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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18화 (518/624)

제518화

517화-공동파 (3)

“이, 이게…….”

설천위가 홀로 공동파로 향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다가 치솟는 불길에 기어코 공동파로 돌아온 설란과 성화린은 눈에 들어온 공동파의 상황에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

널브러진 사람들 사이로 핏덩이들이 보인다.

기절한 이들 사이에서 드물게 정신을 붙잡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든 주변의 동료들을 챙기는 모습.

혼란의 극치를 달리는 상황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따로 있었다.

“진짜였네요.”

“……응.”

저 멀리 특유의 인자한 미소 따위는 깔끔하게 날려 버린 공동파의 장문인이 지독한 살기를 뿌려 대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장문인 처소를 아예 박살 낼 작정인 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쏟아지는 검기.

거기에 대응해 기이한 술법을 쓰는 술사는 필사적으로 장문인의 검을 피하고 있었다.

공동파의 장문인이 협박에 의해 배신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다만, 성화린과 설란이 놀란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진짜로 해냈어…….”

기절한 사람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핏덩이.

꿈틀거리는 그것은 분명 고독이었다.

고독을 상대에게 심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가장 흔한 것이 입으로 먹이는 것이다.

먹으면, 고독은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장에 자리를 잡는다.

그 후, 적당한 곳에 이빨을 박아 넣은 뒤, 그곳을 마비시켜 그 자리에 매달린다.

민감한 사람이라면 거북함을 느끼기도 하는 이유.

가끔 매우 좋은 성능의 고독은 위장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빠져나가서 심장 같은 곳에 자리를 잡기도 하지만, 공동파 전원에게 먹일 정도로 대량생산한 고독이다.

그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만들 여유는 없었을 터.

다만, 그렇다고 해도 한번 자리를 잡은 고독을 손 하나 대지 않고 몸속에서 꺼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하물며, 술법으로 만들어 낸 고독이라고 해도 그 본질은 생명체.

그걸 단순히 기세만으로 기절시켜서 체외로 꺼냈다니.

‘하나씩 해도 힘든 일이야.’

그걸 대체 어떻게?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가득했지만, 성화린은 빠르게 고개를 털어서 잡념을 거뒀다.

지금 중요한 건 이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설천위가 만든 이 상황을 기회 삼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

“백화단.”

당황한 이들을 향해 걸어간 성화린의 부름에 주위에 있는 이들을 챙기려던 술사들이 고개를 들었다.

“단주님!”

“적의 기습에 당하셨다고…….”

당황한 단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성화린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삼개진(三開陣).”

단 한마디.

그 한마디에 당황했던 눈빛이 사라진 술사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산개했다.

순식간에 흩어지는 술사들.

그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봐야 할 초생단의 무인들은 이미 그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부단주님, 명령을.”

낭인, 중소 문파 출신이 대다수인 초생단.

그들은 자유분방했지만, 그와 반대로 구단(九團) 중 가장 엄격한 위계질서를 자랑했다.

부족한 개인의 능력을 메우기 위해 집단의 힘을 기른 결과.

그렇기에.

“초생단! 육을(六乙)!”

울려 퍼지는 설란의 지시에 초생단의 무인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2인에서 3인, 근처에 있는 이들과 어울려 빠르게 조를 짠 이들은 순식간에 술사들의 곁에 달라붙었다.

맹에서 합동훈련을 했던 대로, 술사들의 호위를 최우선으로 하는 진형을 잡은 초생단의 무인들은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순식간에 흉흉해지는 공기.

기절한 공동파의 무인들 중에서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는 자들도 있었지만, 초생단도 백화단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집중해야 할 것은.

“적의 습격을 대비하라!”

오로지 적의 공격이니.

순식간에 경계 태세를 갖춘 부하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설란은 빠르게 전장을 훑었다.

그리고.

‘없다.’

가장 먼저 이 상황을 만들어 낸 설천위가 없어진 것을 확인한 설란은 입술을 깨물었다.

못난 누나다.

어린 동생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무력하게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까득.

주먹을 움켜쥔 설란의 몸에서 은은한 냉기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곧 은빛의 꽃으로 변해 가니.

‘……설란.’

분노라는 감정이 저리도 고요하게 표현될 수 있음에 감탄하면서도 안타깝게 그녀를 쳐다본 성화린은 이내 고개를 돌려 주위에 집중했다.

‘진은 제대로 움직이고 있다.’

적의 내부와 외부를 단절시키는 형태의 진법을 펼쳤다.

적의 침입을 막는 대신 아군의 탈출도 막히는 배수진(背水陣)과 같은 진법이지만…….

‘이게 최선이야.’

공동파를 습격한 적들은 크게 두 무리다.

내부에서 문주와 장로들을 조종하고 있는 무리.

외부에서 악귀와 강시 등을 이끌고 습격하는 무리.

백화단과 초생단은 전자의 존재를 깨닫지 못해 뒤통수를 맞았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가장 큰 문제가 전자인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후자의 무리가 가장 큰 문제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시간으로 밖에서 인간 사냥을 하고 있으니까.

공동파 주위를 돌면서 민가를 습격하고 있었다.

당장 성화린과 설란이 습격당한 식사 자리도 문파를 공격하다가 실패해 물러난 적들을 어떻게 쫓아야 할지를 의논하는 자리였다.

부하들은 쉬게 하고 지도자들끼리 모여서 인원을 어떻게 분배할지 고민하는 자리였다는 소리다.

당장 전투가 끝나자마자 그런 점을 우려해 회의를 할 정도로 흉포한 녀석들이 이 인근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마구 사냥하고 있다.

공동파의 주위를 떠나지 않는 이유를 그때는 공동파의 무인들이 목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목적은 하나가 아닐 확률이 더 높아.’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그 정도로 전력이 움직였는데, 목적이 하나뿐일 리가 없다.

그렇다면, 노리는 것은?

당연히 공동파의 무인들은 들어갈 것이고, 민가의 피해 또한 마찬가지다.

그 두 가지에다 공동파에 고독까지 뿌려서 문주와 장로를 조종하는 이유?

간단하지 않은가.

[키에에에에에엑!]

무림맹에서 올 지원군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준비는 말이 되질 않는다.

맹에서는 단순히 적들의 전력이 부족해서 공동파를 쓰러트리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그 속내는 전혀 아니었으니까.

“적은 괴이의 무리! 술사들은 진법의 유지에 집중하라!”

“초생단은 진법의 틈을 뚫고 들어오는 적들을 베어라!”

성화린과 설란의 외침이 울려 퍼진다.

순식간에 전투의 긴박감이 팽배해지는 공동파의 정문.

초생단의 아래 기수 중 하나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던 그 순간.

콰드득!

벽을 허물고 넘어온 괴물이 그대로 그를 덮쳤다.

술사들이 펼친 진법의 틈.

그곳을 비집고 들어온 거대한 원숭이 형태의 괴물이 포효와 함께 손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거대해지는 손.

저 털이 가득한 손에 나는 죽는구나.

그런 생각이 무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정신 차려, 이 새끼야!!”

함께 조를 짰던 선배의 외침과 함께 무인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대 원숭이의 손에 검을 휘둘렀던 선배가 튕겨 나가고, 이어지는 공격에 무인은 이를 악물고 몸을 던졌다.

“으아아아아!”

던지지 않으면, 뒤에 있는 술사가 당한다!

그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차서 몸을 날리는 무인이 원숭이의 얼굴에 검을 휘둘렀다.

카득!

어설프게 박히는 칼.

그리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파고든 주먹에 무인의 옆구리가 박살이 나려는 순간.

“몰아붙여!!”

단숨에 치솟아 그 팔을 위로 밀어 낸 또 다른 선배의 외침에 무인은 포효했다.

“뒈져어어어어어어!!”

그렇게 시작된 난전.

다급하게 펼친 진법은 진법의 축이 되어야 하는 성화린의 부상으로 빈틈이 생긴 데다 외부의 술사들이 펼치는 개입으로 순식간에 숭숭 구멍이 났다.

밀린다.

누군가는 그 사실을 직감하고 죽음을 예감했으나.

“물러서지 마라!!”

크진 않지만, 힘이 있는 성화린의 목소리에 술사들은 흔들리던 정신을 다잡았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 주는 거다! 절대 물러서지 마라!!”

“으오오오오오!!”

이어지는 설란의 외침에 초생단의 무인들이 포효했다.

그렇게 시작된 전투는 곧이어 하나둘 깨어난 공동파의 무인들까지 합류하면서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해 갔다.

* * *

“이건 생각보다 더 빠르군.”

“오랜만이네요.”

“허허, 못 볼꼴을 보여 줘 부끄럽군.”

초생단주가 갇혀 있는 감옥.

그곳에 도착한 설천위는 허허롭게 웃고 있는 구목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철창을 베었다.

“말씀하시는 걸 보니 멀쩡하시네요?”

“문제없네. 몸에 구멍이 몇 개 뚫리긴 했지만, 싸우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지.”

피식 웃으며 손을 휘저은 구목은 쇠사슬이 풀린 자리를 잡고 손목을 비틀었다.

뚜둑! 뚜두둑!

섬뜩한 소리와 함께 어깨까지 풀기 시작하는 구목의 모습에 웃으며 고개를 저은 설천위는 구석에 쓰러져 있는 백화단 부단주를 발견하고 한숨과 함께 다가갔다.

“정신은 드나요?”

“쿨럭, 하아, 흑, 룡단주…… 님.”

끊어질 듯 희미한 숨.

검게 말라붙은 옷을 살짝 거둬 내니 끔찍한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헤집고, 비틀었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단, 주……님은…….”

“성 단주님이라면 무사하세요.”

성화린이 무사하다는 말에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던 부단주의 표정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안도.

그것이 지금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설천위는 오히려 상처를 건드렸다.

“끅!”

고통에 꿈틀거리는 부단주.

그녀의 눈이 의문으로 일렁였지만, 설천위는 망설이지 않았다.

상처로 가득한 옷을 벗기고, 흑관으로 메스를 만들어 냈다.

[호오, 이건 꽤나 나쁘지 않은 생김새구나.]

사람의 살을 째기에 썩 좋은 모양의 메스를 마음에 들어 하면서 신의는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여기, 여기는 도려내야겠구나. 여기는 살려도 되겠군.]

신의의 지시에 따라 순식간에 처치를 하면서도 설천위는 끊임없이 부단주에게 말을 걸었다.

“참아요. 거, 관우 그 할아버지는 뼈를 긁어내는 통증도 견뎠다던데,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잖아요?”

[관우도 약을 썼다는 것이 정설이지. 마비산이라는 통증을 완화하는 약 말이다.]

그런데 너는 지금 이 여아의 생살을 도려내고 있구나. 마취도 없이.

“에이, 약이 어디 있어요. 이 정도 고통을 잊게 해 주는 약은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의 마약뿐인데, 그거 하면 후유증 생겨요.”

[허허.]

“끄윽!”

“그리고 이 정도면 이미 신경도 많이 죽어서 버틸 만하……지 않을까요?”

죽일 듯이 매섭게 노려보는 거 보니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부단주의 살벌한 눈빛에 슬쩍 시선을 돌린 설천위는 다시 메스질에 집중했다.

그런 설천위를 바라보던 신의는 그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의학 지식을 알고 있음을 지적하려다가 이내 포기했다.

몇 번이고 그랬으니까.

“용케 알고 찾아왔구먼.”

“아, 대충 사정은 들어서요.”

초생단주랑 백화단 부단주 정도면 회유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지.

그 회유의 과정에서 당연히 고문이 동반될 테고.

그래서 혹시나 해서 바로 찾은 거다.

어차피 저쪽은 공동파의 장문인이 날뛰고 있으니까.

공동파의 장문인 개운.

배신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인물인데, 상황이 이렇게 바뀌니 배신을 하기도 하는구나.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음을 다시금 확인한 설천위는 이제는 흑관이라 부르기도 힘들어진 기술로 만든 실과 바늘로 상처를 봉합했다.

살점을 도려내 봉합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봉합하는 게 회복에는 더 좋으니까.

“자, 그럼.”

부단주에게 남은 건 이제 절대적 안정과 꾸준한 치료뿐이다.

위기를 넘겼다곤 할 수 없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수혈을 짚어 부단주를 재운 설천위는 손에 묻은 피를 대충 옷에 닦아 내며 일어섰다.

“……그 수혈을 먼저 짚고 하면 됐던 것 아닌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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