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65화 (565/624)

제565화

564화-축생의 유정 (4)

[안 돼! 안 돼! 이건 무리야!]

위효, 오시와 다르게 공간이 찢어진 순간, 철백과 서하영의 존재를 포착해 낸 우공(愚空)은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이런 괴물을 어떻게 막으라고!]

도시에 들어온 순간, 이면 공간을 눈치채고 바로 찢고 들어오는 괴물들을 대체 어떻게 막으란 소리냐!

자신의 능력은 오로지 공간의 차단과 이동에만 특화되어 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들을 단숨에 끌어들이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인지한 순간부터 처리하기 힘들다고!’

단숨에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의식의 빈틈을 이용하기에 가능하지만, 아예 대놓고 경계하는 순간부터 난이도는 급격하게 올라간다.

특히, 영적인 저항력이 있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고.

그런 와중에 공간을 찢고 들어온 존재는 그야말로 괴물처럼 이동했다.

마치 적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순식간에 움직여 축생의 유정들을 격파하기 시작했다.

위효나 오시와 달리 아직 제대로 된 이성을 갖추지 못한 반푼이들은 그대로 박살이 났고, 그 밑에 있는 부하들은 이성은 있어도 힘이 약한 경우가 대부분이니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했다.

[이건, 이건 실패할 수 없어.]

무림맹을 공격할 때, 언여휘의 도움을 받아 겨우 탈출했던 우공이다.

만약 지금 무능함이 드러나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지면…….

웃고 있는 언여휘의 얼굴을 떠올린 우공은 공포에 질려 손발을 떨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

[그래! 한 번에! 한 번에 공격하면 돼!]

상대가 아무리 괴물 같은 인간이라고 해도 유정의 무리들이 모여서 공격하면 버틸 재간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확신한 우공은 공간을 뒤틀기 시작했다.

위효와 오시의 도움도 받을 수 있을까 살폈지만, 이내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저었다.

오시 쪽으로는 어느새 그 괴물의 일행이 달려가고 있었고, 위효는 여유로웠지만 품에 안은 사내에게 꽂혔으니 도움을 요청해도 무시할 가능성이 컸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우공은 일단 행동으로 옮겼다.

철백을 격파하기 위해 공간을 비틀어 축생의 유정들을 모았고, 철백이 가는 길을 계속 뒤틀어 시간을 벌었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 이거야!]

* * *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네.”

“언니…….”

연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서하영은 자신을 똑바로 내려다보는 상대와 눈을 마주쳤다.

[정보에 없던 계집이군.]

“말도 좀 통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응? 왜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서하영의 모습에 연화도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히 통하지 않나요? 상위 악귀면 대체로 다 통할 텐데…….”

“오는 길에 만났던 것들은 하나같이 괴성밖에 안 질러서 난 또 안 통하는 줄 알았지.”

연화의 말에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 서하영은 하늘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오시를 보며 웃었다.

“그럼, 당신도 말이 통하나요?”

[……머리가 텅텅 비어 있는 인간이로군.]

“칭찬은 아닌 것 같은데요?”

[욕이다. 인간.]

“꽤나 고풍스러운 멍멍이네요.”

오시의 대답에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은 서하영은 오시에게 창을 겨눴다.

“저는 멍멍이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말하는 멍멍이라고 해서 봐드릴 순 없어요.”

[자꾸 장난을 치는군.]

서하영의 말에 짜증이 담긴 오시의 일격이 그녀를 덮쳤다.

떨어진 거리에서 앞발을 휘둘러 만들어 낸 바람의 칼날.

쇠조차 우습게 베어 버릴 그 일격을 가볍게 창을 휘두르는 것으로 털어 낸 서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네요.”

가볍게 날린 일격이 이 정도 위력이라니.

확실히 강했다.

“강인한 육체, 무인도 우습게 여길 정도의 신체 능력. 설 공자가 말하던 축생의 존재들이겠네요.”

[똑똑하군. 놀랄 정도로.]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정체를 읽어 내는 서하영의 모습에 말과 달리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 오시는 몸을 낮췄다.

[빠르게 정리하는 게 낫겠군.]

오시가 땅을 박차는 순간, 단숨에 거리가 좁아진다.

모든 것을 가를 기세로 떨어지는 오시의 발톱을 서하영은 창으로 받아 냈다.

공간이 떨릴 정도의 굉음과 함께 그대로 창을 휘둘러서 충격을 털어 낸 서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우리 막내에게는 무리겠네요.”

신체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 힘을 뽑아내는 방식이 범상치 않았다.

화려한 기술 같은 건 없었으나, 짐승의 그것처럼 그야말로 본능에 따르는 최적의 일격이었다.

호랑이의 앞발이 수천 근의 위력을 지녔다는 풍문처럼 이 검은 멍멍이의 앞발도 일반적인 무인은 견디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거력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술사인 연화에게는 상성상 버거운 상대라는 뜻이기도 했다.

연화의 공격도 상대에게 통하겠지만, 상대는 높은 회복력을 지닌 괴물.

몸으로 밀고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수비에 치중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 순간부터 연화는 끌려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

상대의 파괴력이 이쪽을 해칠 수 있을 수준인데, 수비에만 집중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뜻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연화가 밀린 이유를 단박에 읽어 낸 서하영은 다시 한번 거리를 좁히는 오시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카가가각!

이번엔 굉음 대신 오시의 발톱을 갉아 내는 소음과 함께 오시가 뒤로 몸을 날렸다.

갈라진 앞발에서 흘러내린 핏방울이 발톱을 타고 흘러내린다.

[과연, 미친 것만은 아니라는 건가?]

자신의 앞발에 흐르는 피를 핥아 낸 오시가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더더욱 자세를 낮췄다.

허공에서 쏘아지듯 내리꽂히는 일격.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었다가는 그대로 목이 날아갈 공격을 눈앞에 두고, 서하영은 자신의 뒤에 있는 연화를 불렀다.

“연화야, 보조를.”

“네!”

보조라는 말에 재깍 대답한 연화가 술법을 펼치고, 그 순간 오시가 돌진했다.

그새 완전히 아문 손으로 공간을 찢어발기며 그대로 서하영을 덮친다.

발은커녕 발톱 끝에 스치기만 해도 사람 팔뚝만 한 상처가 남을 일격을 서하영은 회피 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 냈다.

창날로 공격을 받아 내는 것과 동시에 흘려 내고 휘둘러 힘을 흩트린다.

완벽에 가까운 방어.

그리고.

촤악!

그 일순간의 틈새로 내지른 일격이 만들어 낸 참격.

가슴께에서 솟구치는 피에 기어코 오시의 눈동자에 당혹스러움이 담긴다.

“어떻게 했는지 궁금한 눈치네요.”

그런 오시의 반응에 빙긋 웃으며, 서하영은 창으로 바닥을 두들겼다.

“잘하면 돼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서하영의 모습에 연화는 뻘쭘함을 감췄다.

그녀는 사실만을 말했으니까.

말 그대로 잘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창으로 방어를 하는 것과 동시에 그 찰나의 순간에 공격을 끼워 넣는 걸 그저 ‘잘했다’는 정도로 치부하는 게 과연 맞는 표현인지 의아스럽긴 하지만.

여하튼, 그녀의 말대로 잘하면 되는 거긴 했다.

부족한 공격력은 연화가 술법으로 보충했기에 그 찰나의 일격만으로 서하영은 오시에게 제대로 된 상처를 남길 수 있었다.

천천히 아물어 가는 상처를 내려다본 오시는 이내 털을 세우며 다시 자세를 낮췄다.

[변하는 것은 없다. 네놈들은 이곳에서 죽는다.]

“놈이 아니라 년들뿐인데…… 멍멍이라서 잘 모르나 보군요?”

빙긋 웃으며, 서하영은 창을 돌렸다.

“멍멍이의 재롱 정도는 얼마든지 어울려 드리죠.”

[여유롭군.]

“물론.”

[그렇다면 위효 쪽도 여유로울까?]

위효.

처음 듣는 이름에 서하영이 고개를 갸웃하자, 연화가 뒤에서 귓속말로 알려 줬다.

지금 유예린과 설란이 상대하고 있을 적이라고. 문율을 납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적.

“그쪽이라면 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오만하군. 네놈, 아니 네년들은 판단을 그르쳤다.]

으르렁거림과 함께 오시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 어린 술사는 이쪽이 아니라 그쪽으로 갔어야지.]

* * *

[어머어머~, 이게 무슨 야만적인 행동이래?]

확실하게 소검을 목에 찔러 넣었던 유예린은 믿을 수 없는 적의 반응에 눈을 크게 떴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몸을 휘젓는 적이 그대로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마치 물렁물렁한 액체처럼.

[여자를 꾀는 건 취미가 아닌데, 참 귀찮게 하는구나?]

그리고 어느새 귓가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유예린은 즉시 손을 움직였다.

펑!!

스스로의 가슴을 내려침으로써 만들어 낸 소리로 단숨에 자신의 주위에 있는 것들을 날려 버린다.

음공의 응용.

본인도 다칠 우려가 있는 한 수였지만, 자신에게 다가서는 적을 날려 버리기에는 이만한 방법이 없었다.

[어머, 무식하기는.]

그리고 유예린의 기대대로 튕겨 나간 위효는 문율의 뒤에서 꾸물거리며 혀를 차고 있었다.

[역시 여자한테 달라붙는 건 취향이 아니네. 이대로 끝내 줄게.]

“도망……!”

이젠 제대로 말도 못 하는 문율의 외침과 함께 천수가 날뛰기 시작했다.

“큭!”

설란이 천수에 맞아 날아갔다.

[어머? 쟤는 좀 다르구나? 약하네.]

그리고 그런 설란의 반응에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챘다는 듯 위효는 천수의 방향을 설란 쪽으로 집중시켰다.

문율이 반항하는 지금, 어설픈 공격으로 유예린을 압박할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 약점을 노린 것이다.

순식간에 설란을 향해 몰리는 공격에 유예린은 어쩔 수 없이 몸을 날려 천수를 베어 내기 시작했다.

침착하게 천수를 정리하며 설란을 향한 공격의 숫자를 줄이기 시작한 유예린은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문 소협의 힘이 다할 때까지 기다릴 순 없어…….’

조종당하고 있다면 잠력을 끄집어내서라도 기술을 유지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문율을 제압하고 적과 일대일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게 좋았다.

문제는 문율을 제압하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적의 능력을 아직 정확하게 모른다는 점이다.

계속 문율의 곁에 붙어 있는 것도 그렇고, 조금 전에 자신에게 달라붙었던 것도 그렇고, 상대를 조종하기 위해선 달라붙어야 하는 것 같지만…….

‘보통의 축생과 달라.’

그 육체가 강인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마치 전면전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민달팽이 같은 느낌.

조금 전에 소검을 찔러 넣었을 때도 물컹한 무언가에 검이 파묻히는 느낌만 들었지, 적을 찔렀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생각이 이어지면서 상대의 대처법을 정리해 나가던 그 순간.

“피해!!”

설란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유예린이 몸을 비틀었다.

“컥!”

빈틈을 파고든 천수가 그대로 옆구리를 강타하고, 뒤에서 내지른 설란의 검이 유예린의 왼팔을 잘랐다.

단 한 번.

[오호호호호호! 설마 조종하려면 달라붙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니?]

단 한 번의 실수로 치명상을 입은 유예린은 이를 악물었다.

조종당할 거라곤 생각도 못 하고 설란 쪽을 경계하지 않았던 것이 최대의 실책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설란이 경고하지 않았다면, 잘리는 건 왼팔이 아니라 목이었을 터.

[호호호, 그럼 이제 끝을 내 볼까?]

그런 유예린을 내려다보며 느긋하게 웃음을 흘린 위효는 이를 악물고 반항하는 설란과 문율을 조종했다.

냄새를 통해 퍼져 나가는 그녀의 힘.

여자를 상대론 효과가 다소 약하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벽을 넘지 못한 무인 정도는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었다.

“피…… 해!”

[얘, 좀 조용히 하렴. 자꾸 방해되잖니?]

이를 악물고 반항하는 설란 때문에 입술을 삐쭉이며 말한 위효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설란과 문율을 조종했다.

문율의 천수와 설란의 검이 겨우 몸을 일으킨 유예린을 정조준하려는 바로 그 순간.

[왕!]

유예린의 위기를 깨닫고 나온 청랑이 짖었다.

그리고.

[이건 또 뭐야?]

보라색 색지에 피로 찍힌 꽃, 그리고 칠흑의 용이 그려진 문이 나타났다.

* * *

“유 언니 쪽이 더 위험할 거라는 거죠?”

[크르르르.]

몸 곳곳에서 피를 흘리는 오시와 마주한 서하영은 자신의 몸에서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웃었다.

“언니가 위험하면 그 인간이 못 참을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괜히 청랑을 붙여 놓은 게 아닌데 말이야.

장난스러운 서하영의 물음과 함께.

쩡!!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충격이 세상을 짓밟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