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2화
501화-사천당가 (2)
“꽤 하네.”
분명 당화유의 옆구리를 꿰뚫었을 터인데.
주먹에서 느껴지는 허전함과 바로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연화는 미간을 찡그렸다.
하지만, 감상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즉시 반응한 연화의 몸이 회전했다.
마치 미리 수를 읽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회전하는 허리.
그대로 주먹을 당긴 연화의 일격이 당화유의 머리를 노리고 꽂힌다.
“하지만, 저쪽은 아니네.”
그런 연화의 공격을 흘려 낸 당화유의 시선이 독에 중독되어 무릎을 꿇고 있는 각려에게로 향했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바닥을 기는 각려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혀를 깨물었는지, 아니면 너무 과하게 이를 악물어서 잇몸이 터진 건지 그녀의 입가로 피가 흘러내린다.
“독화……! 설마 당신마저……!”
이를 악물고 손을 자신의 가슴께로 가져가는 각려의 모습에 당화유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머저리는 아니구나.”
가볍게 감상을 남기면서도 이어지는 연화의 공격을 몸을 뒤로 날려 피한 당화유는 부스스 부서지는 자신의 소매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은 능력도 있고.”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을 텐데요?”
“시험.”
살기가 찐득하게 배어 나오는 연화의 목소리에 당화유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쓸모없으면 그냥 돌려보내려고 했어. 개죽음을 당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딴 이유 때문에 독을 풀었다고요?”
“당가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와 놓고 독에 대한 대비조차 안 했다면 그건 자격 미달 아닌가?”
맞는 말이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연화는 어느새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것을 멈춘 각려의 모습을 확인하고 천천히 살기를 누그러뜨렸다.
“그래서? 시험은 통과했나요?”
“너는. 하지만 쟤는 아니야.”
“……큭.”
단호하기 그지없는 대답에 각려는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일으켰다.
바들바들 떨리는 팔다리.
독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과하게 근육을 쥐어짠 결과다.
단련한다고 했는데 술사로 살아온 삶이 더 긴 이 육체는 아직도 나약하기 짝이 없었다.
각려가 이를 악물고 침묵하는 사이.
아직도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는 연화를 본 당화유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나는 합격 불합격을 가릴 처지가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죠?”
“너희가 독에 쓰러졌다고 해도 데려가서 해독시킨 다음에 일을 시켰을 거란 소리지.”
“그 정도로 사정이 급한데, 이런 식으로 사람을 시험했다는 건가요?”
“이런 식으로 시험하는 게 아니면 의미가 없으니까.”
여전히 평온한 어조로 대답하며 당화유는 각려를 바라봤다.
“독에 당해도 한 수 정도는 쓸 수 있는 정신력이 있다는 건 알았으니, 짐이 되진 않겠지.”
중독시켰던 사람이 자신이란 걸 잊은 건가.
뻔뻔하기 그지없는 당화유의 말에 연화가 미간을 찡그리는 그 순간.
“일단, 자리를 옮겨야겠어.”
위를 가리키는 당화유의 손짓에 멈칫했던 연화는 이내 한숨을 내쉬고 각려를 어깨에 둘러멨다.
“부, 부단주님…….”
“됐어요. 가만히 있어요.”
각려를 어깨에 얹은 연화는 한숨과 함께 어느새 건물 지붕으로 올라간 당화유의 뒤를 따랐다.
이 사천당가로 오면서 들었던 정보 중 하나.
‘독화는 믿을 만한 사람이니, 만나면 협력해 주세요.’
자신을 이곳에 보낸 유예린의 명령이다.
말이 부관이지, 거의 뭐 호법 아니면 단주 대리 정도의 위치에 있는 유예린이다.
게다가 각려가 독에 당해 쓰러졌을 땐 분노가 솟구쳐 살기를 맹렬히 내뿜었지만, 상대가 해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는데 계속 싸우기도 뭐했다.
거기다.
‘전혀 눈치 못 챘어.’
각려에게 독을 뿌리는 것도, 해독제를 뿌리는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쓰는 독과 해독제가 무색무취의 것도 아닐 텐데.
자신에게 뿌려진 독은 항상 몸에 두르고 있는 괴연천식(傀然天食)의 힘이 먹어 치웠지만…….
‘진짜 위험한 독이었다면…….’
괴연천식(傀然天食)이 감당할 수 있었을까?
주독(呪毒)이라면 웬만한 독은 무시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당가의 독을 자신이 이겨 낼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가슴속에 조용히 묻으며 연화는 앞서가는 당화유의 뒷모습을 확실히 눈에 담았다.
적이든 아니든 간에.
‘……조심해야 해.’
저 사람은 경계를 늦춰선 안 되는 작자인 듯하니.
* * *
“……이상하군.”
사천당가의 골목.
당화유와 연화, 각려가 사라진 곳에 도착한 사내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이곳에서 상당한 수준의 살기가 느껴졌는데?
‘착각이었나?’
순찰을 돌던 당가의 무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착각이라고 하기에는 느껴졌던 살기가 너무 선명했는데…….
급하게 달려왔지만, 딱히 주변에 느껴지는 기척이 없었다.
도주한 흔적도 없고.
살기를 풍겼다는 건 싸움이 일어났을 확률이 높은데 그런 흔적이 아예 없으니,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뒤늦게 달려온 부하들의 물음에 가볍게 손을 내저은 무인은 몸을 돌려 순찰 경로로 이동했다.
지금처럼 가문의 분위기가 극도로 흉흉한 시기에는 빈틈이 있어선 안 된다.
철저하게 확인하는 것이 순찰의 기본.
하지만 확인했는데 별다른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면 거기까지다.
다만.
‘보고는 해야겠군.’
추가로 무슨 조치가 취해질지는 모르겠지만, 보고는 해야 했다.
지금 가문을 움직이는 분들이 이 보고를 무시할지 주의할지는 모르겠지만.
* * *
“……왜 이런 곳에 있으세요?”
“난 지금 일단 실종 상태야.”
“……실종이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영문을 알 수 없는 당화유의 대답에 연화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허름하지만 깔끔한 이불 위에 각려를 눕혔다.
“당 소저는 당가의 직계잖아요? 그런데 왜 실종을?”
아니, 내 눈앞에 있는데 실종이라는 표현이 맞나?
이거 가출 아니야?
연화가 실례가 될지도 모르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근처 의자에 앉은 당화유는 그런 연화를 지그시 응시했다.
“너, 몇 살이지?”
“……당신보다는 어려요.”
“설천위가 직접 데리고 와서 키웠다는 얘기는 들었어.”
“그건 그렇죠.”
“역시 덮쳐서라도 그를 사위로 끌어들였어야 했나.”
“……유 부관님이 들으시면 목이 날아갈 소리를 하시네요.”
“영웅호색이지.”
아니, 그게 아니잖아.
이 인간, 뭔가 대화가 안 통하는데.
말이 통하는 것 같으면서도 뜬금없이 이상한 답이 나온다.
당화유를 조금 알 것도 같다는 느낌으로 연화는 자리에 앉아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래서, 실종 상태를 꾸며서 이렇게 숨어 있는 이유가 뭐예요?”
“봐선 안 되는 걸 봐 버려서.”
봐선 안 되는 거?
당가의 직계, 그것도 이름이 쟁쟁한 후기지수가 봐선 안 될 거라니.
“너무 짐작 가는 바가 많네요.”
힘겹게 몸을 일으킨 각려의 목소리에 연화가 다급히 그녀를 붙잡았다.
“좀 더 누워서 쉬어야…….”
“괜찮아요. 독은 깔끔하게 사라졌으니까. 악을 써서 조금 피곤한 것뿐이에요.”
덤으로 잇몸도 망가져서 며칠은 밥 먹을 때 고생 꽤나 하게 생겼다.
자신을 잡는 연화의 손을 떼어 낸 각려는 씁쓸한 눈으로 당화유를 바라봤다.
“대가문의 추태는 흔히 있는 일이죠. 비틀린 성벽을 가진 가문의 어른, 비인간적인 실험, 아랫사람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비정함, 올바르지 못한 수단으로 쌓은 부.”
작정하고 파헤치면 대가문쯤 되는 곳에선 먼지처럼 비리가 우수수 떨어지는 법이다.
인간은 언제나 상대적인 동물이다.
완전한 객관화?
이루어질 수 없다.
갑과 을이 싸우면 제 가족인 갑의 처지에서 상황을 보고 해결하려 든다.
처음에는 별거 아닌 일이니, 당연히 가족을 감싸고.
그런 것이 반복되고 반복되다 보면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훌쩍 넘은 가족조차 감싸려 든다.
하물며, 그게 막강한 힘과 자본을 가진 대가문이라면 더더욱.
더럽고 추악한 일 따위는 대가문의 이름과 힘 앞에 얼마든지 땅속에 파묻을 수 있다.
그런 추태를 만약 당화유가 봤고, 그녀가 그것을 반대했다면.
“충분히 실종으로 위장해서 숨을 수도 있겠죠.”
상황이 진정되길 기다리며.
각려의 설명에 연화는 조금 놀란 눈으로 당화유를 바라봤다.
생각해 보면 당가의 직계나 되는 인물이 이런 곳에 숨어 있을 만한 이유는 그 정도밖에 없을 것 같았다.
경계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다짐마저 물렁해지려는 그 순간.
“정답이야. 다만, 조금 상황이 달라.”
고개를 저은 당화유는 자신의 상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단순히 상황이 진정되길 바라서 숨은 게 아니야.”
“그건…….”
당화유의 복부.
매끈한 근육과 앙증맞은 배꼽이 있어야 할 그곳에.
“살려고 도망쳐 나왔을 뿐이야.”
지독할 정도로 흉물스러운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아니.
과연 상처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보라색과 붉은색이 섞인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목도한 순간, 연화와 각려는 깨달았다.
“……늦었군요.”
“우리가 늦었어요.”
두 사람의 독백에 당화유는 고개를 끄덕이고 옷을 내렸다.
“조금 늦었지. 미끼를 물고 맹에 지원을 요청한 건 나였지만…… 너무 깊이 파고들려다가 오히려 낚싯바늘에 뜯겨 나갔어.”
미끼를 건드리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물어 버려 빠져나오려다가 낚싯바늘에 통째로 살이 뜯겨 나간 격이었다.
그나마 살아서 빠져나온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말했지? 너희가 불합격이었어도 힘을 빌렸을 거라고.”
괜히 목숨을 걸고 시내에 나가 이들을 기다렸던 게 아니었다.
“당가는 타락했어.”
그 끔찍한 상처를 입고 있다곤 생각하기 힘든, 담담한 목소리로 당화유는 지금 처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사천당가(四川唐家).
한 지역을 대표하는 무가(武家)이자, 정파 무림에서 유일하게 독(毒)을 주력으로 삼는 가문.
독(毒)은 곧 고도로 발전한 의술(醫術)이다.
당연히 그것은 매우 귀중한 지식이고, 당가 사람들은 그 지식을 외인과 공유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철저하게 폐쇄적인 가문.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여자조차 가문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데릴사위를 들인다.
특히, 가문의 중요 지식을 접하며 커 온 직계는 거의 가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기다 당가가 자랑하는 또 다른 무기인 암기술은 사용하는 무기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의 위력을 발휘하는데, 그 또한 기술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었다.
섬세하게 쇠를 만져 만들어 내는 것이니까.
하물며, 당가의 무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장침마저 쇠를 얇고 단단하게, 또 유연하게 제련할 기술이 필요하니 사천당가는 기술과 지식으로 가문을 지탱하고 있다고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 폐쇄적인 가문이지만.
아니, 그런 가문이기에.
내부에서부터 썩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물며 그것을 관리 감독하고 견제해야 할 가주는 무림맹에서 단주(團主)를 맡아 거의 대부분 가문 밖에 있다.
그런 상황에서 가문에서 기침 좀 한다는 어른들이 부패했다면?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이가 과연 있을까?
또한,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약간의 일탈을 용서해 주는 분위기에서 본래의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답은 ‘아니요’였다.
당문은 썩어 들어갔고.
외부에서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에만 집착하는 가주는 제대로 가문을 챙기지 못했다.
아버지를 따라 무림맹에서 일하다가, 실리를 추구하며 정치 싸움에 몰두하는 아버지에게 실망해 가문으로 돌아온 당화유는 그 썩어 빠진 진실을 목도하고 말았다.
하지만 고칠 수 있다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주가 직접 견제를 위해 흑룡단을 함정에 빠트려 전력을 깎으라는 지시를 내렸을 때도.
그녀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나고 자란 가문은.
자신이 사랑하는 가문은.
분명히 제정신을 차리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실익을 추구하지만, 정도는 지키는 그런 정파(正派)로 남을 것이라고.
그런데.
“준비는 되었소?”
“당화유, 그 계집을 놓친 것을 빼면 완벽하오.”
“쯧, 그 애는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신경 쓰지 마시오.”
당가의 깊은 지하실.
찌든 피로 벽과 바닥이 질척한 곳에서 나누는 대화 속에는 지독한 악의(惡意)가 일렁인다.
당화유가 사랑하는 사천당문은 안타깝게도 더러운 시궁창에 처박힌 지 이미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