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03화 (503/624)

제503화

502화-사천당가 (3)

“일단, 치료부터 해요.”

대략적으로 사천당가의 사정을 들은 각려는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치료?”

“그 상처, 아직도 안 낫고 있는 걸 보니 평범한 상처가 아니죠?”

힘없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걸어오는 각려를 보던 당화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혈교의 흔적을 찾은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들한테서 당한 상처야.”

단전 근처에 당한 일격.

겨우 직격타는 피했지만, 그래도 치명적인 상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내공을 일으킬 때마다 통증이 엄습해 오는 건 물론이고, 서서히 퍼져 가는 정체 모를 힘이 단전을 침범하는 것은 상당한 압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제 공격을 다 피한 건가요?”

아무리 진심을 다한 공격은 아니었다지만, 그건 좀 너무하네.

여전히 진짜배기 무인에게 체술로는 안 되는구나.

괴연천식(傀然天食)을 전력으로 끌어내지 않은 자신은 이토록 나약했다.

한숨을 삼키고 고개를 저은 연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봐도 당화유의 복부에 생긴 상처는 각려 혼자서 치유할 수 있을 상처로는 보이진 않았으니까.

“이건…….”

당화유에게 다가가 옷을 걷어 올리고 자세히 상처를 살핀 각려는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꿈틀거리는 피막.

마치 갓 태어난 짐승의 피부처럼 반투명한 그것은 뚜렷하게 보이는 혈관과 함께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주네요. 그것도 단순한 저주가 아니라…….”

“주독(呪毒).”

“……심각할 정도예요.”

연화까지 같은 결론을 내리자, 각려는 한층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당화유의 상처를 살폈다.

“당신, 용케 살아 있군요.”

“독에 버티는 건 당가의 특기니까.”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는 게 더 무섭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의 당화유와 눈을 마주친 각려는 그 독기에 고개를 저었다.

“버틴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버티지 않으면 되는 것도 안 돼.”

“……그건 그렇지만요.”

가만히 당화유의 상처를 살피던 각려는 고개를 끄덕이고 품에서 부적을 꺼냈다.

“일단, 상처를 진정시키죠.”

꺼낸 부적을 조심스럽게 붙이며 각려는 유심히 상처를 살폈다.

영력을 억제하는 성질을 가진 부적이다.

주술이라고 해도 그 본질은 영력.

치료는 하지 못하더라도 증상이 번지는 것은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다.

덤으로 고통도 줄여 주고.

“일단, 응급조치는 이 정도면 되겠네요.”

상처가 조금 잠잠해진 것을 확인한 각려는 고개를 끄덕이고 연화를 바라봤다.

“먹을 수 있겠어요?”

“으음……. 아무래도 지금 이 상태로는 힘들 것 같은데요.”

각려의 옆에서 유심히 상처를 살피던 연화는 고개를 저었다.

괴연천식(傀然天食)의 능력은 대단하지만, 아직 그 근간이 되는 연화의 능력은 부족한 점이 많았다.

지금 이 상처를 억지로 먹어 치우려고 했다간 당화유와 자신, 둘 다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일단 제 술법으로 천천히 힘을 깎은 다음에 부단주님이 처리하는 것으로 하죠.”

“그게 맞겠어.”

각려의 말에 연화도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작 치료의 당사자인 당화유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면 늦어.”

“조급하게 하면 당 소저가 죽을 수도 있어요. 영적인 치료는 본래 천천히…….”

“천천히 했다가 놈들의 계획이 성공하면 성도가 죽음의 도시로 변해.”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당화유는 옷을 내려 상처를 가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림맹에서 짧게 지내는 동안, 몇 번 혈교와 싸운 적이 있어.”

학생 때도 마주친 적이 있었다.

지독한 놈들이었다.

점조직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는 놈들만 만나서 어렵지 않게 그들을 제압했으나, 그들이 보여 준 독기는 어린 당화유에게도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것을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을 뿐.

“술법에 조예는 없지만, 독은 잘 알아.”

당가에서 도망치던 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당화유는 확신했다.

영문 모를 의식의 흔적이 가득한 곳에서 끓어오르고 있던 그 액체.

“그게 완성되면 다 죽어.”

그건 명백히 이 세상에 절대 존재해선 안 될 독이었다.

* * *

“아직도 못 찾았다고?”

“죄송합니다.”

부하의 대답에 당재덕은 미간을 찡그렸다.

“분명 성도로 들어왔다는 보고가 있었을 텐데?”

“그것이…… 가문으로 오는 도중에 귀신처럼 사라졌다고 합니다.”

“쯧, 흑룡단의 부단주라고 너무 경계했어.”

혹시 걸릴까 봐 꼬리를 붙이지 않았거늘 그게 화근이 될 줄이야.

차라리 뻔뻔하게 대놓고 꼬리를 붙여서 확실하게 감시했어야 했는데.

다만.

“됐다. 놔두어라. 고작해야 술사 둘이 뭘 하겠느냐.”

흑룡단주가 직접 온 것도 아니고, 부단주와 그 부하가 왔을 뿐이다.

흑룡단에 화경급 고수가 몇이나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부단주급에는 그런 고수가 없다.

애초에 화경급 고수가 셋이나 더 있다는 소문 자체가 믿기 힘든 일이니…….

“가문의 경계 태세를 높이고, 찾아오는 이들은 전부 보고하도록.”

“예.”

“그리고 수색은 어떻게 됐나?”

수색.

그 말에 마른침을 삼킨 부하는 더 깊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직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 됐다. 그 아이가 마음먹고 숨으면 어차피 찾아낼 수 없을 테니. 순찰을 강화하고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하도록.”

“예.”

대충 손짓으로 부하를 물린 당재덕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가문의 은혜도 모르는 어린놈…….”

고작 그깟 일로 원로를 죽이려 들어?

당화유의 독문 독에 당해서 아직도 사경을 헤매고 있는 원로를 떠올린 당재덕은 고개를 저었다.

가문의 어른께 독을 쓰고, 가문의 일까지 파투를 내고 도망치다니.

아무리 가주의 딸이라고 하지만, 그 죄질이 무겁다.

돌아오면, 내공을 폐하고 감옥에 처넣을 것이다.

외모는 빼어난 편이니, 분가에서 공적을 세운 아이 중에 원하는 녀석이 있다면 그에게 내주는 것도 괜찮겠군.

내공을 폐하는 충격으로 아이는 가지지 못하는 몸이 되겠지만, 오히려 낫다.

가문에 거스르는 피가 이어질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그렇게 당화유의 처분에 대해 생각하던 당재덕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아직 잡지도 못한 당화유의 처분을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당화유, 그 계집에게 방해받은 탓에 상당히 더뎌졌지만 그래도 일은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제물을 새로 공수해 오는 등 조금 손이 바빠지긴 했지만, 사천당가는 뛰어나다.

이미 의식은 다시 제 자리를 찾은 상황이고, 결과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앞으로 짧으면 열흘, 길어 봤자 보름 안에 의식은 끝난다.

그리고 의식이 끝나면…….

‘우리를 사파라고 모욕하던 무림 놈들을 한 줌의 핏물로 녹여 버릴 것이다.’

대당가(大唐家)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 * *

살벌한 분위기가 풍기는 사천당가.

요 몇 년간 점점 흉흉해지는 당가의 분위기에 원래도 발길이 뜸했던 성도의 사람들은 아예 당가를 향한 발길을 딱 끊어 버렸다.

지금에서야 사천당가를 드나드는 사람은 물건을 납품하는 상인들뿐이다.

방문객 하나 없이 고요하고 쓸쓸하기까지 한 사천당가의 정문.

그곳에서.

‘……이거 맞아?’

‘맞아요.’

‘아니, 진짜로?’

‘이 방법밖에 없는데, 어떡해요?’

‘아니, 이딴 게 계획일 수가 있느냐고!’

‘처음부터 말했잖아요.’

계획 같은 건 없고, 몸으로 부딪쳐 해결한다고?

그거 진심이었어?

연화의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각려는 당당하게 정문으로 걸어가는 연화의 뒷모습에 그만 눈을 감았다.

그래.

죽어 봐야 뭐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사천당가랑 싸우다 죽으면 독에 당해 지독하게 고통스럽게 죽는다고들 하지만, 그래 봤자 한 번 아닌가.

한 번 정도는 어떻게 참아 볼 수 있겠지.

‘……제발 덜 아픈 독에 당했으면.’

물론 손발이 덜덜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한숨을 내쉰 각려는 어느새 정문에 도착해 문지기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연화의 뒤로 바짝 붙었다.

“저기! 무림맹에서 찾아왔습니다!”

“……무림맹에서 말입니까?”

연화의 당찬 외침에 잠시 멈칫하던 문지기는 가만히 연화를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질은 받았습니다. 무림맹에서 오신 술사분들이십니까?”

“맞아요.”

“그럼 호패를 확인하겠습니다.”

연화와 각려에게 호패를 받아서 확인한 문지기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호패를 돌려줬다.

“확인했습니다. 잠시 기다리시면, 안에서 안내해 줄 사람이 나올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문지기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연화는 각려와 함께 문 앞에서 잠시 기다렸다.

문지기의 말대로 얼마 안 있어 안내해 줄 사람이 왔고, 두 사람은 안내를 받아 당가 안으로 들어갔다.

“가주님 대리를 맡고 계신 원로원주님께서 현재 수련 중이시라 만나실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머무르고 계시면 시간을 맞춰 기별을 드리겠습니다.”

“넵. 감사합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연화에게 웃으며 고개를 숙인 당가의 무인이 물러나고.

“우리 부단주님은 예의도 바르시네~.”

연화의 옆방을 배정받은 각려가 히죽 웃으며 연화의 방으로 들어왔다.

“전 원래 예의가 발랐어요.”

“난 또 우리 단주님한테서 예의가 주입된 건 줄 알았지요.”

히죽히죽 웃으며 방문을 닫은 각려는 장난스럽게 연화를 놀렸다.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던 모습이 첫 만남이어서 전 당연히 그런 줄 알았죠.”

“그건…… 훈련이 워낙 고되어서…….”

입술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돌리는 연화.

그 모습에 히죽 웃은 각려가 와락 그녀를 껴안았다.

“꺅! 우리 부단주님은 너무 귀여워서 문제라니까!”

“이, 이거 놔요!”

거침없이 볼을 부비는 각려.

그런 각려와 뺨을 맞대고 어설픈 손짓으로 그녀를 밀어내려 힘쓰는 연화.

그리고.

‘……심하네.’

‘어질어질할 정도예요.’

영력으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두 사람의 눈동자는 쉴 새 없이 주위를 날카롭게 살피고 있었다.

무인들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술사라면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깔려 있는 영력.

그리고.

그 안에 찐득하게 달라붙어 있는 피 냄새.

아니, 단순히 냄새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부족할 지경이다.

향기로운 꽃향기도 너무 과하면 악취가 되는데, 피 냄새가 농축되고 농축되어 이 공간에 넘쳐흐르고 있었다.

영력을 느낄 수 없는 무인들이라고 할지라도 꺼림칙한 기분이 들 정도로 강렬한 악취가 물씬 풍기고 있다.

‘당 소저의 말이 맞았네.’

‘얼마나 지독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입으로는 시답잖은 소리와 함께 서로를 껴안고 장난을 치면서 두 사람은 무인들이 들을 수 없는 영력을 통한 대화를 나눴다.

‘선택할 때가 왔네.’

‘의뢰를 기다릴지 아니면 먼저 움직일지 고민이네요.’

의뢰를 기다리는 건 무난한 선택이다.

일단 원로원주가 움직이기 전까지 가문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파악할 수 있고,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다.

거기다 무조건 함정인 이곳에서 원로원주는 높은 확률로 두 사람을 의식이 진행되는 곳으로 데려갈 거다.

뛰어난 술사의 영육은 질 좋은 제물이 되니까.

제 발로 함정에 걸어 들어가는 거지만, 함정에 들어간다는 것을 미리 알아채고 있다면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오히려 그 의식에 훼방을 놓고 사천당가가 꾸미고 있는 일을 크게 망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뒤가 없다.

일을 망치면?

사천당가의 고수들을 피해 두 사람이 무사히 도주할 수 있을까?

외부의 조력자는 부상당한 당화유밖에 없는 상황에서?

암기의 고수들인 당가의 무인들을 따돌리고 도망칠 확률은 상당히 희박했다.

아니, 연화는 가능해도 각려는 불가능했다.

그러니.

‘당 소저의 계획대로 가죠.’

‘그래.’

적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친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적의 계획을 망치고 두 사람 모두 무사히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건 당가의 조력을 얻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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