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17화 (517/624)

제517화

516화-공동파 (2)

고독은 생각보다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독이다.

살아 있는 벌레 수백, 수천 마리를 갈아 넣어 아주 특수한 방법을 거쳐서 겨우 하나를 얻어 내는 것이므로.

다만, 그건 정석적인 방법으로 고독을 만들었을 때의 이야기다.

고독은 결국 주술적인 세공이 가해진 생물.

그 세공의 핵심은 결국 제물이다.

수백, 수천의 벌레가 서로 상잔하는 과정에서 그 살육을 제물로 살아남은 벌레의 잠재력을 개화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그 이상의 힘을 부여하는 것.

그 부여의 과정에서 술사가 원하는 종류의 것을 넣는 것이 바로 고독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런 방식을 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효율 때문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효율을 버릴 각오만 한다면 다른 방법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소리고.

“참 성능이 좋아.”

“크으으……!”

사혈천의 입장에서 벌레보다 더 구하기 쉬운 제물은 사람이다.

전가를 이용한 제물의 여유로운 수급.

그것은 본래 대량생산이 힘든 고독의 제작도 썩 좋지 못한 효율의 투자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문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공동파의 장문인 처소.

그곳에서 무릎 꿇은 채 앉아 있던 공동파의 장문인, 개운은 바닥에 닿은 머리를 들지 못한 채 그저 이를 악물었다.

그의 입가를 타고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

분노와 치욕으로 떨고 있는 개운을 바라보면서 술사는 히죽히죽 웃었다.

“이런, 문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소이다. 이러면 안 되지. 암, 대공동파의 문주가 그 성능을 인정 못 하는데, 이렇게 안일하게 일을 처리할 순 없지.”

“커헉!”

조롱으로 가득한 웃음과 함께 개운의 옆에 있던 장로 중 하나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온몸이 뒤틀리는 장로.

근육이 비틀린 것처럼 사지가 꺾였지만, 장로의 두 눈은 똑바로 개운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형……. 버티셔야 합니다……!’

까득!

버텨야 한다.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사제의 두 눈에 이를 악문 개운은 두 손을 움켜쥐었다.

평소 제자들에게 나태하다고 늘 구박만 하던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제자들을 살리겠다고 이런…….

“후후, 참으로 보기 좋은 우애군.”

히죽 입꼬리를 비튼 술사는 아직도 몸을 비틀고 있는 장로의 몸속 고독의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흥이 식었소. 다들 나가도록.”

술사의 축객령에 이를 악문 문주와 장로들이 몸을 일으켜 조용히 방을 나섰다.

밖으로 나온 문주와 장로들은 아무 말 없이 걸어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공동파의 깊은 곳.

예로부터 선조들의 염(念)을 모시는 사당이자 문주와 장로들이 주기적으로 직접 청소를 하는 문파의 성지에서 나온 개운은 파랗기 그지없는 하늘을 눈에 가득 담았다.

‘원시천존이시여…….’

지독할 정도의 쓰라림에 가슴이 아려 온다.

이 죄를 자신이 온전히 짊어질 수 있을까.

짊어진다는 것이 가능키나 한 죄인가.

“…….”

말없이 걸어가던 개운은 장로들과 별다른 대화도 하지 않고 그들과 헤어졌다.

장로들과 다른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던 개운의 발걸음은 어느새 은밀하게 변했다.

자갈길을 지나 사람이 다니지 않는 깊은 산속에 들어온 개운의 걸음이 작은 동굴 앞에 이르렀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조용히 그 안으로 들어간 개운은 한숨조차 삼키며 안으로 들어갔다.

“……문주 왔소?”

동굴 안에 만들어진 감옥.

조잡해 보이지만, 상당히 튼튼한 쇠로 만들어진 철창 안에서 피투성이가 된 초생단주가 고개를 들었다.

“초생단주…….”

“허허, 내 배에 구멍을 만든 건 문주인데, 왜 표정이 그러하오?”

웃음을 짓는 초생단주의 팔에 휘감긴 쇠사슬이 절그럭 소리를 낸다.

천장에 박힌 쇠사슬에 묶여 양팔이 하늘로 향해 있는 초생단주의 몸은 허공에 살짝 떠 있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어깨가 탈구되어 그 고통에 정신을 잃고도 남았을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이곳에 묶여 있었음에도 초생단주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

“……부단주는 놓쳤소. 백화단주도 마찬가지고.”

“그렇군. 그건 나쁘지 않은 소식이구려.”

개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초생단주는 허허롭게 웃었다.

“그 아이들이라도 살았으니 다행이구려.”

“……당신들도 죽지 않을 거요.”

“문주,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말이오.”

개운의 말에 피식 웃은 초생단주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누워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습격의 순간, 가장 심각하게 치명상을 입었던 백화단의 부단주다.

곪아 버린 상처에서는 벌레가 들끓고 있었고, 몇 번이고 고통 속에 기절한 얼굴은 초췌하다 못해 송장처럼 창백했다.

“저 아이도, 나도 제 목숨을 살리고자 적에게 협력할 인간은 아니라서 말이오.”

담담하게 말하는 초생단주의 말에 개운은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사실이었으니까.

직접 찾아온 술사가 백화단의 부단주에게 치료를 해 줄 테니 협력하라고 몇 번이나 윽박질렀다.

독과 약을 쓰고, 상처를 후벼 파면서 협박했으나.

만약 그 협박에 굴복했다면 부단주가 저리 처참한 몰골로 나뒹굴고 있진 않았을 거다.

“그러니 문주, 생각을 똑바로 하시오.”

그렇기에.

“당신들은 제자들을 생각해 치욕을 감내한다고 여기겠지만.”

너무나도.

“사람으로 살지 못하는 생에 미련을 가질 아이들인지 아닌지.”

너무나도 가슴이 아려 왔다.

저 말이 결코 틀리지 않음을 알기에.

의기가 넘치는 어린 제자들은 필시 치욕보다 투쟁을 원할 것을 잘 알기에.

자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생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옥 속으로 걸어가고 있는 길임을 알고 있기에.

“……미안하오.”

개운은 차마 그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반박해서도 안 되고.

다만.

“제자들은…… 모르오. 이 죄는 우리들이 가져갈 것이니 초생단도, 백화단도 최선을 다해 살리겠소.”

이를 악물고 다짐하는 문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던 초생단주는 어깨를 으쓱였다.

더 이상 말해도 의미가 없음을 알았으니까.

“그나저나, 우리 부단주와 백화단주가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다고 했소?”

“그렇소. 추적하던 악귀마저 실종됐다고 하오.”

백화단주의 실력이 역시 예사롭지 않다고 술사가 감탄했었지.

그만한 상처를 입고도 십이군 하나를 처치했다고.

“흐흐, 흐하하하하하하!!”

순간,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동굴 전체를 흔들었다.

격한 웃음.

그리고.

“진짜 괴물이로구먼.”

고개를 저은 초생단주는 히죽 입꼬리를 비틀었다.

“문주, 아무래도 당신이 찾던 그 기회가 금세 올 것 같소만.”

이해할 수 없는 호쾌한 웃음을 이해하지 못해 개운이 말을 삼키는 그때.

예민하게 벼려진 그의 귓가로 격렬한 소리가 들려왔다.

경종 소리.

그것도 적의 습격을 알리는, 끝이 없는 빠른 박자의 경종 소리였다.

“이 무슨……!”

눈을 부릅뜬 개운은 재빨리 동굴을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숲길을 지나면서도 개운의 머릿속은 온통 의문으로 가득했다.

분명 습격은 없을 거다.

제자들이 순찰을 돌고 있긴 하지만, 이미 술사와 말을 마친 부분이다.

설마 놈들이 약속을 어겼나?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을 느끼며 개운이 달려간 그 순간.

“이게 무슨……!”

사문의 정문에 도착한 개운은 순간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전신을 칠흑의 갑옷으로 꽁꽁 싸맨 괴한의 등 뒤로 사선으로 갈라진 대문이 나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적이 어떤 기술로 정문을 베어 버렸고, 어떻게 사문 안에 들어왔는지 따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불가해(不可解).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맞닥뜨린 공포가 사문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본능을 자극하는 지독할 정도의 공포.

허나, 그 공포에도 개운은 움직였다.

다리가 얼어붙어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 제자들을 지나쳐서 그들의 앞에 섰다.

“멈춰라! 뭐 하는 놈이냐!”

품이 넓은 도복 속에 감춘 다리의 떨림을 멈출 여유조차 없었기에 개운은 더욱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경험이 알리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이런 짓을 벌이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공포를 몰아내는 거다.

공포를 밀어내지 못하면, 모두 죽는다.

그렇게 본능이 경고해 줄 정도로 강렬한 공포가 이 공간 전체를 잠식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적이 손을 쓸 것도 없이 호흡이 막혀 죽는 제자들이 속출할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스으으으으으.

이를 악물고 검을 뽑아낸 개운이 두 눈을 부릅떴다.

공포심에 검을 뽑는 것조차 늦었다는 자각을 할 새도 없이.

검은 존재가 뿜어내는 호흡에 손발이 떨려 오기 시작했다.

철컥.

금속이 맞물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은 존재가 한 걸음 내디뎠다.

복마검법(伏魔劍法).

평생을 닦아 온, 마(魔)를 굴종시킨다는 검법의 이름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두렵구나.’

강렬한 공포가 그의 온몸을 잠식했다.

장문인이지만, 무공은 초절정에 그쳤다.

물론, 초절정 중에서도 강한 편에 속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국 벽을 넘지 못한 무인일 뿐.

장로들 중에도 그런 강자는 없었기에 구파일방이지만 조용히 지내 왔다.

애초에 도가 계열의 문파이기도 하니 힘자랑을 할 생각도 없었고.

살고 있는 곳에서 주변을 보살피며 살아가면 그것으로 족했다.

공동파의 역사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별 업적이 없는 장문인으로 기록되겠지만, 뭐 어떤가?

평화의 시대를 살다 간 것만으로도 복 받은 일이거늘.

그런 안일한 태도가 지금의 참극을 초래한 것이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는다!”

이를 악물고 소리친 개운은 구태여 걸음을 내디뎠다.

한 걸음.

검을 쥔 손조차 어설프게 떨리고 있는 상태에서 개운은 앞으로 나아갔다.

마음은 오히려 편했다.

‘이기적이구나.’

여기서 죽으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그런 생각과 함께 앞으로 걸어가던 개운은 순간 걸음을 멈췄다.

몸 안에서 일어난 자극이 그의 걸음을 막은 것이다.

몸이 비틀리는 것 같은 감각과 함께 멈춘 걸음.

그 순간, 이것이 술사의 개입임을 확신한 개운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설마 이조차 사문을 우롱하기 위한 계획인 것이냐?

대체 네놈들은 어디까지……!

[찾았다.]

순간.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개운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쿵!

강렬한 충격이 그의 온몸을 덮쳤다.

그야말로 전신이 진탕이 되는 것 같은 강력한 충격.

마치 혼 자체를 뒤흔드는 것 같은…….

“커헉!”

목에서 솟구친 구역질에 개운은 그대로 피를 쏟아 냈다.

시커멓게 죽은피가 입을 타고 덩어리져서 바닥에 떨어진다.

[과연 장문인이라 이건가.]

흥미롭다는 목소리와 함께.

“쿨럭! 쿨럭!”

“이, 이게 무슨?”

무언가를 뱉어 내는 공동파 제자들과 무림맹 단원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공포에 짓눌려 기절했던 이까지 기침을 거듭하는 혼란스러운 상황.

그 속에서.

피를 토해 낸 개운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린 제자가 토해 낸 핏덩이였다.

일그러진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은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했고.

[고독은 전부 처리했다.]

검은 존재의 목소리가 그에게 확신을 안겨 주었다.

그 순간.

“크으아아!!”

마치 다시금 피를 토해 내는 것 같은 괴성과 함께 뒤로 몸을 돌린 개운의 몸이 빠르게 쏘아져 나간다.

목표는 하나.

장문인 처소의 지붕 위.

그곳에서 숨죽여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술사였다.

“검을 들어라!!”

개운의 외침에 그와 마찬가지로 피를 토하고 몸을 일으키던 장로들의 몸에서 흉흉한 기세가 치솟았다.

사방에서 일어나는 괴이에 맞서 그들이 검을 뽑고.

“죽어라!!”

도가 문파의 장문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흉악한 살기를 머금은 검이 술사의 목을 노리고 빠르게 쇄도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