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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71화 (571/624)

제571화

570화-축생의 유정 (10)

운주는 후회했다.

자신이 조금만 더 빨리 소윤혜의 등을 밀었다면, 아이보다 앞서 죽은 두 사람도 살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분노를 삼키며 움찔거리던 소윤혜를 살짝 밀어주는 것만으로 두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결국, 나약한 인간일 뿐인가.’

천자(天子)는 무슨.

제 목숨이 아까워 바로 나서지도 못하는 소인배가 아닌가.

짙게 밀려오는 자기혐오의 감정과 함께 운주는 검을 들었다.

한 손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리고 황실의 녹을 먹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자신을 노리는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포기할 수 없음이라.”

이대로 무너질 순 없었다.

스스로의 목숨이 아까운 소인배라고 욕해도 좋다.

이 몸을 살리기 위해 희생된 이들의 넋을 풀어 줄 수 있을 때까진 절대로 무너질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서라도 살아남는다.

어떻게든 버텨서 황궁을 되찾을 것이다.

옥좌를 되찾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

도망치는 백성들 사이를 뚫고 달려드는 적들을 마주한 운주는 검을 휘둘렀다.

겨우 공격을 막아 내고, 그 충격에 밀려난다.

옆으로 파고드는 적의 공격에 다급하게 검을 움직여 목을 지켰다.

또다시 밀려난다.

적의 공세에 휩쓸려 겨우 몸을 지켰다.

파도에 휩쓸려 발악하는 아이처럼.

공격의 풍랑 속에서 운주는 발버둥 쳤다.

버틴다.

버티고, 버텨서…….

‘아.’

그러나 이를 악문다고 버틸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자신의 검을 지나쳐 목을 향해 파고드는 상대의 검을 목도한 순간, 운주는 깨달았다.

세상은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없다고.

소윤혜가 다급하게 돌아오는 것이 보였으나, 소윤혜의 상대가 피를 질질 흘리며 그녀를 붙들고 있었다.

자신의 위기를 알아챈 탓에 적을 제대로 마무리조차 못 하고 손발이 묶였구나.

그녀에게 아이를 구하라고 등을 민 것이 잘못이었구나.

나는.

‘마지막의 순간에도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구나.’

대의를 보지 못하고, 또다시 무너지는구나.

씁쓸한 후회.

하지만, 그것에 미련을 느끼기도 전에 목을 꿰뚫는 검이 도달했다.

푹.

단숨에 살을 꿰뚫고 그대로 숨통을 끊어야 할 검이 박히…….

“음?”

……지 않았다.

허공에 나타난 무언가에 막힌 검이 요동쳤다.

그리고 무언가 영문을 알 수 없는 힘이 자신의 몸에 흐르는 것을 느낀 운주는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달려들던 적이 베여 무너진다.

동창 출신으로 보이던 날렵한 적이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고 그건 명백하게 이상했다.

상대는 육체를 베어도 무너지지 않는 불사의 괴물들.

대체 어떻게 한 번에?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인가.”

운주가 무사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무리하게 자신을 압박하던 사내의 목을 베어 버린 소윤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후회했다.

감정에 휩쓸려 섣불리 운주의 곁을 떠난 자신의 선택을.

적을 제압하는 동안,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안일한 판단을.

그리고 감사했다.

자신의 실수를 무마해 준 어린 동생의 집착에.

[대체 어떻게?]

잘린 목을 들고 일어선 적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을 읽지 못해 당황한 적과 달리 상황을 온전히 파악한 소윤혜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운주의 몸을 휘감고 흐르는 건 괴연천식의 힘이었으니까.

집착 강한 막내가 자신의 남자에게 침을 발라 놓은 증거였다.

꼭 제 스승이 할 것 같은 짓을 그대로 해 놨네.

* * *

뜬금없이 발동된 괴연천식의 힘으로 운주의 안전이 어느 정도 확보되고 소윤혜가 적극적으로 적들을 정리하면서 상황이 호전되긴 했으나, 주현운은 아니었다.

‘강해.’

상대하고 있는 장수가 생각보다 더 강했다.

창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이쪽을 압박해 오는 실력은 명백히 현경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주현운은 무(武)에 술(術)의 깨달음을 더하며 현경에 오른 상태다.

둘 다 가능하지만, 둘 다 아직 동급의 적에게 확실하게 효과가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무(武) 아니, 창(槍) 하나만을 갈고닦아 경지에 오른 적을 상대하려니 쉽사리 승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

소윤혜와 운주가 아무리 버텨도 자신이 밀리면 끝이다.

눈앞에 있는 적은 소윤혜나 운주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유를 새삼스럽게 자각한 주현운이 다시 검을 휘두르는 그 순간.

[애송이, 똑바로 봐라. 회전에 틈이 있다.]

순간, 적의 목소리에 반응한 주현운은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회전에 틈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정말 먼지나 다름없는 크기의 실낱같은 틈이 보였기 때문이다.

기와 기의 충돌로 만들어지는 미세한 틈.

그곳을 검이 꿰뚫은 순간, 상대가 창으로 만들어 낸 단단한 성벽이 무너졌다.

그 일수에 단숨에 승기를 잡은 주현운은 그대로 상대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좋아.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

오히려 그런 주현운의 공세에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인 장수의 창은 점점 더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상대가 원치 않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과 아예 전투를 포기했음을 깨달은 주현운은 더욱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시간을 끌어서 상대의 사정을 파악하고, 서로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일을 끌고 가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적이 얼마나 더 밀려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건 너무나도 위험한 도박이었다.

상대가 적의 술수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거라면, 반드시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주현운은 더욱더 검세에 독기를 담았다.

확실하게 상대를 처리하겠다는 독심을 품은 공격에 장수는 오히려 웃음을 터트렸다.

[좋구나! 결심할 각오가 있는 자가 폐하의 곁을 지키는 건 아주 좋은 징조지!]

자신이 못 했던 것을 이자라면 해 줄 수 있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며 웃음을 터트린 순간.

“고종운!!”

예상치 못한 외침에 장수의 몸이 멈칫했다.

아주 잠깐, 몸이 멈춘 그 순간을 주현운은 찌르지 못했다.

찌를 수 없었다.

“미안하다!!”

마지막 인사까지 막을 순 없지 않은가.

“내 부덕이 그대들을 이런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다!!”

악을 쓰듯 소리치는 운주의 목소리.

“나는 이번에도 옳은 선택을 하지 못했으나, 그런 나를 지탱해 주는 이들이 있어 버텼다! 그대들이 나를 지켜 주었던 것처럼!”

달려드는 적을 쳐 내는 운주의 검에 담긴 기운이 타오른다.

“그러니!”

완전히 적을 쳐 내고, 고종운을 똑바로 바라본 운주가 외쳤다.

“고맙다!”

운주의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기어코 고종운의 창이 멈췄다.

혼을 비틀고 쥐어짜는 고통을 억지로 이겨 내고, 몸을 멈췄다.

[주군.]

마지막 화답을 위해서.

[주군께서는 언제나 옳은 선택만을 하셨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것을 알고도, 그것이 대업에 방해가 될 것임을 알고도.

어린 백성을 구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으로서 옳은 행동이다.

그렇기에 그 지옥 속에서 고종운은 목숨을 걸고 그의 곁을 지켰다.

그가 언제나 인간으로서 옳은 길을 가는 주군이라고 믿었기에.

외도(外道)를 걷는 자들이 득세하는 이 세상에서 정도(正道)를 걷는 군주이기에.

그리고 그 기대를 이번에도 저버리지 않은 주군을 위해 고종운은 혼이 뒤틀리는 끔찍한 고통조차 감내하며 창을 멈췄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런 고종운을 향해 검을 치켜든 주현운이 검을 내렸다.

소윤혜의 그것을 흉내 낸 일격이 고종운의 목을 향해 떨어지는 그 순간.

쩡!!

온 세상이 깨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모든 것이 날아갔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크아아아아!!]

영적인 존재들이 전부 날아갔다.

마치 그들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순식간에 주변의 적들이 전부 날아가 버린 상황에 당황한 이들이 눈을 크게 뜬 순간.

“이쪽이 맞는 것 같은데?”

깨져 버린 공간 너머에서 걸어 나온 설천위가 웃음을 흘렸다.

“오, 빙고.”

“형님!”

주현운과 눈을 마주친 설천위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주현운은 처한 상황조차 잊고 몹시 기뻐했다.

그리고.

[살려야 하는 녀석이다.]

그런 설천위의 등 뒤에 나타난 늙은 장수가, 날아가 버린 뒤 겨우 몸을 일으킨 고종운을 가리켰다.

[잘 참을 것이다.]

* * *

[끄아아아악!]

슬픔과 애절함으로 차올랐던 마지막 작별을 방해받은 고종운은 혼을 뜯어내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리고 부끄러움과 걱정, 미안함으로 그런 고종운을 운주가 바라보는 사이, 완전히 합류한 일행은 빠르게 정보를 교환했다.

“……누가 그 스승에 그 제자 아니라고.”

“그러게 말이에요.”

각각 설천위와 연화가 한 짓을 알게 된 사람들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거기다.

“악!”

“넌 주제도 모르고 무슨 짓이니?”

설천위야 워낙에 괴물 같은 인간이라 자신의 힘을 나눠 줘도 됐지만, 넌 죽을 뻔했잖아.

연화를 위기에서 구해 냈던 서하영의 딱밤이 연화의 머리에 꽂혔다.

아픔을 견뎌 내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문대며 연화는 헤헤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다음에는 더 확실하게 해. 네 몸을 스스로도 못 지키면 의미 없는 거니까.”

“네…….”

딱히 할 말이 없어 고개를 끄덕인 연화는 얌전히 운주의 곁으로 향했다.

그리고.

“상황이 갑자기 요동치네요.”

설천위의 곁으로 다가간 유예린은 저 멀리 보이는 황궁을 바라봤다.

“갑자기 움직인 이유가 있을 텐데, 짐작 가는 게 있나요?”

“짐작 가는 거?”

……너무 많아서 문젠데.

갑자기 놈들이 움직일 이유야 차고 넘치지.

의식의 준비가 거의 끝났거나.

축생의 유정들이 미쳐서 날뛰거나.

황궁의 권력자들이 탐욕에 미쳐 움직이거나.

움직일 이유야 그야말로 차고 넘친다.

애초에 지금 황궁은 이성으로 움직이는 집단이 있는 게 아닐 테니까.

축생의 유정이 그렇다.

짐승의 길.

인간임을 포기하고 축생이 되어 버린 존재들이 바로 그들이지 않은가.

남아 있는 건 오직 욕망과 본능밖에 없을 거다.

가지고 싶으니까 노린다.

죽이고 싶으니까 죽인다.

그것들만으로 움직이고 있을 테니, 그 의도를 짐작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거기다.

“역시 없어요!”

영역 밖으로 나오자마자 철백의 기를 탐색한 서하영의 목소리엔 다급함이 깃들어 있었다.

설천위에게 다가온 서하영이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설천위가 손을 저었다.

“철백이야. 알아서 잘 버티고 있겠지.”

적의 함정에 당했다고 한들 철백이다.

초반에 어이없는 죽음만 당하지 않는다면.

힘이 일정 궤도에만 오른다면.

신(神)의 영역에 도달하는 금강불괴.

이미 자신만의 영역을 완성한 철백은 육체도, 정신도 절대 꺾이지 않는다.

설령 상대가 축생의 괴물이라 할지라도.

설령 상대가 연옥의 괴물이라 할지라도.

철백은 결코 꺾이지도, 무너지지도 않는다.

“함정에 빠트릴 대상을 잘못 고른 거지.”

차라리 주현운이었다면, 이쪽이 쉽사리 손을 쓸 수 없게 돼 훨씬 큰 이점을 가져갈 수 있었을 텐데.

걱정하는 서하영과 달리, 철백을 향한 확고한 믿음이 있는 설천위는 느긋한 태도로 황궁을 바라봤다.

“자, 그럼…… 어떻게 뒤집어 줄까?”

* * *

“히히히히, 안녕? 오랜만?”

공간째로 옮겨진 철백은 자신의 가슴께에서 촐랑거리는 여자를 본 순간, 그 정체를 깨달았다.

“언여휘인가?”

“정답! 역시 천위의 친구라 그런지 똑똑하네~.”

히죽히죽 웃으며 철백의 탄탄한 근육을 쓸어내리던 언여휘는 이내 철백의 가슴에 박힌 말뚝을 건드렸다.

꿈틀거리는 살점으로 이루어진 말뚝은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었으나, 더 이상 철백의 가슴을 파고들지 못한 채 주춤거리고 있었다.

“솔직히 놀랐어. 그 지경을 만들어 놨는데, 멀쩡히 돌아왔으니까. 하지만 다행이야. 너라도 이렇게 붙잡아서.”

진짜 그 상황에서 어떻게 저렇게 금방 멀쩡해져서 돌아온 거지?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웃음을 흘리며, 철백에게 다가간 언여휘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널 위해 따로 준비해 놓은 게 있으니 기대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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