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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60화 (560/624)

제560화

559화-북경 (4)

달려드는 괴물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강렬한 충격에 손이 얼얼해지고 어깨와 팔꿈치가 비명을 내질렀지만, 주현운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참수(斬首) 개(改) 제2식 직참(直斬)]

주현운이 상대의 발을 묶는 사이, 자세를 고친 소윤혜의 일격이 상대의 목을 갈랐다.

문제는.

[따끔하군.]

제대로 베어 내지 못하고 살가죽 정도만을 베는 데 그쳤다는 점이지만.

그 말도 안 되는 강도에 경악하면서도 소윤혜는 빠르게 현실을 인정했다.

지금 자신들은 저 괴이를 이길 수 없다.

괴이에게는 상성과 약점이라는 것이 있지만, 그것을 모르면 거의 무적에 가까운 힘을 발휘하는 존재들이다.

술사는 영적인 능력과 지식으로 그 약점을 읽어 내서 적을 상대하지만, 무인인 두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애초에 설천위에게 주의하라고 듣기도 했고 나름대로 약점을 듣긴 했지만, 그 약점을 노리는 것이 두 사람에게는 불가능했다.

축생의 약점은 육체다.

축생도의 존재는 ‘축생도에서 몸을 받은[感畜生道身]’ 자들이며 그들은 실체가 있다.

영적인 존재이자 괴이이면서도 분명한 실체를 가진 이들은 그 덕분에 한 가지 특징을 지닌다.

압도적으로 강한 육체.

인간의 힘 따위는 무력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짐승의 육체가 그들의 특징이다.

그렇기에 영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술사들의 술법이 이들에겐 효과적인 공격 수단이고, 영적인 공격이 아니라면 거의 효과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즉, 무인인 소윤혜와 주현운에겐 효과적인 공격 수단이 없다는 소리다.

그나마 죽음을 품은 소윤혜의 참격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안 돼. 너무 강해.’

고작 그것만으로 목을 벨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존재를 먹어 치웠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 괴물.

저 괴물이 직감의 원인이었음을 깨닫고, 소윤혜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조금 강해졌다고!’

까득!

오만했다.

이 무림에서 어딜 가든 당당하게 나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고 해서 자신이 최강이 된 것은 아니거늘.

안일하게 직감에 의존해 연인을 사지로 끌고 오다니.

이를 악문 소윤혜는 몸을 비틀었다.

“후우.”

가볍게 호흡을 뱉어 내는 것과 동시에, 날아오는 일격을 주현운이 막아 낸다.

그와 동시에 호흡이 멎는 순간, 소윤혜의 도가 움직였다.

자책은 그다음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도주.

그리고 이런 적을 상대로 도주하려면 적을 어느 정도 저지할 필요가 있었다.

불굴의 육체를 지닌 괴물을 그나마 붙잡아 둘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자신의 도는 약간이지만 적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으니까.

그러니.

“퇴각해!!”

카가가가각!

주현운이 만들어 준 빈틈으로 파고들어 괴물의 목에 상처를 내는 것과 동시에 괴물을 밀어낸 소윤혜가 소리쳤다.

듣지 않을 리 없었다.

이성에 의한 판단은 언제나 존중해 주는 아이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 버텨야 할 것은 자신임을 모를 리가 없었다.

모든 조건이 자신에게 이곳에 남으라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적을 조금이지만 벨 수 있고, 화경치고는 신법이 느려 도주에 적합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 사지로 주현운까지 데리고 들어온 장본인이다.

그러니 남아야 할 것은 당연히 자신이다.

[키긱! 안 되지. 나는 둘 다 먹어야 배가 찰 것 같거든.]

“꿈 깨시지.”

물론 비틀린 미소를 흘려 대는 괴물이 달려들었지만, 소윤혜는 도를 휘둘러 적의 공격을 쳐 냈다.

“네 목구멍을 지나갈 수 있는 건 내 도(刀)뿐이니까. 물론,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지나가겠지만!”

가벼운 도발과 함께 도를 휘두른 소윤혜는 철저하게 구축한 제공권으로 적의 공격을 방어했다.

도발하긴 했지만, 자신이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주현운이 순순히 물러날 테니까.

한동안은 확실하게 방어에 집중해서…….

쩡!!

소윤혜를 향해 공격을 쏟아 내던 괴물의 목을 주현운의 검이 강타했다.

분명 검을 휘둘렀는데, 마치 쇳덩이끼리 부딪친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먹먹해진 귀에 불만을 품기도 전에 소윤혜는 화를 냈다.

“뭐 하는 거야! 퇴각하라니까!”

“뭐긴, 누님이 직감을 믿고 여기까지 왔으니까 나도 이번엔 내 직감을 믿는 거지.”

검을 쥔 채 소윤혜의 반대편에 서서 괴물을 노려보는 주현운은 오랜만에 특유의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겨눴다.

“여기서 누님을 두고 가면 안 될 것 같거든!”

“그런 억지를!”

“여기까지 들어온 것도 누님의 억지 때문이잖아!”

땅을 박찬 주현운의 검이 괴물을 노린다.

그런 주현운을 타박하면서도 소윤혜 또한 몸을 움직였다.

몇 년을 함께하며 몸에 익은 서로의 박자에 맞춰 움직인다.

[으음?!]

손발이 뒤섞이고, 절호의 순간에 완벽한 틈을 만들어 꿰뚫는다.

위험한 공격은 주현운이 막아 내고, 만들어진 틈을 소윤혜가 베어 낸다.

강인한 육체에 걸맞은 무지막지한 육체적 능력을 지닌 적을 완벽에 가까운 기술로 농락한다.

상대가 휘두르는 매서운 주먹은 허공을 가르는 헛손질이 되고.

상대의 몸을 사라지게 만드는 돌진은 벽에 머리를 박는 머저리 짓이 된다.

완벽에 가까운 합격술과 극도의 재능으로 무장한 이들이 풀어내는 무술이 합쳐진 결과물.

그야말로 무(武)의 경지로 적을 농락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강자를 상대로 이렇게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는 교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나.

[귀찮게 하는군!]

그것도 어디까지나 유효한 공격 수단이 있을 때나 성립하는 이야기다.

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위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거기다 이쪽은 끊임없이 움직여 체력을 소모하고 있는데, 적은 별다른 체력의 소모도 없이 그저 몸으로 공격을 받아 내고 있었다.

소윤혜가 처음 만들어 낸 상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육체의 강도도, 재생력도 정말 말이 안 될 만큼 무시무시한 괴물.

마치 철백을 상대로 대련을 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철백의 육체는 강기를 날카롭게 벼리면 어떻게든 상처 정도는 낼 수 있는데, 이 괴물은 그것도 안 된다는 것 정도?

‘……영력을 담아야 해.’

그렇기에 주현운은 전투를 하면서 끊임없이 고심했다.

지금 소윤혜의 도가 조금이지만 상처를 낼 수 있는 이유는 참격에 죽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담는 것으로 영적인 영역에까지 개입하기에 적에게 닿고 있었던 것.

단순히 영력을 담는 거라면, 적과 조우했을 때부터 하고 있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영력을 담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술법의 영역에 도달한 일격.

그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무인에게 술법의 영역에 도달한 일격이란 무(武)를 뛰어넘은 무언가를 의미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뛰어넘어야 하는가?

치열하게 펼쳐지는 전투의 와중에.

활로를 찾기 위해 시작된 고민이 주현운을 이끌었다.

‘나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어.’

소윤혜는 오로지 죽음만을 추구하는 무학을 익히고 있고, 문율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대해의 무학을 좇고 있다.

부처의 형태를 빌린 것은 그 포용력을 흉내 내기 위해 따라 하다가 나온 결과물이다.

유예린은 은(隱)을 토대로 한 무학을 닦고 있고.

하지만 자신은 이렇다 할 특징이 없었다.

그냥 모든 것을 다 잘했으니까.

특정 부분을 짚어서 따로 집중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스스로 만들어 낸 무명검도 그저 나아가기 위해 수련을 쌓으면서 나온 결과물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이름을 붙이지 않아 무명검인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이대로 정체되는 것인가?

그런 의문을 품은 순간, 주현운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자신이 지금 기준으로 삼고 있는 이들은 이미 자신과 동렬에 선 자들이 아닌가?

그들은 벽을 넘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벽을 넘는 고민을 할 때 그들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맞지 않다.

그렇다면 누구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무림맹주? 강하긴 하나, 그의 전투는 그닥.

살존? 너무 은신에 특화되어 자신과는 별개였다. 언뜻 보았던 단검술은 훌륭했지만.

그렇다면?

“……천위 형.”

흑룡단주.

무(武)로는 벽을 넘지 못했으나.

술(術)로는 벽을 넘은 사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필요한 건 무(武)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술(術)을 채우는 것이다.

이미 몰아(沒我)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전투를 이어 나가던 주현운의 검이 변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캉!

[음?]

주현운의 공격을 귀찮다는 듯이 쳐 냈던 괴물이 미약한 통증에 미간을 찡그렸다.

여태까지 없던 통증이 찾아왔다는 것은…….

날파리 같았던 적의 변화에 괴물은 이제 여유를 버렸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둘 중 하나는 없앤다.

그렇게 결정한 괴물은 의도적으로 빈틈을 드러냈다.

적이 확실하게 힘을 실어 베어 낼 수 있는 틈을.

그 틈을 찌르기 위해 깊게 들어온 소윤혜를 단숨에 붙잡아 사지 중 하나를 끊어 버릴 것이다.

인간은 나약하니 사지 중 하나가 날아간 것만으로 전투력은 급감할 터.

그 뒤에 천천히 하나씩 사냥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시작.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

“흡!”

[크아아!]

의도적으로 드러낸 빈틈을 적이 찌르지 않고 작은 견제만 하자 괴물은 거칠게 포효했다.

왜?

여태까지의 행동을 보면 이 정도 빈틈은 무조건 파고들어야 정상인…….

“고생시키네.”

입꼬리를 올린 소윤혜의 모습에 괴물은 즉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줄어든 공격.

검을 늘어트리고 선 주현운의 눈이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크하하하하하!]

기회다.

그것을 직감한 괴물은 망설임 없이 주현운을 향해 뛰어올랐다.

전투 중에 머저리처럼 서 있다니.

단숨에 그 목을 뜯어내 주마.

콰가가각!

그런 결의를 가지고 뛰어올랐던 괴물은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참격에 몸을 비틀 수밖에 없었다.

점점 날카로워지기 시작한 공격은 이제 무식하게 그냥 받아들였다간 힘이 깎여 나갈 테니까.

어떻게 쌓은 힘인데, 이런 잡놈들에게 큰 손실을 볼 순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안정적인 길을 찾으려 한 것이 괴물의 최대 패착이었다.

[잘근잘근 씹어 주마.]

주현운을 지키기 위해 소윤혜가 가로막은 순간, 괴물은 이미 승기는 자신 쪽으로 넘어왔다고 확신했다.

저 머저리 같은 놈을 지키기 위해 계집은 무리를 할 것이고,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저 계집만 처리하면 그 뒤에는 조금 번거로운 사냥감만이 남을 뿐이니까.

그렇게 확신한 괴물이 소윤혜를 몰아붙였다.

때리고, 할퀴고, 물어뜯는다.

방어를 위해 회피를 최소한으로 줄인 소윤혜의 몸에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베이고, 뜯긴 상처가 늘어나면서 흘러내린 피가 옷을 적신다.

백 호흡이 되기도 전에 상처로 가득해진 소윤혜가 비틀거렸으나, 괴물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크아아아!]

이번에야말로 먹어 치우겠다는 듯 거칠게 달려든 괴물은 자신의 쇄골을 베고 들어오는 소윤혜의 도를 그대로 받아 냈다.

쇄골에 박힌 도를 소윤혜가 뽑아내지 못하는 틈을 노려 그대로 돌진한 괴물이 양팔로 소윤혜를 붙잡았다.

[끝이다!]

그대로 쩍 벌린 주둥이로 소윤혜의 목을 물어뜯으려는 그 순간.

“미안해.”

잔잔한 목소리의 사과와 함께 소윤혜의 몸이 사라졌다.

단숨에 괴물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소윤혜는 잠시 멍하니 주현운을 바라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불공평한 세상이네.”

“누님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피식피식 웃는 소윤혜를 보며 마주 웃어 준 주현운은 손을 뻗었다.

화상으로 가득했던 피부가 매끈하게 돌아온 손으로 주현운은 검을 만들어 냈다.

“이런 느낌이었네.”

강기로 만들어 낸 검을 손에 쥔 주현운은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베어 낸다.

검(劍)이라는 것의 본질을 그대로 담아낸 참격이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갈랐다.

[크아아아악!!]

본능적으로 들어 올린 팔이 반쯤 잘려 나가고 난 뒤에야 겨우 공격을 흘려 낸 괴물이 괴성을 토해 냈다.

그런 괴물의 포효를 들으면서도 주현운은 덤덤하게 자세를 고쳤다.

“아직 부족하네.”

한 번에 베어 내지 못한 건 아쉬워.

그렇게 생각하며 주현운은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내리긋는다.

[천무(天武)]

하늘을 품은 주현운의 무(武)가 세상에 현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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