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5화
504화-사천당가 (5)
당화인이 사라지자 소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사정을 대충 알고 있는 내당의 무인들은 물론이고, 상황을 전혀 모르고 제 업무만 하던 외당의 무인들까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가 전체로 수색망이 확대되었고, 그야말로 쥐 잡듯이 가문 전체를 들쑤시기 시작한 그때.
“성공했나 보네.”
외부에서 기다리다가 소란을 눈치채고 들어온 당화유는 능숙하게 건물의 옥상에 자리를 잡았다.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이들.
대낮에 이런 일이 벌어진 탓에 횃불을 든 녀석들이 없어서 한눈에 인원 파악이 되진 않았지만, 소란스러운 움직임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인원들이 움직이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일 처리가 깔끔해.”
입꼬리를 비튼 당화유는 지붕에서 내려와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집중!!”
“음?”
“아가씨?”
“당화유 아가씨가 어째서 이곳에?”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던 아가씨가 어째서?
외당의 무인들이 당황해서 고개를 갸웃할 때.
평소 내지 않는 큰 목소리로 이목을 집중시킨 당화유는 모두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전원, 나를 따라라. 당가에 간자가 있다.”
* * *
까득.
“화려하게 일을 벌이는군.”
소란스러워진 가문의 공기에 원로원주는 이를 악물었다.
그 무림맹에서 왔다는 녀석들의 소행이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찾아간 무인이 그들의 이상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일이 더 크게 틀어질 뻔했다.
대체 술사 나부랭이들이 어떻게 삼엄한 감시를 뚫고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그놈들이 가문을 들쑤시고 다녀서 좋을 게 없었다.
무엇보다 놈들이 몰래 움직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쪽을 의심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그런 녀석들이 가문을 돌아다니다가 그곳을 찾기라도 한다면…….
까드득.
반드시 죽여야 한다.
두 눈에 살기를 품은 원로원주가 직접 몸을 움직이고 있는 사이.
소가주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원로원주의 분노는 한층 더 짙어졌다.
독을 다뤄야 할 놈이 도망친 건 그렇다고 쳐도, 놈이 도주함으로써 이쪽은 시간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놈이 무림맹으로 가서 가주를 불러오거나, 다른 가문의 협력을 얻기 전에.
어서 독을 완성해 거사를 일으켜야 했다.
성도를 장악하고, 전 무림에 당가의 힘을 널리 알려야 한다.
이를 악문 원로원주가 더 철저하게 수색하라고 부하들에게 호통을 치는 그때.
“쯧쯧, 윗사람이 호통이나 치고 재촉만 거듭하니 부하들이 제정신으로 살필 수 있을 리가 있나.”
원로원주를 비웃는 목소리와 함께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한창 수색하다가 밖으로 나온 원로원주의 눈에 담벼락 위에 앉아 있는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소가주!”
“흐하하하! 당신의 놀란 얼굴을 보니 마음이 절로 흡족해지는군.”
피식 웃은 당화인은 눈을 부릅뜨고 있는 원로원주를 노려봤다.
“어딜 가문의 배신자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이냐. 가문을 팔아먹은 변절자가 감히!!”
호통과 함께 당화인의 몸에서 거센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당화유보다 8살 많은 가문의 장남.
무림맹에서 활동하지 않고 가문에 틀어박혀 이런저런 일 처리로 바빴고.
동세대에 남궁선이라는 괴물이 있어서 금세 잊혔을 뿐.
그 또한 젊은 나이에 초절정에 오른 천재 중 천재였다.
다만, 당화유와 달리 무림학관을 졸업할 때는 절정이었고, 후에 가문에서 지내며 경지를 올린 것이기에 밖으로 소문이 나지 않았을 뿐이다.
거센 기세를 뿜어내는 당화인의 모습에 원로원주는 분노로 이를 악물었다.
“감히! 네깟 놈이 무엇을 안다고 그런 망발을 지껄이느냐!”
당화인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흉포한 기세를 뿜어내며 살기를 끌어올리는 원로원주.
그 둘의 기세에 끼인 무인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하지만, 당화인도 원로원주도 그런 무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무엇을 아느냐고? 알지. 잘 알지! 당신이 가족과 가문과 무림을 배신했음을 잘 알고 있지!”
“닥쳐라! 당가를 사이비(似而非)라고 조롱하는 자들이 전 무림에 가득하다! 네놈이 그 조롱을 아느냐!”
사이비(似而非).
같지만, 다르다.
공자가 말한, 같지만 다른 것들.
같은 모양을 하고 속이 달라서 세상을 현혹하는 자들을 말한다.
그리고 이건 독을 다루고 암기를 다루는 주제에 정파에 속해 있는 당가를 비웃는 의미로도 쓰이는 말이었다.
겉으로는 정파와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속은 달라 비겁하게 독이나 암기를 쓰는 자들.
그런 조롱을 당가 앞에서 대놓곤 하지 못해도 뒤에서 떠드는 자들이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렇기에 당가는 더욱 떳떳해야 한다! 속이 다르다는 놈들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속까지 같아야 한다! 그런데 네놈이 하는 짓은 무엇이냐!”
거칠게 소리치는 당화인의 목소리가 가문 전체로 뻗어 나간다.
한참을 감옥에 갇혀서 목이 갈라지고, 몸 곳곳이 상했을 터인데도.
당화인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가문 전체에 소리쳤다.
“그런데 네놈은! 당가의 어른이라는 자가! 혈교와 손을 잡고 가족과 가문을 배신했으니 그 죄가 얼마나 무거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구나!!”
소리치는 당화인.
그에 따라 떨리는 공기.
“닥쳐라! 거짓이다! 혈교와 손을 잡았다고? 누명이다! 감히 가문의 어른에게 못 하는 말이 없구나!”
원로원주가 발악하듯 소리쳤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미세한 떨림은 다른 이들에게 의문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미묘하게 흘러가는 분위기.
그리고.
“그만하시오. 원로원주.”
당화인의 곁에서 튀어나온 노인의 모습에 원로원주의 눈이 부릅떠졌다.
“당철기, 당신이 어찌?”
“혈교와 손잡는 것을 반대한 나를 감옥에 가둔 건 당신 아니오? 독을 뿌릴 병사로 쓰려고 살려 놨으니 아직 살아서 이 자리에 있지. 그새 까먹은 것이오?”
이죽거리는 원로 당철기의 모습에 원로원주의 눈가가 떨리기 시작한 그 순간.
“그만 포기하시죠.”
“네, 네년까지!”
당화인과는 다른 곳에 있는 담벼락에 선 당화유의 목소리에 원로원주가 당황하는 그 순간.
“원로원주, 진실을 밝히시오.”
당화유의 밑에서 나타나는 무인들의 모습에 원로원주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외당주 당전철.
그가 굳게 다문 입술로 당화유의 밑에 서서 원로원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거기다.
“쿨럭, 후우……. 힘들구먼.”
분명 감옥에 가둬 놨을 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소가주가 사라지고 아직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어찌 이 많은 이들이 지상에……?
수년간 준비해 온 일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광경에 원로원주의 눈에 초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 처리가 뛰어나네.”
“뭐, 별거 없죠.”
당화유의 곁에서 당당하게 가슴을 편 연화가 히죽 웃었다.
“혈교를 끌어들인 주제에 술사들은 배치하지 않았더군요. 냄새를 풍기기 싫어서인지 아니면 자신들만으로 충분하다는 과한 자신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덕분에 움직이는 게 엄청 쉬웠어요.”
술법으로 은신하고, 천장을 기어 다니면서 당가의 곳곳을 훑었다.
당화인을 찾은 뒤에는 더 편해졌다.
당화인이 지하 감옥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풀어 줄 사람들은 풀어 주고, 다음 장소로 이동.
그렇게 몇 번 반복하는 사이, 따로 떨어진 당화인이 시선을 끌고 분위기를 장악한다.
거기다 외부에서부터 움직인 당화유가 마무리.
“더럽고 추악하게 쌓아 올린 탑은 작은 바람에도 쓰러지는 법이오. 원로원주.”
당화인의 말에 원로원주의 얼굴은 더욱 크게 일그러졌다.
이곳에 모인 무인은 사천당가 전체로 보면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여론은 소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가주가 자신을 지탄하고 다른 원로나 무인들이 동조했다.
증거는 하나도 없는데, 모두가 소가주를 믿고 있었다.
‘내가…… 내가……!’
몇 년에 걸쳐서 준비해 왔다.
가주가 없는 틈을 이용해 원로들을 하나씩 천천히 포섭하고.
세상에 없던 독을 만들기 위해 지독할 정도로 연구에 몰두하고.
은밀하게 접근해 온 혈교와 손을 잡고 새로운 독의 지평을 열었다.
이 모든 것이.
이 모두가!
“내 노력이다! 내 공적이다!”
당가는 강해질 것이다! 자신의 발아래에서!
눈에 핏발이 선 원로원주는 인정하지 못했다.
자신이 수년에 걸쳐 쌓아 온 것이 고작 어린 것들의 선동에 이리도 쉽게 무너졌다는 것을.
고작, 고작 저런 것들에게 밀려서 대계가 망가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여기까지군.]
순간, 섬뜩한 목소리와 함께 원로원주의 가슴이 붉게 물들었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죽음.
“이, 게……?”
무슨?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자신의 가슴을 뚫고 빠져나온 손에 잡힌 무언가를 눈에 담은 원로원주는 생각했다.
저게 왜 저기에 있지?
펄떡펄떡 뛰는, 자신의 심장.
그게 왜 밖에 나와 있는 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맛이 없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못 하고 눈에 생기가 사라진 원로원주의 심장이 그대로 터져 나간다.
그 피를 손으로 빨아들이며 존재는 눈을 돌렸다.
일말의 감정조차 담기지 않는 눈동자.
그리고.
“커헉!”
“독이다! 피독주를 입에 물어라!”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연기에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이들이 나타났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감히 원로원주님을!”
그리고 원로원주를 따르던 자들은 당황해서 그 존재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만!]
익숙한 호통과 함께 그들의 몸이 멈췄다.
“워, 원로원주님?”
익숙한 목소리. 붉은 사내의 뒤에 나타난 환영에 그를 따르던 무인들의 손이 땅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는 당가의 새로운 해를 여는 이들이다! 움직여라! 과거에 사로잡혀 가문을 망조의 길로 이끄는 놈들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길을 열 때이니라!]
“우, 우으아아아아아!!”
“가자!”
혼의 외침에 선동된 이들이 의지를 불태운다.
“이게 무슨……!”
겨우 피를 흘리지 않고 가문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 안심하던 당화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건 이상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술법이군요.”
어느새, 당화인의 곁으로 다가온 연화가 담담한 목소리로 앞으로 나아갔다.
“혈교라고 하더니 저건 상당한 고위 혈귀 같네요.”
그리고 그런 연화의 뒤를 각려가 따랐다.
마치 지금부터는 자신들의 일이라는 듯.
“머, 멈추시오! 지금 당가의 무인들은……!”
“괜찮습니다. 아주, 조금만 시간을 벌면 되니까요.”
“정신 지배를 해제할 순 없겠지만, 술법의 영향 아래 있다면 최대한 살려서 제압할 수 있습니다.”
당가의 무인들이 죽을까 봐 걱정하지 말라는 연화와 각려의 대답에 오히려 당화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의미가 아니오. 가문의 오물을 외부인에게 닦게 할 순 없다는 소리라오.”
연화와 각려를 물리고 앞으로 나선 당화인은 좋지 못한 몸 상태로 내공을 일으켰다.
“당가의 무인들은 들어라!!”
강렬한 외침과 함께 당가의 무인들의 기세가 치솟는다.
“가문을 배신한 변절자들에게 가법의 철퇴를 내려라!!”
당화인의 외침과 함께 달려오던 적들을 암기로 막아 내던 이들이 앞으로 달려갔다.
죽이지 않고 견제만 하던 손이 거침없이 사혈을 노린다.
상대를 죽일 생각으로 움직이는 무인들과 술법에 현혹된 무인들의 전투는 단숨에 치열해졌다.
그리고.
“그럼 우리는 이쪽만 상대하면 되겠네요.”
“당가 사람들은 배려심이 있네요.”
혈귀의 앞에 선 연화와 각려가 말투와 달리 진중한 눈빛으로 혈귀를 노려봤다.
그러자.
[너희들, 뭔가 하나 잊고 있지 않나?]
혈귀는 그런 두 사람을 비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