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9화
578화-전면전 (2)
인왕의 발과 마주한 설천위는 약간의 고민 끝에 객잔을 떠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저 발을 막아야 하는 것 아니오?”
인왕의 발이 사람들의 목숨을 마치 짚단처럼 쓸어버릴 것을 염려한 운주의 걱정에 설천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죠. 날뛰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질 테니.”
“그럼…….”
“그럼에도 저는 이곳을 떠나지 않습니다.”
운주의 말을 끊고, 다시금 도를 들어 올린 설천위는 아래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운주를 내려보며 웃었다.
“폐하, 제가 원하는 결말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들어 본 적 없소.”
“그렇다면 지금 대충이라도 알려 드리겠습니다.”
들어 올렸던 도를 내리긋는다.
황궁의 하늘에 생겨난 거대한 도가 다시금 떨어지고, 인왕의 발을 감싼 언여휘의 술법과 충돌하며 무시무시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 굉음의 여파에 살이 떨려 오는 것을 느끼며, 운주가 주먹을 움켜쥐는 그 순간.
“제가 원하는 결말은 저 객잔 안에 있는 이들과 함께 행복한 여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죽음 따위.
싫다.
하물며 그것이 나의 지인이라면, 나의 소중한 이라면.
“그렇기에 저는 이곳을 떠나지 않습니다.”
결단코 그런 일이 일어나게 두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 선택으로 인해 다른 죄 없는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설천위는 소중한 이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눈을 돌릴 것이다.
그들의 죽음을 감내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죄책감이 소중한 이를 잃은 상실감보단 가벼울 터이니.
입을 다물고 침묵하는 운주를 보며 작게 웃은 설천위는 다시금 도를 휘둘렀다.
황제가 고민할 시간을 주는 건 주는 거고, 이쪽도 할 일은 해야지.
“소녀, 참으로 슬프옵니다.”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화가 솟구쳤지만, 설천위는 그 화를 뱉어 낼 수 없었다.
또다시 휘두른 도가 이번엔 굉음조차 만들어 내지 못하고 막혀 버렸으니까.
‘……과연.’
심검의 무리에 술법을 섞은 기술이기에 술법의 영향을 꽤나 강하게 받았다.
거기다 억지로 거리를 늘려 먼 거리에서 사용했으니 그 힘의 제어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쉽게 막힐 줄은 몰랐는데.”
“제 말은 여전히 무시하시는군요. 공자님.”
“아, 쫌!”
그 소름 끼치는 말투 좀 그만해라!
부르르 몸을 떤 설천위는 애써 언여휘를 무시하고 방법을 바꿨다.
인왕의 발을 지금 이 자리에서 처리할 순 없다.
언여휘가 막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방법을 바꾸면 된다.
애초에 없애려고 하는 이유는 저 다리가 날뛰어서 이 객잔을 부수거나 더 많은 사상자를 낼 것을 막기 위해서 아닌가?
그렇다면, 굳이 없애지 않고도 막을 방법은 있다.
손을 움직인 설천위는 그대로 황궁의 하늘에 수백 개의 말뚝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 말뚝들을 한 쌍으로 짝지어 실로 이었다.
제거할 수 없다면, 묶어 버리면 그만이지.
그런 생각과 함께 설천위는 말뚝을 떨어트렸다.
중(重)의 묘리를 담아 무게를 가지고 떨어지기 시작하는 말뚝은 순식간에 가속해 인왕의 다리에 박히기 시작했다.
박히고 박힌 말뚝 사이의 실을 통과한 또 다른 말뚝이 얽혀서 길어지고, 그렇게 길이를 늘려 거미줄처럼 이어진 말뚝들이 이내 땅에 닿는다.
꽈아악!!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말뚝들이 강한 힘으로 인왕의 발이 다시 치솟는 것을 막았다.
술법으로 수십 개의 말뚝을 쳐 냈음에도 전부 막아 내지 못한 것에 놀란 언여휘가 감탄했다.
“어머, 참으로 대단한 실력이십니다. 낭군님.”
“으아아아, 좀!! 개소리 그만하라고!”
훌륭한 멘탈 공격에 몸을 부르르 떤 설천위는 결국 언여휘에게 대답해 버린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드디어 저를 봐주시는군요.”
“아니, 볼 생각 없다고. 좀.”
짜증이 가득 담긴 눈으로 언여휘를 바라보던 설천위는 다시금 손을 움직였다.
더럽게 먼 거리.
술법의 결속력이 약해진 지금, 언여휘 정도 되는 술사라면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아 실을 끊어 버릴 확률이 높았다.
뚜둑! 투둑!
생각하자마자 실이 한계에 도달해 끊어지는 것을 느낀 설천위는 양손을 앞으로 모으고 두 손을 겹쳤다.
“칠흑.”
짧은 주언과 함께, 인왕의 발을 묶고 있는 말뚝과 실들에 칠흑의 불꽃이 피어오른다.
순수하게 타오르는 새하얀 소령연화와 달리, 패기와 살기 등 여러 질척이는 것들이 섞인 불꽃.
그것은 설령 언여휘라고 해도 쉽사리 손댈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고 끈적하게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이걸로 얼마의 시간 정도는 벌 수 있겠지.
‘……힘은 좀 아끼긴 해야 하는데.’
동료들이 제때 깨어나지 못하면 혼자서라도 일을 치를 생각도 있었지만, 역시 이건 좋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설천위라고 해도 막을 수 없는 시점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고, 그건 곧 수많은 이들의 죽음으로 이어질 거다.
그렇게 되면?
설천위는 힘을 있는 대로 소모하지만, 적들은 그 죽음으로 어느 정도의 힘을 보충할 수 있다.
단순하게 비기는 결과만 생각해도 이쪽이 손해를 보는 구도.
설천위가 이득을 보기 위해선 역시 저 인왕의 발을 완전히 없앨 필요가 있었다.
혹은 완벽하게 무력화시키거나.
그것도 피해가 확대되기 전에 해내야 하니,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도움은 없을 것 같고.’
객잔 안에 잠들어 있는 동료들의 상태를 얼추 가늠하며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까짓것 하지 뭐.”
힘을 아끼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아끼다가 똥 되는 것보단 낫지.
술법과 무공을 엮어 거의 웬만한 건 가능해진 설천위다.
원거리에서 결속력이 약해서 쉽게 파훼를 당한다는 약점?
술법이 그렇다면.
“무공으로 펼치면 되지.”
술법을 쓰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도를 만들어 낸 설천위는 도에 막대한 기를 때려 박기 시작했다.
실체를 가진 도보다 훨씬 기의 수용성이 좋은 도이기에 가능한 무식한 방법.
“정말 너무하십니다. 소녀가 이곳에 있는데, 그런 흉흉한 것을 꺼내시다니요.”
“진짜, 그것 좀 그만하면 안 되나?”
들을 때마다 속이 뒤집히는 것 같은데.
인왕의 무릎 옆에 떠서 손짓으로 말뚝들을 치워 내던 언여휘는 설천위의 물음에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후후, 공자님은 참으로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아!! 좀!!”
진짜 돌아 버린 거냐고, 언여휘!
그냥 미친 인간처럼 웃는 게 훨씬 낫다고!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성인 형태의 언여휘의 언행에 이를 악문 설천위는 한숨과 함께 도를 들었다.
“뭐, 상관없어.”
다 베어 버리면 그만이니까.
더 이상 언여휘에게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은 설천위는 그대로 도를 내리그었다.
거력을 담은 검강이 그대로 쏘아진다.
인왕의 발이 내질렀던 충격에 뒤지지 않는, 파괴적인 힘을 품은 참격이 인왕의 발과 언여휘를 덮치는 그 순간.
“소녀, 공자님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언여휘가 만들어 낸 장벽이 인왕의 발을 휘감고, 그대로 차올린 인왕의 발이 설천위의 참격을 위로 날려 버렸다.
하늘로 사라지는 참격.
“그러니, 이곳으로 오셔서 차라도 한잔 나누는 것이 어떠신지요?”
은은한 미소로 묻는 언여휘의 모습에 설천위는 얼굴을 구겼다.
“꺼져.”
짜증을 담아 한마디 뱉어 내면서도 설천위는 침착하게 상황을 살폈다.
인왕과 언여휘의 조합.
생각보다 더 강력했다.
조금 전의 참격으로 쉽게 베어 버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제대로 된 상처 정도는 남겨서 언여휘가 충분히 경계할 만한 한 수는 되어 줄 거라고 여겼는데…….
이리도 쉽게 막힌 이상, 언여휘는 강기로 만들어 낸 참격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다.
[쯧쯧……. 안타깝구나.]
[현경이나 된 놈이…….]
[통탄할 일이로다…….]
“아, 쫌!”
이 양반들은 이 다급한 상황에서 그러고 싶나!
물론 내 강기가 다른 현경들에 비해 조금 약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술법이랑 섞으면 훨씬 강해지기도 하잖아!
혀를 차며 한탄하는 혼들을 대충 손을 휘저어 쫓아 버린 설천위는 조금 전의 발차기로 전부 뜯겨 나간 말뚝들의 흔적을 발견했다.
약간의 상처 정도는 남아 있지만, 여전히 멀쩡한 모습.
지금 저 발이 움직이면 이쪽에서 막을 수 있나?
그런 의문이 들어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설천위는 애써 가라앉혔다.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여기선 일단 기다렸다가 적의 움직임을 보고 대응하는 것도…….
“음?”
차분히 상대를 기다리려고 했던 설천위는 조용한 적의 동태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상황인 거지?
바로 반격을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에서 왜 움직이지 않는가?
여러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른 그 순간, 다시금 인왕의 다리가 움직였다.
이번에는 객잔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서.
상념을 끊어 낸 설천위는 즉시 술법을 펼쳤다.
일단 대응하는 게 우선이니까.
먼저 펼치는 건 흑관이다.
공격이 실패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번에는 방어를 시도해 볼 차례였다.
인왕의 발이 향한 곳.
그곳을 설천위가 흑관으로 막아 내는 순간.
쾅!!
굉음이 터져 나왔다.
인왕의 발에서 쏘아진 충격이 흑관을 때리고, 그 여파로 주위에 있던 가옥들이 날아갔다.
거기에.
“……오랜만인데.”
부서진 흑관의 파편이 산산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거리가 멀어 영력의 제어가 조금 약해진 것만으로, 이렇게까지 강도가 부족해지나?
그렇다고 무식하게 두껍게 만들자니 영력의 소모가 너무 쓸데없이 과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설천위의 고민이 깊어지던 그 순간.
[천위.]
[허허, 고민이 깊어 보이는구나.]
현태중과 소백진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고개를 들었다.
담담한 미소를 지은 채 설천위의 앞에 선 현태중과 소백진이 웃으며 자신의 무기를 두들겼다.
[우리를 보내는 것이 어떠냐?]
[이럴 때를 위해 그리 연습한 것 아니더냐?]
“하지만…….”
화경에 불과한 두 사람이 어떻게 하겠다고?
상대는 어느 정도로 역량을 끌어올린 건지 모를 언여휘의 분신과 인왕의 발이다.
인왕사해(仁王死骸).
인왕의 육체인지 아니면 그와 비슷한 무엇인지 모를 저것은 확실하게 인왕의 육체 같은 강인한 강도를 지니고 있었다.
인왕의 또 다른 이름이 괜히 금강신인 것이 아니었다.
화경 수준의 힘으로는…….
도저히 무리다.
설천위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눈치챈 듯 소백진이 허허롭게 웃으며 도를 뽑았다.
[천위야, 네 녀석의 곁을 지키던 우리라고 늘어져서 구경만 했겠느냐?]
[우리 또한 천재의 범주에 들어간 이들이다.]
소백진의 말을 받으며 나선 현태중이 확신에 찬 눈으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우리가 처리하마.]
똑바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동자에 잠시 침묵하던 설천위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설천위가 고개를 끄덕이자, 현태중과 소백진의 발이 선명해지며 실체를 가졌다.
이윽고 완전히 실체화된 두 사람은 오랜만에 느끼는 육체의 감각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라.”
“부족한 자들의 싸움법을 보여 주마.”
자신 있게 말한 두 사람이 경공을 펼쳐 단숨에 달려 나갔다.
인왕의 발이 펼쳤던 첫 공격에 도시가 초토화되며 만들어진 길을 따라 두 사람이 달려갔다.
그리고 그런 둘을 발견했는지 기다렸다는 듯이 방향을 꺾은 인왕의 발이 그대로 충격을 날렸다.
아무리 화경급 고수라도 무시할 수 없는, 아니 직격당하는 순간 피떡이 되어 버릴 일격이 두 사람을 덮쳤다.
부서진다.
두 사람이 완전히 뭉개지는 모습을 떠올린 설천위가 움찔하는 순간.
[보아라.]
천마의 손이 설천위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서걱!
단숨에 충격을 베어 버린 소백진이 나아가고, 그 뒤를 현태중이 쫓았다.
반으로 나누어져 그대로 다른 곳을 무너트려야 할 충격은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힘없이 사라졌다.
그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설천위가 놀란 눈을 떴고.
[네 성장이 저들에게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러니 믿어라.]
자신 있는 천마의 대답과 함께 두 사람이 황궁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