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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26화 (526/624)

제526화

525화-흑룡(黑龍)은 암운(暗雲)을 먹는다 (1)

“쓰레기 동생아.”

“……누나까지 왜 그래?”

“기막이라도 제대로 펼치지 그랬니.”

“그 상황에서 기막을 어떻게 펼쳐…….”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연무장에 선 설천위는 쓰레기를 바라보는 듯한 누나의 눈빛을 감내해야만 했다.

기막을 펼치지 못한 게 이토록 큰 타격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

“중간부턴 펼치지 않았니?”

“……왜.”

“조카가 둘이라…….”

“개소리 멈춰!”

가족한테 그딴 소리 듣고 싶지 않으니까!

오랜만에 누나에게 대든 설천위는 쓰레기를 보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누나의 시선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

이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으니까.

계속 싸우면 무조건 진다.

그렇게 판단한 설천위는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누나는 어떻게 할 거야? 초생단으로 복귀하게?”

“음.”

현재 초생단은 공동파를 돕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본맹에 남은 이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전력은 공동파에 가 있다고 보면 된다.

당연히 부단주인 설란도 그쪽 일을 돕는 게 맞지만…….

“아니, 나는 너와 함께 다닐 거다.”

“그래?”

“아무래도 네가 더 위험한 곳을 다닐 것 같으니까.”

그럼 더더욱 따라오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설란을 바라본 설천위는 담담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설란과 마주하고 피식 웃어 버렸다.

“그런데 누님은 너무 약한데?”

“……많이 건방져졌구나. 누나한테 대들기까지 하고.”

“흠흠, 그럴 실력이 되는 자의 자신감이라고 해야 하나?”

히죽히죽 웃는 설천위를 바라보던 설란은 가볍게 손을 털었다.

“기다려. 금세 따라가 줄 테니.”

“그런 자신감, 나쁘지 않아.”

다만, 쉽지는 않을 거다.

설천위 주변엔 전부 다 이십 대 초반에 화경에 올라서 착각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화경이라는 경지 자체가 평생을 수련해도 오를까 말까 한 경지다.

당장 공동파의 장문인만 봐도 화경이 아니라 초절정이지 않은가.

설령 구파일방의 장문인이라고 하더라도 초절정에 머무르는 경우가 꽤 있다.

심지어 소림의 방장 중에서도 평생을 초절정에 머물렀던 이들도 다수 있을 정도고.

물론 사실 방장이나 장문인의 경우 인덕이라는 특이 사항이 있어서 밑의 사제나 제자가 더 강한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현 소림의 방장인 불존은 스님답지 않은 호방한 성격이지만, 그 무력이 너무도 압도적이라 방장이 된 경우였다.

거기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올곧아서 인성적으로 딱히 문제도 없었고.

단지 불자로서의 깊이가 얕을 뿐이다.

그런 사람이 무해를 그렇게 키운 걸 보면 사람 자체는 참 괜찮은 인물이란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가장 큰 고비는 넘겼어.’

음지의 세력이 본격적으로 준동하기 시작한 지금, 정파와 사파가 쓸데없는 데 힘을 소모하지 않고 전력으로 그들을 몰아내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건 상당한 희소식이다.

단순히 정파와 사파가 서로를 견제하는 것을 넘어서서 내부 정치 싸움까지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 테니까.

오존의 이름으로 내미는 경고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멋모르고 날뛰는 놈들은 이름값이 아니라 맷값으로 다스려야 하겠지만, 그건 세상살이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우리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전력 증강에 힘쓸 거야.”

“흑룡단만 따로 움직일 생각이야?”

“어. 다른 사람들도 동의한 내용이야.”

그 맹주가 순순히 동의한 건 의외였지만, 뭐 맹주는 기본적으로 선하지 않을 뿐이지 멍청한 인물은 아니었다.

이해타산을 위해 움직이는 인물.

설령 그것이 정의가 아니더라도 자신 혹은 맹 전체의 이득이 된다면 눈감고 넘어갈 수 있는 인물이 바로 맹주였다.

이미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한 흑룡단을 놓아주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

“철백이랑 서 소저가 영약을 구해 올 거야. 그걸 먹고 전체적인 전력을 크게 끌어올릴 거야.”

“난전을 대비하는 거니?”

“어.”

흑룡단을 전부 끌고 가면 아마 사망자가 나올 거다.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안 나올 리가 없었다.

그러니.

“최대한 덜 죽도록, 죽을 때까지 굴려야지.”

* * *

“오존회담이라…….”

서하영과 함께 맹으로 복귀한 철백은 무해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천위, 그 친구가 이런 걸 준비시킨 이유가 있었군요.”

“아미타불……. 참으로 마음이 여린 분입니다.”

마음이 여리다는 평가가 어색해서 웃었지만, 철백도 딱히 부정하진 않았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적을 죽이는 건 그렇게 무자비하면서 아군의 죽음 하나하나에는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단지 그 아군의 범위가 매우 좁아서 무림맹의 다른 단체들은 그를 무자비하다고 여길 뿐이다.

“그나저나 기다렸다는 듯이 이런 서한을 보낸 걸 보면…….”

“아무래도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던 거겠죠?”

“아미타불……. 그렇지 않겠습니까?”

세 사람은 탁자 위에 놓인 서한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탁자 위에 놓인 서한에 담긴 내용은 간단했다.

훈련 일정.

설천위가 복귀하기 전까지 어떤 식으로 부하들을 굴릴지에 대한 내용이 아주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 * *

“그 앙큼한 계집, 아니 여자가…….”

유예린의 살벌한 시선에 설천위는 슬쩍 옷깃을 올렸다.

목에 남은 자국을 노려보는 유예린의 시선에 목이 뚫릴 것 같았으니까.

아니, 그냥 진짜로 검에 꿰뚫릴 것만 같았다.

대체 기세가 뭐라고 그런 짓을…….

설가에 머무는 며칠간 참으로 여러 일을 겪은 설천위는 의도치 않게 정식적으로 성숙해진 뒤에 가문을 떠났다.

사천맹으로 돌아가는 백유가 아쉬움이 가득한 시선을 보냈지만, 유예린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걸 전부 차단해 버렸다.

아니, 서로 화해하고 나 없을 땐 같이 차도 마시면서 노는 것 같더니 왜 내 앞에서만 굳이……?

“동생 쓰레기야.”

“누님, 그거 순서가 조금 바뀌지 않았어요?”

그건 내 본질이 쓰레기 같잖아.

동생이 뒤에 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나는 네가 참 부끄럽구나.”

“뭐요?”

“내 동생이 여심 따위는 개나 줘 버리는 이런 쓰레기로 자라다니……. 내 잘못이 크구나.”

“아 좀!”

내가 잘못했어?!

둘이 서로 경쟁하면서 동시에 쳐들어온 건데, 내가 어떡해!

거, 총군사 양반! 용자를 보는 눈으로 날 보지 마! 인정하지 말라고!

“쓰레기.”

“누님까지!”

“붕새 같은 쓰레기.”

붕새 같은 쓰레기라니!

붕새면 날개가 천지를 뒤덮는 거대한 새 아니야!

여자들의 날 선 비난에 힘들어하며, 설천위는 유일하게 남은 아군들을 돌아봤지만…….

“왜 형님이 쓰레기라는 거야?”

“문율, 넌 아직 알 필요 없다.”

주현운은 문율을 지키겠다는 듯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저 배신자 새끼.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배신감에 치를 떨던 설천위는 이내 포기하고 걸음을 옮겼다.

설가부터 무림맹까지.

복귀하는 길이 아무래도 썩 편하진 않을 것 같았다.

* * *

오존회담이 끝나고 일행은 별 탈 없이 무림맹으로 복귀했다.

오존이 전부 움직인 탓인지 오히려 적의 습격은 없었다.

설가로 갈 때도, 있을 때도, 돌아올 때도.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좀이 쑤실 정도였지만, 습격이 없다는 걸 불평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

‘놈들도 총력전을 준비하고 있는 거겠지.’

오존이나 되는 강대한 전력을 습격할 병력을 뺄 여유 같은 건 없다는 증거니까.

아마 상당히 빡빡하게 계획을 굴리고 있을 거다.

설천위가 입힌 피해가 상당했으니까.

특히, 전가의 몰락은 놈들의 자금줄과 제물 공급에 큰 차질을 빚게 한 업적이니 놈들도 슬슬 숨구멍을 뚫기 위해 움직일 때가 됐다.

자금이 없다면 벌어야 하고, 제물이 없다면 만들어야 하니까.

본격적으로 무림 전체에 흩어져 일을 도모할 거다.

그러니.

더럽게 바빠질 거다.

연무장으로 걸어가며 설천위는 오랜만에 패융을 불러냈다.

“슬슬 사냥을 시작해야겠어.”

[크르르르.]

기분 좋다는 듯 턱을 내미는 패융을 간지럽히며, 설천위는 연무장의 문을 열었다.

“다 모여 있었네?”

연무장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흑룡단의 시선이 일제히 설천위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어젯밤에 보여 줬던 눈빛과는 사뭇 다른 담담하고 차가운 눈을 한 유예린이 고개를 숙였다.

“명령을.”

포권과 함께 고개를 숙이는 유예린을 따라, 다른 이들 또한 일제히 포권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하명(下命)하여 주십시오!”

“하명(下命)하여 주십시오!”

우렁찬 외침.

그리고 그 외침을 들으며 단상 위로 올라간 설천위는 일제히 자신을 올려다보는 시선과 마주하고 웃었다.

“우리는 언제나 같다.”

담담한 목소리로 설천위는 자신의 몸을 휘감고 움직이는 패융의 위에 걸터앉았다.

점점 더 거대해지는 패융의 머리 위에서 설천위는 이제 흑룡단의 연무장 너머, 무림맹 전체를 눈에 담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악(惡)을 물어뜯어라. 흑룡들이여.”

무림맹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서 설천위는 은은한 내공을 담아 선언했다.

“검은 비늘이 붉게 물들 때까지.”

그것은 경고였다.

아직 무림맹에 남아 있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들을 향한 경고.

“멈추지 말고, 물어뜯어라.”

* * *

“……어찌하는 게 좋겠나?”

“끊어 내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총군사의 대답에 맹주는 눈을 감았다.

설천위에게 현태중이 붙어 있다는 건 알았다.

그가 원한을 가진 이들이 무림맹에 남아 있고, 설천위가 그런 이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다만, 설천위는 이성적인 면이 은근히 강해서 그들을 건들지 않고 지켜만 봤다.

선검단 부단주였던 정백의 경우, 우연찮게 설천위가 증거를 손에 쥐면서 일이 진행됐던 경우다.

정백은 주동자 중 하나였기에 특히 잔인하게 처벌을 받았다.

아직도 목숨은 붙어 있으나 거의 산송장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꼴로 시골에 처박혀 있다고 알려졌다.

사문에서도 연을 거의 끊어 버렸으니까.

문제는 다른 놈들이다.

현태중이 무림학관을 습격했을 때, 진짜 주동자 중 살아남은 녀석들은 셋.

그중 하나가 정백이고, 나머지 둘은 실력이 부족해 부단주급까지 못 올라가고 대주급으로 활동 중이다.

그 둘은 정백의 죽음에 한껏 겁을 집어먹고 완전히 몸을 사리고 있었고, 그 덕분에 설천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만.

“이런 증거를 들이밀면 어쩔 수 없습니다.”

“화산파와 황보세가에서 한바탕 난리를 칠 걸세.”

“그 둘을 막자고 흑룡단주를 쳐낼 순 없는 일입니다.”

담담한 총군사의 대답에 맹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흑암지규군이라는 괴물을 설천위가 제압할 때부터 슬슬 감이 왔지만, 이번 오존회담으로 확신했다.

설천위는 술사의 영역에선 이미 현경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

거기다 무공까지 완숙한 화경에 이르렀으니…….

만약 무공까지 벽을 한 번 더 뛰어넘는다고 한다면, 술법과 무공 두 분야에서 인간을 뛰어넘은 무시무시한 괴물이 된다.

거기다 지금도 양쪽 모두를 섭렵해 혈교나 사혈천과의 싸움에서 핵심 전력으로 활약하고 있는 인재다.

그런 인재를 고작 화산파나 황보세가의 등쌀이 무서워 내칠 순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그가 직접 나서서 현태중을 제압했던 것은 무림맹이 그 논란으로 사분오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지, 그 망종들의 사문이나 가문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지금의 맹은 고통을 감내하고 고름을 짜내야 할 시기입니다.”

“만독단주도 그렇고, 사람을 참 힘들게 하는군.”

과거의 업보가 쌓인 탓인가.

미간을 찡그린 맹주는 한참을 노려보던 보고서에 드디어 직인을 찍었다.

“흑룡단주 마음대로 하라고 하게.”

흑룡이 어떻게 날뛸지는 모르겠으나.

창밖에 모습을 드러낸 흑룡을 눈에 담으며 맹주는 쓰게 웃었다.

“……맹이 어수선해지겠어.”

순풍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란 건 확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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