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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98화 (498/624)

제498화

497화-사존(邪尊) (2)

봉인을 위해 필요한 건 뭘까.

아니, 살아 있는 사람을 봉인한다는 것이 가능키나 한가.

그런 의문에 대해 설천위는 간단하게 답을 내렸다.

“일단 해 보는 거지.”

고민하다가는 아무것도 못 한다.

일단 부딪쳐 보고, 그다음에 구체적으로 문제점을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

다만, 이 일이 끝나고 돌아가면 사람을 봉인하는 방법도 연구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설천위는 천천히 사존을 살폈다.

열기에 적응한 듯 평온한 숨소리.

발갛게 달아오르던 피부도 멀쩡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이런 화산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솔직히 말해서 정말 대단하다.

지금 설천위가 만들어 낸 이 화산은 영적인 산물.

즉, 혼에 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치밀어 오르는 열기와 화산재를 내공으로 보호한다고 치더라도 혼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열기만큼은 아무리 강한 무인이라도 힘들 텐데.

그걸 저리도 아무렇지 않게 버텨 낸다는 점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물론, 감탄이 나오는 건 나오는 거고.

이쪽은 해야 할 일을 해야지.

‘속도로는 무리야.’

일단 냉정하게 상황을 읽는 데 집중했다.

사존의 속도는 이쪽이 겨우 반응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용암지대가 상대의 발목을 붙잡더라도 어느 정도 적응이 끝난 사존을 이쪽에서 속도로 따라잡을 순 없었다.

힘?

벼락보다 순간적인 화력이 강한 힘이 얼마나 있다고.

당연히 무리다.

그렇다면 남는 경우의 수는 오로지 하나.

“물량전밖에 없네.”

힘도, 속도도 안 된다면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설천위가 손을 뻗는 것과 동시에 용암이 솟구쳤다.

치솟는 용암 속에서 튀어나온 검은 말뚝이 사존을 향해 쇄도한다.

붉은 용암을 휘감은 검은 말뚝.

쩡!

사존의 손과 닿는 것만으로 거대한 바위가 쪼개지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용암을 휘감은 말뚝은 물론, 다시금 분출을 시작한 소화산들에서 쏟아지는 쇄설물이 사존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아래에서 치솟는 말뚝.

위에서 쏟아지는 화산 쇄설물.

말 그대로 물량전을 실현하고 있는 설천위는 담담한 눈으로 상황을 지켜봤다.

물량으로 밀고 들어오는 설천위의 공격.

어느새 사존은 전신에 벼락을 두르고 있었다.

‘……허.’

첫 말뚝을 쳐 내며 터진 굉음은 시작일 뿐이었다.

쏟아지는 암석과 화산재 속에서 사존은 설천위의 말뚝만큼은 손으로 직접 쳐 냈다.

튕겨 나오는 말뚝도 있고, 아예 쪼개져 버리는 것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존의 주위로 박히는 말뚝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이쪽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였지만.

‘괴물 같네, 진짜.’

어느새 말뚝을 쳐 낼 때도 굉음이 터져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단순히 쳐 내거나 막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힘 자체를 분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흘려 내고 막아 내는 과정에서 말뚝에 담긴 힘을 전부 해소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인간이 휘두르는 검도 아니고, 경로 따위 정해져 있지 않은 공격을 전부 다 읽어 내고 있단 소리였다.

거기다 머리 위로 쏟아지던 암석과 화산재는 몸에 두른 벼락에 분쇄돼 흩어진 지 오래였다.

“쉽지 않네. 진짜로.”

다만,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사존의 대응에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어느새 사존의 주위로 빼곡히 박힌 말뚝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설천위의 영력이 담긴 매개체.

“흑관(黑棺) 장송(葬送).”

파바박!

말뚝에서부터 솟구치는 칠흑의 벽이 순식간에 수십 개의 면을 만들며 겹쳐진다.

면이 겹치고 겹쳐 입체가 되고, 단숨에 두꺼운 벽이 되어 사존을 가둔다.

순식간에 봉인의 기초인 결계를 형성한 설천위는 발밑에 흑관을 만들어 내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단숨에 허공으로 치솟자, 결계 속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사존과 눈이 마주쳤다.

“그럼 영감님, 일단 좀 주무시고 계셔 봐.”

대충 방법이 생각나면 다시 깨워 드릴 테니까.

짝!

설천위가 손을 마주치는 것과 동시에 벽만 이루고 있던 결계는 빠르게 천장까지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파바박!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뚝이 사존의 발을 묶었다.

뛰어오르지 못하게.

아주 잠깐, 사존의 발을 묶는 데 성공한 것과 더불어 결계의 천장이 완성됐다.

“후우.”

그 두께부터가 말도 안 되는 두툼한 관에 사존을 가두는 데 성공한 설천위는 즉시 술법을 발동시켰다.

내부에 있는 존재의 영력을 빨아들이는 술법이다.

영력만 빨아들여도 저 결계는 쉽사리 부술 수 없다.

“일단, 이걸로 대충 정리가 됐…….”

그렇게 안심하던 그 순간.

쿵!

땅이 울린다.

쿵!

결계가 마구 요동친다.

쿵!

하늘이.

“……미친.”

뒤섞인다.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하늘의 색이 변한 것을 깨달은 설천위의 표정이 단숨에 굳어졌다.

[이, 이건!]

“뭔데!”

당황해서 입을 여는 흑암지규군의 목소리와 함께 설천위는 즉시 결계에 힘을 더했다.

뭔지 몰라도 결계에서 나오게 해선 안 된다.

그런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순식간에 몇 겹이나 되는 흑관이 결계에 덧씌워져 결계를 보강했다.

동시에, 패기(覇氣)까지 섞어 결계의 격 자체를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쩡!!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저 깊은 곳에서부터.

결계의 가장 안쪽에서부터.

깨져 나가기 시작한다.

한 겹.

두 겹.

세 겹.

이윽고 열 겹, 스무 겹.

설천위가 오밀조밀하게 만들어 냈던 결계가 깨져 나간다.

그리고.

빠각!

최후의 벽을 뚫고 나온 손에 휘감긴 벼락이 타오르듯 일렁인다.

“……미친.”

콰드드드득!!

손이 움직이는 그대로 결계가 갈라진다.

부서지고, 불타고, 녹아내리는 결계.

순식간에 사람 하나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어진 구멍에서 사존이 걸어 나왔다.

이지를 상실한 공허한 눈.

그런 눈을 한 주제에.

어찌 저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할 수 있는지.

헛웃음을 흘리는 것과 동시에 설천위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진짜,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

흑암지규군이 놀랐던 이유.

사존이 이지를 잃은 폐인이 된 이유.

그렇게 되고 나서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전투력을 발휘하는 이유.

그게 가능한 이유를 설천위는 딱 하나 알고 있다.

“……육도(六道)의 파편.”

인세의 것이 아닌 힘.

저 연옥의 괴물들조차 탐내는 세계의 힘.

그걸.

“반칙 아닌가?”

현경급 고수가 쓰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싶은데.

* * *

“됐다!”

“생각보다 더 빠르군.”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말이다. 화기(火氣)는 최소한으로 했다.]

대신 그만큼 약재를 풀어 주지 못해 흡수가 어렵긴 하겠지만, 철백과 서하영의 재능이라면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거다.

적절한 비율로 약재를 섞고, 약간의 화기로 합쳐 만들어 낸 약.

둥근 환(丸)의 형태를 한 영약에서 올라오는 맑은 향기에 서하영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벽을 넘을 수 있게 해 줄 힘.

설천위가 말한, 부족한 시간을 대신해 줄 힘이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서하영은 가볍게 호흡을 고르고 철백과 눈을 마주쳤다.

끄덕.

서로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은 적당히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망설임 없이 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의심이나 우려 따위는 없었다.

이 약은 설천위가 자신들을 위해 준비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망설임 없이 약을 입안에 털어 넣은 두 사람은 순식간에 깊은 명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빠득! 빠드드득!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동굴 안에 울리기 시작했다.

* * *

결계를 뚫고 나온 사존과 마주한 설천위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쓸모없네.”

[이,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흑암지규군의 힘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용암지대가 사존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있었다.

열기는 뭐,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였고 용암이나 떨어지는 바위도 사존의 벼락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허공에서 분쇄되었다.

“후우, 꽤 쓸 만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역시 대량 학살에 특화된 능력답다고 해야 하나.

대인전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네.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힘을 거둬들였다.

끓어오르던 현무암이 식어 버리고.

대지 위로 흐르던 용암이 사라진다.

솟구쳤던 소화산과 용암, 화산재가 사라지고 파괴의 흔적만 남은 숲.

타들어 가고 눌어붙은 잔해만 남아 식어 버린 풍경 속에서.

“……이건 또 뭐야.”

후끈한 열기가 올라왔다.

이쪽의 뺨이 따가울 정도로 강렬한 열기.

분명 이쪽이 만들어 낸 용암의 열기는 전부 사라졌을 텐데.

“……조졌네.”

스멀스멀 올라오는 열기에 설천위는 등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육도의 파편 중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열기를 뿜어내는 힘은 딱 하나뿐이다.

지옥도(地獄道).

다른 육도의 파편과 달리 지옥도의 가장 큰 특징은 변동성이다.

아귀도, 수라도, 축생도 등등 다른 파편도 힘의 종류가 하나뿐이진 않다.

당장 설천위가 가진 수라도의 힘만 해도 설천위가 쓰는 [수라(修羅)] 이외의 형태로 발휘되는 기술들이 있으니까.

비록 지금의 설천위는 쓰지 못하지만.

여하튼, 파편마다 꽤나 다양한 특징을 지닌 육도의 파편들 중에서 지옥도의 힘이 유독 변동성이 강하다고 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지옥도(地獄道)는 주인에 따라 그 강함과 종류가 바뀐다.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불러낼 수 있는 지옥(地獄)이 달라진다.

당연히 그 안에 담긴 화력도 다르다.

그리고.

“……초열급은 되겠는데.”

후끈하게 올라오는 열기.

바닥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붉게 달아오른 강철 궤짝.

초열지옥(焦熱地獄)이다.

다만.

‘불완전하네.’

애초에 영적인 존재로 살아온 세월이 없어서 그런가.

영역(靈域)이 온전치 않았다.

의식해서 영역을 발동시킨 것 같지도 않고.

다만.

“이건 좀 빡센데.”

전면을 가득 메운 흑관이 사존의 손짓에 우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설천위는 몸을 빼냈다.

점점 열기가 강해지는 건 나중 문제다.

열기를 몸에 두른 사존은 그 영력을 뇌전과 뒤섞어 이쪽의 방어를 무식하게 때려 부수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통한다는 것.

사존급의 강자가 영력을 두르니 이쪽의 결계가 도저히 버티질 못했다.

“쉽지 않은데.”

계속 거리를 유지하며 흑관으로 만든 말뚝을 던지고 있었지만, 사존이 거리를 좁히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흑관으로 길을 막아도 그냥 부숴 버리니…….

‘……제압은 물 건너간 것 같은데.’

얼려 버리고 싶었지만, 흑암지규군 때와는 사정이 너무 달랐다.

흑암지규군은 겉으론 멀쩡해 보였어도 나름대로 전투로 소모된 상태에서 만귀단주가 목숨을 걸고 봉인했던 것을 본인이 억지로 뜯고 나온 상황이었다.

애초에 온전히 현신을 못 했는데 힘도 꽤 소모한, 상당히 약해진 상태였기에 그렇게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었던 거다.

그걸 흑암지규군 본인도 알기에 심상 세계에서 굴복시키는 데 거의 1년 가까이 걸린 거고.

현경급 고수는 영력이 없어도 멸(滅) 등급의 악귀에게서 제 한 몸 사리고 도망치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한 괴물들이다.

그런 괴물이 육도의 파편까지 흡수했으니 멸(滅) 등급의 악귀랑 같은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무리 설천위라고 해도 이쪽이 피해를 보지 않고 제압하는 건 힘들었다.

빠각!

생각에 빠진 사이, 단숨에 벽을 뚫고 달려드는 사존의 공격에 설천위는 본능적으로 흑도를 꺼내 휘둘렀다.

단숨에 부러지는 도신.

그와 동시에 왼쪽 아래에서부터 파고드는 사존의 주먹에 설천위가 제압을 포기하는 그 순간.

쿵!!

묵직한 소음과 함께 대지가 흔들리고.

쾅!!

솟구쳐 오르던 사존의 주먹이 몸과 함께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치이이익!

무언가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후우…….”

타오르는 옷가지를 손으로 대충 뜯어 낸 철백이 손을 들었다.

수십 갈래의 생채기가 빨갛게 달아오른 손과 팔.

그 잠깐의 순간에 대체 몇 번의 공격으로 반격한 건지.

보통이라면 팔이 갈가리 찢어져 육편이 되어 버렸을 거다.

화끈거리는 통증을 주먹을 불끈 쥐는 것으로 털어 낸 철백은 고개를 돌렸다.

“천위.”

담담한 얼굴로 철백은 한동안 친구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꺼냈다.

“도우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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