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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94화 (494/624)

제494화

493화-영약 구하기 (2)

“어휴, 갔네요.”

철백과 서하영만을 데리고 떠난 설천위의 빈자리.

그곳에 앉은 유예린 옆에서 청아는 고개를 저었다.

진짜 생각이 없는 것처럼 거침없이 움직이는 인간이라 따라가는 게 힘들었다.

“그런데, 마님은 어째서 안 가셨나요?”

“나는 내 할 일을 해야지.”

청아의 질문에 잔잔하게 웃은 유예린은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정리했다.

“미끼를 뿌리고 낚싯대를 드리웠으니 찌가 움직이는 걸 지켜볼 사람도 필요하지 않겠니?”

“그야 그렇지만…….”

그렇게 셋이서만 가면 주인님이 좀 외롭지 않을까 싶은데.

“그나저나 문 소협은 어떤가요?”

다른 책상에서 업무를 보던 무해는 유예린의 물음에 고개를 들었다.

“……문율 소협 말씀이십니까?”

깊게 팬 주름.

그리고.

“후우.”

터져 나오는 한숨.

막막함이 짙게 밴 그 한숨에 유예린은 미소 지었다.

“영 진척이 없나 보네요.”

“후우……. 살기가 너무 짙습니다. 아무래도 단주님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문율의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무해의 깊은 한숨에 유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인상 깊게 남을 수밖에 없죠.”

훈련 때부터 흑룡학관과의 친선전까지.

문율이 보아 온 설천위의 등은 파격 그 자체였으니, 동경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리 없었다.

그 외에도 무림맹에서 보이는 행보 같은 것도 압도적이었으니까.

다만.

“아쉽네요. 문 소협은 충분히 다른 길로도 갈 수 있을 텐데.”

“아미타불……. 그렇습니다.”

만약, 문율을 처음 만났던 것이 설천위가 아니라 자신이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던 무해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만약 처음 만났던 게 자신이었다고 할지라도 문율이 불살을 행하는 무인이 됐을 것 같진 않았다.

불살(不殺)은 집착에 가까운 고집, 신앙이라는 이해득실을 떠난 신념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불살대라고 불리는 흑룡단의 무력대도 말은 그렇게 해도 적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살인을 망설이진 않는다.

제압을 우선시하되, 힘을 아끼다가 역으로 당하는 우스운 꼴을 당하지 않도록 맹훈련 중이다.

물론, 활인쇄(活人碎)라는 설천위가 개발하고 전수해 준 불살대의 비기가 있긴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나 사용 가능한 기술이다.

접전이 펼쳐지면 승리를 위해서 적을 죽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 활인쇄(活人碎)를 동급의 고수에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가진 건 오로지 무해뿐이었다.

그런 활인쇄(活人碎)를 문율에게도 당연히 전수해 주긴 했는데…….

“활인쇄(活人碎)를 그렇게 개조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개조요?”

활인쇄(活人碎)가 어떤 기술인가.

특수한 내공 운용을 통해 정확하게 상대의 단전만을 부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무공이다.

무려 신의(神醫)와 다른 혼들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낸 설천위의 독문무공.

정작 설천위 본인은 그 섬세한 내공 운용에 가끔씩 삐끗해 실패하긴 하지만.

“단전이 아니라 뼈를 부수는 방식으로 개조해 사용하더군요.”

“……그래요?”

“이게 좀 더 실용적이라더군요.”

“실용적이긴 하네요.”

상대방을 파괴하는 게 목표라면.

제압한답시고 뼈를 부러트리고 시작하는 건 사파도 안 하는 짓이긴 한데…….

흑룡단이 그런 걸 따지진 않으니까.

상관없겠지.

“그럼 일단 큰 문제는 없다고 봐도 되겠죠?”

“후우……. 예. 일단 심마(心魔)의 기색은 전부 걷어 냈습니다.”

지금 문율의 손속이 매서워진 것은 천성이 바뀌었기 때문이지 심마가 들어서가 아니었다.

수많은 무공을 단기간 내에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그 대상의 심상까지도 일부 흡수해 오락가락하던 정신을 하나로 다듬는 데 성공했다.

이제 정신적으로 불안 요소는 딱히 없었다.

설천위를 닮은 건 변하지 않았지만.

“그럼 됐습니다.”

무해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유예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 학사님.”

“예.”

“서류 업무를 부탁드립니다. 사전에 말해 드린 대로 해 주시면 됩니다.”

“예.”

“저도 도울게요!”

“그래, 부탁할게.”

당찬 청아의 대답에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유예린은 담담한 걸음으로 무해에게 다가갔다.

“……유 부관님?”

“일어나세요. 무해 대사님. 갈 길이 멀지 않습니까?”

“저도 임무가 떨어졌습니까?”

“아뇨. 무해 대사님은 저랑 같이 이곳을 지켜야죠.”

무해의 물음에 빙긋 웃은 유예린은 되물었다.

“듣지 않으셨나요? 흑룡단의 신조.”

“……간부급 이상은 화경 이상의 무공을……. 헙!”

“무해 대사님도 당연히 간부급입니다. 그리고.”

유예린의 날카로운 시선에 조용히 집무실을 나가려던 연화의 발이 멈췄다.

살기(殺氣).

“우리 연 부단주도 마찬가지이지요.”

“저, 저는 아직…….”

“1년이면 기초를 쌓기에 충분한 시간이지요.”

설천위도 1년 만에 기초를 쌓고 거의 화경을 넘볼 수 있는 전투력을 얻었다.

그 뒤로 1년을 더 가다듬는 시간을 가진 뒤 화경급으로 인정받고 갑(甲)이라는 흔치 않은 등급으로 무림학관을 졸업했고.

“연 부단주의 경우, 단주님이 닦아 놓은 길이 있으니 조금 더 빨리 도달해야지요.”

“재능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재능만큼은 연 부단주가 더 뛰어나다고 여럿 보증했으니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덜덜 떠는 연화에게 다가가 그 어깨에 손을 올린 유예린은 각오를 다진 얼굴로 자신을 따라오는 무해를 보며 웃었다.

“조금 남은 벽, 슬슬 넘을 때가 됐지요?”

설천위가 자신의 수련마저 미루면서 인재 육성에 집중하는 이유.

설천위가 대체 무엇을 대비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원한다면.

“자, 수련하러 가죠.”

그것이 무엇이든 이뤄낼 것이다.

* * *

“그래서…… 정말 저희 셋이서 가요?”

“그렇지?”

“유 언니는요?”

“유 매는 맹에 남아서 해야 할 일이 있거든.”

“저도 할 일 많았는데요…….”

“에헤이, 서류 업무는 누구나 할 수 있어.”

호운도 있고.

솔직히 청아를 생각해 그냥 데려온 거였는데……. 생각보다 머리가 너무 좋았다.

청아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인지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할 정도로 일 중독자이기도 하고.

1년 정도 일에 적응시켜 놨으니 한동안은 호운을 중심으로 서류 업무를 진행해도 별 무리가 없을 거다.

그렇다면 그다음으로 필요한 걸 해야지.

“좋아, 서 동생.”

“뭐래.”

“어허, 아무튼 자네에게 필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

자신에게 필요한 거.

장난스러운 설천위의 질문에 서하영의 안색은 빠르게 굳어 갔다.

1년.

설천위의 놀림이 서러워서.

철백에게 짐이 되는 것이 미안해서.

이를 악물고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서 수련을 쌓았지만, 벽을 깨는 데에는 실패했다.

마치 화경이란 벽은 아무나 넘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선고받은 것 같은 기분으로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수련을 이어 갔다.

그런 자신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재능?

설천위 앞에서 할 말은 아니다.

술사로서의 재능은 넘쳐나도 무인으로서의 재능은 바닥을 기는 설천위 아니던가.

그런 설천위도 꾸역꾸역 무공으로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

노력?

누군가가 부족하다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정도로 노력을 게을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재능도, 노력도 부족하지 않다면.

“……시간?”

이것밖에 안 남지 않나?

아니, 솔직히 말해서 주위 사람들이 미쳐 돌아가는 거다.

고작 스물에 화경?

아니, 무슨 이야기 속에 나오는 주인공도 아니고.

아무리 그래도 그런 고수가 다섯이나 되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자신들보다 열 살 이상 많은 무해 대사도 아직 초절정인데.

그런 무해 대사도 무림에서 인정받는 재능의 소유자인데…….

너무 말이 안 되지 않나 싶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있는 만큼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핑계라면 핑계…….

“정답.”

“……네?”

“시간이 부족한 게 맞다고. 잘 알고 있네.”

음음.

역시 좀 똑똑한데?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멍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서하영을 향해 히죽 웃었다.

“그러니, 그 시간을 채우러 가자고.”

“아니! 잠깐만요! 시간이라니, 그게 채운다고 채워지는 게…….”

아!

순간, 머릿속에 불똥이 튄 서하영은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

시간.

무인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

간단했다.

내공(內功).

시간을 들여서 쌓는 것밖에 답이 없는, 근면의 증거.

그걸 빠르게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지만, 부작용 없이 채울 수 있는 방법은 거의 한 가지가 유일하다.

“……영약?”

“정답.”

고개를 갸웃거리는 서하영을 보며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문율이나 현운이는 하늘이 내린 재능인지라 그 내공의 벽조차 뛰어넘었고, 소 누님은 소 할배께 받은 내공이 있어서 문제없이 건너뛰었지.”

유 매는 재능+어린 시절부터 먹은 영약이 합쳐진 결과이고.

자신은 뭐, 게임 시스템의 도움으로 내공을 채웠으니까.

아무튼.

“우리는 필요한 영약을 찾으러 간다.”

기다리는 동안 게임 속에서 얻었던 정보들을 끄집어내 열심히 정보원들을 돌려서 조사는 전부 끝냈다.

시기를 놓친 영약들도 좀 있겠지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전부 얻으면 서하영도 부족한 내공을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철백도.

철백은 내공을 쌓는 게 불가능한 것뿐이지, 기(氣)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철기체(鐵氣體)라는 철백의 기술은 육체에 철기(鐵氣)를 깃들게 하는 기술이니까.

흔히 말하는 금기(金氣)랑은 다른 철백만의 힘.

외부의 기(氣)가 철백의 단련된 정신에 먹혀 만들어지는 힘.

당연하게도.

영약을 먹어 흡수할 수만 있다면 철백도 폭발적으로 강해지는 게 가능했다.

아무튼, 이 둘을 즉시 전력감으로 끌어올리는 게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표.

두 번째 목표는…….

“어느 쪽에서 움직일지 궁금하네.”

농사의 마무리를 위한 수확 준비다.

* * *

“지독하네요.”

“흥.”

담담하기 그지없는 코웃음.

평온하기까지 한 목소리는 그 대상이 안정적인 상태에 놓였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이가 그를 봤다면 큰 충격을 받았을 거다.

“정말 지독해요.”

몸 전체에 달라붙은 피딱지.

끊어질 듯 파인 상처들.

사지가 온전히 붙어 있는 것이 되레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로 지독한 상처들로 가득한 노인은 성인 남성의 주먹만 한 두께의 쇠말뚝에 꿰뚫려 벽에 박혀 있었다.

그런 쇠말뚝이 무려 여섯 개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미 죽고도 남았을 부상.

그런 부상을 안고도 살아 있는 전대 사천맹주, 사존(邪尊)을 보며 비후는 고개를 저었다.

“순순히 받아들이면, 이런 고통 따위 즉시 끝납니다.”

“꺼져라.”

몸속을 마구 헤집는 끔찍한 고통에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하는 사존의 지독함에 비후는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벌써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함정에 빠트려 제압한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애초에 세웠던 계획은 시도도 못 해 보고 있다.

강제로 힘으로 밀어붙이자니, 저 꼴이 된 상태로도 내공만으로 근접하는 이들의 목 위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다고 술법으로 정신을 조작하자니 어찌나 정신 방벽이 튼튼한지 흔들리지도 않는다.

무리하게 밀어붙였다간 아예 혼이 소멸해 계획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후, 간단한 부탁 아닙니까? 이 힘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당신이 바라는 사도천하의 시대가 옵니다.”

한숨을 내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비후는 다시 한번 구슬을 내밀었다.

다가가진 않고 적당한 거리에서 구슬을 굴렸다.

이 구슬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런 유혹을 수도 없이 받았음에도.

“같잖은.”

사존은 아무렇지 않게 무형의 힘으로 구슬을 찍어 눌렀다.

구슬이 깨어지기 전에 재빨리 빼낸 비후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이젠 정말 어쩔 수가 없군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거부한다면 이쪽도 이젠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축생의 곤옥을 들고 황궁으로 향한 그 녀석도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현경의 육체라면 이지를 상실해도 강하겠지요.”

대박 아니면 쪽박.

도박에 나설 때다.

설령 현경의 혼이 소멸하더라도 이성을 잃고 날뛰는 괴물이라면 어디에든 쓸모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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