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6화
535화-운주 (7)
“이 바보 같은 아들놈이!!”
달려든 황보중의 주먹이 황보척의 안면을 강타했다.
그리고.
“……아버지?”
살짝 휘청거린 후 자세를 바로잡는 황보척의 모습에 황보중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봤던 아들의 실력에 조금 더 높게 쳐서 주먹을 휘둘렀다.
코뼈가 부러지고, 몇 보 정도의 거리는 날아갈 정도의 위력으로.
그런데, 아들은 그걸 막지도 않고 정면으로 받아 냈음에도 약간 휘청거리는 게 전부일 뿐 꿋꿋하게 서서 자세를 지켰다.
즉, 자신의 예상보다 아들이 더 강하다는 의미다.
문제는 아들이 막지 못했다는 것.
“선을 넘어 버렸구나……. 어리석은 아들놈아!!”
거칠게 허리를 비튼 황보중의 주먹이 붉게 물은 아들의 얼굴을 노리고 파고든다.
다만, 예상치 못한 기습과 달리 이번에는 정면에서 나온 일격이기에 황보척도 제대로 반응했다.
팔을 들어 주먹을 막는다.
쾅!!
내공과 내공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을 중심으로 모래 먼지가 치솟았다.
보통이 아닌 위력이 담긴 일격.
그리고.
“정녕! 선을 넘어 버렸어!!”
분노와 슬픔이 담긴 황보중의 외침과 함께 그의 몸에서 거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정녕!! 네가 사술에 손을 댄 것이냐!!”
믿고 싶지 않다는, 최후의 희망을 품은 절규가 터져 나왔지만, 그런 아비를 바라보는 황보척의 눈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선을 넘는 건 언제나 제가 아니라 위선만이 가득 찬 세상입니다. 아버지.”
입은 열었지만, 대화를 할 생각은 없다는 듯 거칠게 주먹을 뻗는 황보척.
이윽고 난타전이 시작됐다.
권기를 두른 두 사람의 주먹이 서로를 치고받는다.
안면을 후려치고.
복부를 꿰뚫고.
가슴을 파고든다.
노리는 곳은 단순했다.
머리와 몸통.
보통의 사람이라면 맞는 순간, 의식을 잃거나 끔찍한 고통에 손발이 멈출 만한 급소만을 노리고 주먹을 내지른다.
서로 사전에 합의라도 한 것처럼, 상대를 잡는 금나수나 발을 쓰는 각법은 쓰지 않는다.
주먹 대 주먹.
두 사람의 싸움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리고.
[대충 상황 설명은 이 정도야.]
“거참.”
슬쩍 나온 설천위는 설란의 전음을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곤 고개를 저었다.
관과 황보세가의 충돌이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다.
황보척이 타락하는 일은 심심치 않게 있었고, 황보중이 무림맹의 일에 열중하다가 때를 놓친 일도 많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경우에 대부분 황보세가는 멸문이라는 결말을 맞이했다.
황보중이 살아서 완전한 멸문이라고 할 순 없었지만, 여하튼 산둥에 있는 본가는 대체로 멸문의 수순을 밟았다.
명분은 황실에게 있고, 술법에 당해 제정신이 아닌 황보세가의 무인 따위는 적들의 손에 가볍게 농락을 당하니까.
다만.
“이건 꽤나 심각한데.”
황보척의 상태가 예상과 달랐다.
황보척은 황보중의 장남으로, 황보세가의 차기 가주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다.
실제로 그의 어머니도 그의 동생도 그를 가주로 밀고 있었기에 이변이 없는 한 가주가 될 인물이기도 하고.
때문에, 흑룡학관에서 개처럼 처맞고 돌아온 뒤에도 웬만하면 흔들림 없이 성장한다.
약간의 고난을 겪기도 하고, 나름대로 자잘한 이야기를 거치며 성장하긴 하지만…….
이 정도로 타락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뭐가 원인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바뀐 게 한두 가지여야지.
황보척이 복귀한 학관은 육도의 게임과 달리 재능을 폭발시키지 못하던 이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이름을 날렸고, 흑룡학관과의 친선전 결과는 유례없이 독특했다.
설천위는 워낙 바쁘게 다녀서 신경 쓰지 못했지만, 아마 여러 가지 요인들이 뒤섞여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온 것일 터.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할 일에나 집중해야…….”
……겠…… 지?
응?
‘내가 잘못 봤나?’
뭐지, 눈이 침침한가?
고개를 갸웃하고 눈 사이를 꾹꾹 누른 설천위는 다시 눈을 떴다.
묘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화상투성이의 무인.
느껴지는 기세가 익숙하다.
[형왕이로구나.]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
응, 맞네.
확인 사살이다.
혼들의 대답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고, 듣고도 이해하지 못한 연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형왕?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이름인데?
고 호위 아저씨, 사실은 유명한 사람이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연화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형왕의 옆에 있는 소년을 바라본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네.
‘……황제가 왜 여기에 있지?’
죽거나 황궁에 갇혀 있거나 항상 둘 중 하나였는데?
* * *
설천위가 끊임없이 황궁을 고려하면서도 단 한 번도 황궁에 직접 찾아가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의미가 없어서.
현 황제와 만난다고 한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였다.
지금은 또 모르지만, 아무튼.
현 황제는 급사한 전 황제를 대신해 어린 나이에 황좌에 오른 인물이다.
고작 열 살에 황좌에 올라서 7년을 황제의 자리에 앉아 있던 인물.
암투가 판을 치는 황궁에서 어린 소년이 무려 7년이나 버텼다는 건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실상을 보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현 황제는 꽤나 능력이 좋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상황 때문에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그의 주변에는 실력과 충성심을 고루 갖춘 이들이 있었음에도 끝내 폐위되거나 암살당할 정도로 상황이 극히 안 좋았다.
때문에 황실은 반드시 진압해야 하고, 어떻게든 견제를 해야 하는 곳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황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물론 황궁의 상황을 해결하면 황궁의 병력이 아군이 되기도 하지만, 그건 대부분의 경우에 불가능한 이야기다.
일단 황궁의 상황을 완전히 정리한다는 것은 그 무리의 중심에 설 황제가 살아 있고, 또 활발하게 활동해야 함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황궁에 도착하기도 전에 현 황제는 죽고 꼭두각시가 세워지는데, 그게 가능할 리가?
따라서 거의 모든 유저들이 황궁의 전력은 계산에 넣지 않는다.
딱 황궁에서 열리는 연옥의 틈만을 틀어막고, 게임의 난이도를 낮추는 데 집중한다는 소리다.
그래서 설천위도 그랬다.
황궁은 신경 쓰긴 했지만, 예의 주시하진 않았다.
황궁은 정치의 장이다.
단순히 무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고, 괜히 그곳에 힘을 뺄 바에는 힘으로 해결 가능한 무림의 일에 더 집중하는 게 옳았으니까.
오존회담에서 황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한 것도 황제를 구한다는 게 아니라, 황실에서 날뛰는 음지 세력들을 정리하고 연옥의 틈이 더 벌어지는 걸 막아야 한다는 의도로 말한 것뿐이다.
즉, 황실의 병력은 아예 아군으로 계산하지도 않았다는 소리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육도에서 황실의 병력을 끌어들일 수단이 아예 없는가?
그렇진 않다.
대부분 거의 모든 유저들이 황궁의 전력을 계산에 두지 않는다는 말은 소수의 유저들은 황궁의 전력을 계산에 둔다는 소리였다.
현 황가의 성은 주(朱) 씨.
그리고 육도의 주인공들 중 유일하게 성이 주(朱)인 인물이 있다.
주현운.
주현운이 유저들을 위한 치트캐 소리를 듣는 첫 번째 이유는 말도 안 되는 천무지체의 재능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 혈통 때문이다.
상당히 먼 황제의 친척.
즉, 억지를 쓰면 황위를 이을 명분을 주장할 수 있는 인물이 주현운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그것으로 치트캐 소리를 듣는다는 소리는 뭐다?
황실의 전력은 게임의 난이도를 단숨에 뒤바꿀 정도로 강대하다는 소리다.
음지의 세력에게 당해서 찢기고 너덜너덜해진 황궁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쥐어짜 내는 병력의 숫자는 가히 압도적이다.
관의 영향력이 아무리 전국에 골고루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황실의 이름으로 움직이는 건 아예 수준이 다르다.
문제는 주현운이 황실의 혈통을 인정받으려면 황궁에서 온갖 똥꼬 쇼를 해야 한다는 거지만…….
‘황제가 살아 있으면?’
그리고 그 황제가 구명의 은혜를 입고 이쪽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그딴 귀찮은 과정 따위는 전부 치워 버리면 되지 않나?
황보중과 황보척이 미친 듯이 난타전을 벌이는 사이, 운주, 즉 현 황제 주운을 발견한 설천위는 깊게 고심했다.
육도의 세계에서 최종 결전은 어디서 벌어질지 모른다.
황궁일 수도 있고, 무림맹일 수도 있고, 사천맹일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최고의 조건을 갖춘 곳에서 연옥의 문이 열리면 그곳이 바로 최종 결전의 장소가 된다.
그리고 무림 곳곳을 오가며 설천위가 일을 벌인 탓에 지금 최종 결전의 장으로 가장 유력한 곳은 단연코 황궁이다.
설천위가 개입한 적 없으니 온갖 술법들이 난무할 테고, 권력의 욕망에 매몰된 인간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곳이니 제물도 넉넉하다.
최적의 공간.
그리고 그 최적의 장소로 자연스럽게 끼어들 수 있는 소재…….
주운을 바라보던 설천위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거뒀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란 누이가 저쪽을 소개하지 않은 건 정체를 모르고 있거나 확신하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단 말은 저쪽에서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소리니까…….
‘일단 장단을 맞추자.’
숨기고 있는 정체를 억지로 까발려 봤자 경계심밖에 더 사겠어?
팔이 한 짝 없는 걸 봐선 진짜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겨우 살아난 것 같으니, 경계심의 수준이 장난이 아닐 거다.
일단은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게 맞았다.
마침 황보세가이고, 이번에 벌어진 일은 황실과도 연이 있으니…….
‘잘 해결하다 보면 어떻게 이어지겠지?’
음음.
그래, 조심스럽게 접근하자고.
스스로의 판단에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아직도 서로의 안면에 주먹질을 하고 있는 부자(父子)를 바라봤다.
“저저, 패륜아 놈.”
아버지가 애틋하게 훈계하시는데, 얌전히 처맞아도 부족한 시점에서 주먹질을 하고 있네.
쯧쯧, 혀를 찬 설천위는 가슴 앞에 손을 모았다.
황보 놈이 패륜아인 건 그렇다고 치고, 지금 상황이 됐으니 나쁘지 않은 기회다.
황제가 제 정체를 숨기고 있으면 드러내고 싶은 마음을 먹게 만들면 그만이지.
“단주님?”
설천위에게 다가온 연화의 눈이 격렬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설천위가 움직이는 영력의 흐름을 선명하게 느끼고 볼 수 있는 연화이기에.
“미, 미쳤어요?”
연화의 목소리에는 정말 오랜만에 당황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런 연화의 반응에 운주, 아니 주운 또한 긴장했고 형왕마저 함께 긴장하는 그 순간.
아군의 반응에 피식 웃은 설천위가 가볍게 손을 털었다.
“긴장할 필요 없어.”
아군 사격 같은 머저리 짓은 안 하거든.
[혹한진(酷寒鎭)]
불존과 사존을 가뒀던 혹한의 감옥이 대지에서부터 솟구치기 시작했다.
단숨에.
“거, 부모 자식 간에 머리 좀 식히쇼.”
“설가 놈! 나는 왜……!”
“자식의 죄는 부모의 죄, 모릅니까?”
자식이 패륜아 짓을 하면 부모가 책임을 져야지. 음음.
따끔하게 두들겨 패쇼.
순식간에 두 사람을 얼음 속에 가둬 버리고, 그 위로 흑관까지 덮어 버린 설천위는 덜덜 떨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빙긋 웃었다.
“뭐 해요? 아직도 싸울 거예요?”
싸우면 죽는다.
본능에 새겨진 그 공포에 한껏 달아올랐던 기세가 급속도로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관의 병사들은 화살을 걸어 놨던 활을 느슨하게 풀었고,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던 황보세가의 무인들은 내공을 거둬들였다.
단 한 번의 무력시위와 기세만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설천위의 모습에 주운과 형왕이 감탄하는 그 순간.
“커헉!”
황보세가의 무인들 속에서 몇몇 이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도, 독이다!”
“감히! 독을 쓰다니!”
당황한 황보세가의 무인들의 공기가 다시금 끓어오르는 그 순간.
[“닥치고, 정지.”]
항거할 수 없는 힘을 품은 설천위의 목소리와 함께 무인들의 몸이 일제히 굳었다.
그리고 그들의 몸에서 느껴지는 영력을 감지한 설천위는 뒤틀린 미소와 함께 손을 뻗었다.
“오랜만에 보네. 혈사련.”
언여휘가 가장 가깝게 협력하는 조직.
황보세가를 건드린 놈들의 정체를 설천위는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