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86화 (586/624)

제586화

585화-망아의 짐승 (3)

완전히 깨어난 망아의 짐승이 보여 준 무시무시한 파괴력에 설천위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고작 손짓만으로 자신의 흑관을 깨부쉈다.

이건 단순히 ‘육체가 강하다’는 말의 범주를 훌쩍 벗어난 힘이다.

문제는 그런 힘을 가진 상대가 망아의 짐승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웬만한 공격엔 상처도 나지 않는 육체.

백유도 공격하며 끊임없이 목과 주요 혈관 같은 급소를 노렸지만, 그 어떤 공격도 동맥에 닿은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철백의 몸이니 손대중을 했다고 쳐도, 흑뢰천역(黑雷闡域)이 발동된 뒤의 공격은 동맥은커녕 내장까지 전부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만큼 강력한 위력이었을 터.

그럼에도 망아의 짐승은 가벼운 상처만 입었고, 그 가벼운 상처마저 괴랄한 회복력으로 바로 치유해 버렸다.

저런 괴물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힘까지 가졌다면, 그 파괴력은 도저히…….

‘풀어야 하나?’

아직 수장급은 하나도 처리 못 했는데, 벌써?

설천위의 고민이 깊어지는 그 순간.

“어떠어어어언!!”

늘어지는 목소리와 함께 바람처럼 지나간 무언가가 망아의 짐승의 코앞에 도달했다.

“개잡놈이냐, 넌!!”

서하영의 입에서 나왔으리라고는 상상되지 않는 육두문자와 함께 그녀가 내지른 창이 대기를 꿰뚫었다.

바람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창이 회전을 더해 단숨에 망아의 짐승의 몸에 적중했다.

콰가가가가각!

바람으로 이루어진 거라고는 믿기 힘든 막강한 파괴력과 함께 그대로 망아의 짐승의 몸을 밀어붙인 바람의 창은 설천위가 만들어 놓은 흑관에 부딪힌 뒤에야 겨우 멈춰 섰다.

다만, 전진을 멈춘 뒤에도 회전을 멈춘 건 아니라서 사람을 실시간으로 갈아 버리는 섬뜩한 소리는 계속해서 울려 퍼졌으나.

[흥!]

코웃음과 같은 반응과 함께 양팔을 교차하듯 팔을 휘두른 망아의 짐승에 의해 바람의 창은 호수가 말라비틀어지듯 금세 흩어졌다.

“흥? 흥이요? 참, 짜증 나는군요.”

평소의 서하영을 떠올리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거친 태도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서하영은 허공에 서서 다리를 까딱였다.

“남의 남자 몸을 가지고 헛짓거리를 하는 게 누구인데, 지금…….”

속에 있던 말을 그대로 뱉어내던 서하영은 뒤쪽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히죽히죽 웃고 있는 백유와 그렇군,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설천위.

그 둘을 발견한 순간, 서하영의 얼굴이 단숨에 붉게 달아올랐다.

“뭐요! 뭐! 여러분들도 다 하는 일이잖아요!”

“흐응~.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나도 도착해서 천위한테 진한 입맞…….”

“거기까지. 그리고 날조하지 마.”

이마에 한 건 입맞춤이라고 안 해.

노카운트야.

백유의 입을 막은 설천위는 상처에 손이 닿을까 조심스럽게 그녀를 살피다가 한숨과 함께 손을 풀었다.

뭐, 나중엔 밝혀질 비밀이기도 하지…….

유예린과 백유는 그날 이후로 서로 비밀을 두지 않기로 한 것 같으니.

이 일이 끝난 뒤 찾아올 고난은 다음에 생각하기로 한 설천위는 즉시 땅을 박찼다.

쾅!!

단숨에 서하영의 지척까지 도달한 망아의 짐승의 주먹을 수백 겹을 겹쳐 만들어 낸 흑관으로 받아 낸다.

그 순간, 설천위의 어깨 위로 뻗어나가는 창이 망아의 짐승의 어깨를 노리고 망아의 짐승의 머리 위에서 떨어지던 백유가 칠흑의 뇌전이 되어 꽂혔다.

상의 한마디 없이 이루어진 완벽한 협공.

합을 짠 것처럼 방어와 공격이 이루어졌으나.

“……천위, 더 단단해진 것 같은데?”

뇌전을 휘감았던 주먹으로 머리통을 후려친 직후, 말도 안 되는 반발력에 그대로 튕겨 나온 백유가 손을 털었다.

“철 가가 원래 단단했어요.”

“……얘 성격이 좀 변하지 않았어?”

“그 지옥 같은 짓을 시켰으니 까칠할 수밖에요.”

살짝 짜증이 담긴 얼굴로 대꾸한 서하영은 재미있다는 듯 히죽히죽 웃는 백유를 무시하며 창을 거뒀다.

그리고.

“둘 다 그만 놀고 좀 도와줄래?”

까득! 까득!

망아의 짐승의 주먹과 힘겨루기를 하던 설천위의 구조 요청에 서하영과 백유, 둘 다 즉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양옆으로 흩어진 둘의 공격이 망아의 짐승에게 꽂혔다.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관절 부위를 공격해 몸의 균형을 흐트러트리기 위한 공격.

서하영의 창이 무릎을, 백유의 주먹이 설천위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놈의 팔꿈치를 향했다.

[흡!]

그리고 기합만으로 그 두 공격을 전부 받아 낸 망아의 짐승은 그대로 주먹을 거두고 허리를 굽혔다.

상대의 공격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무방비한 자세.

그러나 설천위는 그렇기에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금 이대로 움직이면 한껏 힘을 모은 저 주먹을 그대로 받아 내야 할 테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힘을 풀어서 일단 제압해?

그다음에 심상 세계로 들어가 철백을 끄집어내면 되나?

아니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극한까지 늘어진 시간 속에서.

설천위의 고민이 거듭되는 그 순간.

튕겨 나간 창을 당기고 자세를 고친 서하영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단숨에 시간이 돌아온다.

“안 돼!!”

서하영의 무모한 전진에 다급히 그녀를 말리려 했던 설천위는 이미 늦었음을 깨닫고 즉시 술법을 펼쳤다.

수백 겹으로 겹친 흑관이 서하영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쩌저저저정!!

서하영이 사거리에 들어오자마자 전력으로 휘둘러진 망아의 짐승의 주먹이 단숨에 수백 겹의 흑관을 깨부수며 서하영에게 꽂혔다.

서하영이 반응했다면 중상.

아니면 즉사다.

그 섬뜩한 예감에 설천위가 이를 악물고 달려 나가는 그 순간.

[음?]

의아함이 담긴 망아의 짐승의 목소리와 함께 창이 움직였다.

망아의 짐승의 가슴 앞에 서하영의 창이 놓인다.

그리고.

흑관의 파편이 완전히 흩어져 드러난 광경에 설천위는 걸음을 멈췄다.

“역시 아직 있군요.”

서하영의 코앞.

정확하게 정지한 주먹은 기이할 정도로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스스로와 싸우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끝내 그 떨림이 멎었을 때.

[가소롭군.]

망아의 짐승이 오만한 웃음과 함께 자세를 다잡았다.

[이 몸과 무슨 연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자신의 앞에 당돌하게 서 있는 서하영을 보며 망아의 짐승이 선언했다.

[이 육체는 이제 온전히 내 것……!!]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뻥긋거리는 망아의 짐승.

그런 망아의 짐승의 모습에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역시, 납치할 대상을 잘못 골랐어. 너희들.”

설천위의 웃음과 동시에 몸을 비튼 망아의 짐승이 자신의 옷을 쥐어뜯었다.

애초에 소매가 없었던 옷이었는데, 그것마저 완전히 뜯어내자 가슴에 박혀 있는 무언가가 드러났다.

살점으로 이루어진 말뚝.

마치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처럼 맥동하는 그것의 모습에 혐오감이 절로 들 법했지만, 표정이 흐트러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꽈아악!

그리고 그것을 움켜쥔 손이 힘을 더하려는 순간.

[꺼, 져라!!]

거대한 노호(怒號)와 함께 움켜쥔 손을 거칠게 휘두른 망아의 짐승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네놈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딱 봐도 자신들에게 하는 말이 아닌 망아의 짐승의 외침에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럼 그렇지.”

저런 개사기 캐릭터한테 약점 하나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너무 똥 밸런스잖아?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은 그만한 제약이 따르는 법이지.

저 힘을 내기 위해선 철백 정도의 육체가 필요한 것이 그 조건이겠지.

물론, 철백을 그냥 꿀떡 삼킬 순 없었을 테니 그 안에서 철백이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겠고.

그나저나 섭섭하네.

“친구 뚝배기 부술 땐 죽어도 안 멈출 기세더니…….”

이래서 우정이란 부질없다고 하는 것인가…….

피식 웃으며 농지거리를 던진 설천위는 아직까지도 불쾌감으로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는 망아의 짐승을 보며 양팔을 벌렸다.

“공략법을 알았다면, 괜히 힘을 뺄 필요 없지.”

효율적으로 가자고. 효율적으로.

술사란 준비하는 자.

여유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천지 차이이고.

“서 부단주, 최전방으로.”

“흥,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백유, 흑뢰천역(黑雷闡域)은 해제한다.”

“그래.”

설천위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백유는 자신의 뇌전만을 휘감은 채 단검을 꺼내 들었다.

단순히 전투력만 보자면 흑뢰천역(黑雷闡域)을 유지하는 것이 답이 될 수도 있겠으나.

“술법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철백의 육체에 저 정체 모를 혼을 집어넣은 매개체가 저 말뚝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저 말뚝만 제거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그럼 방법이 있지.

[가소롭다!!]

적들이 자신을 상대할 희망을 품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망아의 짐승은 거침없이 권능을 발휘했다.

진명을 잃기 전, 그는 재액(災厄)의 상징이었으니.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가뭄이 들어 모든 생명체가 사라졌다.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것을 잊어버린 망아의 짐승이었으나.

자신이 무엇을 위해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는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이 세상의 재액이노라!!]

망아의 짐승이 내지르는 포효와 함께 세상이 요동친다.

설천위가 만들어 낸 흑관이 삭아서 금이 가고, 목재가 말라비틀어져 무너진다.

대지는 건조해져 흙먼지가 일어나고, 살아 숨 쉬는 것들의 피부는 메말라 간다.

재액(災厄).

그야말로 세상에 닥친 절망이나 마찬가지인 망아의 짐승이 힘을 풀어냈기에 필멸의 존재라면 그 힘 앞에 무릎을 꿇었을 거다.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했을 것이다.

무릎을 꿇고 비를 빌었을 것이다.

과거 무지한 인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망아의 짐승 앞에 있는 인간들은 그런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저 하늘까지 베어 버릴 각오를 다진, 인류의 역사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인한 인간들이었다.

[풍영류창(風泳流槍) 회인(回刃)]

[소월환무(紹月繯舞) 월하(月下)]

이미 자신의 영역에 들어선 두 무인의 독문절초가 펼쳐졌다.

회전하는 바람의 창이 망아의 짐승이 만들어 낸 가뭄의 힘을 꿰뚫고.

달 아래 빛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검날이 망아의 짐승을 헤집는다.

[크아아아아아아!!]

더더욱 거칠게 포효를 내지른 망아의 짐승의 한 손이 서하영의 창을 붙잡고, 반대쪽 손은 파고든 백유를 때려서 튕겨 냈다.

불굴의 육체.

신에 이른 혼.

철백의 육체에 깃든 망아의 짐승이 펼쳐 내는 힘은 현경급 고수라고 해서 쉽사리 꿰뚫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시간까지 벌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망아의 짐승이 서하영의 창을 붙잡고, 백유의 단검을 막아 내는 그사이.

“자.”

그들의 뒤에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설천위가 두 손을 겹친 채 웃고 있었다.

“끝.”

가벼운 웃음.

그리고 그 웃음을 인지한 순간, 요동치는 영력에 망아의 짐승이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나한테 들키지 않고?!

정말 가는, 자신의 눈으로도 쉽사리 볼 수 없는 얇은 영력의 실이 가슴에 박혀 있는 말뚝과 이어져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술사라고 해도 영력으로 이루어진 무언가를 자신의 감각을 속이고 접근시킨다는 건……!

당황한 망아의 짐승이 다급히 그 실을 끊어 내기 위해 손을 휘두르는 순간.

“늦었지.”

촤라라라락!!

단숨에 펼쳐진 흑관이 망아의 짐승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이곳에 오기 직전에 봤던 것과 비슷한 흑관의 모습에 서하영이 눈을 크게 떴다.

“공자, 이거……?”

“너희한테 썼던 거랑 비슷한 거 맞아. 뭐, 우리 서 부단주 덕에 그 녀석도 눈을 좀 뜬 것 같으니…….”

나머지는 걔한테 맡기지 뭐.

* * *

황량한 대지.

그곳에서 눈을 뜬 망아의 짐승은 금세 상황을 인지했다.

[감히 인간 따위가!]

[나를 심상 세계로 보내 버렸다는 것이냐!]

[바로 나가 그 머리통을 으깨 주마!]

이를 악문 망아의 짐승이 심상 세계를 깨고 나가려는 순간.

“아쉽게 됐군. 넌 못 나간다.”

큼지막한 바위 위에 앉아 있던 철백이 가볍게 뛰어내리며 목을 풀었다.

시원하게 울리는 뼈 소리와 함께 철백은 살의가 일렁이는 눈동자로 망아의 짐승을 마주했다.

“서 매를 건드린 죄는 크다.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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