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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11화 (511/624)

제511화

510화-준동 (4)

전이홍을 동굴 밖으로 날려 버린 창린은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자신도 동굴 밖으로 나갔다.

‘속도는 확실히 빨라.’

기습에 당했다곤 하지만, 겨우 반응한 게 고작이었다.

어찌어찌 도를 뽑아 공격을 막아 낸 덕에 이렇게 움직이고 있지만, 속도와 힘만큼은 확실하게 자신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렇다고 힘든가?

그럴 리가.

‘확실히 조잡해.’

화경급 고수의 기습이다.

살존처럼 암살에 특화된 고수가 몇이나 되겠느냐마는 기습이란 건 암살을 전문적으로 익히지 않았어도 큰 이점을 가져갈 수 있는 공격 방식이다.

한 단계 위의 고수가 기습까지 감행했음에도 상대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지 못했을 경우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

방심했거나 반쪽짜리거나.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겠지만…….

‘아니었으면 좋겠군.’

그럼 전력을 발휘하는 상대가 꽤나 버거워질 테니.

그렇게 바라며 동굴 밖으로 나온 창린은 즉시 도를 휘둘렀다.

허공에 나타난 주먹과 창린의 도가 얽혔다.

“흡!”

자신도 모르게 나온 기합과 함께 창린의 몸이 훌쩍 뒤로 떠오른다.

강기에 얽힌 힘을 해소하기 위해 억지로 몸을 날린 결과다.

본래라면 몸을 날리는 것만으로 위기에 빠지겠지만…….

“흐음.”

이어지는 후속 공격 없이 땅에 떨어진 창린은 자신을 품평하는 시선에 굳게 입을 다물었다.

“외모가 아름답구나. 죽이지 않길 잘했군. 기곤이가 좋아하겠어.”

날카로운 외모와 달리 선이 부드럽다 못해 풍만한 창린의 몸매를 눈으로 훑으며 전이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배은망덕한 첫째와 달리 순순히 자신을 따르는 둘째에게 주기에 훌륭한 선물이다.

그 녀석이 끼고 노는 기녀들을 봐도 둘째 놈은 풍만한 몸매의 여자를 좋아하니, 저 여자라면 취향에 딱 맞을 거다.

취향에 맞지 않아도 상관없다.

적당히 가지고 놀다가 버리면 되니까.

아들에게 선물하기로 결정한 전이홍은 단숨에 땅을 박찼다.

좁혀지는 거리.

인지하는 것조차 힘든 적의 돌진에 대응해 창린은 도를 세웠다.

도면으로 주먹을 받아 내며, 최대한 흘리는 것에 집중했다.

정면으로 받아 내면 버틸 수 없다.

이런 강자와의 싸움에서 노려야 하는 것은 하나.

찰나의 틈.

반복되는 상대의 공격을 버티고, 상대의 흐름에 적응하다 보면 보이는 찰나의 틈.

그 틈을 찌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승패를 좌지우지한다.

그러니.

“후우.”

창린은 호흡을 낮췄다.

최대한 힘을 절제한다.

낭인으로 살아오면서, 그리고 스승님의 밑에서 배우면서 가장 가슴 깊게 깨달은 것은 감정이었다.

어떤 전투든 자신을 잃으면 진다.

분노든, 슬픔이든, 흥분이든 어떤 것이든 휘둘려선 안 된다.

감정을 품을 수는 있어도, 그것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휘둘리는 순간, 행동은 순리에서 벗어나고.

순리에서 벗어난 행동은 예상치 못한 변화를 불러온다.

그 끝에 이득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손해만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하아.”

감정을 억누르고, 눈앞의 적에게 집중해라.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 녀석처럼.

살존을 앞에 두고도 당당했던 그 녀석처럼.

자신보다 강한 적이라고 해서.

흔들리지 마라.

* * *

“이, 이게…….”

동굴 밖으로 기어 나온 전무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거대하던 아버지가,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던 아버지가 웬 여인 하나를 이기지 못하고 격렬한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가끔씩 멈춰 서는 창린의 몸에 별다른 상처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승부는 치열한 것이 확실했다.

‘아버지를 지금 이곳에서 제압할 수 있다면……!’

아니, 제압까지도 필요 없다.

아버지의 목을 벨 수 있다면 가문을 단숨에 뒤흔들 수 있다.

거기다 아버지를 이길 정도의 고수인 창린의 도움까지 받는다면……!

아버지의 목을 베어 가야 한다는 패륜적인 조건만 외면한다면 단숨에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는 기회다.

입술을 질끈 깨문 전무곤이 속으로 창린을 응원하던 그때.

“가주님!”

“가주님이 여기 계신다!”

절망이 다가왔다.

익숙한 무인들의 목소리.

아버지 직속의 무인들이다.

그리고 아마 가문의 추악한 진실을 알고도 협력하고 있는 자들.

그들이 가주인 아버지를 따라온 이유가 뭐겠는가.

자신을 잡기 위해서다.

잡으면?

죽이겠지.

방금 아버지의 손에 죽을 뻔했는데, 저들의 손에 죽지 말란 법이 어디에 있겠는가.

잔인한 현실에 이를 악문 전무곤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죽을 땐 죽더라도 당당하게 죽을 것이다.

자신의 죽음이 저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지 않도록!

나는!

“오라! 이 짐승만도 못한 것들아!!”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할……!

“깩!”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군요.”

뒤통수를 때리는 강렬한 공격에 고개가 앞으로 꺾인 전무곤은 그대로 쓰러졌다.

애초에 복부에 구멍이 뚫린 상태로 한참을 달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인데, 조금 전엔 충격의 여파로 날아가서 벽에 부딪히기까지 했다.

기절하지 않은 것을 스스로 뿌듯하게 여겨도 될 정도인데, 갑자기 뒤통수를 맞았으니 몸이 앞으로 꼬꾸라지는 건 당연했다.

다만, 앞으로 꼬꾸라져 흙에 얼굴을 처박으면서도 전무곤은 기절할 수가 없었다.

이해가 가지 않아서다.

대체 누가?

누가 내 뒤통수를 이렇게 거하게…….

“생각보다 상황이 급박했군요. 소수 정예로 움직이길 잘했어요.”

담담한 목소리.

몸을 비틀어 고개를 드니 아름다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사랑하는 연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솔직하게 말해서 훨씬 더 아름다운 외모.

이런 외모를 가진 사람이 운남성에 있었다면 그 소문이 널리 퍼지다 못해 한바탕 난리가 났을 것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그렇다면.

‘누구지?’

그런 의문이 절로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윤혜, 현운, 율.”

여인의 입이 열리자 어느새 나타난 세 사람이 전무곤을 지나쳐 갔다.

“오늘 전가를 무림에서 지웁니다.”

담담하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목소리로 살벌한 말을 뱉어 낸 여인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지금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가문의 무인들 따윈 관심에도 없다는 듯.

그리고 그런 여인의 반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간 세 사람이 가문의 무인들과 맞붙는 순간.

‘아.’

전무곤은 깨달았다.

전가를 지운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저 여인은 정말로.

물리적으로 전가를 무림에서 깨끗이 지워 버릴 생각인 거다.

허탈함에 공허해진 전무곤의 눈동자 속 세 사람이 풀어내는 예기가 전가의 무인들을 그대로 찢어발기고 있었다.

* * *

“네년은 누구냐…….”

전무곤의 곁에 유예린이 나타난 시점부터 그녀를 주시하던 전이홍은 두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노려봤다.

담담한 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유예린의 모습은 누가 봐도 긴장 따윈 전혀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평온했다.

“흑룡단의 단주 대리, 은검 유예린이라고 합니다.”

“……흑룡단.”

유예린의 소개에 여유를 잊은 전이홍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흑룡단.

분명 거래하는 놈들 전부가 조심하라고 경고하던 무림맹의 무력 단체.

쉽사리 봐선 안 되는 괴물들의 집합소.

그리고.

‘은검이라면…….’

화경에 올랐다는 소문이 있는 괴물이다.

그 나이는 스물을 조금 넘겼다.

자신의 큰아들보다도 어리다.

괴물 중의 괴물.

그런 괴물이 이곳에 왔다는 것은.

‘확실하게 들켰군.’

어디서 새어 나간 건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정보가 예전부터 흘러나간 건 확실했다.

가장 의심이 가는 건 낭괴.

사파의 의뢰로 자신을 찔러 보던 그놈.

낭괴의 얼굴을 떠올리고 미간을 찡그렸던 전이홍은 이내 잡생각을 털어 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눈앞에 있는 유예린이다.

유예린을 상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지금은 꽤나 날카로운 암고양이도 함께 있다.

거기다 지금 자신의 부하들을 쓸어버리고 있는 녀석들까지 합세하면 명백하게 자신이 열세다.

가문의 무인들을 쓸어버리고 있는 녀석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빨리 끝낸다.’

유예린의 외모는 훌륭했지만, 사로잡는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단숨에 죽이고,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난다.

그렇게 결정한 전이홍은 단숨에 내공을 끌어올렸다.

약과 비술로 쌓아 올린 막대한 내력이 솟구치며 단숨에 주위를 장악한다.

막강한 내공만으로 공간 전체에 중압감을 선사하는 그 괴물 같은 모습에 거친 숨을 겨우 제어하던 창린마저 혀를 내두르던 그 순간.

“기분이 나쁘군요.”

그 중압감을 가볍게 갈라 낸 유예린이 소매에서 꺼낸 검을 양손에 쥐었다.

쌍검.

그리 길지 않은 길이의 검을 양손에 쥔 유예린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전이홍을 칼로 겨눴다.

“저는 기분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시간을 끌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이, 시건방진 계집이!!”

조롱이나 다름없는 그 도발에 결국 폭발한 전이홍의 몸이 튕겨 나간다.

창린을 상처 없이 제압하기 위해 아끼고 있던 강기를 양 주먹에 크게 두르고 휘두른다.

오로지 파괴만을 위해 힘과 속도를 때려 박은 일격.

유예린이 있는 공간째 부숴 버릴 듯 꽂히는 일격에 창린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그 순간.

“조잡합니다.”

아주 약간,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유예린의 검이 전이홍의 목을 베었다.

다만, 지독할 정도로 짙은 내공을 두른 탓에 그 가죽을 베어 내는 것에 그쳤다.

아쉬움을 느낄 법하건만, 담담한 태도로 물러선 유예린은 양손에 쥔 검을 늘어트린 채 옅게 웃었다.

“내공만 쌓는다고, 임독양맥만 뚫었다고, 강기를 내뿜는다고 화경이라고 생각한다면.”

“크아아아압!”

사람의 몸통만 한 강기를 두른 주먹이 다시 한번 유예린이 있던 자리를 지워 버린다.

사람이 들어가서 누울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지면에 뚫리고, 귀가 먹먹해지는 굉음이 울려 퍼졌지만.

“안쓰럽기 그지없군요.”

어느새 전이홍의 뒤에 나타난 유예린의 검이 전이홍의 오금을 베어 냈다.

다만, 이번에도 짙은 호신강기에 막혀 그리 깊게 베어 내지 못했으나, 스멀스멀 배어 나오는 피는 그녀의 검이 전이홍에게 확실하게 닿고 있음을 증명했다.

“이 개 같은 계집이!!”

조롱당하고 있다.

그 사실에 분노한 전이홍은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애초에 내공은 차고 넘친다.

수백 번을 휘두른다고 해서 지치지 않는다.

그러니.

‘찢어발겨 주마!!’

그 몸뚱이는 찢어서 개에게 주고, 머리는 연인이라는 그 개 같은 놈에게 보내 주마!

분노에 사로잡혀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두르는 전이홍의 공격에 일대가 완전히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땅이 뒤집히고, 나무가 쓰러진다.

원래도 조금 여유가 있었던 동굴 앞의 숲은 순식간에 황폐한 공터로 변했다.

그리고.

“……하.”

그 모든 광경을 코앞에서 목도한 창린은 허탈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완전히 농락하고 있었으니까.

제대로 된 강자와 싸워 본 적이 없는 전이홍은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전이홍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유예린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 적이 없었다.

허상.

완벽하게 숨은 유예린이 만들어 낸 허상에 미친 듯이 주먹질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 제대로 통할 리가 만무했다.

공간째 집어삼키는 공격?

애초에 유예린은 완전히 다른 곳에 있는데, 그게 통할 리가.

창린은 유예린이 어디에 숨었는지는 읽어 낼 수 없었지만, 유예린이 숨었다는 사실은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잡을 엄두조차 나지 않는데,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머저리가 유예린을 잡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완벽할 정도로.

‘우위에 있군.’

상성의 차이다.

차라리 다른 화경급 고수가 상대였다면 전이홍도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무너지진 않았을 거다.

“허억! 허억!”

저렇게 피투성이가 되어 숨을 몰아쉬는 일 따윈 없었을 거다.

“슬슬 끝내도록 할까요?”

“으, 으아아아아!”

자신의 목을 베기 위해 다가오는 적에게 공포를 느낄 일도 없었겠지.

유예린의 허상을 바라보는 전이홍의 눈동자는 어느새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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