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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51화 (551/624)

제551화

550화-영약 (5)

[이게 무슨?]

꿈틀거리는 자신의 앞발을 보고 백호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완전히 절단되어 바닥을 뒹굴었던 앞발이 고통스럽긴 했으나 확실하게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움직이지 마시오. 영물의 치유력을 모르니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그래도 제대로 붙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오.”

신기해하는 백호에게 주의를 준 신의는 뒷발을 들고 작업을 시작했다.

신의의 손에 들린 바늘을 따라 끝없이 늘어나는 실.

그 실이 백호의 상처와 잘린 발의 절단면을 잇는다.

[허어, 신기하구나.]

[짐승의 몸에도 가능한 것이었다니…….]

“뭐, 다르긴 하지만, 공통점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신의가 없었다면 아예 시도도 안 해 봤을 방법이긴 하다.

말이 혈관과 근육, 신경 모두를 잇는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실제로 현대에서도 확대경을 착용한 숙련된 의사들이 손가락 하나를 붙이는 데도 3~5시간, 상태에 따라 7, 8시간도 걸리는 대수술이다.

그걸 고작 몇 호흡 만에 한 치의 실수도 없이 해내는 건 연습만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걸 아예 팔 단위 통째로 하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고.

그걸 가능케 만든 것은 신의라는 이름에 걸맞은 놀라운 재주와 설천위가 가르쳐 준 현대의 지식을 수용해 인체를 이해한 명석함 때문이다.

물론, 헛짓거리를 한 죄인들을 이용한 인체실험이 있었기에 이렇게 빨리 숙달한 것이기도 하고.

현대에서는 윤리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한 신기다.

거기다 설천위에게 사용할 경우 추가되는 이점이 있다.

절단면을 봉합하는 순간, 설천위의 [회복]이 상처를 치료할 수 있어 순식간에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점과 애초에 설천위의 영력을 실로 사용했기에 아무런 거부반응도 없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이점으로 설천위는 단순 절단의 경우 아무런 문제도 없이 전투를 이어 나갈 수 있게 된 거다.

물론.

[으으음…….]

“고통은 참아. 그것까진 어떻게 못 하거든.”

절단면을 수천 번 찌르며 봉합하는 수술이다.

그 통증은 쉽사리 참을 수 없는 수준이고, 처음에 신기해했던 백호도 이어지는 뒷발의 수술에서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연신 신음을 흘려야 했다.

그런 백호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은 설천위는 어느새 백호의 볼에 달라붙어 있는 다람쥐의 등을 간질였다.

“영물의 재생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주일이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는 되겠지.”

보통은 무리지만, 그래도 영물인데 일주일이면 충분할 거다.

“사냥은 힘들 수도 있겠지만, 뭐 내가 적당히 짐승 하나 잡아다 놔줄 테니 얘랑 나눠 먹으면서 회복에나 집중해.”

[……고맙다.]

“뭘, 별거라고.”

대충 손을 휘적거린 설천위는 현태중을 실체화시켰다.

“……뭐냐?”

“에이, 아시면서.”

“나는 사냥꾼이 아니다.”

“그럼 얘들 굶길 거예요?”

“……쯧.”

장난스러운 설천위의 물음에 백호에게 붙어 있는 다람쥐를 잠시 바라보던 현태중은 혀를 차곤 동굴 밖으로 나갔다.

“자, 그럼 식량은 아저씨가 구해다 줄 거고, 동굴 정리부터 좀 할까.”

죽었다고는 해도 영물인 백호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정도의 짐승이다.

그 살점과 비늘은 위험하니 정리하는 게 좋았다.

소매를 걷어붙인 설천위는 거침없이 움직이며 뱀의 사체를 치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강제로 실체화를 당한 암영의적까지 합세해 동굴을 치우니 생각보다 오래지 않아 청소가 끝났다.

“좋아. 이걸로 끝.”

영력으로 만들어 낸 물로 대충 피까지 씻어 낸 설천위는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끝났나.”

설천위의 청소가 끝나자, 진즉에 봉합을 끝내고 다른 상처가 없나 살피던 신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봉합은 끝났다. 무리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면 충분히 제대로 움직일 거다. 물론, 원래대로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다.”

[상관없다. 잃었던 다리를 되찾은 것만으로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이니.]

죽음을 각오했다가 다시 살아갈 여력을 되찾은 백호는 짐승이라곤 생각되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못 들었군.]

“아, 설천위. 그냥 천위라고 불러.”

[그렇군. 알겠다. 천위.]

고개를 끄덕인 백호는 뱀의 사체가 모인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저 뱀의 사체는 전부 네게 주마. 내단도 있을 테니 가져가라.]

“네가 먹는 게 낫지 않나? 회복도 빨라질 텐데?”

저쪽도 영물의 일종이니, 어마어마한 보양식일 텐데?

[쌓아 올린 기의 종류가 달라서 지금 같은 몸 상태로 먹으면 오히려 독이 될 뿐이다. 썩기 전에 네가 먹는 것이…….]

“그런 거라면 문제없지.”

백호의 말에 설천위가 손을 뻗자, 순식간에 뱀의 사체가 얼어붙었다.

“한 석 달은 갈 거야. 몸이 회복되면 먹으라고.”

[……천위, 아까부터 궁금했던 거다만 인간은 맞는 거겠지?]

천계를 탈출한 신, 뭐 그런 건가?

깊은 곳에 살며 인간은 그리 많이 만나 본 적이 없지만, 이런 일이 가능한 인간이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무엇보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영력이 그야말로 숨이 턱턱 막힐 정도여서 백호의 눈은 의심으로 가늘어졌다.

“인간 맞거든. 거참, 누가 봐도 인간이구먼.”

[그건 아니구나.]

[난 내가 귀신에 홀린 것이 아닐까 고민하곤 하지.]

[허허, 참 신기한 세상이야.]

이 영감탱이들이 대체 뭐라는 거야.

귀신에 홀리긴 누구한테 홀려.

헛소리를 하는 혼들을 대충 쫓아낸 설천위는 백호에게서 떨어져 자신의 품에 안긴 다람쥐를 쓰다듬었다.

“뭐, 마침 나도 휴식을 취할 필요도 있고, 근처에서 수련하면서 도와줄게. 회복이나 해.”

원래 자리 잡았던 동굴은 뭐 없었으니까, 한동안 여기에서 살까.

* * *

[노인.]

[허허, 천 노라고 부르게.]

[그렇군. 천 노, 천위는 인간이 맞는 건가?]

[요즘은 나도 의심스럽긴 하지만, 빌빌거리던 시절부터 봐 온 결과 인간은 맞네.]

백호의 동굴 앞.

산에서 가지고 내려온 바위를 짊어지고 자신이 만든 조그마한 발판 위에 올라가 굴슬법을 하고 있는 설천위를 바라보며 백호는 혀를 내둘렀다.

저 먼 곳에 사는 대장 성성이도 저런 기행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사람이 저만한 바위를 짊어지고 저리 움직인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린가.

짐승의 시선으로 봐도 말이 안 되는 수련에 혀를 내두르던 백호는 동굴 앞에서 큼지막한 솔방울을 들고 설천위를 따라 하는 딸의 모습에 흐뭇하게 웃었다.

[귀엽구나.]

[그게 무슨 헛……. 아, 저 아이 말인가. 허허, 귀엽긴 하구먼.]

설천위를 향해 하는 말인 줄 알고 깜짝 놀랐던 천마는 동굴 앞에서 앙증맞게 놀고 있는 다람쥐를 보고 웃었다.

그렇게 흐뭇하게 다람쥐의 재롱을 즐기던 백호는 이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상하군.]

[무엇이 말인가?]

[천위가 당신들을 부리는 것, 예전에 이 근방에 자리 잡고 있던 자들이 쓰던 것과 흡사한 것 같은데…….]

[예전에 이 근방에 자리 잡고 있던 자들?]

그들이 혼원패공과 비슷한 것을 사용했다고?

백호의 말에 천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자신이 천마신공을 만들어 준 것을 계기로 혼원패공은 그대로 사장됐다.

그 비급을 동떨어진 작은 사당에 묻어 두고 그대로 잊어버린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혈패황이 어떻게 그 비급을 찾을 수 있었겠는가.

그 후대에 혼원패공을 익힌 자들은 있을 수가 없는…….

[……자네, 혹시 나이가?]

[아버지께서 아직 지상에 계실 때 나를 낳으셨으니, 꽤 오래됐다. 인간의 기준으로는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께서 아직 지상에 계셨을 때.

즉, 반대로 말하면 지금 백호의 아비는 지상에 없다는 소리다.

느낌상 죽은 것 같진 않으니…….

이게 말이 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천마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던 그때.

[잘됐군. 그치들이 소중하게 여기던 곳이 저쪽 동굴 아래 잠들어 있으니, 천위에게 주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

좋은 생각이라는 듯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백호는 아예 벌렁 누워 벽에 몸을 기대고 다리를 쭉 뻗었다.

[이 다리가 나으면, 가도록 하지.]

* * *

[이쪽이다. 천위.]

일주일 뒤에 자리에서 일어난 백호는 멀쩡하게 움직였다.

설천위의 예상보다 더 단단하게 붙은 다리로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는 걸 보니, 영물의 재생력은 설천위의 예상보다 더 뛰어난 게 확실해 보였다.

“여기로 가면 뭐가 있다고?”

[너처럼 혼을 부리던 자들이 쓰던 것을 모아 놓은 곳이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 당연한 걸 왜 묻느냐. 봤으니 아는 것 아니겠느냐.]

“아니, 그걸 어떻게 봤냐고?”

신화시대 바로 직후잖아.

백호의 대답에 눈이 가늘어졌던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왜 데려가는데?”

[감사의 표시로 뱀의 사체를 넘기려 했는데, 네가 싫다고 하니 다른 거라도 쥐여 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니라.]

“아니, 필요 없다니까.”

백호의 말에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고개를 저었다.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내가 뱀의 사체를 안 건드린 건 걔가 나 때문에 너랑 싸운 것 같아서라고.”

뱀 영물이 왜 가만히 있던 백호를 공격했겠는가?

영역에서 쫓겨나 살 곳을 찾다가 그랬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쫓아낸 사람은?

누구긴 누구야. 설천위지.

미칠 듯한 영력을 사방으로 뿌려 대는데, 영물이 안 도망치고 배겨?

가만히 숨어서 설천위가 지나가길 기다리던 뱀이 끝내 참지 못하고 도망치다가 백호랑 조우해 싸웠을 가능성이 컸다.

[양심은 있어서 다행이구나.]

[솔직히, 너무 기가 막힌 우연이긴 했지.]

“봐 봐, 저 영감들도 동의하잖아.”

왠지 짜증 나지만, 일단 맞는 말이니까.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우리를 구해 줬다는 그 행동에 담긴 선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충분히 퇴색된 것 같은데…….”

소방관이 산불을 끄는 거랑 담배꽁초를 버려서 산불을 일으킨 인간이 산불을 끄는 거랑은 느낌이 전혀 다른데.

원인을 스스로 제공해 놓고 내 알 바 아니라면서 산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 그게 바로 천하에 몹쓸 인간 아닐까?

[너는 그렇게 느끼겠지만, 자연에서 살아온 내겐 충분히 차고 넘칠 정도의 선의다.]

“……그래, 뭐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뭐라도 준다는데 나야 고맙지 뭐.”

결국 백호를 설득하길 포기한 설천위는 얌전히 백호를 따라 움직였다.

꽤나 긴 시간을 걸어 도착한 동굴.

덩굴과 낙엽으로 교묘하게 가려져 있던 입구를 드러낸 백호가 먼저 들어갔고, 설천위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한참을 들어가 인간이 만든 인공물을 조우하는 순간.

[이, 이건!]

놀란 천마의 목소리 뒤로 백호의 덤덤한 목소리가 나왔다.

[아버지의 피로 만든 영약이다.]

“……응?”

뭐로 만든 영약이라고?

순간, 백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한 설천위가 되묻기도 전에 백호가 설명을 붙였다.

[옛날에 너처럼 혼을 다루던 인간의 정점에 있던 자가 서쪽을 수호하는 아버지와 싸우고 그 피를 모아 만든 영약이다. 후대를 위한 것이라며 만들었지만, 후대에 이걸 먹을 정도로 숙련된 자가 없었다고 하더군.]

혼을 다루던 인간의 정점.

서쪽을 수호하던 아버지.

후대를 위한 것.

몇 가지의 단어와 함께, 놀란 천마의 반응이 머릿속에서 합쳐지는 순간.

“할배! 백호를 죽였어?!”

[시, 실망했습니다! 형님!]

[어찌 인간의 편이었다는 사람이 사방을 지키는 사신수를!]

설천위와 다른 이들의 탄식에 천마가 발끈했다.

[안 죽였다! 이놈들아!! 죽이긴 뭘 죽여! 죽을 고생을 해서 쫓아낸 게 고작이었느니라!]

어디서 그런 음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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