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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01화 (501/624)

제501화

500화-사천당가 (1)

“조용하군.”

설천위과 사존이 둘 다 눈을 감고 무의식에 빠진 지 반 시진(한 시간).

설천위의 주위를 경계하던 철백은 조용한 숲의 공기에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

“흠.”

마찬가지로 이상함을 느낀 서하영 또한 가부좌를 튼 상태로 무릎에 올려놓고 있던 창을 들고 일어섰다.

“동물 소리가 아예 사라졌네요.”

일반인들은 쉽사리 듣지 못하는 작은 소리.

그런 소리는 본래 숲에 언제나 퍼져 있다.

풀벌레들의 소리, 다람쥐나 새 같은 작은 동물들이 움직이는 소리 등등.

귀가 밝은 이에게 숲은 본래 상당히 부산스러운 곳인데, 지금은 왠지 이 인근의 숲이 완전한 고요 속에 빠져 있었다.

마치 모든 동식물이 움직임을 딱 멈춘 것처럼.

경계심을 끌어올린 철백과 서하영이 철저하게 주위를 관찰하던 그 순간.

“이건…….”

“이런.”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두 사람.

하지만 변한 게 있었다.

사존의 가슴에 올라가 있던 설천위의 손이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둘 중 하나.

깨웠거나.

실패했거나.

뭐가 됐든 작은 동물들이 뻣뻣하게 굳어 버리기엔 충분한 요소인지라 두 사람의 긴장감은 빠르게 치솟았다.

여차하면 움직이기 위해 두 사람의 허벅지가 부풀어 오르던 그때.

“됐어.”

설천위의 한마디에 긴장감은 빠르게 해소됐다.

두통이 있는지 한 손으로 머리를 짚은 설천위가 천천히 사존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후드득.

파편이 되어 쏟아지는 얼음 사이로 사존이 천천히 눈을 떴다.

“……고맙구나.”

“별말씀을.”

간단한 감사 인사와 대답.

설천위에게 눈빛으로 감사를 표한 사존은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뿌드드득!

철백이 밟은 대지가 깊게 파고 들어가고, 서하영이 쥔 창에서 강렬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본능.

사존이 움직이는 순간, 긴장이 풀렸던 두 사람의 몸이 단숨에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철백과 서하영은 깨달았다.

지금 숲에 찾아온 무거운 침묵을 야기한 주인이 누구인지.

‘이지를 상실했을 때가 약했던 건가.’

‘……어질어질하네요.’

내공 한 점 움직이지 않고 살의만으로 자신들을 긴장케 하는 사존의 존재감에 철백과 서하영이 마른침을 삼키는 순간.

“미안하구나. 내가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아서.”

두 사람을 향한 사죄와 함께 숲을 집어삼키던 살의가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빨려 들어갔다.

한 사람에게.

“이 화를 너희들에게 풀 순 없는 노릇이지.”

단숨에 모든 살기를 거둔 사존은 웃음과 함께 돌아섰다.

“정보는 말해 준 대로다. 일단 나는 따로 움직여야겠구나.”

“넵. 고생하셨어요.”

설천위의 말에 대답 없이 손을 휘저은 사존은 그대로 도약해 사라졌다.

멀쩡하지도 않은 몸으로 돌아다니다가 또 붙잡히면 어쩌나 싶었지만…….

‘거기까지 통제할 순 없지.’

사존의 자존심도 있고, 애초에 함정에 또 당해서 붙잡힐 멍청한 양반도 아니고.

저 양반이 지금 사천맹으로 돌아가면 백유는 진짜 완벽한 절대 권력을 손에 넣게 된다.

사파는 이제 진짜 걱정 끝.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 달려와 줄 거다.

“천위, 상황 설명이 필요한데.”

“아, 뭐 별거 없고. 사존 할배의 갇혀 있던 정신을 꺼낸 느낌?”

“별거 없는 것 같진 않은데.”

설천위의 태연한 설명에 한숨을 내쉰 철백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일단 휴식인가?”

“그래. 오늘은 더 움직이기 싫으니까 적당히 야영이나 하자.”

설천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철백은 서하영에게 눈짓했다.

오늘 가장 고생한 건 설천위이니 야영 준비 정도는 자신들이 해야 했다.

* * *

“그래서, 화경에는 올랐고?”

“흥, 화강(化罡)도 만들었거든요?”

타오르는 모닥불 앞.

철백이 잡아 온 멧돼지를 야무지게 구워 먹은 세 사람은 부른 배를 부여잡고 대화를 시작했다.

“바람을 품은 강기라……. 나쁘지 않네.”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너 하면 바람이지 뭐가 더 있나?”

“……그야 그렇지만.”

왠지 다 읽힌 것 같아서 분했다.

살짝 입술이 튀어나온 서하영의 모습에 허허 웃은 철백은 남은 고기를 뒤적여 입에 넣었다.

“나는 대성(大成)을 이뤘지.”

“오호.”

대성(大成).

무언가를 완성했다는 철백의 자신감에 설천위는 입꼬리를 올렸다.

“아까 사존이랑 싸웠을 때 어땠는데?”

“할 만했다.”

“이기진 못해도 지진 않을 자신이 있었나 보네.”

설천위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고기를 뜯는 철백.

그것이 긍정임을 깨달은 서하영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설천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잠재력이 폭발하기 시작했군.’

철백.

육도라는 게임 속에서 가장 인기 있던 남자 캐릭터 중 하나.

금강불괴, 금강신장, 금강천 등등.

수많은 별명들이 있었지만, 설천위가 가장 좋아하는 철백의 별명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이었다.

괴(怪), 기괴한 일.

력(力), 이치를 벗어난 힘.

난(亂),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일.

신(神), 신비롭고 신적인 일.

무릇 군자라면 멀리해야 할 것.

이는 공자가 말한 괴력난신의 정의이다.

유학을 갈고닦는 이들은 이런 공자의 가르침을 새기고 정진한다.

하지만, 무림에서는 보통의 유학자들과 다른 관점으로 괴력난신을 해석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괴력(怪力), 기이할 정도로 강한 힘.

난신(亂神), 세상을 어지럽히는 귀신.

이 두 가지는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

철백에게 ‘괴력난신’이라는 별명이 붙는 이유는 간단했다.

무인의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압도적인 강함.

그 증거로 괴력난신이라는 별호가 붙었으니…….

‘솔직히 간지 났지.’

그냥 멋짐이 폭발하는 별호라고 해야 하나.

상당히 취향이었다.

아무튼, 그 정도로 강한 철백이니 벽을 뚫은 지금 또 쭉쭉 강해질 거다.

그러다 보면 다음에는 멸(滅)의 악귀 정도는 혼자 두들겨 잡고 그러겠지.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설천위는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전력 상승은 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사파 쪽은 거의 깔끔하게 해결됐고.

백화단주는 목숨을 건져 강해지고 있고.

만귀단주는 죽었지만, 술법은 자신이 거의 다 이어받았고.

주인공급 중에서 챙길 수 있는 녀석들은 거의 다 챙겼다.

만나기 쉽지 않거나 만나도 딱히 설득해서 데려올 가능성이 크지 않은 녀석들은 어쩔 수 없지.

있으면 무조건 좋긴 하지만, 이 대륙은 땅덩어리가 더럽게 넓어서 찾으러 다니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정보 단체에 정보가 걸리는 것을 기다리는 것도 운에 맡겨야 하고.

아무튼, 챙길 녀석들은 챙겨서 다 단련시켜 놨고 구할 수 있는 녀석들도 구해서 단련시켜 놨다.

지금 무림의 전력은 설천위가 플레이했던 육도의 그 어떤 판보다 강했다.

‘가능할 수도 있어.’

연옥이 열리기 전에 틀어막는 계획.

게임에서야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할 만해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틀어져서 게임 속에서 봤던 에피소드들이 뒤죽박죽 일어나거나 안 일어나고 있어서 이제 게임에서 얻은 정보의 가치는 크게 줄어들었지만.

그 정도로 지금 무림의 힘은 강력했다.

“할 만해.”

타오르는 모닥불에 장작을 하나 더 던져 넣으며,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 * *

“아으……. 내가 왜…….”

“그러니 오지 말라니까.”

가도 위.

터덜터덜 걸어가는 각려의 힘없는 목소리에 연화는 쯧쯧 혀를 찼다.

“혼자서도 괜찮다고 했는데, 왜 굳이 따라와서 칭얼거리는 거예요?”

“칭얼거린다니, 너무해…….”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에 따라온 건데.

성큼성큼 걸어가는 연화의 옆에서 한숨을 푹 내쉰 각려는 자신의 짐 속에서 물주머니를 꺼냈다.

“그래서, 진짜로 어쩔 생각인데?”

“뭐가요?”

“함정일 게 뻔히 보이는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자신감의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가죽 맛이 나는 맛없는 물을 마시고 입가를 훔친 각려는 한숨과 함께 연화를 바라봤다.

“진짜로 생각이 있어서 가는 거지? 제발 그렇다고 해 줘.”

“에이, 날 뭐로 보고.”

오!

계획이 있나?

“그런 거 없어요. 그냥 가서 몸으로 부딪치고 해결하는 거죠.”

탁!

“후우.”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손바닥으로 때린 각려는 흐물흐물 힘없는 팔을 내리며 얼굴을 쓸었다.

“진짜로?”

“진짜로.”

“……누가 그 양반 밑에서 부단주로 일하는 인간 아니랄까 봐.”

무식한 것도 닮았구나.

아니, 거의 그 인간 제자처럼 지낸 게 일 년이니 닮을 법도 한가.

한숨을 푹푹 내쉰 각려는 물주머니를 다시 짐에 넣고 끈을 단단하게 동여맸다.

“……준비됐어.”

등에 짐을 짊어지고, 비장한 얼굴로 말하는 각려.

그리고.

“좋아요. 그럼 다시 뛰죠.”

그런 각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연화는 망설임 없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각려가 따라올 수 있는, 아슬아슬한 속도로 맞춰서.

“흐읍! 후! 흐읍! 후!”

그리고 그런 연화의 뒤를 각려는 훈련된 호흡법을 선보이며 따라붙었다.

술사가 장거리 임무를 나가는데 말없이 움직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튼튼한 두 다리를 자랑하는 부단주가 뛰어가겠다는데, 그 부관이 느긋하게 말에 타서 갈 수 있겠는가.

당연히 수련을 핑계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라서 사천에 진입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달리고 달려서 마을을 지나 도시로 들어섰다.

“……여기가.”

성도(成都).

사천당가가 위치한 사천성의 대도시.

성벽부터 예사롭지 않은 성도에 들어선 연화는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런 걸 보면 영락없는 애인데.’

싸울 때 보면 아니란 말이지.

수련할 때의 독기도 그렇고.

참.

사람이란 게 뭔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각려는 눈을 반짝이며 시내 곳곳을 구경하려는 연화를 붙잡고 사천당가로 걸음을 옮겼다.

나름 무림맹 짬밥이 거의 십 년이다.

성도는 와 봐서 사천당가로 가는 길 정도는 알았다.

그렇게 사천당가로 걸어가던 그 순간.

“누구시죠?”

인파를 피해 조금 인적이 드문 길로 들어선 순간, 연화가 걸음을 멈췄다.

덩달아 걸음을 멈춘 각려가 당황해서 사방을 살피는 그 순간.

“감이 좋네.”

허공에서 떨어진 사람이 연화와 각려 앞에 섰다.

“스스로 함정에 기어 들어온 멍청이인가 했어.”

“……그래서 누구죠?”

“당화유.”

……당화유?

뭔가 익숙한 이름에 각려는 고개를 갸웃했다.

당화유, 당화유…….

분명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있는데…….

“너희 단주랑 친구.”

“아……!”

독화(毒花)!

사천당가 출신의 괴물!

은검(隱劍) 유예린과 비견되던 괴물 중 괴물이다.

절정에 이른 암기술은 물론이고, 웬만한 무인들은 당한 것도 모르고 의식을 잃는 뛰어난 하독술까지.

독을 다루는 사천당가의 재능을 그야말로 전부 이어받았다는 평가를 받던 괴물이다.

무림맹에 들어온 뒤로 무슨 문제가 생겨서 본가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는 어렴풋이 들었는데…….

‘……멀쩡하네?’

보통 무림맹에 들어왔다가 가문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건강상의 문제가 대부분인데.

멀쩡하다 못해 은은한 기세를 절묘하게 감추고 있는 당화유의 모습에 각려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옆에 있던 연화가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누군지 알아요?”

“아, 네. 알아요.”

사적인 자리에서야 나이 차이가 열 살 가까이 나니 반말이지만, 임무에 나와서 다른 사람 앞에서까지 그럴 순 없지.

“사천당가의 여식, 독화 당화유예요.”

“아, 의뢰를 주신 사천당가 분이시군요.”

각려의 설명에 밝게 웃은 연화는 포권으로 인사했다.

“이번에 임무를 맡고 온 흑룡단 부단주 연화라고 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가문에서 해 준다고 전해 들었는데, 이대로 따라가면 될까요?”

“…….”

빙긋 웃으며 묻는 연화를 가만히 바라보던 당화유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게, 무슨 짓일까요?”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은 목소리로 거리를 좁힌 연화의 주먹이 당화유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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