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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47화 (547/624)

제547화

546화-영약 (1)

“아무래도 조금씩 간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니 이상할 것도 없지.”

소식을 가져온 부하의 보고에 우참정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천위가 사라지고 일주일.

각 성의 권력자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그들의 반응을 기다리기 시작한 지금, 당연히 내부에서도 움직임이 있었다.

설천위가 협박했던 관리들.

설천위가 손도 대지 않고 포로를 죽였던 모습에 잔뜩 겁을 집어먹었던 관리들이었으나, 며칠 만에 마치 금붕어처럼 그때의 공포를 망각해 버렸다.

붙어서 관리해 줘야 할 설천위가 급하게 사라진 채 무소식이니 공포를 되새길 틈이 없어서겠지.

다만, 그들을 마냥 뭐라 할 수도 없는 것이 애초에 그들이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황제의 은패(恩牌)를 가져오긴 했으나, 그것이 곧 황제의 말이란 뜻은 아니었다.

황실은 별다른 이변을 보이지 않았고, 그러한 소식도 듣지 못한 이들에게 뜬금없이 나타난 황제의 은패는 의심하기에 충분한 물건이었다.

갈취 혹은 절도를 한 인물이 사칭하는 것은 아닌지.

충분히 그런 의심을 품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 은패로 진행될 일은 그런 의심을 품은 채로는 함께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의심을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말이 황궁 탈환이지 황제가 황궁에 탈 없이 있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역모나 다를 바 없는 행동이니까.

그렇기에 우참정은 그들의 움직임을 그냥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그들에겐 자신과 같은 확신이 없을 테니까.

어디에 적이 숨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 전부에게 그분의 정체를 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었다.

“황궁의 정보를 물어오면 그것 또한 나름대로 쓸모가 있으니, 한동안은 그대로 두게.”

“예.”

“단, 간악한 자들과의 연결 고리가 보이면 그 즉시 보고하고 무림맹의 술사분께 부탁해 확인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부하를 내보낸 우참정은 잠시 가만히 앉아 있다가, 서랍에서 종이를 꺼냈다.

자신이 쓴 글들이 보이고, 그 사이사이에 깔끔한 설란의 글씨가 보였다.

그리고 그 맨 아래.

-역도의 역천은 성공했다. 우참정, 지금부터 군사를 모으고 황보세가를 향한 압박을 해제하라.

정갈하면서도 힘이 있는 글씨.

“……십 년 전과 똑같습니다.”

그 옛날, 황궁에 잠시 학사로 머물 때 짧게 글을 가르쳐 주었던 그분의 글씨 그대로였다.

그분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으나, 자신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황궁의 치열한 권력 암투에 질색하며 책무를 저버리고 그곳을 떠난 불충한 신하이지만.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으리라.

설령 이 목숨이 다하더라도.

* * *

“흐음.”

황보세가가 자리한 창읍.

그곳에 도착한 유예린은 느긋한 걸음으로 걸으며 도시의 분위기를 살폈다.

딱히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아 뭔가 큰 문제가 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 도시의 분위기.

“멀쩡하네.”

“그러게요.”

그런 유예린의 생각과 같은지 소윤혜와 유예린의 대화에 주현운과 문율도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히 조용한데요.”

“흩어져서 정보를 모을까요?”

모른다면 정보 수집이 먼저다.

주현운과 문율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유예린은 품에서 꿈틀거리는 녀석의 움직임에 빙긋 웃었다.

“왜? 답답하니?”

[왕!]

빼꼼 고개를 내밀고 짖는 청랑의 턱을 간지럽혀 주던 유예린이 웃는 순간.

“컥!”

“음? 왜 그래요?”

“아니, 별거 아니야.”

청랑을 향해 답답하냐고 묻는 유예린을 보며 ‘답답할 만하지.’라고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주현운의 뒤통수를 뽑지 않은 도로 후려친 소윤혜가 손을 저었다.

쪽팔려서 말도 못 하겠네.

[왕! 왕!]

소윤혜가 눈빛으로 주현운을 책망하는 사이, 유예린의 가슴 사이에서 기어코 빠져나온 청랑이 땅에 안착했다.

그리고 이내 꼬리를 흔들며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앞서가는 청랑의 모습을 일행 모두가 흐뭇하게 바라봤다.

쟤는 평생 귀여울 거야.

치명적인 귀여움에 모두가 숨을 멈추고 그 뒤태를 감상하니,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것을 느낀 청랑이 휙 돌아섰다.

[왕! 왕!]

어서 따라오라는 듯 빠르게 짖는 그 모습에 다시 한번 흐뭇하게 웃은 일행은 알겠다는 듯 그 뒤를 따랐다.

일행이 따라오는 것을 확인한 청랑은 그제야 다시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앙증맞은 몸짓으로 걸어가는 청랑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행복한 시간도 잠시.

[왕!]

도착했다는 듯 자리에 주저앉는 청랑의 모습에 부드럽게 청랑을 안아 든 유예린은 고개를 들어 대문을 바라봤다.

떡하니 걸려 있는 ‘황보세가’라는 글씨가 새겨진 현판.

“여기에 우리 사람이 있다는 거구나.”

[왕!]

청랑의 당찬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유예린은 긴장한 얼굴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던 무사들에게 다가갔다.

“무림맹에서 왔습니다. 흑룡단의 단주 대리, 유예린이라고 합니다.”

“흑룡단……! 확인하겠습니다.”

흑룡단이라는 말에 눈을 크게 뜬 무사는 빠르게 유예린이 내민 패를 확인하고 문을 열어 주었다.

“가주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이 친구의 안내를 따라 연무장으로 향하시면 됩니다.”

“연무장이요?”

손님이 왔는데, 바로 연무장으로 보낸다?

이상한 소리에 유예린이 고개를 갸웃하자, 무사는 경직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흑룡단의 부단주께서 가주님과 비무 중이십니다!”

“아아, 알겠습니다.”

단박에 상황을 깨달은 유예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행과 함께 안내를 따라갔다.

대가문의 면모를 드러내는 잘 정돈된 길을 걷다 보니, 일행은 금세 연무장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쾅!! 쾅!!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굉음에 그곳이 연무장임을 확신한 유예린은 안내를 맡은 무인을 지나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좋구나!!”

“흐으으읍!!”

호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도를 휘두르고 있는 황보중과 술법으로 강기를 흉내 낸 것을 주먹에 두르고 맞서고 있는 연화.

그 둘의 격전으로 난장판이 된 연무장의 바닥까지.

누가 먼저 시작하자고 한 건진 모르겠지만.

“변하셨군요.”

본래라면 체면 때문에라도 연화와의 비무를 꺼렸을 황보중이 가문 사람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은 채 비무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은 꽤나 진기했다.

그가 변했음을 직감한 유예린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걸 사람에게 다가갔다.

“언니.”

“예린이 왔니? 천위가 말한 지원군이 너였구나.”

“흑룡단에서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인원들을 데려왔어요.”

“과연, 든든하네.”

유예린의 뒤로 따라온 세 사람을 확인한 설란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의 전력이면 별동대를 만들 구색은 대략 갖춰진 셈이었다.

여기에 황보중이 직접 참여한다고 했으니 화경급 고수가 다섯, 거기에 화경급 수준의 술사가 하나.

이 정도면 황제를 암살하러 간다고 해도 충분한 전력이니 별동대로서 부족함이 없으리라.

다만.

“천위가 소식이 없어.”

“……공자가요?”

“그래. 일주일 전쯤에 급한 용무가 있다고 사라지더니 아예 소식이 없어.”

아무리 전력이 강해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설천위는 무조건 별동대에 합류시킬 생각이었다.

동생한테 의지만 하는 못난 누나라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설천위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아무리 화경급 고수들이 많이 합류한다고 해도 채울 수 없는 부분이니까.

설천위는 그만큼 강했다.

그런 설천위에게서 연락이 없다는 건 그에 상응하는 큰 문제가 벌어졌다는 소리였다.

“일단 조사 중에 있는데……. 앙천산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는 정보가 있어.”

“그럼 바로…….”

“가지 않아.”

“……언니.”

“천위가 이곳을 맡겼고 우리는 황궁에 집중해야 해, 무엇보다.”

유예린이 안고 있는 청랑의 머리를 쓰다듬은 설란이 작게 미소 지었다.

“이 아이를 보면, 천위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건 확실하지.”

“……그건 그렇죠.”

“그리고 정말로 생명이 위험한 상태라면 이 아이에게도 문제가 생겼을 테니까 일단은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해.”

안심해도 된다.

그것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유예린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설란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스스로 말한 대로 일단은 설천위가 살아 있는 게 확실하니, 섣불리 그를 구하겠다고 움직이지 말고 지금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 옳았다.

안도하는 설란을 잠시 바라보다가 청랑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한 유예린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불안감에 입을 다물었다.

며칠 전, 청랑이 이상할 정도로 끙끙대며 힘들어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니 무슨 문제가 있었냐는 듯 멀쩡해져서 별생각 없이 넘겼지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청랑의 턱을 간지럽히는 손가락처럼 유예린의 마음 또한 불안감이 간질간질 차올랐다.

* * *

“더럽게 넓네!!”

높디높은 산의 정상.

그곳에 선 설천위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에 호탕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커헉!”

[이 머저리 놈이! 가슴에 구멍 뚫린 놈이 뭐 하는 짓이냐!]

“아으! 더럽게 안 낫네.”

전이 직후, 폭주하는 영력을 무식하게 하늘을 향해 토해 낸 설천위는 또 다른 위험에 직면했었다.

가슴의 상처.

마지막에 혈주를 죽이는 과정에서 뻥하니 뚫려 버린 가슴의 상처가 뒤늦게 죽음의 위험으로 다가온 것이다.

싸움에서 내공은 많이 쓰지 않아서 어떻게든 지혈 정도는 하는 데 성공했지만…….

[중상이다. 네놈은 지금 당장 마을로 내려가서 휴식을 취해야 해!]

겨우 지혈 정도만 성공했다는 게 문제였다.

가슴을 꿰뚫은 일격은 뼈를 부수고 폐를 꿰뚫었고, 그 탓에 설천위는 지금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회복 스킬로도 치유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요할 정도의 중상을.

거기다 어떻게든 붙여 놨던 팔도 회복할 필요가 있으니 설천위의 몸 상태는 가히 최악이라 할 만했다.

신의의 말대로 지금 당장 병상을 잡고 드러누워서 약만 먹고 쉬어야 마땅한 상태였지만…….

“이 상태로 어떻게 가요?”

[그러니 그것도 못 하는 지금, 이렇게 나대지 말란 소리다!]

호통을 치면서도 신의는 차마 설천위보고 마을로 내려가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 설천위가 마을로 내려가면 병상에 드러눕기도 전에 그 마을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할 테니까.

전이 직후, 하늘을 향해 영력을 토해 내며 겨우 진정시킨 설천위는 그 뒤에 몸을 살리기 위한 응급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끝도 모르고 늘어난 설천위의 영력은 단순히 총량이 늘어난 걸 넘어서서 재생력까지 말도 안 되게 미친 듯이 솟아났다.

육체에 비해 과분할 정도의 혼과 영력은 그 몸을 좀먹기 시작했고, 설천위는 어쩔 수 없이 영력을 끊임없이 방출하는 형태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전이문처럼 무지막지하게 영력을 잡아먹는 술법은 육체에도 어느 정도 충격을 가하기에 남발할 수 없으니, 일단 몸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 전이문으로 이동할 수 있어도 설천위는 그러지 않았을 거다.

이유는 너무도 간단한데, 지금 설천위는 육체의 격이 부족한 상태에서 육체에 심각한 부상까지 입은 상태라 영력을 전부 갈무리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여휘가 말하길, 현재 설천위는 신의 영역에 도달한 존재들과 비슷한 수준의 영력을 뿜어내고 있다고 했다.

즉, 보는 것만으로 마음에 신앙심이 생기는 혈주와 비슷한 수준의 영력을 갖췄는데, 그 영력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뿜어내고 있다는 소리다.

아마 그의 곁에 일반인이 서면 순식간에 혼이 찌그러져 사망하리라.

그런 이유로 설천위는 마침 사람이 드문 곳에 떨어진 김에 야생 생활을 하면서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정상에 올라서서 소리친 건 그 과정에서 나온 일종의 보상 심리라고 해야 하나.

“아으! 죽겠다!”

답답하네!

주변의 나무가 기이하게 변하는 모습에 결국 계속 자리를 옮기고 있는 설천위는 정상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웃었다.

“십만대산을 이렇게 오네.”

끝없이 펼쳐진 봉우리.

거대한 산맥이자 무림의 끝 중 끝.

천마신교가 자리하고 있던 서쪽의 끝.

“……천마 할배가 보낸 건 아니죠?”

[헛소리 마라, 이놈아.]

설천위는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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