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9화
558화-북경 (3)
뒷골목.
빈민가라고 하기에는 상태가 좋았고, 일반적인 거리라고 보기에는 분위기가 다소 흉흉한.
애매한 위험을 품은 그 길을 걸으며 소윤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상을 눈치챘다.
‘숨어 있어.’
이런 종류의 거리를 낯선 외지인이 걸어가면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살피기 마련이다.
왜?
소매치기 같은 자잘한 범죄 계획부터 구걸을 해도 될 사람인지 아닌지 파악해야 하니까.
혹은 그냥 궁금해서 살피는 경우도 많다.
이런 거리에도 아이들은 있으니까.
나이를 조금 먹은 아이들이 빼꼼 고개를 내밀어 상대를 살피고 소매치기를 할지 구걸을 할지를 정하고,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어린아이들은 순수한 호기심에 바라본다.
그런 시선들이 얽히고 건물에 숨어 있는 어른들의 경계심 가득한 시선까지 한 몸에 받아야 정상인 뒷골목인데, 여기엔 그런 시선이 전혀 없었다.
마치 겁에 질린 것처럼 모두가 구석에서 혹은 건물 안에서 고개를 처박고 떨고 있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은 그들의 그런 행동을 마치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었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누님.”
“그래.”
주현운도 마찬가지였다.
무림학관에 들어오기 전 어린 나이에 혼자서 무림을 떠돌았던 주현운은 오히려 이런 이상을 더욱 크게 받아들였다.
지금 황궁의 상황과 날뛰는 적들의 정체를 고려하면 이런 반응이 나올 만한 원인은 너무도 뻔했으니까.
그렇기에.
“일단 물러나자.”
주현운은 물러날 것을 권했다.
아마 학관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그라면 혹은 소윤혜와 친해지기 전의 그라면 이런 제안 따윈 절대 하지 않았을 거다.
아니, 설천위를 곁에서 지켜보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거다.
자신은 언제나 강했고, 강자로서 약자를 지키는 것이 당연한 자신의 의무라고 여기며 살아왔으니까.
위험에 처해 있을 것이 뻔히 보이는 이들을 두고 뒤로 물러난다는 선택 따위 아예 머릿속에서 떠올리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주현운은 변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가 세상을 인지하는 눈이 변했다.
자신은 강자였으나 그보다 더한 존재들은 항상 있었고, 그것은 언제나 멀지 않은 곳에서 위협으로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 위험한 곳에 소윤혜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왼팔의 화상이 화끈거리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주현운은 소윤혜의 팔을 붙잡았다.
“보고가 우선이야.”
정론을 말하는 주현운의 행동에 소윤혜는 잠시 멈춰 서서 고민했다.
아마 본래라면 자신이 먼저 철수를 말했을 거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동생들을 제어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주현운과 문율.
더럽게 강하기만 한 어린 동생들을 붙잡고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자신 정도니까.
이성적인 판단으로 물러났을 거다.
하지만.
“감이 안 좋아.”
이 거리의 희생자들이 불쌍해서?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감정적인 이유가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었지만, 이 골목에 들어오기 직전에 느꼈던 불안감이 소윤혜의 발목을 붙잡았다.
“지금 물러나면, 돌이킬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이유는 없고? 없겠지?”
“당연하지.”
그런 판단을 내릴 근거가 얼마나 있다고.
이 거리의 상황을 보고 위험한 일이 있을 거라는 건 누구나 추측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크나큰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는 건 순전히 감에 의한 추측일 뿐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지금은 물러나서 보고하고 모두를 이끌고 이 근방을 샅샅이 조사해서 얻어 낸 정보를 토대로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가슴을 간질이는 직감이 그런 판단이 최선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넌 가서 보고하고…….”
“싫어.”
그렇기에 타협안을 내놓은 소윤혜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딱 잘라 거절하는 주현운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소한 임무에 한해서는 말을 잘 듣던 애가 대체 왜?
“누이가 이성으로 내린 판단이 아니라 직감으로 행동한다면,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소윤혜의 곁에 서서 주현운은 검 위에 손을 올렸다.
“가자.”
이번에도 지켜 낼 테니.
* * *
골목길을 따라 걷던 소윤혜와 주현운은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같은 북경에 존재하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음습하고 비릿한 거리가 펼쳐졌다.
동시에 점점 더 진해지는 죽음의 냄새에 소윤혜는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던 그때.
“우우…….”
뒷골목에서도 더욱 뒷골목.
좁디좁은 건물의 틈 사이에서 빠져나온 손에 두 사람의 걸음이 멈췄다.
삐쩍 마른 아이의 손.
그 크기로 봐선 한창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라 귀여워야 할 손이 안쓰러울 정도로 말라서 뼈와 가죽이 달라붙어 있었다.
생이 그리 길게 남지 않은 듯 힘없이 흙바닥에 놓인 그 팔의 주인에게 다가간 소윤혜는 아이의 몰골을 확인하고 놀라서 숨을 멈췄다.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이는 대여섯 살 정도로 보였다.
제대로 먹지 못했을 테니 나이는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이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이었다.
팔뿐만이 아니라 어깨와 가슴까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비쩍 마르고 배만 불뚝 튀어나온 아이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울지도 못하고 있었다.
바짝 말라 거칠어진 입술을 혀로 훔칠 생각도 못 하고 그저 떨며 죽음을 기다리는.
“경계를 부탁해.”
“응.”
품에서 물주머니를 꺼낸 소윤혜는 아이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을 짜서 아이의 입가를 적셨다.
천천히.
조금씩 입가의 물기를 머금은 아이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입을 우물거리며 말을 꺼냈다.
“형아…….”
자신에게 물을 준 이가 누구인지도 확인하지 못하고 품으로 파고드는 아이를 부드럽게 끌어안은 소윤혜는 한숨과 함께 일어났다.
“현운아.”
“……누님, 나 싫어.”
“부탁할게.”
“아니, 절대로 안 돼.”
아이를 맡기려는 소윤혜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저은 주현운은 완고하게 거절했다.
“누님 혼자 들어가겠다고? 절대로 안 돼.”
“얘는 의원에게 데려가야 돼.”
의원에게 데려가야 한다.
그 말에 주현운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이었으니까.
아이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아마 이대로 두면 고작 몇 시진이면 숨이 끊어지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누님 혼자 여기에 두고 가는 건 말도 안 돼. 이 아이를 의원한테 데려가고 싶으면 누이가 데려가.”
“이곳에 오기로 한 것도, 조사를 하기로 한 것도 내 직감 때문이야. 당연히 내가 찾아야지.”
고개를 젓는 소윤혜의 대답에 주현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 돌아가자. 일단 이 아이부터 살리고 모두를 데리고 오면 돼. 연 소저도 있으니까 우리끼리 찾는 것보다 훨씬…….”
“말했잖아.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아이를 주현운에게 억지로 맡긴 소윤혜는 자신의 도를 쥐었다.
“기척을 줄이는 걸 포기하고 빠르게 움직여야겠어. 이 아이를 보니 확신이 들어.”
“누님!”
아예 본격적으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소윤혜의 모습에 어색하게 아이를 받아 든 주현운이 소리쳤다.
이대로 가게 둘 순 없었다.
소윤혜를 붙잡기 위해 아이를 바닥에 내려두려는 그 순간.
콰득!
무언가가 자신의 목을 물어뜯는 감각에 주현운의 팔이 움직였다.
단숨에 자신의 품 안에 있던 아이의 목을 붙잡고 자신에게서 떨어트렸다.
“현운아!”
뒤에서 들린 파육음과 순식간에 퍼지는 진한 피 냄새에 몸을 돌린 소윤혜는 눈을 부릅뜨고 도를 휘둘렀다.
단숨에 내질러진 도가 주현운의 살점을 입에 문 아이를 베었다.
서걱!
아무런 저항도 없이 목을 내어준 아이.
목을 완전히 끊어 놓진 못했으나 죽음을 확신해도 될 정도로 깊게 들어간 일격이었지만, 소윤혜는 안심하지 않았다.
“흡!”
확실하게 끝낸다.
그런 각오를 가지고 다시 한번 도를 휘두르는 순간.
“키익?”
덜렁거리는 목을 비튼 아이가 손을 휘둘렀다.
단숨에 베여 나가는 손.
하지만 기이할 정도로 도에 달라붙는 저항에 소윤혜의 도는 끝을 내지 못하고 멈췄다.
“누이!”
그리고 그사이에 태세를 정비한 주현운이 아이를 그대로 던져 버렸다.
허공으로 떠오른 몸을 비틀어 땅에 착지하는 아이.
그런 아이를 날카롭게 주시하며 소윤혜의 곁으로 붙은 주현운은 목의 상처를 눌러 지혈했다.
“괴이?”
“잘 모르겠어.”
주현운의 추측에 고개를 저은 소유혜는 미간을 찡그렸다.
분명 아이를 끌어안았을 때의 느낌은 살아 있는 아이의 그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움직임을 보면 도저히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크르으르으.”
억지로 눌러서 붙인 목에서 배어 나오는 피를 뚝뚝 흘리며 이쪽을 노려보는 아이는 명백히 사람의 것이 아닌 눈을 하고 있었다.
마치 짐승 같은…….
“아.”
머릿속에 번뜩이는 정보에 소윤혜는 도를 움켜쥔 손에 힘을 더했다.
들은 적이 있었다.
설천위가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예상되는 적들의 특징.
그중에 하나.
인간을 짐승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과 마주했을 때 취해야 할 대처법을 떠올린 순간, 소윤혜는 도를 움직였다.
‘동정심을 품지 마.’
설천위의 한마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소윤혜의 도는 죽음을 품고 공간을 가로질렀다.
화강(化罡)을 넘어 슬슬 다음 경지에 도달하려고 하는 소윤혜의 일격이 아이의 목을 벤다.
“형…… 아…….”
흐릿하게 초점이 돌아온 아이가 허물어지며 내뱉은 단어에 소윤혜는 조용히 도를 거뒀다.
“축생이야.”
“……그런 것 같네.”
“설천위가 경고한 힘들 중에서 가장 악질적인 힘.”
그것은 짐승의 길이다.
인간임을 포기한 자들이 가는 길.
인간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자들이 가는 길.
그럼에도 인간이고 싶었던 자들이 가는 길.
까득!
이를 악문 소윤혜는 자신이 베어 낸 아이의 시체를 삼매진화로 태워 버렸다.
내공의 쓸데없는 낭비였으나,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면에 들지도 못하는구나.”
불타는 육체에서 혼이 빠져나오지 못한다.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육체를 완전히 잃고 이승을 떠나야 할 아이의 혼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어떤 곳을 향해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 끝에는 필시 이 상황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있을 터.
고개를 돌려 주현운의 상처를 살핀 소윤혜는 고심했다.
상처가 깊지는 않았으나, 전투를 지속해도 좋을 정도는 아니었다.
“……돌아가자.”
그렇기에 소윤혜는 복귀를 결정했다.
자신이 돌아가지 않으면 주현운은 돌아가려 하지 않을 테니.
직감에 의지해 나아갈 수 있으나, 주현운의 죽음을 감내하며 갈 순 없었다.
주현운이 소윤혜를 놓지 못하는 것처럼, 소윤혜도 그를 놓지 못하니까.
그런 소윤혜의 결정에 소윤혜를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던 주현운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들이 술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일단 연 소저를 데리고 와서 살피…….”
주현운을 데리고 골목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자신의 감각을 자극하는 무언가에 소윤혜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이상하군. 조금 다른 것 같은데?]
기이하게 갈라진 목소리가 그녀의 목덜미에서 울려 퍼졌다.
소윤혜의 반응이 반 박자 늦어 버린 그 순간.
모든 신경을 그녀에게 집중하고 있던 주현운의 검이 치솟았다.
소윤혜의 등 뒤에서 그녀의 목덜미에 숨결이 닿았던 괴물의 턱이 치솟는다.
초식은 없이 무리(武理)만을 담은 일격은 사람의 머리를 베다 못해 아예 없애 버릴 위력이었으나, 상대는 턱이 치솟는 정도에서 멎었다.
[흐음.]
단숨에 소윤혜를 끌어안고 거리를 벌린 주현운은 멀쩡하게 고개를 내리는 상대와 마주한 순간, 깨달았다.
‘위험하다.’
눈앞에 있는 괴물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였다.
기이하게 비틀어진 인간의 형체에다 듬성듬성 털이 나고 짐승의 송곳니를 가진 일그러진 외모의 소유자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맛있겠군.]
입맛을 다시는 소리와 동시에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적을 인지한 그 순간, 주현운은 검을 휘둘렀다.
쩡!!
공간이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건물들이 크게 흔들린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주현운은 그들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사냥에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눈앞의 괴물은 별다른 충격도 없었다는 듯 멀쩡하게 자신을 노리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