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8화
487화-술사 대항전 (3)
“어때? 감 좀 잡겠어?”
무림맹으로 돌아가는 길.
수레 위에서 묻는 설천위의 물음에 연화는 이를 악물었다.
“아니요오오……!”
말이 절로 늘어진다.
그리고 침도 같이 늘어졌다.
수레를 끌고 얼마를 달린 건지.
달리다가 걷기를 반복하고, 중간중간에 운기조식을 했다.
술법 수련?
당연히 뒷전…… 은 무슨?
달리고 걷고, 밥을 먹고, 자는 모든 시간을 술법 수련에 쏟고 있었다.
“어허, 또 흐트러진다!”
호통치는 설천위의 목소리에 움찔한 연화는 이를 악물고 수레를 끌었다.
자신에겐 중노동을 겸한 술법 수련까지 시키는 주제에 수레 뒤에 앉아서 놀고 있는 단주?
욕하고 싶지만, 도저히 욕할 수가 없었다.
‘저 괴물 같은 인간……!’
수레 뒤에서 설천위는 앉아 있던 적이 없었으니까.
두 손 혹은 한 손으로 물구나무를 선 채 계속해서 팔굽혀펴기를 반복했다.
어떨 때는 손가락으로 하기도 했다.
연화는 읽어 낼 능력이 없었지만, 설천위의 주위에 떠도는 혼들이 알려 줬다.
내공 한 점 쓰지 않고 하는 중이라고.
즉.
저 미친 괴물 놈은 자신을 몰아붙이는 와중에도 자기 자신의 수련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소리였다.
[악력은 강할수록 좋지.]
[너도 머지않아, 하게 될 수련이니라.]
주변에서 떠드는 혼들이 미친 소리는 무시했다.
아무리 자신이 무(武)의 길을 걷던 사람이지만 술법을 배우기로 한 이상 저런 미친 짓을 할 정도의 육체까지 단련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발이 느리다.”
“네에에……!”
설천위의 목소리에 거듭 이를 악문 연화는 달렸다.
멈춘다?
그런 선택지는 없었다.
멈추면 어떻게 되는지 몸이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달리는 게 죽도록 힘들었지만, 차라리 나았다.
‘독한 새끼……!’
이동을 시작하고, 첫날 겪었던 대련의 아픔을 떠올린 연화는 치를 떨며 수레를 끌었다.
대체 이 여린 몸 어디에 그리 때릴 곳이 많다고……!
살면서 맞았던 적은 많았지만 그렇게 지독할 정도로 처맞은 건 난생처음이었다.
아픈 걸 넘어서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극심한 통증.
그런 경험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거의 도착했군요.”
한참을 달리던 연화는 유예린의 목소리에 화색이 돌았다.
설천위와 마찬가지로 수레의 끝에서 발가락으로 서 있는 유예린의 모습은 무시했다.
신경 쓰면 지는 거다.
“으아아아아!”
“오오, 다릿심 좋고.”
저 멀리 보이는 성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한 연화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설천위는 드디어 자세를 바로 했다.
“음, 역시 이 정도로는 부족하네.”
[무식한 놈.]
기예가 부족한 만큼 미친 듯이 몸만 단련시켰더니 체력 괴물이 됐다.
몸의 강도나 근력은 철백에게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체력만큼은 엇비슷한 수준일 거다.
고개를 저은 암영의적이 혀를 차는 사이, 어느새 정문에 도착한 연화가 바닥에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흐, 흑룡단주님!”
한참 늘어서 있는 줄 옆, 귀인들이 들어가는 통로에 선 설천위를 알아본 이들이 재빨리 문을 열었다.
“고생해요~!”
그런 문지기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 설천위는 혓바닥을 내밀고 늘어진 연화를 대충 수레에 던져 놓곤 성안으로 들어갔다.
“쯧쯧, 아직 도착도 안 했는데 빠지기는.”
“이, 마……귀.”
혀를 빼고 숨을 몰아쉬며 욕을 내뱉은 연화의 눈이 기어코 돌아갔다.
“어머.”
침을 흘리고 흰자위를 보이는 추한 모습으로 기절한 연화에게 안타까움을 느낀 유예린이 움직였다.
손수건을 꺼내 침을 닦아 주고 대충 먼지를 털어 준 다음 눈까지 감겨서 똑바로 눕혔다.
“시체 같네요.”
“……말을 그렇게 하면 어떡하니?”
너무 체력을 혹사해서 가뜩이나 하얀 피부가 더 창백해진 연화가 곱게 누워 있으니 사실 시체 같긴 했다.
어깨 위에 뾰로롱 나타나 감상을 내뱉는 청아를 작게 타박하며 유예린은 수레에서 내렸다.
“흑룡단주님 복귀하셨습니다!”
무림맹 정문에 서 있는 문지기 외침과 함께 거대한 정문이 열렸다.
흑룡단주가 돌아왔다.
* * *
흑룡단주의 복귀 소식과 함께 무림맹 내부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름 전부터 흑룡단과 패력단 사이에 술사 대항전이 있을 거란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지 않았던가.
흑룡단에서 단주의 부재를 핑계로 도망치고 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그런 소문에 패력단은 기꺼이 치를 의사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대답을 했음에도 대응하지 않고 묵묵부답이던 흑룡단이다.
이젠 그들이 내세우던 변명거리마저 사라졌는데, 과연 어떤 답을 내놓을까?
모두가 흑룡단의 답을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그때.
무림맹 곳곳에 공문이 붙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흑룡단과 패력단이 석 달 뒤 술사들끼리 대항전을 치른다는 내용이었다.
* * *
“안 받아들이고 뭐 하고 있었대?”
흑룡단의 집무실.
단주가 앉는 상석에 앉아 다리를 까딱이는 설천위의 심드렁한 목소리에 서하영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으아아! 나 못 참아요!”
“참으십시오! 단주입니다!”
달려드는 서하영을 붙잡은 무해는 철백에게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철백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놔두라는 철백의 눈빛에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필사적으로 서하영을 붙잡던 무해는 이내 서서히 가라앉는 서하영의 기세에 슬쩍 손을 놓았다.
“후……. 좋아요. 뭐, 대충 예상하고 있던 답이니까요.”
‘아닌 것 같은데.’
어느새 마음을 가라앉힌 서하영의 독백에 모두가 속으로 부정하면서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한 인간만 빼고.
“아닌 것 같은데?”
“이씨!”
“어허! 단주님께 이씨라니!”
“뭐!”
항상 존대를 하던 서하영의 말이 저리 짧아지다니.
저것도 재주다.
쓸데없이 서하영을 긁고 있는 설천위의 행태에 고개를 저으면서도 무해는 일단 가만히 있었다.
설천위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럴 리가 없…….
“에베베~, 꼬우면 단주를 하시든가~.”
“이 인간이! 점점 더 유치해지네!”
……이유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부단주로 임명할 때도 그렇고, 왜 저렇게 서하영을 갈구는 거지?
다른 이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설천위는 대충 진정된 서하영을 쓱 무시하고 다른 이들을 바라봤다.
“그래서, 준비 중이었다?”
“네.”
당차게 대답하는 요려.
그리고 그녀의 곁에 있던 먼지투성이의 각려와 종수는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이 괴물을 좀 말려 달라고.
체력 단련을 하는 것까진 좋은데, 이런 방식은 아니지 않느냐고.
간절함이 담긴 그 눈빛에 설천위는 가볍게 혀를 찼다.
“요려, 너 생각보다 무르구나?”
“예?”
“여기까지 올 체력을 남겨 두면 어떡하냐? 체력 단련이 뭔지 몰라?”
그러는 당신은 체력 단련이 뭔지 아시나요?
아시는 거 맞죠?
설천위의 지적에 각려와 종수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여기까지 올 체력도 안 남으면 그게 체력 단련이냐? 고문이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각려와 종수가 간절한 눈으로 성화린을 바라봤지만,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니, 뭐 여기서 끼어드는 건 월권행위이니까.
음.
그렇게 성화린에게도 외면을 당한 종수와 각려가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져 가는 사이.
“뭐, 나쁘지 않은 기회네.”
무림맹의 규모는 사천맹을 낮잡아 볼 수 있을 정도로 크다.
그러니 사천맹과 같은 형태의 개혁은 무리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하나씩 바꿔 갈 필요가 있다.
그 시작으로 이런 행사는 나쁘지 않았다.
“뭐, 이렇게 됐으니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시작하죠?”
뭘?
그런 의문이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설천위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합동훈련.”
* * *
“……술사와의 합동훈련이 원래 이랬던가?”
설천위의 요청에 훈련을 위한 인원을 데리고 흑룡단 건물에 도착한 초생단주 구목은 헛웃음을 지었다.
술사란 것들은 원래 콧대가 높은 인간들이다.
선택받은 재능이 있어야 겨우 입문이 가능한 영역이니까.
게다가 무림맹에 들어올 정도면 그중에서도 꽤 특출 난 재능을 가졌단 소리고.
가지고 있는 재능도 있고, 능력도 있으니 자연히 콧대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남들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다룬다는 점에서 신비로운 분위기도 있으니 술사를 어려워하는 무인들은 상당히 많았다.
자신만 해도 자신보다 한참 어린 백화단주를 어색해하지 않는가.
뭔가 거리감을 잡기 어렵다고 해야 하나.
썩 친숙해지기 힘든 것이 술사라는 이들인데…….
“친근하구먼.”
얼굴에서 뽑아낼 수 있는 수분을 거의 뽑아내며 달리고 있는 술사들의 모습은 상당히 친숙해 보였다.
자신이 직접 부하들을 굴릴 때 자주 보던 얼굴들이다.
다만, 충격적인 것은…….
‘백화단주는 왜 저기에……?’
달리고 있는 술사들 사이에 백화단주도 섞여 있다는 점이다.
정신력이 다르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눈물, 콧물, 침은 없었지만 폭포수처럼 흐르는 땀은 똑같았다.
“아, 초생단주님.”
“흑룡단주.”
“이야, 말씀하신 대로 데려와 주셨군요.”
어느새 자신의 곁으로 다가와 웃는 설천위를 향해 구목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말한 대로 잠재력이 풍부한, 아직 개화되지 않은 친구들로 데려왔네.”
개화되지 않았다고 해도 이류 이상의 무인들이다.
무림맹에서야 하급 무사 취급을 받지만, 무림에 나가면 시골 동네 정도에선 어깨에 힘 빡 주고 다닐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말 그대로 하급 무사이기에 무림맹에서는 썩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다.
“좋아요. 좋습니다.”
그런 이들을 굳이 모아서 데려와 달라고 한 설천위의 요청에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구목은 별말 없이 그들을 데려왔다.
애초에 이들이 흑룡단주의 훈련으로 강해지면 좋은 거 아닌가.
인원도 많아서 술사와 협력하는 법을 배우면 좋고.
소수의 강자가 교육받는 것보다 오히려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애초에 초생단은 구단 중에서 유일하게 머릿수를 주력으로 삼는 곳이니까.
그 머릿수를 담당하는 하급 무사들이 강해진다면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게 없었다.
“자자, 그래도 무인들이니까 이거 하나씩들 차고.”
구목이 생각에 빠진 사이, 초생단을 이끌고 한 곳으로 간 설천위는 그들에게 모래주머니를 배급했다.
그리고.
“자, 뛰어!”
뛰라는 호통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초생단 단원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무인이다.
이런 달리기 정도는 우습다.
저 허약한 술사 놈들은 제대로 버티지도 못하고 추잡스럽게 달리고 있지만, 자신들은 다르지 않은가?
그렇게 자신하며, 초생단은 달리기 시작했다.
그 자신감이 실로 어마어마한 착각이었음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 * *
달리고 달린다.
미친 듯이 달리는 술사들과 초생단 무인들을 보며 서하영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유예린이 돌아와 업무를 분담해 주면서 상당히 여유가 생겼다.
이렇게 수련할 시간도 확보할 수 있고.
‘에베베베~, 꼬우면 단주를 하시든가~.’
자신을 놀리던 설천위의 목소리가 그녀의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빠직.
이마에 튀어나온 힘줄을 손으로 꾹 누르며, 서하영은 점점 더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느새 두 손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무릎 위의 창에 올리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기예(技藝)라면 넘친다.
창을 다루는 기술에 관해서는 이미 화경의 영역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어째서 아직도 벽을 넘지 못했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커다란 등이다.
앞으로 뛰쳐나갈 준비를 전부 끝낸 주제에 자신의 앞에서 묵묵히 기다려 주고 있는 사내.
언제든 넘어갈 수 있으면서 자신을 기다려 주고 있는 남자.
그 괴물 같은 단주가 직접 말한, 자신의 주위에서 가장 재능이 넘치는 사내.
자신의 연인.
저 앞에 달려가고 있는 친우의 등을 부럽게 바라보면서도 사내는 달려가지 않았다.
……그 등에 자신은 짐이었다.
그가 품은 미련이 그를 붙잡고 있었다.
설천위가 자신을 계속해서 놀리고 재촉하는 이유.
‘나도 모든 준비가 끝났어.’
딱 한 걸음.
고작 한 걸음만 넘으면 된다.
그것에 필요한 것이 각오인지, 깨달음인지, 영약인지 모르겠지만.
‘넘는다.’
항상 함께해 왔던 등과 같이 걸어가기 위해.
서하영의 심상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