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90화 (490/624)

제490화

489화-술사 대항전 (5)

“흐읍! 흐읍!”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종수는 달렸다.

설천위가 훈련 방식을 바꾸겠다고 말한 지 사흘이나 지났지만, 사실 하는 건 바뀌지 않았다.

달리고 달린다.

죽어라 달리고, 쉬다가 회복되면 또 달린다.

대체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원래라면 퍼지다 못해 망가졌어야 할 몸이 어떻게든 움직였다.

무인처럼 운기조식을 통해 피로를 회복하는 것도 아닌데.

몸이 강철인 것도 아닌데, 이상할 정도로 몸이 어떻게든 움직였다.

처음 훈련을 시작할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진짜, 진짜 영문을 모르겠지만.

‘……할 수 있으니까!’

한다!

죽도록 힘들지만, 달릴 수 있으니까 달린다.

숨을 쉴 수 있으니까 쉰다.

질척이는 수 속성의 영력이 호흡을 턱턱 막았지만, 어떻게든 호흡한다.

마시고 내쉬고.

달리는 박자에 맞춰 어떻게든 호흡을 이어 나간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달리는 종수는 눈치채지 못했으나.

“……많이 좋아졌네.”

몇몇 강자들은 이 연무장에 생긴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다.

“이제 좀 볼만하죠?”

감탄하는 성화린의 옆에서 피식 웃은 설천위가 그녀에게 물을 내밀었다.

그 물을 받아 든 성화린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다들 깔끔해지긴 했네.”

피, 땀, 눈물이 아니라 침, 땀, 콧물을 흘리던 이들이 드디어 수분 손실을 최소화하기 시작했다.

술사들은 강제로 호흡을 조절하면서.

무인들은 어떻게든 영력을 느끼기 위해 애쓰면서.

“진짜, 말도 안 되네.”

설천위가 의도한 대로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밤에 해 주던 그건 뭐니?”

“피로 회복술이요.”

무려 신의 특제 비전의 피로 회복술입니다.

그냥 굴리면 성과를 내기 전에 몸이 망가질 테니, 그 정도는 해 줘야지.

거의 삼 주 동안 밤에 열심히 뛰어다닌 설천위였다.

술사들은 물론이고, 초생단의 무인들에게도 치료를 해 줘야 했으니까.

뭐, 본인들은 수련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겠지만.

들어간 약의 비용 같은 건 각 단에서 부담하고 있으니 무리가 될 것도 없었고.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설천위의 모습에 고개를 저은 성화린은 반쯤 마신 물통을 내려놓고 설천위를 바라봤다.

“그래서, 나까지 이 훈련에 끌어들인 이유가 뭐니?”

맨 처음에 성화린은 이 훈련에 직접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당연했다.

합동훈련이라고 하지만 자신까지 낄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냥 밑에 애들이 무인과 합을 맞출 수 있게 지원만 해 줄 생각이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참여하라는 설천위의 압박에 결국 함께했다.

원래는 애들만 보낼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자신도 오전에 한해서 죽어라 체력을 단련하는 신세가 됐다.

오후에는 무려 유예린이 직접 찾아와 무공 수련까지 시켰고.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일 거라고 판단하고 묵묵히 3주 가까이 수련을 하긴 했지만.

솔직히 이제는 궁금해서 못 참을 지경이었다.

“대체 왜?”

“누님, 다 아시면서 그러시네.”

성화린의 물음에 피식 웃은 설천위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원화(元化)의 술(術), 그거 체력도 같이 소모하는 거잖아요.”

“……응?”

의문.

그리고.

“응?”

의문.

예상치 못한 성화린의 반응에 설천위는 고개를 갸웃했다.

“몰랐어요?”

“……아니, 그런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는데?”

어떤 기록에도 없었는데?

“육체를 자연의 속성으로 바꾸는 술법. 체력이 필요한 건 당연하죠.”

게임에서는 유지 시간에 따라 영력과 체력을 같이 소모하는 기술이었지.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난 설명도 없이 사람을 3주나 굴린 건가.

자신이 한 짓을 깨달은 설천위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제대로 쓴 적이 없어서 체력의 소모도 몰랐나 보네요.”

“……그냥 영력을 과도하게 소모해서 지친 줄 알았지.”

“에이, 누님쯤 되는 술사가 고작 영력의 소모만으로 그렇게 지친다는 게 말이 돼요?”

그럴 리가.

“아무튼, 체력만 제대로 끌어올리면 목숨을 걸고 사용할 정도의 술법은 아니게 되니까 죽어라 달리세요. 오후에 받는 수련도 열심히 하시고.”

“무공 수련은 왜?”

“그야 당연하죠. 몸을 싸울 수 있게 해 주는 술법인데, 몸으로 싸우는 법을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전력 차이가 어마어마해요.”

아하.

설천위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성화린은 땀을 대충 닦아 내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별다른 말 없이.

묵묵히.

그저 굳건하게.

각오가 느껴지는 그 뒷모습에 설천위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주 자리는 도박으로 딴 게 아니라 이거지.

뭐, 조금 늦게 시작한 감이 있지만 어찌 됐든 백화단주가 강해진다는 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지금은 전력을 쌓아 올리는 것이 필요하니까.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기대되네.”

연옥의 괴물들을 맞상대할 수 있는 힘 정도로는 부족했다.

찍어 누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키워 낼 거다.

자신이 게임 속에서 봤던 그 어떤 해피엔딩보다 더 나은 해피엔딩을 위해.

* * *

“지독하군.”

이제는 흑룡단이 된 만귀단의 연무장.

그곳에서 달리는 이들을 보며 맹주는 허허롭게 웃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지만, 애초에 듣는 이는 하나밖에 없었으니 상관없었다.

“집착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집착, 집착이라……. 맞는 표현이구먼.”

총군사 제갈진천의 말에 맹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착이다.

추궁과혈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공을 이용해 몸을 풀어 주는 방식의 안마는 무림에서 흔히 쓰인다.

이야기 속에 흔히 등장하지 않는가. 스승이 제자를 거칠게 몰아붙여 혹사시키면서 내공으로 근육을 풀어 줘 부상의 위험 없이 몸을 단련시키는 것.

이야기 속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인 만큼 현실에서도 꽤 많이 쓰이는 방식이다.

일류 이상의 무인만 돼도 흉내 낼 수 있고, 초절정 수준에 이르면 이야기 속의 스승처럼 깔끔하게 제자를 지도할 수 있으니까.

굳이 화경급 고수가 아니더라도 내공을 이용해 근육을 풀어 주며 훈련시키는 건 가능한 이야기다.

일대일 지도의 경우엔.

구파일방, 오대세가가 자신들의 무인을 기를 때 괜히 이 방법을 쓰지 않는 게 아니었다.

일단 한 명을 상대로 해도 꽤나 심력이 드는 방식인데, 그걸 전원에게 한다?

지금 설천위처럼 모두가 지쳐 쓰러진 밤에 해도 상당히 힘이 드는 작업이다.

그리고 어디 힘만 드는 작업인가? 그것도 아니다.

시간이 많이 든다.

지금 설천위는 무슨 묘기를 부리는지 기적적인 속도로 밤에 돌아다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지금 훈련 중인 인원 전부를 안마해 주기 위해 매일같이 밤을 지새우고 있다.

힘과 시간, 거기다 약도 써야 하니 돈까지 든다.

그런데.

사실 이 정도만 투자해도 결과를 낼 수 있다면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중 어디 한 곳은 이 방식을 사용했을 거다.

이 방식이 말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

하루 단위로 모든 인원을 훈련시키고, 안마를 통해 근육에 쌓인 피로를 풀어 주고, 약까지 먹이는 이 기행은 최소 화경급 이상의 고수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체력의 문제를 떠나 내공의 문제, 정신력의 문제까지.

보통의 무인은 흉내 내기도 힘든 고행이다.

화경급 고수라고 해도 상당히 심력을 소모해야 하는 강행군.

그런 강행군을 고작 하급 무사 따위를 기르는 데 감수할 화경급 고수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본인을 갈고닦아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임을 자신도 알고, 가문과 문파의 모두가 알고 있는데?

한다고 자진해서 나서도 가문이나 문파에서 뜯어말릴 일이다.

그런 일을.

“허허.”

언제 떠날지 모르는 부하,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르는 타인에게 해 주는 것이 집착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수염을 쓸어내며 허허롭게 웃은 맹주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한창 수련에 열중하는 설천위를 바라봤다.

먼 곳.

자신의 기척을 알아챌 리가 없는 거리에서 설천위가 고개를 돌렸다.

‘괴물 같은 녀석…….’

놈과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맹주는 가볍게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한동안은 아예 건들지 말게.”

“예. 알겠습니다.”

총군사에게 짧게 지시를 내린 맹주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향한 곳은 무림맹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조용한 비동.

설천위와 달리 그는 자신의 수련에 시간을 쏟는 인간이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그 가치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기에.

* * *

설천위가 영역을 펼친 지 일주일.

“이, 이건가?”

“된다! 됐어!”

끝내 모든 인원이 성취를 거뒀다.

늦은 밤.

악에 받쳐 움직이던 이들이 환호성과 함께 쓰러지고, 그들이 끝날 때까지 함께 곁을 지키던 동료들은 훈훈한 미소와 함께…….

‘좀 빨리 깨닫지, 새끼들아…….’

쓰러졌다.

먼저 깨달았다고 열외?

그딴 건 없었다.

체력은 결국 길러야 하는 거니까.

결국, 모두가 깨달을 때까지 마지막 날을 이어 가겠다는 설천위의 협박과 함께 제대로 된 휴식 없이 혹사당했던 이들 전원이 연무장 바닥을 굴렀다.

달라붙는 먼지에 질색하며 깔끔을 떨던 술사들은 이곳에 없었다.

흙과 하나가 되며 왠지 자신이 토 속성의 영력을 다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착각하는 술사들이 몇 명 있었을 뿐.

바닥에 널브러진 이들을 보며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좋아. 훌륭해. 다들 기본은 됐구먼.”

3주.

고작 3주 만에 이뤄낸 성과다.

‘……내 동생이지만.’

진짜 괴물이네.

설천위가 하는 일의 실체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인 설란은 끈적이는 땀을 닦아 내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동생이지만, 참으로 괴물 같은 녀석이다.

이게 인간에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절로 들 정도로.

“자자! 이제 체력 단련은 오전으로 한정한다! 오후에는 각 단에 맞는 개별 수업이 진행되고, 저녁에는 짧게 합동훈련을 진행한다.”

“아! 드디어!”

“으아아아아!”

“나는! 나는 살아남았다아아아!”

체력 단련이 오전으로 끝난다는 말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건 물론.

‘하……. 술사 새끼들.’

‘부럽다…….’

전원이 술사였다.

환호성을 지르는 술사들을 부러워하며 초생단의 무인들은 어떻게든 몸에 힘을 뺐다.

쉴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쉬어야지.

내일부터 본격적인 초식 훈련이라도 들어가면 체력 단련이 뭔가.

거기에 설란도 여기에 있는 걸 보면 대련도 빠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체력 단련은 고되지만, 대련은 아프다.

더럽게 아프다.

그게 예정됐으니 기쁠 리가 있나.

물론, 이제 다시 술법 훈련에 매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술사들의 기쁨은 3주를 함께한 무인들의 절망을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

그저 좋아서.

아주 행복해서.

자신들이 좋아하던 술법에 다시 매진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던 그때.

“자자, 그리고 지금부터 마침 개별 훈련이 끝난 새로운 부단주도 이쪽 훈련에 참가한다.”

새로운 부단주?

설천위의 말에 이번엔 만귀단 출신의 술사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새로운 부단주라면 술사들을 이끌 사람 아닌가?

소문으로는 스물도 안 된 소녀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아무리 그래도 그럴까 싶기도 하다가도 술사들의 세계에서 나이는 상관없다는 걸 생각하면 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이 호기심에 가득 차 설천위를 바라보는 그때.

“자자, 데려와.”

설천위의 신호에 맞춰 연무장 입구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야야! 그만! 어허! 그만!”

“크르르르르! 크아앙!”

뒷덜미를 잡힌 채 발악하는 짐승…… 이 아니고, 먼지투성이의 소녀.

무려 삼귀 중 하나인 주현운의 손에 붙들려 들어오는 소녀는 누가 봐도 사람이 아닌 듯했다.

“……주 대협이 부단주님이고, 저건 식령인가요?”

당돌한 술사 하나가 그렇게 물어봤음에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뭔 헛소리야?”

그리고 그런 술사를 향해 눈을 부라린 설천위는 어느새 자신의 옆에 도착한 주현운에게 연화를 양도받고 자신의 앞에 내려놨다.

“자자, 최근까지 스스로 제어하는 게 잘 안 돼서 따로 훈련하고 있었는데. 이젠 꽤나 능숙해져서 합류하게 된 부단주 연화다.”

예? 뭐가 돼요?

제어요?

내가 아는 단어랑 다른 의미가 있나?

당황한 이들의 시선이 허공을 유영하는 그때.

“놔! 아직 못 때렸다고!!”

잡혀 온 연화가 드디어 사람의 말을 했다.

“……방금 전까지 기절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그런 연화의 변화를 눈치챈 설란의 물음에 설천위는 맞는다는 듯 뿌듯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절해서도 제어할 수 있게 훈련시켰지. 얘들이 받을 훈련도 미리 선행 학습을 했고.”

‘그러니까 뭘!’

‘……선행 학습?’

‘우리가 받을 훈련?’

흑룡단 소속 술사들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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