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8화
577화-전면전 (1)
쿵!
그 변화는 제도를 뒤흔들었다.
거대한 무언가가 제도에 발을 내디딘 것처럼, 한 번의 강렬한 충격이 대지를 온통 뒤흔들었다.
그것이 황궁에서 시작된 것임을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야 그럴 것이.
“화끈한데?”
황궁에 거대한 발이 생겨나 있었으니까.
황궁의 어딘가에서 시작된 발이 무릎을 굽힌 상태로 대지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상체의 모습 없이 오직 다리와 발만 존재하는, 거대한 그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괴해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저건 대체?”
설천위를 따라 객잔 밖으로 나와 그 광경을 확인한 운주가 눈을 크게 뜨자, 설천위는 빙긋 웃었다.
“인왕사해(仁王死骸).”
“인왕사해?”
인왕이라 함은 불교의 금강신을 가리키는 것이고, 사해라 함은 죽은 뒤의 육신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단 말이오?”
인왕이란 문을 지키는 신.
본디 지혜를 지키는 수호천신임에도 많은 이들이 무신(武神)으로 알고 있을 정도로 강한 무력을 보유한 신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이 죽어 만들어진 사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황제로서 많은 교육을 받은 덕에 바로 이상함을 눈치챈 황제가 되물었으나, 설천위는 구태여 답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신이란 것은 더럽게 강한, 불가해의 괴물 같아 보여도 생과 사가 있는 존재들이니까.
인왕이라고 해서 죽지 말란 법 없고, 지금 인왕이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뒤의 인왕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여하튼, 사실 설천위도 잘 모른다.
인왕의 사해라고 나왔으니, 그렇구나 하고 있을 뿐이지.
“아무래도 저기 있는 놈들이 애가 탄 모양입니다.”
그렇기에 설천위는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런 깊은 고민은 지금 할 이유도, 해야 할 여유도 없었으니까.
놈들이 고작 한쪽 다리뿐이지만 인왕사해를 불러냈다는 건 꽤나 중요한 포인트다.
놈들이 불완전한 상태로 인왕사해를 불러낼 정도로 다급해졌다는 소리니까.
이건 설천위와 연화가 해 온 일이 놈들을 조급하게 만들 정도로 충분히 효과를 봤다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흠.”
쾅!!
놈들이 자신들의 계획을 틀어서라도 이쪽을 짓밟고 싶다는 명백한 의사표시이기도 하다.
인왕의 발이 치솟는 것과 동시에 쏘아진 거대한 충격이 그대로 설천위와 뒤에 있는 객잔을 덮쳤다.
“이, 이, 이게 대체?”
드물게 당황한 운주의 목소리를 들으며 설천위는 앞에 만들어 낸 흑관에 힘을 더했다.
인왕의 발이 쏘아 낸 공격을 아무렇지 않게 막아 낸 설천위는 느긋하게 웃으며 위로 몸을 띄웠다.
“거, 과격하기는.”
황궁부터 이곳 객잔까지.
휑하니 뚫려 있는 대지의 모습에 설천위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를 지킬 수 없음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찔리네.”
저들의 삶이 나로 인해 조금 더 짧아졌음을 알기에 도저히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제도의 모든 사람들을 지키려 들었다가는 싸움이 성립되지 않음을 알고 포기했고, 또 그럴 각오까지 끝마쳤지만.
막상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니, 입맛이 써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흔들리지 않는 정신이 설천위의 마음이 꺾이는 것은 막아 주었지만.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네.”
약간의 흔들림까지는 막지 못했다.
놈들이 이렇게 과격한 수를 쓸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설천위는 다시 발차기를 준비하는 인왕의 발을 보며 손을 들었다.
“참 분주하겠어.”
자신이 뿌려 놓은 소령연화(燒靈燃枠)의 불길을 잡기도 바쁠 텐데, 이런 짓까지 하고 말이야.
불을 질러 놓고 이쪽은 힘을 회복하며 준비하려고 했던 계획이 그만 틀어져 버렸다.
놈들도 그만큼 손해를 감수하고 벌인 짓이겠지만, 당장 저걸 빠르게 치우려면 이쪽도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뭐, 좋아.”
이렇게 도발해 온다면, 응해 줘야지.
하늘에 떠서 도를 만들어 내어 손에 쥔 설천위는 다시금 근육을 부풀리는 다리와 마주했다.
쾅!!
대기가 터지는 폭음과 함께 공간을 가르는 발차기.
그 한 번의 움직임이 만들어 낸 충격의 포탄. 다시금 경로상의 모든 것을 짓밟으며 쏘아진다.
“흡!”
그리고 설천위는 그 포탄을 향해 도를 휘두…… 르지는 않았다.
도를 쥐지 않은 왼손을 뻗어 또다시 두껍게 만들어 낸 흑관으로 그 충격의 포탄을 받아 냈다.
아무렇지 않게 별거 아니라는 듯 그것을 받아 내고, 오히려 흑관을 확장시켜 단숨에 그 충격을 집어삼켰다.
허공에서 흑관에 완전히 잡아먹힌 충격의 포탄이 몸을 격렬하게 떨었지만, 설천위가 만들어 낸 흑관은 한 톨도 놓치지 않고 그 충격을 모조리 받아 냈다.
그리고.
“이번에 내 차례다.”
도를 하늘로 치켜세운 설천위가 천천히 그 도를 내리그었다.
벤다.
오로지 그 의지만을 담은 심검(心劍)의 묘리에 설천위의 술법이 뒤섞인다.
[허허.]
천마조차 감탄할 정도로 고도화된 일격이 펼쳐진다.
쿠웅!!
하늘을 뚫고 나타난 거대한 도가 설천위의 손을 따라 땅으로 그어진다.
화르르르륵!
순백의 화염을 휘감고 그대로 떨어지는 도의 예기(銳氣)가 대기를 가르고, 끝내 인왕의 무릎 위로 떨어진다.
카가가가가가각!!
살가죽에 박힌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굉음과 함께 날붙이가 박혀 들었다.
도가 살과 뼈를 가르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이대로 가면 그대로 다리가 반으로 절단될 것 같은 그 순간, 살과 뼈를 파고들던 도가 딱 멈췄다.
그것이 술법의 영향임을 눈치챈 설천위는 작게 미간을 찡그렸다.
“끝까지 귀찮게 하네.”
저 황궁의 위.
인왕의 무릎 옆에서, 떨어진 설천위의 도를 한 손으로 잡아낸 여인과 눈을 마주친 설천위는 낯선 외모임에도 그녀가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챘다.
“언여휘, 좀 꺼지지?”
어린 시절의 모습이라곤 없는, 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한 언여휘가 노출된 가슴께를 우아한 손짓으로 가리며 허리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설 공자.”
도저히 말이 닿을 거리가 아님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
그 목소리에.
“우웩.”
설천위는 진심으로 헛구역질을 했다.
* * *
“소녀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반응이군요.”
황궁.
자신의 방 노대에 나와 상황을 지켜보던 구복은 인상을 찡그린 채 언여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외모?
언여휘의 인형들은 인간의 기준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본체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동기화할 수 있을 수준이면, 아마 본체도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겠지.
여하튼.
언여휘가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인형을 만드는 이유는 그게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
간단한 술법 정도야 얼마든지 펼칠 수 있고, 크기가 작기 때문에 움직이는 데 할애되는 영력도 적다.
그렇기에 언여휘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본떠 만든 인형을 주로 썼고, 그 선택은 그녀가 의도한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광기를 조금 미화해 주는 면도 있었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난리를 치면, 썩 그렇게까지 미친 것처럼은 안 보이니까.
그럼에도 그녀랑 조금만 알고 지내면 그녀가 충분히 미친 종자이고 동시에 상당한 세월을 살아온 노괴임을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외견에 휘둘리지 않고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이 있는 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소녀, 참으로 슬프옵니다.”
“으음.”
저런 모습은 같은 편이지만, 참고 보기가 힘들었다.
아니, 대체 왜 저 인형만 저렇게 구는 거지?
다른 인형들과 달리 완전한 성인의 모습을 해서 그런가?
인격적으로 성숙해졌어요……. 그런 느낌으로?
왜 저 인형은 다소곳한 여인의 태도를 보이는지 이해하지 못한 구복은 고개를 저으며 아예 관심을 꺼 버렸다.
뭐가 됐든, 지금 언여휘가 이렇게 자진해서 나서 준 덕에 자신들의 일만 편해졌다.
인왕사해를 불러내는 데 이쪽의 힘을 조금 쓰긴 했지만, 저걸 가지고 설천위와 전투를 벌이는 언여휘가 가장 많은 힘을 소모할 터.
통천이 이루어진 뒤에 결국 우위를 가져가는 것은 자신이 될 터였다.
다만.
‘본체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 신경 쓰이는군.’
다른 존재들과 달리 순수한 인간에서 시작한 언여휘는 유일하게 본체가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나름 사이가 깊었던 혈주도 그 본체를 본 적이 없다고 하니, 말할 것도 없지.
비밀스러움은 곧 신비함이고, 신비함은 불가해의 힘으로 이어진다.
특히, 그 주체가 되는 것이 술사라면 더더욱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인간인 주제에 수백 년을 살아온 괴물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고.
인왕의 발을 조종해 설천위를 향해 공격을 쏟아 내는 언여휘를 지켜보던 구복은 몸을 돌렸다.
언여휘가 붙어서 인왕의 다리를 고치고 계속해서 움직이는 이상, 아무리 괴물 같은 설천위라고 할지라도 저 멀리에서 인왕의 다리를 없앨 순 없다.
그렇다면 놈이 취할 선택은 두 가지.
접근해서 언여휘의 분신을 치워 버리고 인왕의 다리를 없애거나, 다리가 나온 문을 닫는다.
혹은 객잔을 지키는 데 주력한다.
전자는 너무 위험한 선택이기에 대부분의 인간이라면 후자를 선택하겠지만…….
‘저놈은 오겠지.’
올 수밖에 없다.
객잔을 지킨다는 것은 다른 모든 곳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니까.
첫 공격에 숫자를 세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수많은 백성들이 죽은 걸 똑똑히 목격한 놈은 반드시 다른 이들을 지키기 위해 다리를 처리하려 들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놈은 정도(正道)를 걷는 인간이니까.
놈의 주위에 있는 인간들은 상상도 못 하겠지만, 솔직히 말해 구복은 설천위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힘.
그야말로 천지를 뒤엎고 세상의 법칙을 자신의 입맛대로 바꿀 수도 있는 막강한 힘을 손에 쥐고도 그것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휘두르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 설천위는 선(善)한 인물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과 어차피 할 수 없으니 하지 않는 것은 명백하게 다르니까.
고관대작의 자식들 중에 괜히 망나니가 많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남들은 할 수 없고 해선 안 되는 일을 해도 되니까 저지르는 것뿐.
자신은 벌을 받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힘으로 짓밟고 무마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그리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권력을 쥐고도 검소하게 살고 타인을 배려하는 이들을 대인이라 치켜세우는 것이고.
그래.
치켜세우는 것.
약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 정도일 뿐이다.
그런 약자들의 틈바구니에서 목숨을 걸고 이쪽에 대항하는 설천위는 진심으로 선한 인물이니,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렇기에 그는 움직일 것이다.
다리가 더 많은 사상자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막기 위해 객잔을 떠나 저 인왕의 다리를 처리하러 올 것이다.
지금은 객잔을 향해 공격을 쏟아 내고 있는 인왕의 다리는 곧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음?”
뭔가 이상한 느낌에 복도를 걷던 구복은 걸음을 멈췄다.
이상했다.
인왕의 발이 날뛰면 상당한 충격으로 땅이 계속 울려야 하는데?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든 순간.
구복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린놈이……!”
황궁의 하늘.
그곳을 빼곡하게 메운 칠흑의 말뚝들.
설천위는 구복의 예상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객잔을 지킨다.
다만, 인왕의 발을 멈추는 시도도 해 본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구복은 무시당했다는 사실에 이를 악물며 걸어갔다.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설천위의 예상대로 이쪽은 객잔을 따로 공격할 준비를 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설천위가 움직이지 않고 그곳에 버티고 있다는 것은…….
까득!
“웅추를 불러라!”
계획이 매우 높은 확률로 틀어질 수 있음을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