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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72화 (572/624)

제572화

571화-천벌 (1)

“대충 상황은 알겠네.”

수도 외곽에 자리한 어느 객잔.

푸짐한 금화와 함께 주인을 쫓아낸 설천위 일행은 당당하게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일단, 사라진 건 철백뿐인 거지?”

“너무 태연한 거 아니에요?”

“철백이면 걱정 없으니까.”

서하영의 부루퉁한 물음에 설천위는 피식 웃었다.

“적들이 뭘 준비했어도 힘만 빼고 끝날걸?”

절대로 꺾이지 않는 혼이라는 건 생각보다 더 대단한 거라서.

걱정하는 서하영을 자신 있게 안심시킨 설천위는 화제를 돌렸다.

“그럼 일단 몸 상태가 안 좋은 사람?”

“멀쩡해요.”

“문제없어요.”

자신 있게 말하는 일행의 대답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의 내상을 입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정도쯤은 조금만 쉬면 금세 회복될 거다.

다만.

“넌 안 되지.”

“엑?!”

당당하게 괜찮다고 소리쳤던 연화는 설천위의 지적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요?!”

“너, 괴연천식 고갈됐지?”

“……조금?”

“조금은 무슨, 딱 봐도 바닥이 드러났구먼.”

황제한테 얼마나 떼 준 것인지 모르겠지만, 외부에 깃들게 하면서 날린 양이 상당할 거다.

“마침 잘됐네. 가벼운 내상을 입은 사람들도 쉴 겸, 유 매의 회복도 기다릴 겸 사흘에서 나흘 정도 쉬자.”

“하지만…….”

“아무리 철 형님이라고 해도 빨리 움직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걔는 걱정하지 말래도.”

약간 도움만 주면 멀쩡할 테니까.

걱정하는 주현운에게 손을 휘저어 준 설천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얘 데리고 다니면서 주변 정리 좀 할 테니까 알아서들 쉬고 있어.”

“조심히 다녀오세요.”

“응.”

유예린의 배웅을 받으며, 운주를 보면서 아쉬움을 뚝뚝 흘리는 연화를 강제로 끌고 나온 설천위는 그녀를 데리고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사네요.”

“윗사람들의 난리야 그들과는 상관없는 세상의 이야기니까.”

나라가 바뀌고 왕이 바뀌어도 모르는 것이 이 시대의 사람들이다.

물론 수도에 사는 사람들은 그 정도까진 아니겠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비단 한 필, 국수 한 그릇, 과일 한 바구니.

조금이라도 더 팔아 입에 풀칠하기 바쁜 장사치들은 물론이고, 손수 만든 물건을 파는 장인들, 공연을 하는 무용수들 등등.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황궁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예 관심 밖이다.

그저 황궁 안이 심상치 않다는 흉흉한 소문 정도나 돌고 있겠지.

그것도 떠들기 좋아하는 이들이 퍼트리는 소문일 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대비하는 이들은 아주 극소수일 거다.

그렇기에.

“아이고, 대협! 꼬치 맛이 아주 끝내줍니다요!”

“여기 당과 좀 드시고 가세요!”

거리는 여전히 활기찼다.

그만한 전투가 있었음에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겪었던 것과 너무 괴리되는 풍경에 연화는 입을 꾹 다문 채 묵묵히 걸었다.

그런 연화를 보고 피식 웃던 설천위는 가볍게 손을 들어 연화의 머리를 토닥였다.

“이러는 게 좋은 거야. 이들이 알지 못하고, 우리들만 고생하고 끝나는 게 최선이지.”

이들이 상황을 인지하는 순간, 그건 이미 세상이 변했음을 의미한다.

무인들과 술사들 간의 싸움이 아니라, 세상 전체에 크나큰 위협이 닥쳤음을 의미하니까.

그리고 그건 즉.

“연옥이 열리는 순간, 이들 전부가 죽음으로 빨려 들어가겠지.”

멸망을 향한 신호탄이다.

연옥에서 나온 존재들에게 인간의 생명은 간단한 먹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간과 대화할 수 있고 함께 웃고 떠들 수도 있지만, 그들은 인간을 자신과 동격의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목장의 주인이 돼지를 소중히 기르고 아끼지만, 그들의 죽음에 개의치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도 저렇게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그들은 인류에게 끔찍한 공포가 된다.

인간은 돼지고기가 먹고 싶을 때 도축해 돼지 한 마리로 많은 이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지만, 연옥의 괴물들은 그렇지 않다.

혼자서 수만, 수십만 단위의 인간을 먹어 치울 수 있는 대식가이기에 그들의 식사는 그 자체로 인간의 종말을 의미한다.

억지로 혼이 뜯겨 나간 육체는 죽음에 이르고, 방치되어 썩어 가는 그들의 시체로 인해 이 세상은 악취로 가득 찬다.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스스로의 위협을 인지한 순간, 그 악취는 이미 턱 끝까지 차오른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막으려는 거다. 우리가 이 고생을 하면서.”

“……알아요.”

“알면 다행이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연화를 보고 또다시 피식 웃은 설천위는 적당한 골목으로 연화를 끌고 갔다.

“이쯤인가.”

“……으음.”

설천위가 이곳을 고른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에 집중해 주위를 살피던 연화는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딱히 느껴지는 건 없는데요?”

“괴연천식이 고갈되면 감각도 무뎌지나? 흠, 이건 몰랐는데. 아니면…….”

연화의 반응에 흥미롭게 턱을 쓸던 설천위는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이놈이 겁을 먹고 제대로 숨겼나?”

찌지지직!

비단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강제로 열리는 공간.

그 너머에 펼쳐지는 익숙한 풍경에 연화가 눈을 크게 떴다.

“이면!”

“네가 못 느낄 정도면, 아예 작정하고 숨기로 한 모양이다.”

놀라는 연화를 보고 피식 웃은 설천위는 강제로 연 공간으로 손짓했다.

“뭐 해? 안 들어가고.”

“둘이서 들어가게요? 다른 분들은…….”

“그쪽은 황궁에 들어갈 때를 대비해 쉬어야 하고, 넌 보충해야 할 걸 보충해야지.”

“보충이라면…….”

“이곳에서 사람을 잡아먹던 축생의 혼 정도면 딱 좋지. 사용하는 데 아무런 죄책감도 없고.”

웃으며 말하는 설천위의 눈동자는 스산하게 빛났다.

“유 매의 팔을 자른 값을 아직 다 못 받기도 했고.”

……이 인간, 그게 진짜 목적인 것 같은데?

설천위를 바라보는 연화의 눈에 떨떠름한 기색이 깃들었다.

* * *

“갔네요.”

“그러게요.”

설천위가 떠난 객잔.

그대로 남은 일행은 서로를 돌아보다가 쓱 고개를 돌렸다.

“……폐하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요?”

“됐다. 아무렇게나 부르거라.”

유예린의 물음에 운주는 고개를 저었으나, 일행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설천위가 해방시킨 장수들.

그들은 설천위에게 약간의 자유를 얻은 뒤 아예 운주의 뒤에 붙박이처럼 딱 붙어 있었다.

‘역시 맞죠?’

‘응.’

늦게 도착한 서하영조차 알아챌 수밖에 없는 운주의 신분.

아예 대놓고 황제임을 드러내고 있으니, 자연히 일행의 행동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우리 막내, 머리 다쳤어요?’

‘아닐걸?’

조금 전에 설천위에게 끌려가기 전까지 연화는 저 운주를 상대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처음에 눈을 부릅뜨던 장수들은 운주의 눈짓 한 방에 바로 눈을 내리깔았지만…….

분위기라는 것이 있는데, 솔직히 대단하다.

아무리 무림인이라고 해도 황제쯤 되면 좀 조심스럽지 않나?

‘콩깍지에 눈이 돌아가 버렸나…….’

가장 가능성 있는 가설을 떠올리며 서하영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가만히 있던 주현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그럼 마당에서 조금 수련을 하겠습니다.”

“나도 같이할래.”

“그럼 저도.”

주현운을 따라 소윤혜와 문율이 나가고, 어색하게 남은 일행들은 각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리에서 흩어졌다.

“그럼 저도 좀 쉴게요! 설란 언니, 같이 쉬어요!”

“응? 으응, 그래.”

서하영에게 이끌려 사라지는 설란.

“나도 방에서 쉬겠소.”

장수들과 함께 사라지는 운주.

그렇게 객잔의 1층 식당에 남은 건 유예린과…….

[흐음, 이건 꽤나 신기한 맛이구나.]

[뀨!]

백호 모녀였다.

객잔 주방에서 설천위가 가져다준 음식을 맛보던 백호는 꽤나 흡족해하고 있었다.

고기는 날것도 맛있지만, 불에 익힌 것도 충분히 맛있었다.

특히, 부드러운 것이 어린 딸이 먹기에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다만.

[화기가 많아서 관리를 하지 않으면 몸에 해가 될 수도 있겠구나.]

그래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육체를 관리해서 쌓이는 불순물을 제때제때 내보내기만 하면 되니까.

이 정도면…….

[차라리 그 녀석의 곁에 머무는 게 나을 수도 있겠구나.]

[뀨!]

어린 딸을 혀로 핥아 주며 웃음 지은 백호는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 궁금한 게 있느냐?]

“아뇨. 아니, 궁금한 게 있군요.”

고개를 젓던 유예린은 지그시 백호를 바라봤다.

“혹시 인간으로 둔갑할 수 있나요?”

[음?]

“대단한 영물이라 들어서…….”

[가능하니라.]

“그렇죠. 역시 힘들…… 예?”

[가능하니라. 딱 그 녀석의 누이인 여인 정도의 나이로 변하는 편이지.]

언제 했는지 잘 기억도 안 나는 둔갑을 떠올리던 백호는 뀨뀨 소리를 내는 딸을 두고 몸을 일으켰다.

[하긴, 도시에서 지낼 거면 인간의 모습이 더 나으려나.]

새하얀 빛에 휩싸이는 백호.

네발짐승에서 서서히 두 발로 서는 형태로 변한 백호에게서 빛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흡!”

유예린은 흘러나오려는 신음을 삼켰다.

종아리까지 내려온 긴 백발과 함께 무언가가 많이 흔들려서 떨리는 동공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끝에 유예린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백호의 모습도 위엄 넘쳐서 좋습니다.”

“그러냐? 흠흠, 목으로 말하려니 어색하군. 이렇게 말하는 것도 귀찮으니 그리 말한다면 다시 돌아갈까.”

백호 상태의 목소리와 비슷하지만, 선명함이 더해져 귀가 녹을 것 같은 목소리에 다시 한번 유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영물은 무슨, 이건 영물이 아니라 그냥 선녀잖아.

* * *

이면 세계.

적이 만든 공간에 자진해서 들어온 설천위와 연화는 말 그대로 사방을 들쑤시고 다녔다.

“정리해.”

“네!”

설천위의 담담한 지시에 당차게 대답하는 연화.

누가 보면 참으로 보기 좋은 사제지간의 모습이지만, 그들과 마주한 적에겐 전혀 아니었다.

[이, 이 빌어 처먹을 것들이이이!!]

악을 쓰며 달려드는 적.

본능에 맡긴 날것의 움직임에도 차분하게 대응한 연화가 그 품 안으로 파고든다.

얼굴 위로 올린 팔로 적의 공격을 쳐 내는 것과 동시에 그 충격을 흘려 내고, 단숨에 파고든 뒤에 허리를 비틀며 팔꿈치를 꽂아 넣는 일격.

[컥!]

사람에게 썼으면 가슴뼈가 그대로 함몰되어 죽음에 이르렀을 공격을 상대에게 내리꽂았음에도 연화는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팔을 튕겨 손등으로 적의 안면을 때리고 몸을 돌리며 높이 뛰어올랐다.

그 상태로 회전력을 가미한 반대쪽 팔꿈치로 상대의 관자놀이에 일격.

뒤이어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다리를 상대의 목에 휘감고 그대로 몸을 회전시켰다.

뿌드득!

목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무너지는 적.

과연 살아 있는 존재에게 써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살벌한 연계였으나, 연화는 만족하지 않았다.

“흡!”

쓰러진 적의 뒤에 올라타서 그대로 주먹을 내리꽂는 연화.

그대로 상대의 머리통을 으깨 버린 연화는 확인 사살까지 끝낸 뒤에야 몸을 일으켰다.

“이런 느낌인가요?”

“훌륭해. 체술이 꽤나 좋아졌구나.”

흡족하게 웃으며 연화를 칭찬한 설천위는 손을 들었다.

“자, 그럼 다음 가자.”

[기아아아아악!!]

흑관에게 강제로 붙들려 동료가 죽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밖에 없었던 적이 공포와 분노를 담은 포효를 내지른다.

그대로 돌진해 오는 적과 마주한 연화는 조금 전 보였던 움직임만큼이나 부드러운 동작으로 상대를 차분히 제압해 나갔다.

그런 연화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설천위는 문득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에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서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 시선.

‘흐음.’

혈주를 완전히 제압해 흡수한 것으로 영력의 통제권을 되찾은 설천위는 영적인 감각이 한층 더 민감해진 상태다.

그렇기에 시선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챈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리며 고민했다.

“조금, 도와줘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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