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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82화 (582/624)

제582화

581화-전면전 (5)

제도(帝都) 전체를 뒤덮은 전투는 쉽사리 그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단말마의 비명과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찐득한 피 냄새까지.

일반 백성들은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해서도 안 되는 재앙에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

공포에 떨면서 제도에 닥친 죽음이 어서 떠나가길 기다리는 이들.

어떻게든 이 제도를 탈출하려는 이들.

드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제도에서 후자를 선택한 이들이 몰릴 곳은 몇 군데로 한정되어 있었다.

“뭐 하는 게냐! 지금 당장 문을 열라고 해라! 내가 누군데!”

“예, 예이! 대인 바로 전하겠습니다요!”

마차 안에서 호통치는 목소리에 마차를 몰고 있던 하인은 공포에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도 못한 채 마부석에서 내려서 성문을 향해 냅다 달려갔다.

이미 몇 대나 되는 마차들이 앞에 줄을 서고 있었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참혹한 광경.

제도에서 치솟은 거대한 발이 도시를 아예 지워 버리다시피 초토화시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봐 버린 이상, 이 제도에 남겠다는 선택지는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주인도 저리 재촉하니, 주인의 이름을 팔아서라도 이 제도를 서둘러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달려서 성문 앞에 도착한 하인이었지만, 미처 입을 열지도 못한 채 몸을 수그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 문을 여시오!”

마차에서 내려 문을 지키는 위병에게 호통치고 있는 건 그 유명한 위 대인이었다.

이 제도에서는 물론 나라 전체에서도 이름을 드날리고 있는 대상(大商).

그런 대상이 하인을 시킨 것도 아니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저리 소리치고 있으니, 자신 같은 천것이 감히 나설 자리가 아니었다.

이 바닥에서 자신의 주제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며 하인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다른 마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하인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그들 역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위 대인의 앞에 서 있던 상대가 입을 열었다.

“불가.”

“불가? 지금 불가라고 했나!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익!”

안 된다는 위병의 말에 위 대인은 불같이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삿대질을 하며 욕을 마구 쏟아 낼 것 같던 위 대인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겨우 삼키더니 한숨과 함께 손을 내렸다.

“내가 업무를 보러 향하던 지부가 내 눈앞에서 가루가 되어 버렸소. 그런 상황에서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성문을 막고 있는 위병에게 윽박질러 봐야 좋을 게 없었다.

상인의 냉철한 이성이 그의 분노를 가라앉힌 덕에 꽤나 목소리가 차분해진 위 대인은 무표정한 위병을 바라보며 품에서 묵직한 돈주머니를 꺼냈다.

“내 이렇게 부탁함세. 아직 젖도 못 뗀 자식과 처가 있네.”

차분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공포를 미처 숨기지 못한 위 대인의 떨리는 목소리에도 위병은 꼼짝하지 않았다.

심지어 누가 봐도 묵직한 무게를 가진 돈주머니조차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창을 앞으로 뻗었다.

“불가.”

“아니! 정말 이럴 셈인가? 내 추후에 반드시 크게 보답해 주겠네! 아주 잠깐, 문만 열어 주게!”

간절함을 담아 부탁하던 위 대인은 품에서 돈주머니를 더 꺼내어 내밀었다.

“지금 이게 내가 가진 전부일세! 제발 문을……!”

“불가.”

“아니! 아까부터 자꾸!”

“불가.”

위 대인의 말을 끊고, 드디어 위병이 움직였다.

“끄아아아악!”

어깨를 꿰뚫고 튀어나온 창과 함께 위 대인이 바닥에 쓰러졌다.

고통을 이겨 내지 못하고 연신 비명을 질러 대는 그의 어깨에서 창을 거칠게 뽑아낸 위병은 감정 하나 담겨 있지 않은 눈동자로 그들을 훔쳐보던 하인들을 훑어봤다.

“불가.”

피를 흘리는 위 대인을 다시 내려다보는 위병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그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 * *

제도의 성벽.

그 위를 돌며 혹시 모를 외부의 침입자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병사, 백용은 평소와 달리 멍하니 성벽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철이 들 때부터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다녔던 성벽 위.

병사로서 번견이나 다름없는 업무였으나, 백용은 이 일에 만족하고 있었다.

물론 혈기 넘치던 시절에는 불만을 품었을 때도 있었지만, 이립을 넘어선 지금, 성벽 위를 열심히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아.”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풀려 버린 두 눈으로 저 멀리 도시 밖을 바라보던 백용의 옆으로 다가온 사내가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고생이 많군.”

“…….”

입고 있는 갑옷부터가 다른, 명백히 상사로 보이는 이가 말을 걸었음에도 백용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백용의 모습에 불쾌한 기색 없이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인 사내는 그대로 백용을 스쳐 지나갔다.

“부질없는 노력은 그만하도록.”

떠나가는 상사.

그런 상사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백용은 멍하니 성벽 너머를 바라봤다.

모든 것이 끝났다.

지금 성벽 안쪽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들도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아 정리될 거다.

죽진 않겠지.

모두 쓰임새가 있으니까.

하지만.

“……아아.”

끝내 모두 죽을 것이다.

성실하게 근무한 것이 상사의 눈에 들어 가장 마지막으로 순번이 밀려난 백용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을 억지로 지우려 애썼다.

떠올리고 싶지 않다.

떠올리고…….

‘화야……!’

어린 딸의 모습이 떠오른다.

제 어미를 닮아 동글동글한 볼이 귀여운 딸.

이제 고작 열다섯인 딸.

좋아하는 사내놈이 생겼다고 제 어미와 속삭이던 딸.

보내 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까득.

부러져라 이를 악물며, 백용은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버겁다.

그날의 일을 목격한 뒤로 이 몸뚱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한창 민감한 나이의 딸과는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눌 수 없었다.

동료들은 그날의 기억을 모두 잃었지만, 성실함을 인정받아 관리의 책임을 맡게 된 자신은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을 잃을 때마다 감정도 잃어 가던 동료들.

떠오를 때마다 헛구역질이 절로 올라오던 작업들.

이 거대한 제도 아래 파묻혀 있는 그것들을 떠올린 순간, 그것들의 얼굴 위로 딸과 아내의 얼굴이 겹쳐졌다.

“으그윽!”

치밀어 오른 위액이 그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내렸다.

이젠 속을 게워 내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구나.

그것을 깨달은 순간, 그나마 자유가 있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눈물에 입술을 질끈 깨무는 순간.

“……아.”

저 멀리 무언가 희미하게 일렁이는 것을 발견한 백용은 두 다리를 움직였다.

그것들과 딸아이 얼굴이 겹쳐지던 것을 떠올리며, 그런 결말 따위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백용은 힘겹게 움직였다.

몸을 제약하는 술법에 혼이 비틀리고, 그 여파로 내장이 뒤틀렸지만.

“끄으으읍!”

입술을 질끈 깨문 백용은 성문을 향해 나아갔다.

저 멀리 환상처럼 보였던 희망을 붙잡기 위해.

* * *

“이건 이상하군요.”

부하들을 이끌고 제도를 누비며 적들을 소탕하던 백화단주 성화린은 희미하게 느껴지는 기척에 미간을 찡그렸다.

단순한 인기척이 아니었다.

영적인 무언가.

혼을 자극하는 지독한 악취에 그녀는 절로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이 인근을 수색하죠.”

“예? 하지만…….”

“위험은 꼭 눈에 보이는 곳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당황하는 부하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할 시간도 없이, 성화린은 직접 흔적을 좇기 시작했다.

지독한 악취.

이건 마치…….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불안감과 함께 악취를 따라 움직이던 성화린은 이내 한 곳에 멈춰 섰다.

“……이 밑을 파 주세요.”

“술법으로 하면 되겠습니까?”

술법으로 해도 되냐는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성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어떤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시가 급한 지금 직접 흙을 파선 언제 도달할지 모르니까.

성화린의 허락에 흙을 다룰 수 있는 술사가 술법을 펼쳤다.

빠르게 흙이 올라오고 구멍이 생겨나 순식간에 성인이 들어갈 정도의 깊은 구덩이가 만들어졌고.

“욱!”

“이게 대체 무슨 냄새야?!”

호위를 위해 따라온 무인들까지 코를 쥐고 뒤로 물러설 정도로 악취가 강해졌다.

“우우에게겍!”

“이게 무, 우우에에엑!”

영감이 강한 술사들 중에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속에 있는 것을 게워 내는 이들까지 있었지만, 성화린은 미간만 찡그린 채 구덩이에 다가갔다.

“……정말, 지독하군요.”

구덩이 안.

반구 형태의 결계에 담겨 있는 그것을 확인한 성화린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몸을 일으켰다.

“일단, 정화부터 하겠습니다.”

결계를 부수고 안에 있는 법구의 정화.

이런 걸 발견한 이상, 우선순위는 이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성화린이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그건 건드리면 안 되는 물건입니다.”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세상이 일그러졌다.

그것이 저 멀리에 있는 인왕사해로부터 시작된 충격파임을 깨달은 성화린이 가까스로 술법을 펼치려는 순간.

쩡!!

그녀보다 반 박자 먼저 펼쳐진, 거대한 칠흑의 장벽이 그 충격파를 받아 냈다.

공간이 깨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흩어지는 칠흑의 방벽.

덕분에 순풍 정도가 되어 흩날리는 충격파의 여파를 느끼며, 성화린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이쪽을 바라보는 언여휘의 분신과 눈이 마주쳤다.

조금 전의 검 한 수로 인해 팔이 날아간 언여휘의 눈동자에는 놀랍게도 한 점의 분노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아쉬움.

그것만이 담긴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언여휘의 모습에 성화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신경도 쓰지 않고 있구나.’

나를.

평생을 노려 온 적이 자신을 적수로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머리는 냉정하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적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없게 만들면 되지.

이건 기회다.

방어를 위해 펼치려 했던 술법을 거두고, 성화린은 양팔을 뇌전으로 바꿨다.

“급령지형(及靈知形).”

술법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강렬한 뇌전이 구덩이 속의 결계를 때렸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무시무시한 천둥소리와 함께 질척이는 피의 색깔을 한 결계가 크게 일렁인다.

쏟아지는 뇌전이 단숨에 모든 것을 불태울 것처럼 결계를 집어삼켰다.

서서히 녹아내리는 결계.

조금의 틈이 만들어지자, 뇌전 형태의 손을 그 틈으로 밀어 넣은 성화린은 그대로 그 틈을 벌리기 시작했다.

“흐으읍!!”

체력을 단련한 보람이란 건 이런 곳에서 느끼는 건가.

성화린은 버겁지만, 착실하게 결계의 틈을 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크르르르.]

“전원! 전투 준비!!”

몰려오는 적들을 맞아 부하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성화린은 억지로 외면했다.

지금은 오직 이곳에 집중한다.

이를 악물고 결계에 힘을 쏟아부었다.

서서히 벌어지는 결계 너머로, 빛이 죽어 버린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마주쳤다고 해도 되는 걸까.

뒤엉킨 살덩어리.

그것은 살아 있는 무언가를 억지로 뒤섞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인간이 주재료이고, 어쩌면 짐승도 섞여 있을지 모른다.

뭐가 됐든 확실한 것은.

까득!

이 악취는 혼과 육신이 뒤섞여 망가져 버린 이들의 절망과 슬픔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을 만들었을 존재가 누군지는 뻔했다.

인간을 이용해 인형을 만들어서 조종하는 광인.

인간이되 인간임을 포기하고 인륜을 어긴 행위들로 지식을 쌓아 올려서 저 너머에 도달한 괴물.

“언여휘!!”

꽈드드득!

이를 악물며 기어코 결계를 완전히 뜯어 버린 성화린은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언제 결계가 수복될지 모르기에 거침없이 손을 뻗었고.

“아직도 조잡하군요.”

웃음기가 섞인 언여휘의 목소리와 함께 결계가 움직였다.

성화린에 의해 억지로 벌어졌던 결계가 크게 요동친다.

마치 억지로 입이 벌어졌던 악어가 단숨에 턱을 닫는 것처럼 성화린이 결계의 이변을 눈치챈 순간, 이미 결계는 닫혀 버렸다.

안쪽으로 뻗었던 성화린의 팔을 먹어 치운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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