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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10화 (510/624)

제510화

509화-준동 (3)

“일단 좀 쉬도록.”

작은 동굴.

가문 근처의 숲에 이런 곳이 있는지 전혀 몰랐던 전무곤은 조심스럽게 들어간 동굴 안의 풍경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서 얼마나 지낸 것이오?”

“한 1년 정도?”

“길군…….”

이런 동굴에서 1년이라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생존력?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가문의 무인들은 대체…….”

주기적으로 순찰을 도는 사유지 내에서 이렇게 버젓이 생활하는 사람이 있었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니.

가문의 무인들이 모자란 건지 이 여인이 대단한 건지 당최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뛰어난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앉기나 하지?”

머뭇거리는 전무곤을 대충 만든 돌의자에 앉힌 창린은 치료 도구를 가져와 그의 상처를 살폈다.

내공이 흩어진 전무곤.

그 원인은 복부에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용케 도망쳤군.”

손가락 정도의 두께밖에 되지 않는 구멍이었지만, 말이 손가락 두께지 실제로 뚫리면 배를 잡고 땅을 구를 사람이 대다수인 부상이었다.

상처만으론 중상이라고 말하기에 살짝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놔두면 삼도천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힐 수 있는 상처였다.

상처를 살핀 창린은 꽂혀 있던 부러진 칼날을 뽑아내고 재빨리 지혈을 한 뒤 약을 발라서 천으로 감쌌다.

“됐다. 내공이 흩어져 몸이 허할 테니 일단 안정을 취하도록.”

“나는……!”

“연려라는 여인은 따로 호위가 갔으니, 일단 안심하도록.”

“그런, 대체 어찌?”

자신의 속내를 전부 알고 있는 듯한 창린의 대답에 전무곤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눈앞의 여인이 아군인지 적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생각이 읽히고 있으니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 전무곤의 반응에 피식 웃은 창린은 허리춤에 매고 있던 도를 풀어서 벽에 기대 놨다.

“죽일 거라면 만난 순간 목을 쳤을 거다. 쓸데없는 긴장은 몸을 경직시켜 회복을 늦추니 긴장을 풀도록.”

“……당신은 누구십니까?”

“창린, 낭인이다.”

“낭인?”

낭인이 왜?

예상치 못한 그녀의 정체에 전무곤은 고개를 갸웃했다.

낭인이란 돈으로 움직이는 무인이란 소리다.

그런 인간이 왜 가문의 사유지에서 동굴 생활을?

순간 전무곤의 몸이 다시금 경계심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낭인이 가문에 머물 이유가 대체 뭐겠는가.

돈을 받고 일을…….

“감시. 운남전가에서 주기적으로 사라지는 막대한 금전의 감시를 위해 이곳에서 머물고 있었다.”

“아.”

잊고 있던 현실을 다시금 자각한 전무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렇다면, 외부에서도…… 이 상황을 짐작하고 있던 분이 계시는군요?”

“내 스승님이 짐작하고 계시지. 워낙 괴팍한 분이라 다른 사람에게 알렸을지는 모르겠지만.”

낭괴(狼怪).

괜히 괴(怪)라는 글자가 별호에 붙은 게 아니다.

창린은 자신의 스승을 선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의 인식은 그렇지 않았다.

일단 선악의 기준이 보통 사람과 다른 데다 그 기준에 돈까지 개입되어 있다 보니 제3자의 눈에는 충분히 음흉한 인간으로 보였다.

그런 주제에 또 인간적인 선행을 베푸니 괴팍하다는 글자가 별호에 붙었지.

다만.

“사람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들에겐 꽤나 냉정한 편이라서.”

전장에서 적으로 만났다면 죽인다.

상황에 따라 포로로 잡았다면 최소한의 대우는 해 준다.

낭괴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곳저곳 머리를 기웃거린 낭인 주제에 의외로 적이 많지가 않았다.

괜히 정파, 사파 가리지 않고 의뢰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느 쪽에도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없으니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낭괴는 활동 영역이 넓었다.

사파의 영역과 붙어 있는, 무림의 외곽에 위치한 이 운남에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배경이 있어서다.

‘날 보낸 걸 보면,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지만…….’

상황이 변했다.

혹시 몰라 살피고 있던 운남전가가 약 두 달 전부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할 정도로 물류가 움직이고, 자금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창린은 결국 그녀의 두 눈으로 혈교와 거래하는 것까지 목격했다.

그 보고를 즉시 스승님께 올렸고, 창린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계속해서 숨어 있다가 도망치는 전무곤을 발견한 거다.

대충 설명을 들은 전무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희 가문은 혈교와 아니, 혈교뿐만이 아닙니다. 무림공적으로 지목된 거의 모든 단체들과 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후회로 가득한 목소리.

그 안에 담긴 절망을 헤아릴 새도 없이 창린은 얼굴을 구겼다.

“모든 단체?”

혈교만이 아니라고?

“개인적으로 알아본 결과 사혈천, 혈사련, 진의단 등등 세기도 힘들 만큼 많은 무리들과 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래? 무엇을?”

“……무공입니다.”

“무공?”

무공이라는 말에 창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운남전가는 신흥삼가로 불리고 있지만, 그렇게 불리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았다.

현 가주인 전이홍이 강기를 뿌려 대며 운남을 차지하고 있던 거대 사파를 무너트린 것이 그 시작이었으니까.

그 뒤로 화경급 고수인 가주의 지도 아래 가문의 무인들을 빠르게 육성해 자체 방위력을 가지고 수송업을 장악했다.

애초부터 거대한 유통망을 가지고 있던 가문에 무력까지 더해지니 그 발전은 크게 가속화됐고, 끝내 무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부가 됐다.

나머지 두 거상은 황실과 관련이 깊은 인물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경이로울 정도로 빠른 성장 속도였다.

그런데, 그 성장 배경 뒤에 가주의 능력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있었다면.

예를 들어.

“가문의 무인들에게 뿌려지는 영약이 있습니다. 어릴 땐 몰랐지만…….”

사람을 재료로 만든 영약이나.

“운송품 중에서 마약을 발견했습니다.”

강제로 사람을 조종하는 마약.

“가문에서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인신매매의 장부까지…….”

그리고 사람을 사고파는 장사까지.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고, 그 돈을 피를 흠뻑 묻힌 손으로 지키고 있다면.

“……가관이로군.”

가능할 것이다.

능력이 부족한 이가 만들어 낸 성공 신화가.

설가는 북해빙궁 출신의 무공이라는, 전통 있는 무공과 현 가주의 괴물 같은 무력이 만나 급성장했고.

유가는 암은단의 단주라는 가주의 명성과 웬만한 암살자는 감히 명함도 내밀 수 없는 강한 무인들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두 가문의 공통점은 무력을 쌓아 올릴 기반인 무공이 충실했다는 점이다.

유가는 이제야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나, 애초부터 음지에서 이름을 떨치던 암살자 집단에서 파생된 가문이다.

그 오명을 지우기 위해 정파에 투신해 정말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을 정도이니 그 정보는 사실일 터.

뭐가 됐든 뿌리가 되는 무공이 확실히 있고, 그것이 발전하다가 뛰어난 인재와 만나서 재능이 폭발하며 지금의 성세를 이룩한 가문들이란 소리다.

그런데 진가는?

돈으로 산 무공들로 경지를 이루어 낸 고수.

말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그게 실제로는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낭인들조차도 자신의 무공은 함부로 가르치지 않는다.

왜?

언제 내게 돌아올지 모르니까.

자신의 무공을 알려 준다는 것은 약점도 알려 준다는 의미인데, 그것을 아무에게나 가르쳐 줄 리가 없지 않은가.

돈으로 살 수 있는 무공은 그런 것조차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조잡한 무공인 경우가 대다수다.

그렇기에 전가의 가주가 화경에 올랐다고 했을 때 무림은 그가 천재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여겼다.

대종사급의 재능을 가진 자라면, 조잡한 무공들을 엮고 엮어서 자신만의 무공을 만들어 내며 경지에 오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까.

돈도 많아서 영약도 잔뜩 먹었을 테니, 조잡한 심공의 단점 정도는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무림인들이 납득했던 사실이.

음지의 조직들에게 양민의 피를 받아먹고 만들어 낸 허상이었다니.

“……문제가 생각보다 더 심각하군.”

충격적이지만, 지금 집중해야 하는 것은 현재다.

“가문에 조력자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군.”

전가에 더 이상의 조력자는 없다.

그렇게 판단한 창린은 더욱 깊게 고민했다.

전무곤의 탈출 덕에 예상치도 못한 정보를 얻은 것은 좋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스승님의 밑에서 배우고 이곳에서 홀로 수련하며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했지만, 홀로 전가로 침입해 진실을 까발릴 정도의 실력은 없었다.

당장 가주만 해도 그것이 음습하게 얻은 힘일지라도 화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다.

그런 고수가 있는 가문에 홀로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일단 상황을 봐서 탈출한다. 너희 가문의 땅을 벗어나 시내에 도착하면 스승님과 연락이 닿을 거다.”

“스승님이라면…….”

“낭괴.”

“아!”

창린의 말에 전무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낭괴라면 그 십대고수 중 일인이 아닌가.

그라면 가주도 능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

아버지의 죽음을 반겨야 한다는 사실에 쓰라림을 느낀 전무곤은 이내 이를 악물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전부 알려 주겠소. 그러니…….”

“잠깐.”

전무곤의 말을 끊은 창린은 옆에 세워 뒀던 도를 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동굴 입구 쪽으로 걸어가는 그 순간.

“슬프구나, 아들아.”

쾅!!

강렬한 굉음이 그대로 창린을 날려 버렸다.

눈을 깜빡인 순간, 입구 쪽에 있던 창린이 동굴 깊숙한 곳에 처박혀 먼지구름에 뒤덮인 모습을 본 전무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뒤늦은 상황 파악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버지……!”

“왜 반항하는 것이냐? 네 동생처럼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고 애비와 함께하는 것이 그리 어렵더냐.”

슬픔이 담긴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슬픔이 인간적인 정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전무곤은 이를 악물고 반발했다.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으니 제 배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아버지!”

“아비를 믿지 않고 아랫것에게 속내를 털어놓은 네 잘못 아니더냐? 그 아이는 네 검에 목이 베여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네가 억울해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

믿을 만한 가신이라고 생각해 속내를 털어놨다가 죽을 뻔했던 전무곤은 억울해할 일이 아니라는 아버지의 말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역시.

역시, 이 인간은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아버지이지만,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부모는 어머니뿐이다.

나를 사람으로 낳아 준 어머니만이 자신의 부모였다.

“저는!”

천륜을 끊어 내고, 사람으로 살아가리라.

인륜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죽으리라.

이를 악물고 각오를 세운 전무곤은 당당하게 전이홍의 앞에 서서 양팔을 벌렸다.

“사람으로서 살고, 사람으로 죽을 겁니다!”

“오만하구나.”

그런 전무곤의 발악에 동굴의 입구를 꽉 채울 정도의 덩치를 자랑하는 전이홍이 손을 들어 올렸다.

“내 아들은 오늘부로 둘에서 하나로 바뀌겠구나.”

자신과 달리, 가문의 추악한 진실을 마주하고 오히려 활기를 찾은 동생 놈을 떠올리며 전무곤은 눈을 감았다.

어머니의 사랑을 다 받지 못한 그 아이가 삐뚤어진 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미안하오.’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여인을 떠올리며 전무곤이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그 순간.

“짜증 나는군.”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와 함께 전이홍의 몸이 동굴 밖으로 튕겨 나갔다.

쩡!

동시에 동굴 전체를 뒤흔드는 진동.

그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하고 데굴데굴 구른 전무곤은 벽에 부딪히고서야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이, 이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

“고작해야 반쪽짜리 화경이라.”

해진 옷을 대충 걸치고, 한 손에 도를 든 창린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딱 좋은 수련 상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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