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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92화 (492/624)

제492화

491화-술사 대항전 (7)

“죽어…….”

술사들이 실신해 널브러진 연무장 위.

대항전이 고작 이틀 남은 시점에서 수련의 끝에 마지막까지 서 있는 이는 연화뿐이었다.

대련.

술사들에게 뜬금없이 대련을 요구한 설천위는 정말 인정사정없이 술사들을 두들겨 팼다.

만귀단 술사들은 어떻게든 식령을 불러내어 자신을 지키려 발악했고, 백화단 술사들은 온갖 술법을 이용해 도망쳤다.

물론 전부 쓸모없는 짓이었지만.

술사들이 죽음의 공포 앞에서 불러낸 불완전한 식령들은 설천위의 콧김 한 방에 흩어졌고, 어설프게 몸을 감싼 술법들은 손바람 한 번에 먼지처럼 사라졌다.

살기 위해 발악해야만 했다.

더욱이 허무하게 흩어지는 식령의 뒤에서 설천위의 주먹에 턱이 돌아가면서도 만귀단 술사들은 이를 악물었다.

이 훈련은 합동훈련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결국 대항전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렇기에 설천위의 수련을 받는 동안, 만귀단 술사들은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정신이 흔들려서 식령을 다루지 못해?

그러면 정신력을 기르면 된다는 무식한 논리가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했다.

그렇기에.

“후욱! 후욱!”

종수는 부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몸을 일으켰다.

대항전이 이제 이틀 앞으로 다가온 지금.

대회 전날인 내일은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면 남은 훈련 시간은 오늘뿐이다.

증명해 내야 했다.

만귀단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만귀단주였던 오 어르신의 의지는 아직 이곳에 남아 있다고.

이를 악물고 일어선 종수의 뒤로, 조각상을 손에 꽉 쥔 각려 또한 몸을 일으켰다.

“흐음, 나쁘지 않은데.”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설천위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갓 태어난 사슴처럼 멍하니 서 있으면 적이 봐주냐? 뭐 해?”

칭찬은커녕 조롱이 돌아왔지만, 종수도 각려도 불만을 터트릴 여유 따윈 없었다.

다시 식령을 불러내어 전투를 준비한다.

흐릿하게 구현된 식령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과 동시에 영력을 쥐어짠다.

식령의 한 방에 제대로 된 힘을 싣기 위해.

쾅!!

옆에서 들이박은, 사람보다 키가 큰 수사슴의 뿔을 손으로 잡고, 옆에서 뻗어 나온 장수의 창날을 두 손가락으로 잡아낸 설천위는 그대로 양팔을 휘둘렀다.

수사슴이 날아가고, 창을 쥔 장수가 그대로 허공에 떠오른다.

그 순간.

“흡!!”

“합!”

종수와 각려의 기합과 동시에 허공에 떠오른 식령들에게서 거센 영력이 몰아쳤다.

순간적으로 설천위의 시야와 감각을 차단하는 영력의 폭발.

그리고.

“뒈져어어어어어!!”

괴성에 가까운 기합과 함께 파고든 연화의 일격이 설천위의 턱에 적중한다.

쩡!!

공간이 쪼개질 듯한 굉음과 함께 연화의 몸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훌륭해.”

설천위의 턱 아래.

금이 간 흑관의 조각이 파편이 되어 떨어지고, 설천위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합격이다. 내일은 쉬도록.”

“으아아아아아!”

설천위의 허락과 동시에 연화의 몸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안도, 만족, 기타 등등.

복잡한 감정을 품고 쓰러진 연화의 뒤로 이미 주저앉아 있던 종수와 각려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 정도면 대항전에서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수 있겠네…….”

“그러니까…….”

만족스러운 미소로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종수와 각려.

그리고.

“응? 너희가 왜?”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설천위.

그런 설천위의 반응에 다시 고개를 갸웃하는 종수와 각려.

아직 상황을 이해 못 한 두 사람을 보며 설천위는 빙긋 웃었다.

“그러니까 왜?”

* * *

“……진짜일 줄이야.”

이틀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종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솔직히 말해서, 비무대 위로 오르는 순간까지 이게 맞나 싶었다.

부단주가 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긴 했다.

그 혼란스러운 대련 속에서 부단주만큼은 언제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서 있었으니까.

무인 출신이라서 가능한 거다?

글쎄, 아무리 무인 출신이라고 해도 영력을 느끼고 다룰 줄 아는 인간이 그 영압 속에서 싸우는 건 술사로서의 역량 또한 보통은 넘는다는 증거다.

그래서 강하다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솔직히 얼마나 강한지는 잘 몰랐다.

그도 그럴 게, 항상 마지막까지 서 있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그 전에 다른 이들이 기절했다는 소리고.

무엇보다 설천위가 너무 강해서 거의 모든 공격이 막히는 것만 봤으니 부단주의 강함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몰랐는데…….

“장난 아니네.”

괜히 부단주로 데려온 게 아니라 이건가.

만귀단 술사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몇 걸음 앞.

홀로 그곳에 서서 소매를 묶은 천을 다듬고 있는 연화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대련 중에는 설천위의 영압에 짓눌려 볼 수 없었던, 그리고 느낄 수 없었던 부단주의 능력을.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

[괴연천식(傀然天食)]

연화의 몸을 휘감은 회색의 영력이 활화산처럼 들끓었다.

영력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이라면, 절로 마른침을 삼킬 정도로.

아니.

“이, 이상한데?”

“뭔가 오싹한데?”

영력을 느끼지 못하는 무인들조차 오한에 팔을 쓸어내릴 정도로 농밀한 영력이 연화를 휘감고 서서히 형태를 만들어 갔다.

능력이 부족해서 천천히 만드는 게 아니었다.

위협.

‘이래도 싸울래?’

협박의 의미를 담은 영력의 시위에 상대편의 분위기 또한 험악하게 변했다.

“감히!”

분칠을 짙게 한 도사의 호통과 함께 연화의 영력이 밀려났다.

고작 이따위 협박에 굴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듯 상대 또한 영력을 거칠게 뿜어내며 술법을 준비했다.

그리고.

“확인.”

연화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그럼 시작!”

마른침을 삼키던 심판이 손을 올리는 것으로 대항전은 시작됐다.

그리고.

쾅!!

술사들의 전투에서 나올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굉음이 비무대를 뒤흔들었다.

순식간에 피어오르는 먼지구름.

그 속에서.

“크윽!”

신음과 함께 뛰쳐나온 것은 패력단 측의 술사였다.

“오오!”

“저게 술법인가!”

눈에 선명히 보일 정도로 짙은 보라색 기운을 머금은, 두 뼘 길이의 금강저가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흩어지는 먼지.

바람을 일으킨 스님의 붉은 가사가 펄럭이고.

“허어?”

“이게 무슨…….”

먼지가 날아가 드러난 상황에 구경꾼들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사방으로 흩어진 술사들이 각자 자구책을 마련한 그 한복판에서.

“일단, 하나.”

기절한 술사의 가슴을 짓밟고 있던 발을 뗀 연화의 눈에 귀기가 일렁였다.

* * *

“이, 이게 무슨?”

술사 한 명을 순식간에 제압한 것을 시작으로, 연화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는 만귀단의 다른 술사들을 패력단 측 술사들이 노릴 여유조차 없을 정도였으니…….

“아미타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흑룡단주.”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패력단주 대신에 적수단주 무진이 덤덤하게 묻자, 설천위는 삐딱하게 앉은 상태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시면 뭐라 딱 꼬집어서 답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패력단주를 향한 삐딱한 태도가 아닌, 예의를 지키는 설천위의 대답.

그런 설천위의 태도에 무진은 다른 단주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빈승이 술법에 대한 조예가 미천하다고는 하나, 술사들의 싸움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아, 그게 궁금하시군요.”

무진의 물음에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는 설천위.

물론, 애초에 설천위가 그 의도를 모를 리 없었기에 그를 바라보는 다른 단주들의 시선은 썩 달갑지 못했다.

“간단합니다. 술사도 강한 인간이 있고, 약한 인간이 있죠. 저쪽의 저희 부단주는 강한 인간에 속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술사들이 전투를 잘 못한다? 편견이지요. 모두 보셨지 않습니까?”

장난기를 지워 내며, 설천위는 덤덤하면서도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단주들을 훑었다.

“연옥에서 넘어오는 놈들은 무(武)의 영역을 벗어났으면서 동시에 무(武)에 한 발 걸친 놈들뿐입니다.”

무(武)가 별거인가?

강함.

강함이다.

무공(武功)이란 강함을 닦는 학문이고.

무학(武學)이란 강해지는 방법을 연구하는 이론이다.

연옥에서 나오는 놈들은 강하다.

여태껏 술사들이 무인들의 협력을 얻어서 처리한 악귀나 마(魔) 따위랑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그리고 연옥이 열리면 양쪽 모두를 손에 쥔 괴물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그런 괴물들을 상대할 수 있는 건 그냥 술사가 아니다.

전투가 가능한 술사.

그리고 영력에 눈을 뜬 무인.

이 두 종류의 인간만이 연옥에서 나온 괴물들을 상대할 수 있다.

멸(滅)이라 불리는 괴물의 졸들을 밀어낼 수 있다.

무인은 영력에 눈을 떠야 하고.

술사는 전투를 몸을 익혀야 한다.

그게 앞으로 전력이 되는 병사의 최소 조건이다.

“사람과 사람끼리 싸우기에는 너무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설천위는 대놓고 연못에 바위를 던졌다.

“끄아아아!”

날아가는 술사의 비명을 배경음 삼아, 설천위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러니 불만이 있다면 언제든 덤비세요. 큰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뒤는 제대로 닦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눈을 부릅뜬 패력단주의 주먹이 붉게 물들었다.

분노.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이를 악문 패력단주의 눈마저 붉게 충혈된 그때.

“패력단주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이 자리를 마련한 것 아니겠습니까?”

설천위가 웃는 낯짝으로 패력단주를 보며 도발했다.

“안 될 거 뻔히 알면서도 술사들로 승부하자고 제안까지 하시고, 참 이 무림맹에서 경각심을 제대로 가지신 건 패력단주님밖에 없군요.”

하하하!

웃음을 터트리며, 어느새 다시 삐딱한 자세로 돌아가 다리를 까딱이는 설천위의 태도에 패력단주의 얼굴은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패력단주는 터트리지 못했다.

왜?

‘……빌어먹을 연놈들이!’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은밀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창천단주, 백화단주, 암은단주, 초생단주까지.

설천위를 포함한 다섯 단주의 기세와 설천위 휘하의 삼귀(三鬼)의 기세가 그를 무섭게 압박하고 있었다.

꼬우면 주먹을 들어라.

그 뒷감당은 알아서 하시고.

노골적인 도발.

치욕적이기 그지없는 도발이었지만, 더더욱 화가 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맹주……!’

맹주의 묵인.

이 상황을 맹주와 다른 단주들이 그냥 두고만 보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열불이 났다.

제 잇속만 챙기는 버러지들이……!

까득!

이를 악문 패력단주의 분노는 대항전이 끝날 때까지도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 * *

“아오! 미쳤어! 미쳤어!”

대항전이 끝나고.

연화가 혼자 휩쓸어 버린 대항전의 뒤풀이를 위해 모인 흑룡단의 주력들 사이에서 서하영이 자신의 단주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거기서 미쳤다고 그런 도발을 해요! 다른 단주님들까지 끌어들여서!”

“아니, 필요한 거라니까!”

자신을 쫓아오는 서하영을 피해 도망을 다니던 설천위는 재빨리 유예린의 뒤에 숨었다.

“벌집은 크게 건드려야 벌들이 뛰쳐나온다고.”

“그래도 그렇지! 거기서 패력단주를 그렇게 압박하면!”

“벌들이 튀어나오겠지?”

“아오!”

말이 통하지 않는 설천위의 반응에 열을 내던 서하영은 이내 한숨과 함께 어깨를 늘어트렸다.

“에효, 됐어요. 단주가 하겠다는데…….”

“어허! 불경하다!”

“이씨! 확!”

“허허!”

재빨리 다시 유예린의 뒤에 숨는 설천위.

키도 커서 잘 숨겨지지도 않는 주제에 숨는 설천위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서하영은 터덜터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래서, 진짜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생각 없이 이런 도발을 했을 리가 없다.

서하영을 비롯한 다른 이들의 시선에 피식 웃으면서 유예린의 뒤에서 나온 설천위는 상석에 앉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낚시. 씨앗을 뿌렸으면 수확을 준비해야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뿌리까지 뽑아낼 거다.

다음 농사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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