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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81화 (581/624)

제581화

580화-전면전 (4)

“웅추가 죽었다?”

예상치 못한 보고에 놀란 구복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정말로 웅추가 죽었음을 깨달았다.

정말로 연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완전히 축생의 일부가 된 웅추가 그 연결을 끊고도 살아남았을 리가 없으니 죽음은 확정이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복병이 있나?”

적에게 자신들이 인지하지 못한 전력이 있다는 소리다.

객잔에서 두문불출하는 다른 것들이 눈을 떴든지, 아예 다른 외부의 병력이 있든지.

뭐가 됐든 이쪽의 예상을 벗어난 무언가가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그건…….

“귀찮게 됐네~.”

“……언여휘, 저쪽 인형을 조종하느라 바쁜 거 아니었나?”

자신의 방 한쪽에서 당과를 물고 고개를 흔들고 있는 언여휘의 모습에 구복은 미간을 찡그렸다.

“조종? 그건 본체가 하는 거지 나랑 무슨 상관이야?”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언여휘의 모습에 구복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에이, 무시하지 마러잉~. 나도 다 하는 일이 있어서 여기에 온 거야!”

“……이쪽이 더 짜증 나는군.”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하는 일이라는 게 뭐지?”

“웅웅, 그거 그게 지금 중요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인 언여휘는 폴짝 뛰어 구복의 앞에 섰다.

그러곤 당당하게 손을 내밀며 웃었다.

“영축(零畜), 줘.”

단 한마디.

고작 한마디 했을 뿐인데.

“언여휘.”

책상이 으스러지고, 손님용 의자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말을 가려서 해라.”

씹어 뱉는 한 마디, 한 마디에 꾹꾹 눌러 담긴 분노는 지금 구복이 얼마나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대는 타인의 감정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미치광이였다.

“에이, 아끼다가 똥 될 거 지금 주면…….”

퍼걱!

단숨에 으깨져 사라진 언여휘의 머리통.

하얀 입김과 함께 분노를 토해 낸 구복이 손을 내린 순간.

“거참, 성격 급하네.”

끙차!

문을 열고 들어온 또 다른 분신이 구복 앞에 있는 인형을 대충 옆으로 치우고 다시 같은 자리에 섰다.

“다시 말을 이어 가자면, 영축 그것만 내주면 내가 밖에 있는 저것들을…….”

다시 터져 나가는 머리.

“아, 이거 만드는 거 은근히 품이 많이 든단 말이야. 적당히 부숴.”

당연하다는 듯 다시 나타나는 언여휘.

이번엔 반대쪽으로 인형을 치우고 같은 자리에 선 언여휘는 여전히 이글거리는 구복의 눈을 보며 히죽 웃었다.

“끝내주는 몸을 구했다니까? 아! 좋아! 내가 양보할게! 같이 가자. 이건 내가 숨기려고 했는데, 화끈하게 보여 준다!”

자신 있게 가슴을 펴고 외치는 언여휘의 행동에 올렸던 주먹을 잠시 내린 구복은 고요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만약 시답잖은 짓거리를 한다면 본체를 찾아내 가랑이를 찢어 정수리까지 반으로 갈라 버릴 것이다.”

“그래! 마음대로 해! 이번에는 진짜 괜찮은 거라니까?”

진짜 자신 있다는 듯 당당하게 소리치는 언여휘를 잠시 바라본 구복은 가루가 된 책상을 밟고 움직였다.

“앞장서도록.”

“좋아! 잘 선택했어!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된 거니까 기대하라고~.”

히히 웃으며 앞장서는 언여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구복은 미간을 찡그렸다.

역시.

이쪽이 더 짜증 났다.

* * *

구복이 황도에 풀어 버린 축생의 유정은 웅추만이 아니었다.

가장 완성도 높은 존재는 웅추였으나, 그렇지 않은 것들도 다수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의 대부분은 완전한 실패작이었다.

제어가 불가능해 음지에 처박아 두었던 졸작들.

언젠가 제물의 일부로 쓰기 위해 도시의 지하에 봉인해 놨던 것들을 일시에 지상에 풀어놓은 거였다.

그렇게 지상으로 올라와 피와 살을 갈구하는 괴물들이 날뛰면 당연하게도 일반 백성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막기 위해 설천위가 움직인 순간 빈틈이 생길 것이다.

그런 판단 아래 벌인 일이었기에 설천위가 한 행동은 의외로 너무나도 정확하게 그런 구복의 의도를 받아쳤다.

“아미타불……. 어찌 이런 참극이…….”

인간과 짐승이 뒤섞인 괴물의 사지를 으스러트려 제압하는 데 성공한 무해는 한탄을 뱉어 냈다.

“아미타불…….”

너무나도 끔찍한 모습에 불호를 외는 것 외에는 차마 다른 말을 꺼내지 못해 머뭇거리는 무해의 곁으로 무진이 다가왔다.

“불살을 지키려는 것이냐?”

“대사형.”

“지키는 것이 힘든 상황이다.”

무진의 솔직한 말에 입을 다문 무해는 씁쓸함이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흑룡단은 모두 흩어져서 움직이고 있었다.

백화단의 술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단주인 성화린을 보조할 인원들을 빼면 전부 나누어져 다른 단의 무인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상대가 상대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에 따라 당연히 흩어진 단원들을 통솔할 일이 없어진 무해는 익숙한 무진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화경급 고수 둘이 함께하는 적수단의 핵심 전력은 기세가 강한 적들을 일부러 찾아다니며 처리하고 있었다.

이번이 두 번째 전투였고, 무해는 앞선 전투와 이번 전투 모두 적을 죽이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적을 죽이는 다른 이들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그 안에 담긴, 너무나도 여린 심성에 무진은 어린 막내 사제를 바라봤다.

어린 시절부터 산에 있는 들짐승들을 좋아하며 그들을 먹지 않음에 감사하던 아이다.

다른 녀석들은 고기 냄새 한번 맡아 보겠다고 빈객이 찾아오면 주방 근처를 기웃거렸거늘.

무해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무림에 뛰어들어 불살(不殺)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정신을 실천하고 다닌다고 들었을 때 그 얼마나 놀랐던가.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얼마나 자랑스러웠던가.

무림인으로서는 자격 미달일 수 있어도, 불제자로서는 이보다 더 훌륭할 수 없지 않은가.

또한, 사람으로서 어찌 칭찬하고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생명의 소중함은 누구나 알지만, 그것을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까지 지키려는 자는 드물고 그것을 목숨을 걸어서까지 지키려는 자는 더욱 드물다.

그렇기에.

“힘들다고 해서 지키지 않는 것이 어찌 신념일 수 있겠느냐?”

무진은 기꺼이 그 고행에 동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사형…….”

자신의 고집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가 희생되면,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내가 죽이지 않은 사람이 살아서 후에 다른 사람을 죽인다면 그것은 과연 불살인가?

내가 사람을 죽이지 않기 위해 시간을 끄는 사이, 다른 싸움에서 아군이 죽는다면 그것은 과연 불살인가?

불살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가 만들어 내는 괴리를 해결하기 위해 무해는 무림을 떠돌았고, 그렇게 얻은 결론이 참회와 단독 행동이었다.

홀로 다니게 되면서 수많은 상처를 얻긴 했으나, 그로 인해 타인의 피를 흘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었으며, 끝없는 설교로 상대를 참회시킬 수 있었다.

설천위를 따르기로 결정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겪다 보니 오히려 실전에 나서는 일이 적어졌음에도 불살대원들이 잡아들인 악인을 참회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결국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아군이 죽음을 맞이하고 세상이 환란에 빠지려는 이때, 자기 고집만을 내세우며 스스로 더러워지는 것을 피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 것인가…….

스스로 지옥에 가는 것을 각오하고 살계를 여는 것이 진정한…….

“갈(喝)!!”

극심하게 깊어지는 무해의 고뇌를 눈치챈 무진이 내공을 담은 외침으로 그를 깨웠다.

한 박자 늦게 정신을 차린 무해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은 무진이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불살을 포기하는 것은 적을 죽이는 것을 넘어 네 자신을 죽이는 일이다. 무해야.”

“그건…….”

단단하게 무해를 붙잡은 무진은 입을 다문 무해의 반들거리는 머리에 손을 올렸다.

부드럽게 쓰다듬는, 어린 시절에나 느꼈던 손길.

대사형의 손은 여전히 굳은살로 까슬했다.

“나는 내 소중한 막내 사제를 잃고 싶지 않다. 너는 너답게 살아가면 될 일이다. 그것을 위해 이 사형이, 너의 가족들이 이곳에 온 것이니.”

무진의 말과 함께 주위를 둘러본 무해는 자신을 보며 합장하고 있는 적수단의 일원들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에 섞여 마찬가지로 웃고 있는 불사대원과 술사들의 모습까지 눈에 담은 무해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타불.”

합장과 불호.

그것이 끝나고.

“그렇다면, 저는 제 길을 지키겠습니다. 대사형.”

* * *

“……난리도 아니군.”

객잔 위.

자신이 만들어 낸 발판 위에 의자까지 만들어 턱을 괸 채 앉아 있던 설천위는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러니까 불렀죠.”

“자네는 더 당당해졌고.”

“편하게 싹수가 노래졌다고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럼 그렇다고 하지.”

차가운 설천위의 태도에도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 무림맹주는 설천위가 그래도 어른이라고 만들어 준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크하하하하하하!!”

“쿡쿡.”

“그만 웃어라.”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사존과 히죽히죽 웃고 있는 살존을 한 번 흘겨본 무림맹주는 이내 포기한 듯 고개를 저었다.

“허허, 아미타불, 이거 참, 이러고 있는 게 맞는가 모르겠군. 이게 맞소, 작은 설 시주?”

까득까득.

주먹을 움켜쥐고 지금 당장에라도 달려 나갈 것 같은 자세를 취한 불존의 모습에 설천위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이 졸만 움직였으니, 우리도 머리는 움직이면 안 되죠.”

“그것참 안타까운 소식이군. 다만.”

쓱, 아래를 내려다본 불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이제 우리가 머리를 자처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구나.”

“그래도 안 됩니다.”

“불제자 주제에 너무 참을성이 없군.”

“끙.”

나름 분위기를 잘 잡은 것 같은데.

칼같이 거절하는 설천위와 미간을 찡그리는 북존의 반응에 아쉬움을 삼킨 불존이 억지로 엉덩이를 붙였다.

그리고.

“흐응, 그럼 나도 이제 머리에 끼는 건가?”

“……뭐 그렇지.”

왜 만들어 준 의자에 안 앉고 여기에 달라붙어 있는 거니?

자신이 앉아 있는 의자의 팔걸이에 앉아 자신에게 기대는 백유를 차마 밀어내지 못한 설천위는 작게 호흡을 골랐다.

부동심이 이럴 땐 좋구먼.

“후후후, 그냥 시원하게 끌어안아 줘도 되는데?”

“여전히 직설적이네…….”

주변에 어른들이 다 있다 못해 시아버지까지 있는데, 이런 태도라니.

진짜 혁명적인 태도구나.

지금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흠흠.

“그런데 칭찬은 없어? 나 혼자서 분발했는데.”

“……잘했어.”

“에이, 현경까지 도달해서 온 부인한테 잘했어, 한 마디가 고작이야?”

히죽히죽 웃으며 볼을 쿡쿡 찌르는 백유의 태도에 작게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단숨에 흑관으로 주위를 감쌌다.

그리고.

“고생했어.”

단숨에 백유를 끌어당겨 품에 안은 설천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자, 충분하지?”

“……되묻지만 않았어도 완벽했는데.”

히죽 웃는 백유의 모습에 피식 웃은 설천위는 다시 백유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흑관을 해제했다.

그리고.

“아줌마, 주책이에요.”

“……어머, 뭐래니? 그리고 어머니라고 부르렴.”

슬쩍 다가와 안을 살피던 살존이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자고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스승은 부모와 같은데, 나도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지?

그리고 뭐 하나 더 있기도 하고?

툴툴거리며 자리로 돌아가는 살존의 모습에 고개를 저은 설천위는 다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쪽도 박박 긁어서 모았는데, 슬슬 시작해야지?”

더 꾸물거리면, 저 수도 밖에 있는 병력들도 움직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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