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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89화 (489/624)

제489화

488화-술사 대항전 (4)

“드디어 기회가 왔군.”

이를 악문 황보균은 불끈 쥔 손의 힘을 천천히 풀었다.

흥분해선 안 된다.

벌써 보름 가까이 지났음에도 그날의 치욕을 잊을 수가 없었다.

흑룡단 인물들만 있어서 소문이 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지만, 가슴속에 사무친 원한은 좀처럼 사라지질 않았다.

난생처음 겪은 치욕.

황보세가의 직계로 태어나 뛰어난 재능을 뽐내며 이 자리까지 오른 황보균이 감당하기엔 흑룡단을 찾아가 겪었던 치욕은 너무나도 수치스러웠다.

자신보다 어린것들에게 둘러싸여 모욕을 당하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쫓겨나다니.

다만 그 치욕을 곱씹으며 이를 악무는 것도 오늘까지다.

“준비는 잘됐겠지?”

“예.”

자신 있는 대답에 고개를 든 황보균은 상대를 보며 웃었다.

짙은 화장을 한 사내.

화려한 도복과 묘하게 어울려 어색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단주급이 없는 만귀단 정도야 저희의 손에 걸리면 아무것도 아니죠.”

사내치곤 얇은 편에 속하는 목소리로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사내는 부채로 입가를 가렸다.

“진정한 술법이 뭔지 제대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 * *

“후우후우.”

거친 호흡을 조절하며 자리에 선 성화린은 옆에서 건네는 천을 받아서 흐르는 땀을 훔쳤다.

“왔구나.”

“항상 단주님이 오실 순 없으니까요.”

초생단 부단주, 설란.

그녀가 내뿜어 주는 시원한 바람에 성화린은 부드럽게 웃으며 팔다리를 풀었다.

상당히 능숙하게 근육을 풀어 주는 성화린의 모습에 설란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십시오. 무인이라고 해도 견디기 힘든 수련입니다.”

“견디기 힘들다고 안 할 순 없는 노릇이지.”

시원한 내공이 스며들어 근육을 풀어 주는 것을 느끼며 성화린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내가 여태까지 외면했던 길이야. 치열하게 나아가야 여태껏 놓친 시간을 되찾지.”

“놓친 시간만큼 쌓아 올렸으면서 욕심이 과하군요.”

“나도 그런 줄 알았지.”

체력 단련 대신 술법 수련.

정말 최소한의 기초 체력을 기르기 위해 하는 아침 구보를 빼면 성화린은 여태껏 제대로 된 체력 단련을 한 적이 없었다.

무인들이 하는 수련에 힘을 실을 바엔 술법을 갈고닦는 게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실제로 그렇게 했고.

남들이 체력 단련 대신 휴식을 선택할 때, 그녀는 술법을 더 갈고닦는 길을 택했다.

쉬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왔다.

그럼에도.

“닿지 못했지.”

닿지 못했다.

연옥이라 불리는 곳에서 튀어나온 괴물에게도.

자신의 스승을 죽인 원수에게도.

그 어떤 적에게도 닿지 못했다.

오히려 닿은 것은 자신이 포기한 것까지 함께 쥐고 아득바득 절벽을 올라온 이뿐이었다.

“해야 한다는 것을 눈앞에서 보여 줬으니, 안 할 수가 있나.”

성화린의 말에 그녀가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깨달은 설란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조용히 연무장을 바라봤다.

이제는 꽤나 익숙해져서일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없었다.

콧물과 침은 아직도 흘리고 있었지만.

그건 뭐, 본인이 제어할 수 없는 영역에 반쯤 걸친 부분이니까.

성화린처럼 애초에 정신력이 아득할 정도의 위치에 오른 인물이 아니라면 통제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인들도 저렇게 굴리면 온갖 것들을 질질 흘릴 텐데, 술사라고 무슨 재간이 있겠는가.

지독하게 구르고 있는 술사와 부하들의 모습에서 시선을 돌린 설란은 이젠 꽤 호흡이 돌아온 성화린을 바라봤다.

“어째서 말리지 않았습니까?”

“뭘? 대항전?”

설란의 물음에 능청스럽게 대답했던 성화린은 지그시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에 어색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말린다고 말려지겠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술사입니다. 첩자일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

“구파일방 혹은 오대세가의 보증을 받은 인물일 텐데, 내가 말한다고 먹히겠어?”

“하지만……!”

“내 식솔 중에도 누가 배신자인지 모르는데, 그들이 배신자일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겠니?”

담담하면서도 쓸쓸한 성화린의 대답에 설란은 입을 다물었다.

외부에서 들여온 술사.

첩자일 가능성이 너무 높아서 여태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백화단과 만귀단을 운용했던 것 아닌가.

수령원(修靈院)에서 엄선해 뽑은 인재를 몇 년에 걸쳐 교육과 감시를 통해 고르고 골라낸 이들이 백화단과 만귀단에 입단한다.

물론 그 이외의 방법으로 들어오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더욱 까다로운 심사를 통해야 겨우 입단할 수 있었다.

그런데, 패력단은 내부에서 어떤 감사 과정을 거쳤는지 공개하지도 않고 대뜸 외부의 술사들을 초빙했다.

불안하지 않을 리가 있나.

다만, 성화린의 말대로 오대세가쯤 되는 이들이 그들의 신원을 보증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뿐이다.

맹주조차 묵인해 주고 있는데, 백화단주가 나선들 이야기가 먹힐 리 없었다.

지금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꺼냈다간 괜히 흑룡단을 감싸기 위해 그런다는 비난 여론만 생길 거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백화단주가 조용히 맹주를 만나 일을 도모하는 것이겠지만…….

성화린의 반응에 그것도 글렀다는 것을 깨달은 설란은 입을 다물고 수련을 지켜봤다.

어차피 힘든 일이라면 괜히 성화린을 괴롭힐 이유가 없으니까.

가뜩이나 고된 훈련으로 지친 사람을 괴롭힐 필요는 없…….

“누이.”

“……응.”

“뭐 해요?”

어느새 설란의 곁에 다가온 설천위가 흐르는 땀을 훔치며 상쾌하게 웃었다.

“뛰어요. 단주도 아니면서 뭘 지켜만 보시려고?”

* * *

지옥.

그래, 여기가 지옥이다.

설천위가 돌아와 훈련을 시작하고 2주.

일주일에 딱 한 번 있는 휴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모두가 한계까지 내몰렸다.

‘저게 사람이 할 짓인가…….’

‘나였으면 죽었어…….’

설란을 비롯한 몇몇 능력 있는 무인들은 몸에 묵빛 구속구를 차고 달렸는데, 그 무게가 어찌나 무거운지 초절정 고수들도 땀을 폭포수처럼 흘렸다.

다만, 설천위는 그들까지 하루 종일 달리게 하진 않았다.

무공을 갈고닦을 실력이 있는 이들은 오전에만 체력 단련을 하고, 오후에는 자율 수련을 했다.

그리고 이건 반대로 말하면,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체력 단련만 했다는 소리다.

“하악, 하악!”

그리고 오늘도.

어제 쉬었던 하루가 꿀처럼 달콤했던 꿈이었는지 아니면 진짜로 잠만 자서 꿈을 꾼 것 같은 건지.

도무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후읍!”

각려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그녀의 곁에서 침을 흘리며 달리는 종수 또한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

고작 체력 단련 따위로 포기하기엔 자신들이 이곳에서 쌓아 온 시간과 추억이 너무 많지 않은가.

그리고.

“좋아. 여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던 설천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든 이들이 마치 허물어지듯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연무장 곳곳에 널브러져 숨을 꼴딱거리는 이들 속에서.

쿵!

흙으로 된 연무장이 흔들릴 정도의 무게를 바닥에 내려놓은 설천위가 이리저리 몸을 풀었다.

벗어 던진 상의 때문에 여실히 드러난 육체가 꿈틀거린다.

저게 인간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크고 선명한 근육.

이쪽을 가혹하게 굴린다고 반항할 수도 없었다.

연무장 한가운데서 저런 말도 안 되는 근육을 꿈틀거리면서 무식할 정도의 쇳덩이를 짊어지고 훈련하는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있나.

근육 때문이라도 반항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다들 생각보다 잘 버텨 주네.”

‘……이게?’

곳곳에 널브러진 이들 사이에서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 흘러나왔다.

아니, 오전 훈련만으로 지금 죄다 굼벵이가 되어 흙바닥 위를 꿈틀거리고 있는데 잘 버티긴 누가 잘 버텨?

여기 잘 버틴 사람이 어디 있다고?

부들부들 떠느라 설천위의 말에 귀를 기울일 여력도 없는 이들이 반이 넘는구먼.

제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 반박도 못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설천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몸풀기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가볍게 손을 모은 설천위가 박수를 치는 순간.

꿀렁.

물이 넘쳐흘렀다.

불과 얼음.

설천위는 최근에 그 두 가지를 주력으로 사용하긴 했으나, 설천위가 가장 먼저 배운 속성은 어디까지나 물이다.

가장 익숙하고, 가장 수련에 많이 사용한 속성이기도 하다.

순식간에 물속에 갇힌 것처럼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든 술사들이 몸을 비틀었다.

“커어억!”

“컥!”

“사, 살꾸러르럭!”

제대로 말도 못 하고 버둥거리는 술사들의 모습에 무인들은 미간을 찡그렸다.

“이게 무슨……?”

조금 호흡이 갑갑하긴 하지만, 저렇게 난리를 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착각에 빠지지 마라. 호흡해. 평정을 유지해라.”

그리고 그 순간.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은 설천위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흡!”

강제로 호흡이 들어왔다.

숨이 들어오고, 빠져나간다.

몸 안에 쌓였던 탁한 공기가 빠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치밀어 오르던 고통이 가신 것을 느낀 술사들은 깨달았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자성영역인가?!”

사방을 가득 메운 푸른 액체.

꿀렁이는 것은 전부 물이었다.

자신들의 호흡을 틀어막았던 것이 주위에 가득 찬 물임을 깨달은 술사들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다.

환술을 건 것도 아니고, 다른 진법을 펼친 것도 아닌데.

영력을 짙게 뿜어내는 것 하나만으로 자신들이 본능적으로 물에 빠졌다고 착각해 호흡도 하지 못할 정도의 수 속성 영력을 이 넓은 연무장에 가득 채웠단 소리가 아닌가.

“자, 훈련 두 번째 단계의 시작이다.”

놀란 술사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설천위가 입꼬리를 올린 채 웃었다.

“앞으로 일주일. 이 연무장에서 의식주를 해결한다.”

화장실 정도는 보내 줄게.

“술사들은 물을 극복하고, 무인들은 물을 느껴라.”

“느, 느끼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느끼지 못하면?

용기 있게 손을 들어 묻는 초생단 무인의 질문에 설천위는 고개를 비스듬하게 꺾었다.

“글쎄…….”

천천히 말을 늘리며 설천위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느끼는 게 신상에 여러모로 좋을 텐데, 안 느끼게?”

아뇨.

설천위의 대답과 동시에 모두가 깨달았다.

이 인간에게 못 느낀다는 선택지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건 반대로 말하면.

‘이, 이걸 극복하라고?’

의식해야 겨우 호흡을 할 수 있는 술사들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복해 내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 * *

“험하게도 굴리네.”

“그러게요.”

연무장 근처에서 느긋하게 앉아 훈련을 구경하던 소윤혜와 문율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거 진짜 힘든데.”

“일주일 만에 느낄 수 있을까요?”

자신들도 꽤 시간이 걸렸는데.

문율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인 소윤혜는 자리에서 일어나 툭툭 엉덩이를 털었다.

“몰라. 사실 느끼는 것만 요구한다면 일주일 안에도 가능할지 모르지.”

자신들이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까지를 합격선으로 봤지만, 영력을 어렴풋이 느끼는 것을 합격선으로 본다면, 일주일 안에 가능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때랑 다르잖아.”

보는 순간 알았다.

설천위가 펼친 저 공간이 자신들이 수련하던 영역이 아님을.

“괴물 같은 양반이야.”

어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소윤혜는 문율을 이끌고 걸음을 옮겼다.

이쪽은 외부 업무를 주로 맡고 있지만, 돌아온 설천위에게 받은 숙제가 하나 있었다.

작은 연무장.

그곳에 도착한 소윤혜는 목검을 들고 서 있는 주현운의 앞에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몇 초식이나 버텼어?”

“이 초식이요.”

“그래?”

생각보다 오래 버티네?

주현운의 공격을 이 초식이나 버텼다는 건 꽤나 대단한 일이다.

하물며 그것이.

“재능이라곤 없어 보였는데, 과연 단주가 데려온 부단주감이라 이건가.”

무(武)에 재능이라곤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

“저 능력 확실히 까다롭네.”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연화의 주위로 휘몰아치는 혼탁한 회색의 연기.

“아직…… 안 쓰러졌어요……!”

“바닥에 코를 박으면 쓰러진 거다. 애송아.”

이를 악물고 일어서는 연화를 보며 혀를 찬 주현운은 한숨과 함께 목검을 쥐었다.

대련은 오로지 자신만 한다.

문율은 최근에 심신을 가라앉히는 중이라 안 되고, 소윤혜는 기술 하나하나가 너무 살기가 짙어 심상에 흉터를 남길 수도 있다.

그리고.

[크으으으으……!]

연화의 몸을 타고 흐르는 영력이 사납게 일렁인다.

주변을 좀먹는, 아직 주인이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힘.

안전하게 상대하려면 최소 화경급 이상의 고수가 필요했다.

설천위가 괜히 다른 술사들과 격리해서 수련을 시키고 있는 게 아니었다.

“흐아아압!”

기합과 함께 일어나는 연화를 보며 주현운은 목검을 다시 들었다.

오늘은 몇 번이나 기절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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