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9화
548화-영약 (3)
“아오!”
절벽 위.
겨우겨우 정상에 도달한 설천위는 욱신거리는 몸을 힘겹게 움직이며 바닥을 기었다.
“천마 할배, 이거 맞는 거예요?”
[그릇을 키우는 데 단련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더냐?]
“아니! 그 뭐 무협지 같은 거 보면 막 명상을 거듭하다가 깨달음을 얻어서 환골탈태! 막 그러던데요!”
[그런 꿈같은 성장은 네 주변 녀석들에게나 가능한 이야기다.]
가능은 하구나.
“누구요?”
[으음, 일단 네 녀석의 혼약자인 유예린과 백유, 그리고 삼귀라 불리는 아이들에다 서하영 그 아이도 가능할 것이고, 무해 그 아이도 될 것이다. 창천단을 맡고 있는 남궁선도 되겠구나. 철백은 으음……. 그 아이는 워낙 특이해서 확실하진 않구나.]
“나 빼고 거의 다 된다는 소리잖아요!”
[그야 그렇지. 그 나이에 화경에 오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 줄 아느냐? 다들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수준의 재능들이다.]
밸런스는 그냥 하수구에 처박혔구나…….
망겜 밸런스에 절망한 설천위는 한숨을 내쉬면서 몸을 일으켰다.
재능이 없다고 투덜대기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
“후우, 다음은요?”
[……좋구나. 그럼 내려가자꾸나. 반대쪽으로 돌아서 내려가면 올라오는 데 걸린 시간이랑 얼추 비슷하겠구나.]
“그렇게 멀리 돌아가요?”
[아니, 힘들게 돌아갈 거다.]
스르릉.
검을 뽑은 천마는 설천위의 뒤에 서서 그의 등을 쿡 하고 찔렀다.
[달리거라. 내 검을 피하면서.]
“미…… 친……!”
욕을 다 내뱉기도 전에 팔이 베였음을 깨달은 설천위는 달렸다.
천마의 공격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진 않았으나, 혼을 자극해 고통을 안겨 준다.
팔이 잘린 것 같은 통증에 이를 악물면서도 설천위는 달렸다.
순식간에 옆구리로 파고드는 검을 피해 상체를 비틀었다.
본능적으로 펼친 제공권.
그 안에 들어오는 검격을 피해 내며 설천위는 달렸다.
내려가는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것이야! 까딱 잘못하면 내년쯤에 동굴로 돌아가게 될 게다!]
“으아아아! 이 미친 영감탱이가!!”
기어코 목이 베인 설천위는 그 충격에 땅을 구르면서도 재빨리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달린다.
여전히 뒤에 붙어 있는 천마의 검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고, 화려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았지만.
“커헉!”
자연스러웠다.
설천위가 혈주에게 자신의 팔을 내어줬을 때보다 더.
혈주가 자신의 권능으로 팔을 잘라 냈을 때보다 더.
마치 검이 움직이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 안에 담긴 너무 깊은 무리를 헤아릴 능력이 없는 설천위는 그저 발악할 뿐이었다.
“컥!”
물론, 지금 당장은 그저 부질없는 발악이었을 뿐이지만.
* * *
설천위가 천마의 지도 아래 수련하게 된 지 일주일.
수련하는 내내 설천위의 곁에 붙어서 그의 상처를 살피던 신의는 기절한 설천위의 가슴을 살피며 경악하고 말았다.
[거의 다 회복됐군…….]
대체 어떻게?
아무리 설천위가 기이한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쉽사리 나을 상처가 아니었다.
상처가 깊기도 깊었거니와 그 상처를 남긴 존재가 존재인 만큼 그 여파가 남아서 상처의 재생을 방해하고 있었는데…….
[혼을 자극한 것만으로 이렇게까지 빨라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일세.]
신의의 놀람에 답을 한 천마는 기절한 설천위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쪽이 답인 것 같군. 육체가 서서히 혼을 따라가고 있어. 느리긴 하지만,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것 같군.]
그 과정에서 상처에 깃든 혈주의 힘 또한 자연스럽게 분해해 흡수해 내고 있었다.
[으음…….]
천마의 말에 설천위의 몸을 꼼꼼히 살핀 신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육체가 변하고 있군요. 기(氣)를 담는 그릇이 약간이지만 커진 것 같습니다.]
[그건 시작일세. 혈패황, 그자는 압도적인 육체에 수만의 혼을 흡수한 것으로 혼의 균형을 끌어올려 맞췄지. 천위는 그 반대로 하는 것뿐일세.]
[압도적인 혼에 맞춰 육체를 키운다는 겁니까?]
[그렇다네.]
핵심은 그것이다.
혼원패공을 익힌 이들이 가장 크게 착각하는 것.
[깨달음을 얻어 둘 사이의 균형이 맞는 게 아닐세. 균형이 맞았기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
혼원패공은 본디 인간의 학문.
사람이란 혼과 육체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안정적인 상태가 될 수 있다.
그것으로 외부의 어떤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완성된 존재가 된다.
인간의 몸으로 세상의 이치를 뒤트는 신과도 싸울 수 있는, 그런 존재가.
혼원패공은 그것을 위해 만들어졌고, 실제로 그것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힘을 주는 배움이다.
다만, 그렇기에 그것을 익히기 위해선 본디 양쪽의 재능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필수였다.
혼원패공을 대성한 자신과 혈패황은 그러했다.
그렇지 못했던 후대의 천마들이 결국 혼원패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힘을 추구하는 마교의 교리를 따라 무(武)에 집착하다가 끝내 혼(魂)에 집어삼켜져 폭주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영적인 부분에 집착하면 끝내 육신이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설천위가 지금 그 경우에 해당하고.
다른 점은 설천위의 영적 재능은 여태껏 천마가 보아 온 그 누구보다 뛰어났고, 그가 품은 영력은 천마조차 쉽사리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는 것 정도?
솔직히 말해서 설천위가 화경에 오르며 환골탈태를 겪은 시점부터 천마는 육체가 혼을 감당하지 못해 무너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실체가 있는 육체는 실체가 없는 혼보다 강인하니까.
웬만한 수준의 영력으로는 화경급의 육체를 무너트릴 수 없다.
문제는 설천위가 그 웬만한 수준을 넘어 버렸다는 것이지.
[일단, 육체를 혼에 맞추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맞겠지. 한동안은 이렇게 훈련할 걸세.]
[음, 괜찮을 것 같습니다. 상처가 완전히 낫기만 하면, 이보다 더 강도 높은 수련도 괜찮을 겁니다.]
[좋은 소식이군.]
신의의 대답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 천마는 자신의 미래도 짐작하지 못하고 쿨쿨 자고 있는 설천위를 보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스승은 아무나 섬겨선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마.]
인생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여라.
* * *
“앙천산에서 전투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전투의 흔적이요?”
“마을 하나가 통째로 전멸해 있었습니다. 조사 결과, 혈사련의 것으로 파악됩니다.”
황보세가에서 전해 준 소식에 설란은 미간을 모은 채 고민했다.
혈사련.
분명 설천위가 황보세가와 관을 이간질하는 자들의 정체를 혈사련이라고 지목했다.
그들을 포로로 잡아서 설천위가 그 혼을 집어삼킨 뒤에 혈사련의 지부로 보이는 곳이 궤멸되었다…….
떠나기 직전, 설천위의 태도를 떠올린 설란은 확신했다.
“함정이었구나.”
“공자가 함정인 걸 알고도 갔다는 소리인가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섬뜩하게 빛나는 유예린의 눈동자에 씁쓸하게 미소 지은 설란은 동생을 위해 화제를 돌렸다.
“전투가 끝났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적을 추적 중인 것 같구나.”
[왕!]
“이 아이가 건강한 걸 보니, 일단은 안심하고 움직여도 되겠어.”
당차게 짖는 청랑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설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 이번 임무에서 일단 천위는 전력에서 제외시켜야겠구나.”
“그러네요.”
설란을 따라 일어선 유예린은 품에 안은 청랑을 쓰다듬으며 설란과 함께 방을 나섰다.
지금 그녀들이 있는 곳은 황보세가가 아니라 우참정의 별채였다.
운주가 머물고 있는 별채.
운주를 지키기 위해 교대로 누군가가 항상 이곳을 지키고 있었고, 지금은 설란과 유예린이 지키고 있었다.
보통은 고 호위가 지키고 있긴 하지만, 지금은 고 호위가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물론, 고 호위가 없음에도 두 사람이 느긋하게 자신들의 방에서 보고를 들은 이유는 따로 있지만.
“짜잔!”
“신기하구나.”
“나는 그리 길게 만들지 못하지만, 그래도 꽤 오래 갈 거야! 헤헤.”
자신의 영력으로 만들어 낸 꽃을 내미는 연화의 모습에 이제 막 정원으로 나온 설란과 유예린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상황이 그리 좋다고 할 순 없었지만, 저런 모습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미소를 짓던 것도 잠시.
“공자님.”
“설 부단주, 무슨 일이오?”
“흑룡단주의 행방에 대한 실마리가 어느 정도 잡혔습니다. 이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렇군.”
최대 전력의 부재.
그 사실을 전해 들었음에도 별다른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운주는 연화에게 받은 꽃을 품 안에 넣고 일어섰다.
“그렇다면 움직이지. 내일 아침 황궁으로 향하도록.”
“예. 준비하겠습니다.”
황궁 탈환을 위해 칼을 갈던 이들이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이곳에서 황궁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바닷길.
해안가를 타고 올라가는 뱃길이다.
가장 빠르며 가장 위험한.
적을 꾀어내기 위한 최적의 길.
“나는 자네들을 믿고 나아가겠네.”
황제는 스스로 미끼가 되어 배에 올랐다.
* * *
죽을 것같이 힘든 수련이란 뭘까?
맷집 강화를 위해 처맞는 수련?
심폐 지구력 향상을 위해 이를 악물고 달리는 수련?
근력 강화를 위해 말도 안 되는 무게를 들어 올리는 수련?
삐끗하는 순간,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지는 섬뜩한 수련?
뭐가 가장 힘든 수련인지 개인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설천위의 의견은 간단했다.
“끄으으으으으으으읍!”
그딴 거 없다.
힘든 훈련은 지금 내가 하는 훈련이다!
날카로울 정도로 뾰족 솟은 봉우리.
그곳에 서서 지름이 5m는 되어 보이는 바위를 어깨에 짊어진 설천위는 이를 악물고 다리를 구부렸다.
“으으으으으으읍!!”
숫자를 센다는 건 불가능하고, 그저 악을 쓰는 목소리만을 토해 내며 설천위는 기어코 굽혔다.
그리고.
“흐으으으으읍!!”
다시 편다.
최소한의 면적 위에 서서 극한의 균형 감각을 요구하는 상태로 거대한 바위를 짊어지고 하는 스쿼트.
혼들은 굴슬법(屈膝法)이라고 부르는 그 훈련을 설천위는 반복하고 있었다.
한계를 뛰어넘어서.
매일매일.
며칠째 이것을 반복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만.]
“으아아아아!”
그만하라는 천마의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버티는 데 성공한 설천위가 바위를 허공에 던져 버렸다.
이대로라면 바위가 떨어져 봉우리가 무너져야 정상이었으나.
너무나도 간단히 허공에 멈춰 선 바위의 아래에는 칠흑의 손이 그것을 받치고 있었다.
“후우……. 이리도 쉬운걸.”
이리저리 어깨를 돌리며 몸을 푸는 설천위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어디 가서 술사라고 하면 돌을 맞을 것 같은 근육들이 격하게 꿈틀거리며 그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지만, 설천위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었다.
“이거 아직도 힘든데, 괜찮은 거 맞아요? 그때 보니까 황궁에서 조만간에 뭔가 사달이 날 것 같던데…….”
[어쩔 수 없지 않으냐. 네 녀석이 무식하게 영력만 키운걸. 대체 어떻게 하면 영력이 이렇게 끝도 없이 성장하는 건지…….]
투덜거리는 설천위의 불만에 오히려 화를 낸 천마는 고개를 저었다.
당초의 예상보다 육체와 혼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의 진척이 과하게 느렸다.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다.
이 무식한 놈이 육체로 영력을 감당해 내지 못해 주위로 뿌려 제어하는 과정에서 영력의 크기를 더욱 키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체가 혼을 따라가는 속도와 비슷하게 혹은 그보다 더 빨리 혼이 성장하고 있으니 균형이 맞춰질 리가 있나.
아니, 대체 어떻게 하면 이 정도로 커진 영력이 이런 속도로 계속 커질 수가 있느냐고.
[……영약이라도 찾아서 먹여야 하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던 천마는 영약을 찾을지 말지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천마가 고심하던 그때.
“응?”
몸을 풀던 설천위는 뿌려 놓은 영력에 걸린 무언가에 고개를 갸웃했다.
“영물?”
자신의 영력을 두려워해 터럭도 안 보이던 녀석들이 갑자기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