 너무나도 인간적인 소망 때문이었으니까.

소중한 사람과 함께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위해.

대체 이 세상에 결말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으나.

자신들의 거사를 막는 것을 끝이라고 여긴다면 뭐, 가능할 수도 있었다.

설천위가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았다.

황궁의 모든 목숨을 희생하는 것을 각오하고 폭격을 퍼부었다면, 설천위는 자신이 있든 구복이 있든 황궁을 짓밟아 버릴 수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죄인들의 목숨을 연료로 삼아, 황궁을 공격했던 그 일격을 비처럼 쏟아부었다면 가능했을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을 버리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면 가능했을 것이다.

이쪽은 준비해 놓은 것의 태반을 잃고, 조잡하게 계획을 실행했다가 그대로 설천위의 발아래 짓밟혔겠지.

그래.

“이미 늦어 버렸답니다.”

그 모든 것이 과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는 불가능했다.

계획은 완성 직전에 도달해 있고, 설천위는 자신들의 계획대로 황궁에 도착했다.

구복의 폭주는 예상 밖의 결과였지만, 결과적으로 자신과 그 녀석에게는 나쁠 것이 없는 일이다.

그러니.

“포기하고 저와 함께…….”

“좀, 닥쳐 봐.”

오랜만에 회유를 위한 말을 꺼내려던 순간, 입을 붙잡는 손에 언여휘가 볼을 붉혔다.

어쩜 이리 과감한…….

“대충 감 잡았으니까.”

“……네?”

감을 잡아?

뭘?

순간, 언여휘가 고개를 갸웃하고.

“이런 느낌이군.”

설천위가 손을 휘저었다.

허공을 떠돌던 것들이 흩어진다.

사람들의 목숨을 억지로 잡아끌어 허공에 뿌려 놨던 것들이.

“어떻게?”

사라진다.

그것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언여휘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랐고, 그런 언여휘의 머리를 붙잡아 들어 올린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하면 돼.”

“하, 하하! 그건 참……!”

불쾌한 대답이군요!

차마 뒷말을 내뱉지 못한 언여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희미하게, 정말 희미하게 엮어서 허공에 뿌려 놓은 것들이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술사라고 해도 저걸 아무런 문제도 없이 해결한다는 건 불가능한……!

뿌득!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언여휘의 머리에 파고든 손가락 끝에 천천히 힘을 더한다.

언여휘의 사고를 기다려 줄 생각이 없는 설천위는 눈앞의 인형을 파괴하기로 결정했다.

“불가능한 걸 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것.”

뿌득! 뿌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이미 말할 기능을 상실한 언여휘가 입을 뻥끗거리는 사이.

“그게 내가 걷는 패도(覇道)다.”

다른 말로는 행복한 결말을 위한 루트라고도 하고.

완전히 언여휘의 머리를 으깨 버린 설천위는 술법으로 일으킨 바람으로 손에 묻은 것들을 깔끔하게 털어 냈다.

“천위! 끝났어!?”

[크허허헝!]

어느새 격렬해진 전투에 피투성이가 된 백유가 소리치자, 구복의 포효가 공간을 때렸다.

그리고.

“물론.”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가 손을 뻗어 선을 그렸다.

다시금 생겨난 수백 수천의 가시가 그대로 구복을 압박했다.

치솟는 가시, 다시금 자세를 잡고 달려드는 서하영과 백유.

‘이럴 순 없다!’

언여휘가 설천위를 붙잡아 둔 시간은 극히 짧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둘 중 하나조차 죽이지 못하다니.

경지를 뛰어넘은 무인이 둘이라고는 하나, 이건……!

이를 악문 구복은 자신을 압박해 오는 공격을 받아 내며 고민에 빠졌다.

전투가 길어지니 이성이 돌아온 탓이다.

무엇보다 지금 이대로 가면 자신이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고 달려든 이유마저 사라진다.

철백의 육체에 들어가 있는 형제의 혼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져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던 것 아니던가.

이렇게 우물쭈물하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구복의 고민이 깊어지는 그 순간.

쩌적!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을 향했다.

철백이 갇혀 있던 흑관.

그 흑관에 생겨난 금이 순식간에 번져 전체로 퍼졌다.

그리고.

산산이 깨져 흩날리는 흑관 속.

“……부끄럽군.”

가슴에 박혀 있던 생물 형태의 말뚝을 손에 쥔 철백이 퀭한 눈으로 서 있었다.

그것은 철백의 승리를 의미하기에 반응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철 가가!”

그에게 피투성이가 된 서하영이 달려들고, 그녀의 빈자리로 생긴 구복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설천위가 긴장하는 순간.

[크흐, 크흐흐, 크하하하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하영의 빈자리를 노릴 생각도 없이 그 자리에 서서 웃음을 터트리던 구복이 두 눈을 번뜩였다.

[찢어발겨 주마. 인간 놈들.]

구복의 가슴이 갈라지고, 그 안에 있던 갈색의 곤옥이 번뜩인다.

그리고.

[나는 금수의 신이니라.]

축생의 곤옥이 구복과 합일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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