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8화
567화-축생의 유정 (7)
말 그대로 머리가 터져 버린 끔찍한 몰골이 된 온우의 몸이 무너진다.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주먹을 털어 내듯 몸쪽으로 당긴 철백이 자신을 향해 쓰러지는 온우의 몸을 받아 내려던 순간.
강렬한 직감이 철백을 움직이게 했다.
자신 쪽으로 무너지는 온우의 몸을 향해 당겼던 주먹을 전력으로 휘둘렀다.
시체를 모욕하는, 철백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을 본능적으로 행한다.
강철 같은 철백의 주먹이 단숨에 온우의 가슴을 향해 파고든다.
수만 번, 아니 세는 것조차 무의미할 정도의 반복했던 움직임으로 다리와 허리의 힘을 더한 공격이 단숨에 온우의 가슴을 꿰뚫었다.
살과 뼈가 뜯기고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철백의 주먹이 온우의 가슴을 꿰뚫는다.
정확하게 심장을 지난 주먹.
그리고.
“지독하군.”
어깨에 박힌 검.
쓰러지는 온우에게 반의반 걸음 접근한 것으로 힘을 조금이나마 줄여서 날이 박히는 수준에 그쳤지만, 온우가 휘두른 검은 확실하게 철백의 어깨를 파고들어 박혀 있었다.
“흡!”
기합과 함께 나간 앞차기가 온우의 몸을 그대로 날려 버린다.
애초에 강하게 움켜쥐고 있지 않았던 것처럼 손과 떨어진 검은 철백의 어깨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검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움켜쥔 철백은 그대로 뽑아냈다.
울컥 솟구치는 피.
근육을 조이는 것으로 상처를 지혈한 철백은 검을 바닥에 내던졌다.
[크흐흐, 괴물이네. 이게 막힐 줄은 몰랐는데.]
비틀거리며 몸을 세운 온우가 고개를 들었다.
뼈와 근육만 재생된 턱이 움직이며 말을 토해 냈다.
[사실 머리가 날아갔어도 말은 할 수 있어. 죽은 놈이라 입으로 말하는 건 아니거든.]
육체를 받았다고 해도, 그 본질은 망자다.
혼이 주축이기에 대화 정도는 머리가 날아가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사람의 머리를 날려 버리고도 방심하지 않는 놈이 있을 줄은 몰랐네.]
구태여 입을 열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대는 속지 않았다.
철백의 훌륭한 대처에 찬사를 보내면서 온우는 어느새 재생이 끝난 턱을 붙잡았다.
뚜둑!
뼈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이리저리 목을 꺾은 온우는 이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재생은 언제나 거북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꽤나 시원하단 말이지.]
“재생이라. 흔하면서도 강한 능력이군.”
[흔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변했나? 대가리가 날아간 인간이 살아 있는 게 흔한 건 아니지 않나?]
철백의 덤덤한 반응에 온우는 오히려 놀란 듯 되물었다.
“살아 있는 인간이 그랬다면 놀랐겠지.”
[아아.]
철백의 대답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온우는 어느새 다시 손에 쥔 검을 어깨에 걸쳤다.
[자꾸 까먹는단 말이야. 나도 괴물이 됐단 사실을.]
입꼬리를 비튼 온우가 땅을 박차는 것과 동시에 철백 또한 땅을 박찼다.
굉음이 터져 나오고, 두 사람은 순식간에 얽혀서 주위를 마구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 * *
“역시 다 같이 움직이는 게 맞아요.”
철백이 없음을 깨닫고 달려 나가려는 서하영을 겨우 붙잡은 일행은 고민했다.
서하영만 보내는 건 위험하다.
이 영역에서 단독 행동은 좋지 않으니 차라리 함께 움직이는 게 낫지 않을까?
애초에 영역(靈域)에서 철백이나 주현운처럼 괴이에 대한 효과적인 수단을 갖추지 못한 무인의 무리는 섣불리 행동해선 안 된다.
유일한 술사인 연화는 힘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으니, 별 도움이 못 됐고.
그럼 우선시해야 할 것은?
“외부도 어떻게 됐는지 걱정되니, 이 영역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보죠.”
“……습격이 있을 확률이 높아요.”
“주 소협이 있으니 어떻게든 될 것 같지만, 걱정되는 건 사실이야. 설 공자의 등장으로 적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할 수도 있으니까.”
걱정하는 연화를 부드럽게 토닥이면서도 냉정하게 상황을 직시한 유예린은 설천위를 바라봤다.
“저 백호 님께서 설 공자를 밀 수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천천히 움직이죠. 철 소협이 있는 방향은 알지?”
“네.”
자신 있는 서하영의 대답에 유예린은 과감히 행동에 나섰다.
백호에게 설천위를 맡기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허공에 떠 있는 설천위를 백호가 코로 밀며 움직이는 건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설천위를 이끌고 이동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시만요.”
영력을 소진한 대신에 그 어느 때보다 주변의 영력에 민감하게 촉을 세우고 있던 연화가 일행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영역(靈域) 안.
술사의 지시는 절대적이었기에 일제히 걸음을 멈춘 일행은 연화의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차분하게 주변의 영역을 살피던 연화는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단주님은 진짜 괴물이네요.”
“무슨 일인데?”
“우리를 이곳으로 보낸 괴이가 계속해서 이쪽을 건들고 있어요.”
적이 이쪽을 건들고 있다.
그 말에 모두의 분위기가 일순 심각해졌지만, 허공에 떠 있던 천마는 허허롭게 웃으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천위 놈을 괴물이라고 한 건 그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는 소리구나?]
“네, 아마도요. 공간째 저희를 날려 버리려 계속 시도하고 있지만, 모두 실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 단주님의 힘이 주변의 영력을 전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음, 가능성이 높구나. 이놈의 저항력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니. 거기다 유예린, 이 아이가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무의식중에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천마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연화는 서하영을 바라봤다.
“분명 철 대협은 이 영역을 찢고 들어오셨다고 했죠?”
“그래.”
“그럼 단주님이 깨어나기 전에 우리가 이곳을 나갈 수 있는 수단은 철 대협밖에 없겠네요.”
“일이 그렇게 되는 건가…….”
연화의 추측에 한숨을 내쉰 유예린은 잠시 설천위를 바라보곤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전진하죠. 일단 최우선 과제는 철 소협과 합류해서…….”
그 순간, 말을 끊은 유예린이 검을 휘둘렀다.
치료를 위해 고정해 놓은 팔 때문에 균형이 흐트러졌으나, 딱히 부족하진 않았다.
쩡!!
“뭔데!”
서하영의 창이 곧바로 움직였으니까.
유예린이 찰나의 순간 적의 공격을 저지한 즉시 끼어든 서하영의 창이 완전히 적의 공격을 거둬 냈다.
튕겨 나오는 창.
그리고 일행 중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창을 휘돌렸다.
대화의 여지 따위는 없다는 듯 창을 돌리는 사내.
장수와 같은 갑주를 입은 사내의 공격에 본격적으로 대응한 건 서하영이었다.
단숨에 내지른 창이 사내의 창과 맞닿는다.
창의 달인.
정확하게 상대의 맥을 끊는 순간에 찌르고 때리는 창이 순식간에 적의 손발을 묶었다.
문답무용으로 창을 휘둘렀던 장수도 이내 놀람이 깃든 눈으로 연신 물러나기 시작했다.
“조심하세요!!”
단숨에 상대를 몰아붙이는 서하영은 일견 여유롭기 그지없었으나, 연화는 경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주님의 기세 속에서 저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연화의 경고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쿵!
[부질없구나.]
절망으로 가득 찬 목소리와 함께 땅이 울렸다.
그리고 하늘 위.
서하영이 몰아붙이고 있는 장수의 갑주도 금빛의 멋들어진 물건이었지만, 그보다 배는 더 화려한 갑주로 무장한 사내가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눈빛.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공허한 눈빛으로 사내는 언월도를 겨눴다.
[전부 부질없음이야.]
절망마저 비틀어 버린 듯한 목소리가 땅에 내려앉는 순간.
대지가 들썩였다.
들썩이는 대지를 뚫고 나온 것은 병사들이었다.
말라비틀어져 뼈와 가죽만 남은 병사들.
마른 나뭇가지 같은 몸으로 창을 움켜쥔 병사들이 순식간에 일행을 포위했다.
그리고.
“흡!”
“하앗!”
순식간에 박살이 났다.
병사들이 되살아나?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 그들이 포위한 건 적장이 아니라 인간을 뛰어넘은 초인들인데.
음울한 얼굴이었지만 상황이 닥치니 정신을 차린 문율의 천수가 단숨에 십수 명의 병사들을 쓸어버렸고, 마찬가지로 검을 휘두르는 설란의 손에 몇 명의 병사들이 쓰러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대응하는 이들의 모습에 당황할 법도 했으나.
[부질없다.]
하늘에 떠 있는 장수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병사들? 일으키긴 했으나, 애초에 그들은 주축이 아니었다.
서하영을 붙잡아 둔 장수.
“대비하세요!!”
유예린의 경고와 함께, 사방에서 튀어나온 장수들이 창을 휘둘렀다.
문율이 둘, 유예린이 하나, 연화와 설란이 하나.
순식간에 나타난 네 명의 장수를 각각 막아 낸 일행은 이를 악물었다.
‘범상치 않다!’
이 장수들이 조금 전에 상대했던 위효라는 놈보다 강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나, 결코 쉬운 상대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천수라는 무공의 특성을 활용해 그런 괴물들을 둘이나 맡게 된 문율은 이를 악물었다.
‘해낸다!’
폐를 끼친 건 한 번으로 족하다.
한 번 손해를 끼쳤다면, 그다음에는 그만큼을 만회해야지.
이를 악문 문율은 그야말로 가진 걸 전부 쥐어짜서 장수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주변을 초토화시키며 격해지는 전투.
그리고 홀로 장수 하나를 맡은 유예린도 상황이 썩 좋지 않았다.
‘몸 상태가……!’
신의의 신묘한 의술로 붙이긴 했으나, 한 번 잘렸던 팔은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검을 잡고 휘두르는 것 정도는 가능했지만, 힘을 주는 순간 잘못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차오르며 한 손으로 장수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 내던 유예린이 기어코 왼팔의 고정을 풀려는 순간.
[크르르르르.]
품에서 뛰쳐나온 청랑이 장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안 돼!”
상대는 화경급 고수도 애를 먹을 괴물이다.
그런 괴물에게 달려드는 청랑의 모습에 유예린이 다급하게 청랑을 붙잡으려는 그 순간.
[허허, 늙은이를 너무 부려 먹는구나.]
느긋한 천마의 목소리와 함께 세상이 갈라졌다.
달려드는 청랑을 향해 창을 휘두르던 장수의 몸이 갈라지고, 연화와 설란이 겨우 상대하던 장수의 창이 갈라졌다.
마찬가지로, 문율을 압박하던 두 장수 또한 천마의 일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야말로 세상이 갈라진 일격.
모든 것이 어긋나 버린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천마는 담담하게 고개를 들어 하늘에 떠 있는 장수를 바라봤다.
[계속할 생각이더냐?]
느긋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언제든 다시 휘두를 것처럼 손에 쥔 검.
그런 천마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장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속행.]
공격을 지시하듯 장수가 손을 내리자, 어긋났던 부하 장수들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영력을 이용한 초회복.
[에잉, 안 속는구나.]
혀를 차며 검을 흩어 버린 천마는 다시금 시작되는 전투에 혀를 찼다.
설천위가 뿜어냈던 영력 중 남은 것을 이용해서 부린 허세였는데, 상대의 눈이 생각보다 더 날카로웠다.
단숨에 허세라는 것을 알아채고 속행하는 걸 보면 범상치 않은 적이 분명했다.
어느새 거대화해 유예린을 도와 적과 싸우기 시작한 청랑을 잠시 바라보던 천마는 이내 고개를 돌려 설천위를 바라봤다.
여전히, 세상 평온하게 명상에 잠긴 얼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기에 이리도 오래 걸리는 것이냐?]
* * *
“아오! 더럽게 질기네, 진짜!”
엉겨 붙는 망자들을 베고 또 베며, 나아가던 설천위는 여전히 자신을 따라오는 그것의 팔을 짓밟았다.
바닥을 기어서라도 따라오는 존재들.
천희의 모습을 했던, 혈주인지 뭔지 모를 놈이 말했던 자신의 업.
자신이 쌓아 왔던 살업(殺業)과 마주한 설천위는 피로 질척이는 옷을 벗어 던지고, 짜증을 냈다.
“밖에 지금 심각한 것 같으니까 그만 좀 하자! 응?”
짜증으로 가득 찬 목소리.
얼핏 부탁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하는 설천위였으나, 사실 부탁할 생각 같은 건 없긴 했다.
왜냐하면.
“끝내자고!”
거의 끝에 도달했으니까.
옷을 벗어 던진 설천위의 앞.
그곳엔 수많은 망자들이 뒤엉켜 만들어진 지옥의 문 같은 것이 서 있었다.
[걷는 것인가.]
[수라의 길을.]
언젠가 보았던 문지기들의 강렬한 시선을 받으며,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오냐.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을 거다. 딱, 내가 걷고 싶은 만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