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70화 (570/624)

제570화

569화-축생의 유정 (9)

“단주님?!”

단숨에 정벽의 심장을 으깨 버리는 설천위의 행동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연화였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충 파악했기에, 그녀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아니, 잘하면 적의 정보를 통째로 빨아들일 수 있는 기회인데, 그걸 이렇게 허무하게…….

아쉬워하는 연화의 탄식이 흐르고, 이대로 상황이 끝날 것이라고 여겼던 이들을 당황케 하는 변화가 찾아왔다.

[부질없다.]

심장이 뽑혀 죽음에 이르렀을 적이 아무렇지 않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

고작 심장을 뽑는 것 정도로는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는 듯.

흔들림 없이 서 있는 상대를 마주한 설천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에는 안 죽는다, 이거지?”

시작부터 과격한 수를 쓰긴 했지만, 예상했던 대로였다.

애초에 적들의 정체가 축생이라는 것을 알았던 시점에서 예상 가능한 부분이었다.

게임에서도 유저들이 지독하게 싫어하던 것이 축생이었으니까.

뭐, 대부분의 경우 육도(六道)가 최종막에 섞이면 다 끔찍했지만, 축생은 그 특유의 끈질김 때문에 유독 싫어하는 유저들이 많았다.

지독할 정도의 질긴 생명력.

특정 기술이 아닌 공격으로 막타를 치면 다시 회복하는 적들.

심지어 그들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기술을 쓸 수 있는 건 최소 현경급 이상의 강자이거나 최고 등급의 술사뿐이었다.

NPC들의 도움을 못 받는 상황에선 현경의 고수라는 게 그리 여유로운 인재가 아닌지라 아껴 쓰기 위해 머리가 터져라 굴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술사들은 잘못 데려갔다간 한 대 맞고 바로 죽어 버리니 더욱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과정을 거쳐서 결국 끝에 도달하면?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연옥이 열리고, 축생의 유정들이 지옥에서 진짜 육체를 얻어 내는 순간.

적들의 수준은 그저 까다롭다는 말로는 끝나지 않는다.

함께 연옥에서 뛰쳐나오는 놈들은 말할 것도 없고.

축생의 특질은 없어도, 멀쩡한 상태의 혈주 같은 놈들이 튀어나오는데 쉬울 리가 있겠나.

설천위를 무너트리기 위해 내면의 심상 세계에 숨어서 그를 몇 주 동안 붙잡아 둔 것이 바로 혈주였다.

혼만 남아서도 그런 짓을 벌이는데, 온전한 육체를 가진 혈주 같은 놈들이 현실에서 마구 날뛴다?

설령 감당해 낼 수 있다고 한들, 피가 강이 되고 시체가 산이 되는 그야말로 끔찍한 지옥이 펼쳐질 거다.

그러니.

“아저씨, 이 악물고 버텨.”

느긋하게 상황을 봐주면서 싸울 여유 따윈 없었다.

축생의 특징은 불굴의 육체와 그 육체에 몸을 숨기고 있는 혼이다.

이 둘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며, 특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육체는 거의 완전한 불사에 도달한다.

그리고 지금 황도(皇都)는 그 특정한 조건을 완전히 충족한 상태로 보이고.

그렇다면 축생의 유정을 잡을 방법이 없는가?

당연히 아니다.

축생의 유정의 최대 약점이자, 그들의 핵심.

혼.

다른 악귀들과 달리 혼 자체의 힘을 크게 잃어버린 축생의 유정들은 혼을 직접 타격하는 공격에 약하다.

또한, 육체가 불사에 이르렀다고 해도 그 혼이 소멸하면 육체도 따라서 소멸한다.

이런 특징은 반대로 말하면, 혼을 타격할 방법이 없다면 상대를 죽이는 것이 불가능한 강적이라는 말이지만…….

적들에겐 안타깝지만, 설천위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다.

설천위가 손을 뻗어 정벽의 목을 움켜쥐었다.

반항할 수 있음에도 억지로 육체의 반응을 억누르는 정벽을 보고 입꼬리를 비튼 설천위는 웃었다.

“따끔하니까 잘 버텨.”

장난스럽게 느껴지는 경고와 함께, 정벽은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심장이 요동치는 느낌.

분명 조금 전에 뽑혀서 눈앞에서 으깨졌던 심장이 다시 뛰는 것 같은 맥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컥!]

끔찍할 정도의 고통이 그의 혼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그것이 설천위에게서 흘러 들어온 힘에 의한 것임을 깨달은 정벽은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힘의 여파를 견뎌 내지 못하고 바스러진 갑주 사이로 드러난 육체가 보였다.

칠흑의 용이 육체를 가로지른다.

아직 재생이 끝나지 않은 가슴으로 내려간 용은 심장을 대신하듯 그곳에 똬리를 틀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가아아아아아악!!]

혼이 뒤틀린다.

축생의 길에 얽매여 있던 혼을 억지로 뒤틀고 찢어 길을 비튼다.

비명을 지르는 정벽의 몸이 점점 더 격렬하게 발작을 일으켰고, 일행을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이 차례차례 무너졌다.

그리고.

“역시, 군인은 악과 깡인가. 이걸 견디네.”

비명조차 내지를 힘이 없다는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정벽 앞에 선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새롭게 태어난 감상은 어때요? 아저씨.”

[상당히, 지독한 기분이다. 애송이.]

* * *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안가.

그곳에 남은 주현운, 소윤혜, 운주는 일행이 돌아오는 것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도시가 떠나가라 굉음이 울리기 전까지는.

“어딘지 모를 공간으로 끌고 가는 능력을 가진 적이 있는 상황에서 도시 전체에 퍼질 정도로 굉음이 울리고 있다는 건…….”

“상황이 좋지 않다는 얘기이겠군.”

주현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운주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상황을 고려하면 얌전히 기다리는 것이 맞다.

적들이 이곳을 눈치채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하책이다.

하지만.

“이미 들켰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

“아마도, 그럴 겁니다.”

운주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 주현운은 허리춤에 매어 둔 검 위로 손을 올렸다.

“이 정도 큰 규모로 일을 벌이는 놈들이니, 이쪽의 흔적을 아예 못 읽었을 리가 없겠죠.”

“그렇다면 알고도 건들지 못했다, 혹은…….”

“알고도 일부러 놔두었다. 최적의 순간을 기다리기 위해서.”

운주의 말을 이어받은 소윤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허리춤의 도를 뽑았다.

살의를 품은 소윤혜가 도를 움켜쥐었다.

지독할 정도의 살의가 장원 전체를 집어삼킨다.

그건 도발이다.

정체 모를 존재들을 향한 도발.

주현운조차 확신을 가지지 못할 정도로 은신에 특화된 존재들을 불러내기 위한 한 수.

아주 잠깐.

찰나라고 불러도 될 짧은 순간에 드러난 흔들림.

그 흔들림을 향해 소윤혜는 망설임 없이 도를 휘둘렀다.

손에 걸리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전부 못 벴어!!”

몇 놈이 도(刀)의 범위에서 벗어난 것을 눈치챈 소윤혜가 경고했다.

그녀의 경고에 즉각 반응한 주현운이 움직였고, 단숨에 파고드는 적들을 베어 냈다.

검을 만들 수 있게 됐지만, 역시 실체가 있는 게 더 편하긴 하네.

그런 짧은 감상과 함께 적들을 베어 넘긴 주현운은 단숨에 운주를 어깨에 걸쳤다.

“누님! 빠져나갑니다!”

“알았어!”

즉각 대답한 소윤혜는 망설임 없이 나아가 길을 뚫기 시작했고, 그런 소윤혜를 따라 주현운 또한 길을 뚫었다.

순식간에 장원의 담벼락까지 이어지는 길이 만들어지고, 그 사이를 돌파한 주현운과 소윤혜는 그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상대했던 적과 달랐어.’

도망치면서 조금 전에 마주쳤던 이들을 떠올린 주현운은 미간을 찡그렸다.

장원 안까지 들어왔음에도 자신이 기척을 뚜렷하게 감지할 수 없는 수준의 뛰어난 은신.

이건 단순히 소리가 없이 움직이는 걸 떠나서 존재 자체가 희미해야 가능한 일이다.

단순한 영체도 불가능한 일을 적들이 해냈다는 건…….

‘동창 출신의 악귀들인가?’

황궁의 그림자라는 그들이 육체조차 그쪽으로 특화되어 받았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황궁의 전력은 완전히 적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과연 저 화려한 궁 안에서 자신의 어깨에 걸려 있는 황제의 말을 들어 줄 이가 얼마나 될까.

이 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이 가능키나 한 일인가.

그런 고민을 하면서 주현운은 달렸다.

지금의 사태를 해결하려면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일단 합류하자.”

“그래야겠죠.”

소윤혜의 목소리에 상념을 털어 버린 주현운은 차분하게 주위를 관찰했다.

일단 일행이 향했을 방향은 대충 알고 있으니, 그쪽으로 가다 보면 어떻게든…….

[후우, 일이라는 건 참 짜증 나는 거야.]

어깨에 걸치고 있던 운주를 소윤혜에게 던져 버린 주현운은 그대로 검을 내리쳤다.

순식간에 수십 장 길이로 솟아오른 검강이 천벌처럼 내리꽂힌다.

[히야, 괴물이 있었네.]

그리고 그 검강을 피해 낸 존재가 어깨를 으쓱이며 다가왔다.

‘……초고수.’

급하게 날린 일격이라고 해도 피할 범위를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공간 전체를 휩쓸어 버렸는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피해 냈다.

상대가 자신의 공격을 완벽하게 읽어 낼 정도의 강자라는 소리다.

[거참, 죽은 인간을 되살려서 시키는 일이 제대로 된 일이 아닐 거란 건 짐작했지만…….]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갑주를 절그럭거리며 다가온 사내가 창을 겨눴다.

[내 손으로 황룡의 피를 보게 될 줄은 몰랐군.]

그리고 창을 내지른다.

단숨에 공간을 격하고 파고드는 창을 검으로 쳐 낸 주현운은 그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쏟아지는 공격.

찌르고 베는 것이 뒤섞이다 못해 수많은 회전이 더해진 창의 해일은 주현운이 보기에도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화려하고 정교했다.

이만한 수준의 무인이 지금의 황실에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일은 벌어지지도 않았겠지.

그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 창술에 주현운은 검을 휘둘렀다.

필사적으로.

콰가가가각!

감탄과 달리 모든 공격을 받아 내는 데 성공한 주현운은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나아가고, 나아간다.

창을 주력으로 쓰는 적을 상대로 한 최고의 대응은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창을 제대로 휘두를 수 없는 거리까지 좁히는 것이 승리로 향하는 지름길이고…….

[귀찮게 하는구나.]

그러니 상대는 그것을 피하려 들었다.

가벼운 걸음으로 거리를 벌린 상대의 반응에 주현운은 더더욱 거세게 압박했다.

순식간에 격전에 돌입한 두 사람은 그대로 주변을 초토화시키며 전투를 이어 나갔고…….

“꺄아아악!”

혼비백산해 도망치는 백성들 사이로 피가 솟구쳤다.

[크큭.]

웃음소리.

자신의 검에 묻은 피를 핥으며 다가오는 장수의 모습을 확인한 소윤혜는 운주를 내려놓고 자세를 잡았다.

“제 뒤에서 벗어나지 마세요.”

“……알겠다.”

소윤혜의 경고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뒤에 선 운주는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소윤혜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대로 움직임을 멈춘 운주를 자신의 감각 안에 넣은 소윤혜는 호흡을 뱉어냈다.

“다가오면 벤다.”

경고.

그 경고에 피를 흩뿌리며 다가오던 사내는 웃음을 멈췄다.

그도 그럴 것이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독한 년이구나?]

소윤혜를 중심으로 한 영역.

그 선을 넘는 순간, 베인다.

그런 강렬한 확신을 주는 제공권을 만들어 낸 소윤혜를 보며, 사내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렇다면 얼마나 독할 수 있는지 어디 볼까?]

사내의 웃음과 함께 사방에서 걸어오던 사내의 부하들이 도망치는 사람들을 붙잡았다.

[열을 셀 때마다 하나씩 죽이지. 뭐, 숫자가 부족할 걱정은 말라고. 저기 도망치고 있는 것들이 아직도 많으니.]

서걱!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겁에 질려 벌벌 떨던 중년 남자의 목을 베어 버린 사내는 웃음을 터트렸다.

[흐하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이거였지! 암!]

강렬한 쾌감에 휩싸인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 사내는 이번엔 그 옆에 있던 젊은 여자의 목을 검으로 꿰뚫었다.

[화가 나나? 응? 화가 나? 난 그렇지 않은데, 안타깝군. 솔직히 말해서 난 기분이 무척 좋아.]

히죽히죽 웃으며, 그 옆에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아이의 다리를 잡고 들어 올린 사내가 말했다.

[억지로 지키던 것들을 이렇게 벨 수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살아 있을 때도 항상 궁금했었지. 생각보다 기분이 더 좋아.]

그런 후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리며 아이를 걷어찬다.

그대로 아이의 가슴이 함몰되어 죽음에 이르려는 순간.

[흐응?]

사내의 다리를 잘라 버린 참격이 지나가고, 두 번째 참격이 사내의 팔을 노렸다.

그 즉시 반응한 사내가 아이를 그대로 잡아당겼고, 그 참격에 아이가 베이려는 순간.

“후회할 거다.”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소윤혜의 도가 직접 사내의 팔을 베었다.

허무하게 흩어진 참격 뒤로, 사내의 팔을 잘라 낸 소윤혜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나는 너 같은 놈의 목을 치는 것에 특화된 인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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