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3화
582화-전면전 (6)
팔이 잘려 나간 순간, 성화린은 즉시 움직였다.
텅!!
밖에 있어서 무사했던 오른손으로 결계 위를 때린다.
“침뢰(針雷)!!”
손바닥에서 시작된 미세한 번개의 바늘이 이제 막 수복된 결계의 빈틈을 찌른다.
기어코 결계 안으로 파고 들어간 머리카락 두께의 바늘이 결계 안의 팔에 닿는다.
여전히 번개의 형태를 하고 있던 왼팔의 파편에 그 바늘이 닿는 순간.
수천 마리의 새가 한꺼번에 지저귀는 것 같은 높은 고음이 터져 나왔다.
강렬한 고음과 함께 모든 것을 불태우듯 터져 나오는 섬광.
순식간에 가득 찬 뇌전이 결계 안의 그것을 불태웠다.
[기아아아아아아아!!]
그 형체가 타들어 가면서, 존재가 쥐어 짜이는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성화린은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어떤 구원도 없다.
혼을 파고드는 비명을 온몸으로 받아 내며, 성화린은 더욱더 영력을 폭발시켰다.
대체 몇 번째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섬광이 터져 나왔고, 뇌전의 폭발이 이젠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사그라들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후우.”
핵을 잃고 흐려지는 결계 너머에서 새까맣게 타 버린 그것을 눈에 담는 순간, 성화린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해야 하는 일이기에 했으나.
그들에겐 해선 안 될 일을 했음은 분명했으므로.
“조금은 독해진 줄 알았더니, 아니군요. 그 아이의 제자다워요.”
“……언여휘.”
이를 악물고 눈을 뜬 성화린은 흐릿해진 결계를 억지로 잡아당겨 비틀었다.
파편이 되어 깨지는 결계 속.
원화(元化)의 술(術)이 풀려 원래대로 돌아온 팔을 집어 들었다.
“당신만큼은 반드시 태워 죽일 겁니다.”
“후후, 불가능하진 않겠군요. 불쌍한 이들을 정화시키기보단 태워 버리는 선택을 할 정도이니.”
성화린의 실패를 지적하며 조롱한 언여휘의 목소리가 흩어진다.
“하지만, 당신의 순서는 조금 늦을 것 같으니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세요.”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 자신을 향했던 언여휘의 시선이 완전히 거두어진 것을 느낀 성화린은 작게 이를 악물며 일어섰다.
“단주님!”
어느새, 밖에 몰려들었던 적들을 한차례 정리해 낸 부하들이 달려왔다.
“팔이!”
“의원! 의원, 어디 있어!”
“여기 의원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일단 지혈부터……!”
잘린 성화린의 팔에 부하들은 당황한 나머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단숨에 어수선해진 분위기에 작게 한숨을 내쉰 성화린은 잘린 팔을 상처 부위에 가져다 댔다.
“됐습니다. 괜찮아요.”
“하지만……!”
“흑룡단주 같은 괴물이 아니라서 남을 챙기진 못하지만, 제 한 몸 정도는 건사할 수 있답니다.”
걱정하는 부하를 부드러운 미소로 위로해 준 성화린은 다시금 원화의 술을 발동했다.
파지직!
뇌전으로 변하는 그녀의 어깨.
그리고.
“에?”
“어떻게?”
잘린 팔까지 뇌전으로 변해 버린 것을 목격한 부하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성화린은 설명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꽤나 힘들었으니까.
잘려 나간 부위에 뇌전으로 변한 팔을 가져다 댄 성화린은 천천히 결합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원화의 술로 변하면 단순 절단은 무효화시킬 수 있다.
잘리기 직전까지 원화의 술을 사용하고 있었고, 또 잘린 지 얼마 안 된 지금이라면…….
“……후우.”
붙일 수 있다.
다시 원화의 술을 해제한 성화린은 어색함 없이 붙어 있는 팔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이죠.”
“단주님!”
“멀쩡합니다. 아직 한참 더 싸울 수 있어요.”
목소리를 높이는 부하를 진정시킨 성화린은 욱신거리는 팔의 통증을 웃어넘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직 정리해야 할 적들이 많습니다. 거기다.”
그것이 부서졌음에도 언여휘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 이유야 뻔했다.
“앞으로 몇 개나 더 있을지 모릅니다.”
지금 부순 이것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
앞으로 몇 개나 더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니, 조금이라도 더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 * *
“과연.”
객잔 위.
저 멀리 있던 성화린의 상태를 멀리서 감지한 설천위는 턱을 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하는 게 뻔하네.”
상상력이 부족해요. 상상력이.
예상했던 수작 중 하나를 성화린 덕에 확인하게 된 설천위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황궁을 바라봤다.
성화린을 공격하기 위해 팔을 한 번 내줬음에도 어느새 회복해 현태중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언여휘가 보였다.
그리고 마치 이쪽의 시선을 알고 있다는 듯 웃고 있는 모습도.
“짜증 나네.”
어색하지 않은 부드러운 미소가 더욱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저렇게 웃는 얼굴 뒤에 언여휘라는 미친 인성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거참…….
“쯧.”
혀를 차며 대충 짜증을 털어 낸 설천위는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 초과.”
[아쉽구나.]
“애초에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니까요.”
신의의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됐어요.”
적이 뭘 준비하고 있는지 대충 감을 잡았으니, 그것에 맞춰 움직일 차례다.
가장 위험한 건 황궁 내부에서 일을 벌여서 이쪽이 손을 못 쓴다는 거였지만…….
‘천락위고진(天落萎呱陣)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이건 황궁에 억지로 돌입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물론, 황궁에 있을 진짜들은 경계하긴 해야겠지만…….
“계획을 망치는 거라면, 굳이 황궁에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하지.”
무엇보다.
자신이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것을 성화린이 눈치챈 것이 의미하는 바는 뻔했다.
여태까지 완전히 봉인해 놓은 상태였다가 이 전투에 돌입해 발동을 시작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단 말은…….
“아직 부족하구나?”
최대한 기다렸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되었다.
이게 정답이겠지.
그렇다면, 더 몰아붙여 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어?
결정을 내린 설천위는 아까부터 엉덩이를 들썩이던 불존을 바라봤다.
“놈들이 제도 곳곳의 지하에 술법을 위한 법구를 묻어 놨습니다. 찾아서 파괴해 주세요.”
“찾는 방법은?”
“혼을 쥐어짜 억지로 뒤섞어 만든 물건이니, 악취가 진동할 겁니다.”
“……아미타불.”
들썩이던 엉덩이가 가라앉고, 나지막이 불호를 왼 불존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숫자는 어찌 되나?”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숫자를 묻었을지. 만약을 대비해 필요한 것의 배 이상을 묻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미타불.”
그 과정에서 몇이나 되는 목숨이 허망하게 사라졌을까.
분노보다 슬픔이 앞선 불존은 불호와 함께 그 슬픔을 뱉어냈다.
그리고 아주 잠깐.
고작 몇 초의 시간이 흐르고.
“빈승이 오늘 피로 그들의 원념을 씻어 내리라.”
불존의 신형이 사라졌다.
극에 이른 경신술.
부동.
단숨에 자리를 박찼음에도 티끌만큼의 흔들림도 없었기에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라진 불존의 신법에 설천위가 감탄했다.
“누가 들으면 소림사의 주지가 아니라 파계승의 대빵인 줄 알겠어.”
피로 씻긴 뭘 씻어.
무해의 스승이 맞나 싶은 언행이었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다른 오존들을 바라봤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탁드려요.”
“알겠다.”
“흐응, 어렵지 않은 일이지.”
고개를 끄덕인 사존과 살존이 자리를 떴다.
“그럼 나 또한 움직이마.”
“이번엔 성실하게 해 주세요. 온 마음을 다해서.”
“……확실히 버릇이 없어졌구나.”
설천위의 태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정존마저 자리를 뜨고, 홀로 남은 북존은 가만히 설천위를 바라보다가 별다른 말 없이 자리를 떴다.
“……거참.”
말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위해 움직이는 북존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설천위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래서 천위, 우리는?”
“너도 가서 도…… 절대로 안 갈 눈빛이네.”
“물론이지. 예린이, 그 계집애는 계속 네 곁에 있었잖아?”
“그건 또 아니긴 한데…….”
음.
말이 통할 눈빛이 아니군.
무슨 일이 있어도 따라가겠다는 눈빛의 백유를 잠시 바라보던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상관없겠지.”
오존을 도시에 풀어놨으니 놈들의 계획을 막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그러니 이쪽은…….
“간다.”
저쪽을 해결하는 게 적절하다.
허공에 발판을 만들어 그대로 그 발판을 디딘 순간, 설천위의 허벅지 근육이 단숨에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꺄하!”
자연스럽게 그런 설천위의 목에 백유가 팔을 휘감는 순간, 설천위의 발아래가 폭발했다.
디딤대로 삼았던 흑관에 금이 가는 것과 동시에 단숨에 시야가 늘어진다.
지나가는 새조차 멈춘 것처럼 보일 정도로 느려진 시간 속에서 단숨에 언여휘에게 도달한 설천위가 손을 뻗었다.
육체가 성숙한 덕일까.
기어코 설천위에게 반응한 언여휘가 손을 뻗어 응수했다.
몇 가지나 되는 술법이 언여휘의 손에 겹쳐지고, 설천위의 손과 맞닿는다.
동시에, 애초에 언여휘를 상대하고 있던 현태중이 검을 찔러 넣었다.
궤적을 읽을 수 없는 현태중 특유의 공격.
궤적을 읽을 수 없기에 어떤 궤적이라도 상관없는 형태로 방어해 왔던 언여휘는 당연하다는 듯이 방어 술법을 펼쳤다.
그렇게 단숨에 현태중의 검까지 저지한 그 순간.
“과연, 이런 느낌인가?”
파직.
번갯불이 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언여휘는 단숨에 바뀐 시야를 인지했다.
느려졌던 시간이 돌아오고, 설천위의 주먹을 감당해 내지 못한 육체가 그 주먹에 뼈가 으스러지는 것이 보였다.
현태중의 검이 닿기도 전에 설천위의 주먹에 맞은 육체가 일그러지다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튕기듯 날아간다.
쾅!
휘리릭, 하고 날아서 묵직한 소리와 함께 건물에 처박힌 육체가 바들바들 떠는 것이 보였다.
“나쁘지 않은 솜씨군요.”
그 모든 것을 백유의 손에 들려 지켜본 언여휘의 목이 시선을 올렸다.
“다만, 손버릇은 나쁘네요. 여인의 머리채를 이렇게 붙잡다니요.”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건 여전하구나?”
몇 번 설천위와 함께할 때 언여휘를 봤던 적이 있는 백유는 여전히 미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지껄이는 그녀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광기는 싫어하지 않지만, 선을 넘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지.”
웃으며 언여휘의 머리를 허공에 집어 던진 백유는 역수로 쥔 단검을 그녀의 이마에 깊숙이 꽂아 넣었다.
“이 몸은 끝났으니까 다른 몸으로 오도록.”
꿰뚫린 이마에서 피가 흘러 언여휘의 코와 입술을 타고 흘러내린다.
보는 것만으로 오싹한 몰골을 한 언여휘의 눈동자가 똑바로 백유를 응시했다.
“과연 그럴까요?”
덤덤한 물음에 백유는 즉시 단검을 뽑고 뒤로 물러났다.
설천위가 만들어 준 발판을 박차고 자리를 벗어난 순간, 거대한 발이 그녀가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그대로 파편이 되어 흩날리는 언여휘의 머리통……이 돼야 했을 텐데.
“참, 다재다능한 분이시군요. 우리의 공자님은.”
“개소리 집어치우지? 소름 돋으니까.”
건물에 처박혀 사지를 꿈틀거리는 육체를 보며 허공에 뜬 언여휘의 머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몸이 탐이 난다고 말씀해 주시면 얼마든지 다가가 안겨 드렸을 터인데.”
“어우.”
진짜 역하네.
아니, 잘린 목이 저런 말을 하는 건 솔직히 역한 걸 넘어서서 공포스러운 걸.
언여휘의 헛소리에 헛구역질로 대답한 설천위는 대충 손을 휘저었다.
“됐고, 꺼져. 슬슬 진짜 대가리들이랑 만나서 문제 해결을 할 거니까.”
“제가 그 대가, 흠흠 상스럽군요. 아무튼, 제가 그 우두머리들 중 하나입니다만?”
“인형 주제에 뭐라는 거야.”
주절주절 떠드는 언여휘의 머리통을 향해 중지를 치켜세운 설천위가 다시 입을 여는 순간.
“안타까운 일입니다.”
언여휘가 그의 말을 끊고 살포시 눈을 감았다.
“낭군님께서는 이미 늦으셨습니다.”
눈을 감은 언여휘의 한마디와 함께, 설천위는 반사적으로 흑도를 만들어 내 휘둘렀다.
저 멀리, 황궁의 꼭대기에서 시작된 번뜩임이 단숨에 지척에 도달했다.
그리고.
쩡!!
완전히 깨져 파편이 되어 흩날리는 흑도 너머로 보이는 얼굴에 설천위는 눈을 부릅떴다.
“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