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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96화 (496/624)

제496화

495화-영약 구하기 (4)

전투로 인한 굉음이 터져 나오는 동굴 안.

그 안으로 노인의 발이 들어가 그 바닥을 밟는 그 순간.

뚝.

동굴에서 울리는 소음이 사라지고, 기묘한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동굴 안쪽에서부터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것 같은 짙은 살의가 노인을 밀어냈다.

정말 의외라는 듯 놀람이 담긴 목소리와 함께.

“진짜 의외야.”

동굴 입구에서 나온 것은 설천위였다.

평소와 같은 느긋한 태도.

어깨에 걸친 흑도.

허나, 그 눈빛과 목소리에는 확실하게 놀라운 감정이 담겨 있었다.

“사존(邪尊)…… 이 맞는 것 같은데.”

실제로 봤던 사존(邪尊) 구령학.

봉두난발에 몸 곳곳에 쇠말뚝이 박혀 있는, 실로 말도 안 되는 모습이었지만, 아무리 봐도 사존이 맞았다.

그렇기에 설천위는 쉽사리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될 양반이 아닌데…….”

게임 속에서 사존은 사파의 희망이라 불렸다.

유일한 사파의 플레이어블 캐릭터 백유의 희망임과 동시에, 후에 있을 대전(大戰)에서 사파를 그나마 제대로 이끄는 유일한 리더이기 때문이다.

구령학이 없어지는 순간, 정파 혹은 정사지간의 캐릭터로 플레이하던 유저는 사파를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 버린다.

백유 혼자서는 사파를 수습하기도 바쁘니, 아예 머릿속에서 지우고 전력 외 취급을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사파에서 사존(邪尊)이라는 이름의 가치는 높았다.

물론 지금은 설천위가 뼈 빠지게 고생해서 백유를 사천(邪天)이라고까지 불리는 존재로 만들어 사존의 빈자리를 훌륭히 메울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해 놓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존의 무력이 약해진 건 아니었다.

사존이 사파의 절대적인 기둥이 되는 이유.

지금의 백유에겐 없고, 사존에겐 있는 것.

강함.

그것도, 단순한 강함이 아니라 압도적인 강함.

그것이 백유에겐 없고 사존에겐 있었다.

무림맹주 심유의 별호인 정존(正尊)은 정파 무림이 예의를 지키기 위해 붙여 준 별호다.

사파의 맹주가 사존(邪尊)이라 불리니까.

즉, 무림맹주의 허례허식으로 나온 별호가 아니라 사존은 정말로 사파[邪]에서 유일하게 존귀[尊]하기에 사존(邪尊)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저 강함 하나만으로, 그 별호를 만들어 낸 이가 바로 사존이다.

사파 전체를 무력 하나로 무릎 꿇린 괴물.

홀로 성장한 그 괴물의 무공은 놀랍게도 스스로를 괴롭히는 악질 중에서도 악질인 무공.

무공을 펼치는 매 순간, 고통에 노출되는 미친 무공이다.

사존의 무공이 어느 지점에 도달한 순간 그것을 극복하긴 했겠으나, 그 무공을 연공해서 정점에 올랐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존은 고통에 대한 완전 내성을 지니고 있다.

어떤 고문도 통하지 않는, 절대로 꺾이지 않는 존재.

그게 사존일 텐데…….

“어떻게?”

그런 사존이 완전히 자신을 잃은 광인의 모습으로 이곳에 서 있다.

명백하게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사존의 모습에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리면서도 일단 움직였다.

놀랍고,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지만 아예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존이 유일하게 약한 부분은 술법.

물론 그것도 현경에 오르면서 쌓아 올린 정신적 강함과 혼의 격으로 웬만한 건 무시해 버릴 수 있겠지만, 웬만한 것이 아니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육도(六道).

이 세상에 흩어져 있는 지옥으로 향하는 여섯 가지의 길.

설천위가 우연히 얻었던 수라도.

언여휘가 사용했던 아귀도.

그 외에도 4개가 더 있다.

게임에서도 전부 등장하지 않을 정도로 하나하나의 위력은 강대하고, 흩어진 파편을 전부 모은 존재는 그 강함이 가히 하늘을 꿰뚫을 지경이다.

설천위조차 고작 하나뿐인 파편으로 얻은 힘으로 허접 시절에도 화경급 강자들을 썰고 다니지 않았던가.

물론 개고생해서 겨우겨우 이긴 거긴 하지만.

넘을 수 없는 벽을 넘게 해 주는 강함을 준다는 점에서 육도의 성능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런 확실한 성능은 바꿔 말하면 다른 방식으로도 확실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생각을 정리할수록 설천위는 확신에 가까운 정답을 얻었다.

“비후 혹은 사혈천 그것도 아니면 언여휘겠네.”

사존을 낚아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놈들.

혈교도 가능은 하겠지만……. 아마 아닐 거다.

그쪽은 말 그대로 혈신에 미친 놈들이라.

아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비후일 터.

옛날 제천대성이 직접 봉인한 존재 중 하나인 비후는 단순한 강함을 떠나서 능력만큼은 확실하게 사존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언여휘는 전에 들어왔던 혼의 파편을 찢어 삼켜 버렸으니 그럴 여유가 안 될 테고.

“아니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자신의 힘에 동굴 밖으로 밀려난 사존이 기어코 동굴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딱히 명령을 받은 것 같진 않고…….”

자신이 이렇게까지 길게 생각할 동안, 반응이 없었던 걸 보면 명확한 명령이 내려진 건 아닌 듯하다.

아마 암시.

이용하기 위해 암시를 걸어 놓은 것이 고작이겠지.

뭐, 암시의 내용은 대충…… 사람을 죽여라, 그 정도이려나?

또다시 쓸데없이 길어지는 생각을 끊어 내며, 설천위는 가볍게 발을 굴렀다.

그리고.

쾅!!

굉음과 함께 날아가는 사존과 설천위.

단숨에 동굴의 입구에서 벗어나 몇 개나 되는 나무를 부러트리며 날아간 사존과 설천위는 거대한 바위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춰 섰다.

“후우, 튼튼하네.”

단숨에 사존을 동굴에서 떨어트린 설천위는 목을 움켜쥐려는 사존의 손을 피해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손속이 너무 살벌한데.”

몸 곳곳에서 흐르는 피가 옷을 적시다 못해 설천위의 손끝을 타고 떨어졌다.

고작 몇 초.

흑도로 목을 노려서 그 목을 지키는 팔 하나를 묶어 놓고 힘으로 밀어붙인 그 몇 초 사이에, 놀고 있는 사존의 한 손에 네 곳이 뜯겨 나갔다.

마지막에 목을 노린 공격을 피하려 한 것만 아니었더라면 더 멀리까지 밀어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회복으로 상처를 치료하며 설천위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나저나 진짜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어떻게 사존을 망가트린 거지?

이거 되돌릴 수는 있나?

고개를 갸웃하며 설천위는 도를 쥔 손을 돌렸다.

“뭐, 상관없지.”

중요한 건 어떤 미친놈이 사존에게 억지로 영적인 무언가를 쑤셔 박아서 약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흑룡단에서 보낸 1년.

설천위의 술법은 1년의 세월만큼 성장했다.

[자성영역(自省靈域)]

[연옥천려화산(煉獄千戾火山)]

“일단 간단한 테스트부터 시작할까?”

* * *

“아우, 질겨!!”

동굴 안.

갑자기 사라진 설천위를 대신해 영물을 상대하게 된 서하영과 철백은 그야말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영물과 맹렬히 싸웠다.

“뭐가 할 만해!”

더럽게 강하구먼!

갑자기 할 일이 생겼다면서 짬 때리고 나가다니!

또 속았어!

이를 갈며 창을 세운 서하영은 자신을 노리는 영물의 꼬리에 재빨리 창을 뻗었다.

순식간에 수십 번의 찌르기를 쏟아 내는 서하영의 창.

샤아아!

괴성을 내지르는 괴물의 꼬리가 서하영의 창을 피해 물러났다.

후어! 후어!

그런 꼬리와 달리 원숭이의 울음소리를 뱉어내는 본체는 묵직한 팔로 철백을 두들기는 중이었다.

“흐으읍!”

철백이 힘으로 밀릴 정도의 괴력.

그 특유의 단단함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피떡이 되어 무너졌을 공격을 받아 내며 철백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철백과 서하영이 상대하고 있는 영물은 이름이 없었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름 없는, 정녕 영물이 아닌 괴물.

샤아아아!

꼬리에는 뱀의 머리가.

몸통과 두 팔은 원숭이의 그것이.

머리는 수사슴이.

본래 달려 있는 팔 아래에 달린 한 쌍의 팔은 범의 것을.

단단한 하체는 곰의 것이었다.

욕망에 휩쓸린 영물이 다른 영물을 잡아먹고, 또 잡아먹다가 그 원혼에 먹혀 섞여 버린 존재.

영물에서 태어난 마(魔).

그들 객체를 부르는 말은 없으나, 대대로 술사들은 이런 존재를 이렇게 불렀다.

마물(魔物)이라고.

그리고 당연하게도 영적인 혼합이 이루어진 존재이기에 단순한 무력만으로는 죽일 수 없는 불사성 또한 지녔다.

죽이기 위해선 그 혼까지도 베거나 부러트려야 하는 존재.

“아오! 진짜!”

뱀의 머리를 상대하다 말고 튀어나온 범의 앞발에 놀라 물러난 서하영은 이를 악물고 창을 땅에 내리꽂았다.

천장으로 솟구친 창날이 번뜩이고.

“후우…….”

깊게 숨을 내뱉은 것으로 집중력을 끌어올린 서하영의 창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샤아악!

쇄도하던 마물의 꼬리가 기겁을 하며 물러난다.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이건 베이는 순간 죽음에 가까워진다.

서하영이 만들어 낸 제공권에 섞인 영력에 마물의 꼬리가 경계하는 사이.

“흡!”

두들겨 맞고 있던 철백은 기어코 방어를 풀고 원숭이의 양팔을 붙잡았다.

원숭이라기보다는 큰 성성이(고릴라)가 맞는 몸집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괴력이다.

인간의 뼈 따위는 우습게 으스러트릴 압도적인 괴력.

맞잡은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그 힘에 철백은 이를 악물고 힘을 끌어올렸다.

철백이라고 놀고 있지 않았다.

그가 가진 힘은 쌓아 올리는 것.

고된 정련의 과정을 거쳐 단련하고 또 단련한 강철.

[금강호령(金剛皓靈)]

영력과 철기가 조화되어 만들어진 은빛의 기류가 철백을 휘감았다.

상대가 영적인 영역에 발을 걸친 마물이라면.

“흐읍!”

자신에게도 승산은 있었다.

가뜩이나 거대한 근육이 한 번 더 부풀어 오르는 것과 함께 철백의 힘이 마물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우득! 우득!

괴력 대 괴력.

서로 맞잡은 양팔이 힘겨루기를 시작했으나.

후히히히!

마물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철백에겐 두 개의 팔만 있었지만, 자신에게는 네 개의 팔이 있었다.

두 개를 잡혀도, 두 개가 남는다.

날카롭게 발톱을 세운 범의 앞발이 거침없이 철백을 후려친다.

“흡!”

그러나 그럼에도 버틴다.

발톱에 살이 긁히고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지만, 철백은 버텼다.

그 육체는 버티기 위한 것이니까.

그때는 그 역할을 해내지 못해 소중한 것을 잃을 뻔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제 역할을 해낼 때다.

빠각!

거력을 머금은 범의 앞발이 연신 몸을 후려쳤지만, 철백은 버티고 버텼다.

그녀가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후우.”

낮은 한숨과 함께.

“까다롭네요. 이거.”

[풍영류창(風泳流槍) 제8초 암인(暗刃)]

청백의 바람이 흩어졌다.

땅에 떨어지는 범의 앞발은 덤이고.

키에에엑!

예상치 못한 공격에 놀란 마물이 꼬리를 휘둘렀으나,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확실히 어긋난 존재이긴 하네요.”

꼬리를 베어 버렸는데도 모르다니.

범의 앞발을 베어 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베어 낸 마물의 꼬리를 창으로 쳐서 멀리 떨어트린 서하영은 날카롭게 빛나는 눈으로 마물을 바라봤다.

“이제 끝내죠.”

이 싸움도.

고통으로 가득한 네 삶도.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자리에서 끝날 거다.

* * *

“끙! 이거면 되나?”

“내단은 혹시 모르니까 챙겨 놓죠.”

깔끔하게 목을 날려 버린 마물의 심장에서 검은 내단을 꺼낸 철백은 미리 준비해 놓은 천으로 내단을 감쌌다.

“후, 그럼 빨리 나가서 설 공자나 찾죠? 설천위, 이 인간을 내가 그냥 콱!”

눈을 부라리는 서하영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은 철백이 짐을 들기 위해 손을 뻗는 그 순간.

[아니, 너희들은 이곳에서 할 일이 있다.]

철백과 서하영을 붙잡은 것은 신의였다.

대체 언제 설천위에게서 떨어져서 이곳에 남았는지 모를 신의.

그가 철백과 서하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너희는 나가도 도움이 안 되니, 이곳에서 영약을 만들어 먹고 나가는 게 나을 게다.]

도움이 안 된다.

그 말에 순식간에 얼굴이 굳은 서하영과 철백은 짧게 서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었다.

설천위를 돕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야 한다.

“부탁드립니다.”

[오냐. 똑바로 따라 하거라.]

동굴 안에서 때아닌 영약 제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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