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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66화 (566/624)

제566화

565화-축생의 유정 (5)

가장 처음 느낀 건 의아함이었다.

눈앞에 갑자기 화려한 미닫이문이 나타났으니 의아하지 않을 리가.

하지만, 그런 의아함 뒤에 따라온 것은 전율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공포였다.

아주 조금.

아주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아, 아아!]

공포가 밀려 들어왔다.

언젠가 연화가 그들의 존재를 인지한 순간 느꼈던 그 전율 이상으로.

존재 자체를 짓밟는 무언가가 문 너머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제대로 목도하기도 전에 먼저 무릎이 굽혀진다.

문율을 제어하는 것조차 버거워진 채 몸이 땅으로 가라앉는다.

문이 반쯤 열렸을 때, 위효는 이미 땅에 무릎이 닿아 있는 상태였다.

압도적인 존재감.

항거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이건 마치…….

‘그분과 같은……!’

신을 품은 존재감에 의해 밀려드는 공포가 위효의 몸을 떨게 만들었다.

바들바들 떨면서 몸을 낮추는 위효.

그리고.

[이건 어떻게 된 거지?]

문에서 들린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 목소리?’

이건…….

음?

이상하지 않나?

왜 전이문이 열렸는데, 여자 목소리가 들려?

당황한 이들이 고개를 갸웃하고, 유예린은 이내 저 놈팡이가 어디서 또 여자를 낚았구나, 하고 눈을 부릅떴다.

나는 지금 죽자 사자 일하고 있는데, 이 인간은 다른 데서 여자를 만나고 있어?!

[으음, 여기가 도시인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군.]

“……응?”

만나?

으으응?

인간 여자?

아니, 응?

문 아래로 보이는 상대의 발에 유예린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아무리 봐도, 인간의 것이 아닌 발.

짐승, 그것도 백호의 그것과 흡사한 발에 유예린은 자신의 팔이 잘렸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크게 당황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다른 것 같군. 그런데 이자들은 왜 다들 이러고 있지?]

[천위가 뿜어내는 기운 때문 아니겠는가? 저치들은 적응하려면 멀었을 테니.]

[으음.]

완전히 땅을 딛은 네 발과 더불어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문 반대편에 서서 똑똑히 상황을 지켜보던 문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익숙한 천마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완전히 열린 문을 지나 나타나는…….

“천위 형?”

공중에 떠 있는 천위?

가부좌를 튼 채 공중에 떠 있는 설천위의 모습에 당황한 문율은 자신의 몸을 제어하던 술법이 풀린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의문이 절로 드는 순간, 완전히 빠져나온 설천위를 끝으로 전이문이 닫혔다.

설천위보다 앞서 나온 백호와 다람쥐, 천마, 신의는 완전히 닫힌 전이문 뒤로 보이는 풍경에 반응했다.

[허허, 오랜만에 보는구나. 잘 지냈느냐?]

“예? 아…… 예. 잘 지냈습니다.”

자연스러운 물음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유예린.

그리고.

[형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팔이 잘렸는데, 어떻게 잘 지냈겠습니까?]

[음?]

신의의 타박에 다시 유예린을 살핀 천마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네가 팔이 잘리다니?]

배에 구멍이 뚫린 적은 있어도 팔이 잘릴 정도의 중상은 어떻게든 피할 아이가 왜?

천마의 놀란 목소리에 어색하게 웃은 유예린은 괜찮다는 듯 남은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섰다.

“싸우다 보면 그럴 수 있죠. 전 괜찮습니다. 지혈하면 목숨에 지장은…….”

[에잉! 쯧쯧, 이 머저리 같은 놈 때문에 고생이 많구나.]

유예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혀를 찬 천마는 잠시 신의와 함께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해 보자꾸나.]

[뭐, 이놈한테 뭔 일이 있겠습니까?]

본래라면 절대로 안 할 일이었지만, 설천위라면 괜찮겠지.

오히려 본인이 더 바라는 일일 수도 있고.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천마와 신의는 아직도 허공에 떠 있는 설천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슬금슬금 몸을 일으키려던 위효가 다시 자세를 고치는 그 순간.

[유예린이 팔 잘렸다. 사경을 헤매고 있어!]

[이러다가 죽게 생겼다!]

진중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두 사람.

허공에 떠 있는 설천위에게 저게 대체 뭔 짓인가 하는 의문이 절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순간.

쿵!

공간이 울렸다.

쿵!

심장이 울렸다.

쿵!

세상이 울렸다.

단 세 번.

고작 세 번의 호흡 만에 세상이 뒤틀렸다.

그리고.

쩡!!

세상을 짓밟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세상이 짓눌렸다.

[커헉!]

피를 토한 위효가 땅에 처박혀 몸을 바들바들 떨었고.

문율에게서 나왔던 천수들은 강제로 연기가 되어 흩어졌으며.

입술을 짓씹으며 검을 쥐고 있던 설란의 손에선 검이 떨어졌다.

완벽하게 주위를 무력화시키는 데 사용된 것은 오로지 하나.

기세.

화경급의 고수들조차 설천위에게서 뿜어지는 기세를 이겨 내지 못하고 무력화됐다.

그리고 강한 육체를 지닌 반면 오히려 영적인 충격에 더 약한 위효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몸을 마구 비틀고 있었다.

물렁물렁함으로 모든 충격을 흘려 내던 육체는 지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

통할 리가 있나.

손발이 꽁꽁 묶여 땅에 처박힌 신세가 된 위효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런 위효를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설천위를 살피던 신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되겠군.]

[허허, 참 편리한 녀석이야.]

설천위에게서 영력을 뽑아내는 데 성공한 신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후 바늘과 실을 가지고 유예린에게 다가갔다.

[가만히 있어라. 조금 따끔할 게다.]

영력을 뽑아낸 김에 그걸로 실체화까지 해서 유예린의 잘린 팔을 들고 그녀에게 간 신의는 팔을 봉합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순식간에 팔이 붙는 모습에 유예린마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리고.

[됐다. 아무는 데 며칠은 필요할 터이니 한동안은 팔을 움직이지 말거라.]

잘린 팔에 있던 옷가지로 단단하게 부목처럼 팔을 고정시킨 신의는 몇 가지 주의할 점을 일러 주고 물러났다.

그리고.

“미안.”

그런 유예린의 앞에서 고개를 숙인 설란의 턱 아래로 핏방울이 떨어졌다.

스스로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깨문 입술에서 나온 피가 그녀의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고작 적의 수작에 당해서 아군을…….”

“언니, 우리가 술법에 약하다는 건 누구나 알아요. 제가 주의하지 못한 것뿐이에요.”

“아니, 네가 주의해야 하는 만큼 나도 이겨 냈어야 했어.”

서로 잘못했다고 말하는 두 사람의 훈훈한 분위기에 신의와 천마는 영문을 모르고 일단 흐뭇하게 바라봤지만.

[그런데, 저건 어떻게 할 거지?]

일행 중에서 가장 냉철한 백호의 지적에 모두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온몸을 비틀어 겨우 몸을 일으키던 위효는 단숨에 자신에게 몰린 시선에 다시 고개를 처박았다.

살려고 몸부림치는 그 모습에 천마는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생존 본능이 훌륭한 아해로구나.]

흐뭇한 평가.

그리고.

[하지만, 악취가 너무 심해서 두고 볼 수가 없구나. 이 정도면 분 냄새가 아니라 오물 냄새라고 해야 할 수준이니라.]

한순간 설천위의 영력을 빨아들여 실체화한 천마의 검이 단숨에 위효의 목을 잘랐다.

어떤 공격이라도 무효화시키는 물렁물렁한 육체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고, 그대로 목이 떨어진 위효의 의식은 끊어졌다.

“……어떻게?”

[아, 저 몸뚱이 말이냐? 별거 없단다. 베는 것에 집중한다면 못 벨 것도 없지. 혼까지 베어 내는 건 네게 조금 더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즉, 몸을 베어 내는 것 정도는 지금의 수준으로도 가능하다는 소리인가.

천마의 말에 유예린은 고개를 숙였다.

결국, 자신이 부족해서 일이 이렇게 된 거다.

의식조차 없는 설천위를 불러내 괜히 애먼 백호나 딸려 오고…….

“백호?”

[왜 부르느냐?]

그래.

그건 이상하잖아?

설천위를 불렀는데, 백호가 왜 따라와?

거기다 말도 하고 목소리가 상당히 여성스러운 것이…….

“……천위가 당신도 건드렸나요?”

[무얼 말이냐?]

난봉꾼처럼 돌아다닌 대가는 컸다.

백호를 바라보는 유예린의 눈동자에는 희미한 불신이 일렁이고 있었다.

* * *

“도망치네.”

“후우.”

“일단 놔둘까?”

도망치는 오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서하영은 가쁜 호흡을 몰아쉬는 연화의 모습에 추적을 포기했다.

“괴연천식을 다 쓴 거니?”

“네…….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였던지라.”

실제로 서하영이 합류할 때쯤 연화는 괴연천식에 쌓아 놓은 혼들을 거의 소진했었고, 그 때문에 서하영의 보조에는 자신의 영력만을 사용했다.

그 탓에 상당히 힘에 부쳐서 이렇게 가쁜 숨을 몰아쉬게 됐지만…….

“단주님이 온 거겠죠?”

“으음,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이상하네.”

그 인간이 왔으면 저 멍멍이가 눈치 보면서 도망칠 준비를 하는 사이에 덮쳐야 정상인데?

유예린 쪽에 있는 적이 저 멍멍이 수준이라면 그렇게 길게 시간을 끌 리가 없는데.

고개를 갸웃하던 서하영은 일단 눈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그렇게 연화를 이끌고 설천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방향으로 이동한 서하영은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과 마주할 수 있었다.

“언니!”

“하영아.”

와다다 달려가 품에 안기기 직전에 유예린의 팔에 감긴 부목을 확인하고 반대쪽 손을 잡는 것으로 만족한 서하영이 방긋방긋 웃었다.

“언니, 괜찮은 거 맞죠? 그렇죠?”

“그래. 괜찮아.”

“아! 설란 언니도 있네!”

……왜 저렇게 침울해 보이지?

“문 소협도!”

여기도 침울해 보이네?

적에게 조종당해 아군을 공격했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는 두 사람의 속사정까지는 모르는 서하영이었기에 슬쩍 넘어갔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들으면 되니까.

“그래서 설 공자는 어디에…….”

설천위를 찾아 상체를 움직이던 서하영은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에?”

허공에 떠 있는 설천위를 백호가 주둥이로 밀어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거면 충분히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에에에?! 여자?!”

[여자가 아니라 암컷이다. 왜 아까부터 저 아해와 같은 소리를 하는 거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백호의 모습에 헙 하고 입을 다문 서하영은 어색하게 웃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설 공자가 백호까지 꼬시진 않았겠…… 죠?”

기본적으로 워낙 능력이 넘치는 인간이라 어디 가서 활약하면 반하는 여자가 적어도 한둘쯤은 나온단 말이지.

살존의 딸처럼 눈 돌아가서 따라오는 인간은 별로 없었지만…….

백호 정도면 눈 돌아가서 따라올 수도 있지 않나?

[이 녀석이 눈만 뜨면 돌아갈 거다. 이 아이가 온전히 크기 전까진 너무 밖을 돌아다니는 건 좋지 않아.]

[허허, 조금만 기다리게. 이 녀석이 눈을 뜨면 내 부탁해 볼 터이니.]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하얀 다람쥐를 걱정하는 백호를 다독인 천마는 설천위를 불쌍하다는 듯 바라봤다.

[저놈이 난봉꾼 짓을 한 건…….]

아니진 않지만.

제대로 손을 댄 건 백유, 그 아이밖에 없지 않은가?

그것도 뭐 거의 그쪽에서 들이대는 과정에서 넘어간 거고.

백수아, 그 아이도 화끈하게 들이댔으면 세 번째 처 자리까지는 가능했을지도 모르지.

‘충분히 난봉꾼이군.’

설천위의 줏대 없는 행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천마는 그를 변호하는 것은 포기하고 빠르게 본론으로 넘어갔다.

[상황 설명이 필요하구나. 이 녀석은 깨어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니, 지금 상황을 알려 줄 수 있겠느냐?]

* * *

[괴물! 괴물이야!]

철백을 붙잡기 위해 축생의 유정들을 모으던 우공은 자신의 공간을 비틀고 있는 괴물의 등장에 그만 혼란에 빠졌다.

말 그대로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의 영역을 비틀고 깨부수는 괴물.

저런 괴물을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계획은 고사하고 황궁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괴이들이 순식간에 쓸려 나갈 거다.

다행인 점은 저 괴물이 지금 의식이 없다는 것 정도.

그렇기에.

[도와줘! 지금 당장! 저 괴물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제로 불려 온 환관은 몸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

“저, 전하겠습니다.”

우공은 이 계획의 주도자들에게 서둘러 도움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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