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91화 (491/624)

제491화

490화-술사 대항전 (6)

오후의 개별 훈련.

오전 훈련의 여파로 지친 몸을 이끌고 연무장에 앉은 술사들은 고심했다.

연무장에서 할 훈련이 뭘까.

애초에 왜 수련이 아니라 훈련일까.

훈련(訓鍊)은 누군가가 가르쳐 준 것을 배워 익히는 것이고.

수련(修鍊)은 자신이 이미 배운 무언가를 갈고닦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뭐,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분하지 않는 차이지만 설천위는 이번 훈련에 이상할 정도로 훈련이란 말을 강조했다.

마치.

‘스스로를 갈고닦아? 그럴 필요 없게 만들어 줄게.’

라고 말하는 것처럼.

오한을 느끼던 술사들이 한숨을 내쉬던 그 순간.

“자자, 시작하지.”

술사들의 앞에 선 건 무려 흑룡단주였다.

무림 역사상 전례가 없다고까지 칭해지는 무인.

술법까지 통달한 그의 강함은 다른 단주들을 앞서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판국이다.

그런 사람의 가르침이다.

죽을힘을 다해 배워야…….

“지금부터 너희는 대련을 한다.”

“……예?”

“난 훈련 중에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까칠하게 말하며 설천위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

차오르는 영력.

단숨에 호흡이 거칠어지는 그 순간.

팡!

튀어 오른 인물 하나가 단숨에 설천위를 향해 쇄도했다.

“역시 선행 학습! 효과 좋네!”

달려드는 연화의 주먹을 받아 내며 설천위는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하지만 부하들을 위해 양보하도록.”

빠악!

왜 배를 때렸는데 뼈를 때린 소리가 난지는 모르겠지만, 섬뜩한 소리와 함께 연화의 몸이 날아간다.

단숨에 연화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어 날려 버린 설천위는 머뭇거리고 있는 술사들을 보며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뭐 해? 안 덤비고?”

* * *

……이게 술사들의 수련이 맞나?

설천위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연무장의 옆.

무인들이 모인 곳에서 그곳을 관찰하던 성화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 설천위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일이겠지.

자신은 해야 할 일을 하면 될 뿐이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맡겨 주세요.”

설천위에게는 반말을 하면서 또 그 부하에게는 존댓말을 하는 성화린.

그 태도에 어색할 법도 하지만,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한 소윤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부터 제군들 훈련에 돌입한다.”

꿀꺽.

소윤혜와 그 곁에 선 문율과 주현운.

화경급 고수가 셋이나 모여 자신들을 훈련시킨다는 사실에 긴장한 몇몇 이들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긴장으로 가득한 그곳.

‘대련이겠지?’

‘대련일 거야.’

‘대련 외엔 없지.’

가끔 단주나 부단주가 직접 찾아와서 진행했던 훈련을 떠올리며 무인들이 주먹에 땀을 쥐던 그때.

“전원, 명상에 들어간다.”

“……네?”

“반문은 허용하지 않는다.”

살벌한 소윤혜의 기세에 합죽이가 된 무인은 재빨리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렇게 눈치를 보던 이들까지 하나둘 자리에 앉아 명상을 시작하고.

“그럼.”

소윤혜의 신호에 고개를 끄덕인 성화린이 영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파직! 파직!

번갯불이 일렁이는, 거대한 흑운이 모두를 감쌌다.

피부가 저릿할 정도로 아찔한 기운.

설천위가 만들어 내던 물의 공간이 답답했다면, 이 먹구름은 섬뜩했다.

무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눈을 뜨려는 그 순간.

“전원, 눈을 감고 집중한다.”

날카로운 기세가 그들을 헤집었다.

“집중하고 집중해라.”

날카로운 기세는 서서히 섬뜩한 예기를 품고.

어느새 목을 노리는 칼로 변했다.

“버티지 못하면 베인다.”

소윤혜의 살기가 구름 속에서 모두의 목을 노렸다.

* * *

“독하게도 시키네요.”

흑룡단의 집무실.

서하영과 유예린 사이에서 다리를 흔들며 서류를 옮기던 청아는 밖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주인님은 기세를 별로 떨치고 있지 않았지만, 백화단주의 기세와 소윤혜의 살기가 섞이니 피부가 절로 저릿저릿했다.

“많이 능숙해졌네.”

그리고 그런 소윤혜의 살기에 웃음을 지으며 유예린은 서류를 옮기고 있는 청아를 바라봤다.

“우리는 괜찮으니, 놀러 다니렴.”

“아뇨! 도와드릴게요!”

유예린의 배려에 당차게 대답한 청아는 재빨리 서류를 옮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후후 웃음을 지은 유예린은 자신의 곁에 다가온 청아를 보며 한 손으로 턱을 받쳤다.

“우리 청아, 흑심이 가득하네?”

“ㄴ, 네?”

당황한 목소리.

허공을 맴도는 눈동자.

그런 청아의 반응에 미소 지은 유예린은 톡 하고 청아를 밀었다.

가볍게 밀었지만, 청아는 쉽사리 거스를 수 없는 묵직한 힘을 담아서.

그리고.

‘얘가 반항할 생각도 없네.’

자신의 몸이 향하는 궤적을 읽어 낸 청아가 순순히 밀려나는 것을 보며 유예린은 웃었고.

“꺄!”

평소와는 다른 내숭이 섞인 비명과 함께 청아가 옆에 있는 이에게 부딪혔다.

“괜찮아? 여(麗) 매.”

부드러운 목소리.

적당히 낮은, 깔끔한 목소리로 쓰러지는 청아를 받아 낸 사내가 빙긋 웃었다.

“으, 응……. 괜찮아요.”

자신을 끌어안고 웃는 사내의 모습에 한껏 볼을 붉힌 청아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일어섰다.

“마님!”

그리고 별로 화나지도 않은 주제에 화난 척 유예린에게 작게 소리쳤다.

‘그렇게 티 나게 하지 마세요!’

‘어머, 좋으면서.’

눈빛으로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의 모습에 무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미타불…….”

나는 불자인데, 왜 갑자기 일하기 싫지.

나만 여기에서 혼자인가?

그런 것인가?

득도(得道)란 무엇인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불가에서 말하는 앎이란 도교의 도(道)와 다른 것일까?

나는 누구이고, 나는 왜 빡빡이 이며, 나는 왜 혼자인가…….

사방에서 풍기는 여인들의 사랑을 속삭이는 소리에 자신을 잃을 뻔한 무해는 이내 빠르게 마음을 다잡았다.

고작 이 정도에 흔들릴 정도로 그의 불심은 약하지 않았으니까.

조금, 아주 조금 옆구리가 시리긴 하지만 그건 불자라면 다 그런 것이니 괜찮았다.

저기 적수단의 단주를 하고 있는 자신의 사형도 그러할 테니까.

거기라고 소림 출신만 있는 건 아니니 안에서 연애도 하고 뭐 그러고 있겠지.

이제는 상당히 세속에 찌들어 버렸음에도 자신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무해는 고개를 훌훌 털어 내었다.

흑룡단의 집무실.

행정 업무를 보는 이들이 있는 곳이 따로 있긴 하지만, 이곳은 최종 결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즉, 흑룡단 서류 업무의 끝이다.

이 자리에서 지금 업무에 힘쓰고 있는 건 부단주인 서하영과 자신.

단주 대리로 들어와 일을 하고 있는 유예린.

마지막으로 단주가 직접 행정 업무를 맡기고 간 사내다.

‘호운이라고 했던가.’

이미 죽은 이를 단주가 부리는 것이라고 했다.

만귀단주에게 배운 인형술을 이용해 만든 식령.

완전히 자유롭게 움직이며 설천위가 쓰러져도 따로 행동할 수 있는 식령이라고 했던가.

혼의 외형을 재현하는 인형 덕에 살아생전 모습 그대로로, 덥수룩한 머리가 얼굴을 상당히 가리고 있었지만 그걸 치우면 상당한 미남이었다.

무엇보다 학식이 깊었다.

본인은 책을 조금 열심히 읽어서 약간 아는 수준이라고 말했지만, 웬만한 학자들과 논담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학식이 깊었다.

‘……그 학식으로 서류 업무나 보니 좀 아까운 감도 있소만.’

학자들이 하는 일이란 게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학문을 열심히 배워서 이런 실용적인 곳에 쓰는 거지.

고개를 끄덕인 무해는 이내 잡생각을 털어 내고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인원이 늘어나면서 전과 같은 강행군은 없었다.

무엇보다 저 호운이라는 친구와 유예린의 업무 처리 속도는 장난이 아니었다.

둘 다 천재라는 건가.

어찌 됐든, 이대로 일 처리를 계속해 나가면 오후가 끝나기 전에 끝낼 수 있을 테니 수련할 시간도 생길 거다.

그걸 위해 서 부단주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으니 자신이 게을러질 순 없지.

다시 집중에 들어간 무해가 열심히 서류를 처리하는 사이.

“여 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호운이 청아를 불러 밖으로 나갔다.

하루에 한 번씩.

어떨 땐 그보다 더 자주 나가기도 하지만 여하튼 하루에 한 번 호운과 청아는 꼭 함께 밖으로 나갔다.

다른 이들은 산책이나 하겠거니 하고 넘어갔고.

“여기쯤이면 되겠다.”

그들의 생각대로 적당히 걸어 화원에 도착한 호운이 걸음을 멈추자 붉은 얼굴로 다가온 청아가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헤헤.”

“안에서는 아닌 척하더니.”

“다른 분들께 민폐니까요.”

호운의 품에 이리저리 얼굴을 비비던 청아는 이내 떨어져서 호운을 바라봤다.

그리고 단숨에 그 날카로운 턱선을 잡고 다가간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고, 서로의 숨결을 나누는 진한 입맞춤이 끝나고.

“응, 이거면 되겠다.”

청아에게서 받은 영력을 확인한 호운은 웃으며 청아와 손을 잡고 걸었다.

자신의 곁에 함께하는 호운의 혼을 느끼며 청아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히히!’

독립적인 개체로 움직이는 호운.

그가 영력을 보충하는 방법은 청아가 설천위로부터 받는 영력을 나눠 받는 것이다.

입맞춤이라는 형태로.

‘이게 직원 복지구나!’

청아는 만족했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이면 될 보충을 굳이 나눠서 하루에 한 번씩 하고 있는 건 그녀의 자유였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설천위가 술사들을 훈련으로 두들겨 패고.

삼귀가 무인들을 영역 속에서 참선시키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흘러, 순식간에 대항전 날짜가 다가왔다.

“놈들은 아직도 뻘짓 중이라던가?”

“네.”

“포기한 건가.”

패력단주의 집무실.

황보균의 보고를 받은 황보중은 조용히 미간을 찡그렸다.

‘그럴 위인이 아닌데…….’

술사들을 다독이고 술법 연마에 몰두해도 모자랄 판에 술사들을 쥐어패고 무식하게 체력 단련만 시킨다.

곁다리로 수련을 함께하는 초생단의 무인들은 반대로 참선만 시킨다고 했던가.

저녁에는 다 같이 모여서 진법 훈련을 한다고 하긴 했지만, 고작 그뿐이다.

그렇게까지 혹사당한 술사들이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 않았다.

“무슨 생각인지 당최 모르겠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천위가 머저리처럼 시간을 허비했을 거라고 여기는 건 짐승 이하의 사고력이다.

다만.

“놈들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무슨 준비를 했든 간에 저희가 승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당당한 동생의 대답에 생각을 이어 나가던 황보중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설천위가 무슨 수를 준비했든 간에 놈들이 시간을 낭비했다는 건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그렇다면, 이쪽은 이쪽이 준비한 걸 믿으면 된다.

놈이 무엇을 은밀하게 준비한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지만, 그만큼 이쪽도 철저하게 준비했다.

외부에서 영입한 술사들.

황보세가의 힘만으로 구한 이들이 아니었다.

흑룡단의 행보에 불만이 있는 다른 단들의 도움을 받아서 모은 이들이다.

가끔 나가는 임무에서 다른 무력단의 도움을 받는 백화단이나 만귀단의 온실 속 화초와는 다르다.

무림에서 자신의 힘으로 살아남은 이들.

그들의 실력은 가히 일절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번 단체전은 무조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자신들이 한 일에 확신을 품고 황보중은 대항전이 펼쳐질 곳으로 향했다.

대연무장.

웬만한 연무장 크기의 비무대를 만들어 놓고 그 주위로 좌석이 배치된 곳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군.”

“그러게요. 오랜만에 뵙네요.”

황보중은 흑룡단주 설천위와 마주했다.

단주들이 앉는 자리에서 마주해 인사만 나누고 서로 비무대만을 바라봤다.

양쪽의 사전 협의대로 쓸데없는 식순은 전부 집어치우고, 곧바로 대항전이 시작된다.

각 단에서 나온 열 명의 술사들이 비무대 위에 올라 각자 자리를 잡고.

“……이대로 시작하는 게 맞습니까?”

심판이 당황해서 되묻는 소리와 함께, 흑룡단의 부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소녀.

어리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나이.

스물도 안 되어 보이는 소녀는 입은 무복의 소매를 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삼삼오오 모여 있되 적당히 흩어져 거리를 벌린 적들과 달리 오로지 혼자.

혼자만 앞으로 나와 있었다.

마치 너희 전부를 자신 혼자서 상대하겠다는 듯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