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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84화 (484/624)

제484화

483화-청아와 신입 (5)

“그래서 진짜 무슨 생각이에요?”

“뭐가?”

“그 사람은 왜…….”

놓아 주지 않고 붙잡았냐고요.

차마 말을 더 이어 가지 못한 청아는 입술을 불뚝 내밀고 설천위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서 고개를 갸웃하던 연화는 이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서점 앞에 있던 아저씨가 찾던 사람……?”

“……맞아요.”

“와! 예쁘다고 듣긴 했는데, 진짜 장난 아니게 예쁘네요.”

청아의 미모에 연화가 감탄하는 사이, 앞서 걸어가던 설천위는 그 모습을 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긴, 직원 복지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했잖아?”

“……직원 복지요?”

그게 뭔데요?

“앞서 나가는 고용주의 배려?”

“또 이상한 헛소리로 얼버무리고 넘어갈 생각인 거죠?”

“에이, 아니야. 내가 얼마나 잘 챙겨 주는지 알면서 그런다.”

“챙겨 주긴 무슨…….”

흥, 고개를 돌린 청아는 잠시 복도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설천위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진짜 왜 그러시는 건데요?”

살짝 촉촉해진 목소리로 다시 한번 물었다.

“제가 부족한 거면 더…….”

“도착했다.”

울먹거리기 시작하려는 청아의 목소리를 끊은 설천위는 웃음과 함께 방문을 열어젖혔다.

지금 유예린이 드잡이를 하는 사이, 이쪽은 이쪽의 일을 처리해야지.

“……여긴?”

방문을 열자마자 훅 들어오는 악취에 청아는 미간을 찡그렸다.

몇 번인가 맡았던 냄새다.

“혈교……인가요?”

“아마 그럴걸?”

방 안에서 풍겨 오는 거북한 악취.

죽음과 추악한 욕망의 냄새다.

그리고.

“……저건 누구죠?”

그 방의 한가운데에 작은 침상이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엔 추레한 노인 한 명이 누워 있었다.

“누, 누구냐…….”

낯선 목소리에 경계하는 듯했지만, 거동이 불편한 듯 고개를 들어 이쪽을 확인하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노인.

그런 노인을 보던 설천위는 이내 벽에 기댄 채 청아를 바라봤다.

“확인해 봐.”

턱짓으로 노인을 가리킨 설천위는 이내 입을 다물었고, 그런 설천위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청아는 천천히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 사람.”

“반응을 보니 맞나 보네.”

딱딱하게 굳은 청아의 얼굴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

“네?”

“손 내밀라고.”

뜬금없이 손을 내밀라는 명령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청아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철컥.

“이, 이건?”

손에 들리는 흑도(黑刀).

설천위가 사용하는 그것이다.

나날이 예기(銳氣)를 더해 가고 있는 그것.

설천위가 손에 쥐면, 사람의 목 정도는 그냥 잘라 내는 보도(寶刀)다.

“네가 끝맺음을 해.”

손에 칼을 쥐여 주고, 끝맺음을 하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순간, 당황한 청아의 눈동자가 격하게 떨렸다.

지금 그게…….

“아저씨!”

“씁, 아저씨 아니야.”

유 매한테는 언니라고 부르고, 왜 난 아저씨야?

옆에서 소리치는 연화에게 눈을 부라린 설천위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떨고 있는 청아를 바라봤다.

“네가 네 손으로 끝을 내.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그…… 그건.”

거칠어지는 호흡.

청아는 천천히 몸을 돌려 노인을 내려봤다.

그제야 청아의 얼굴을 온전히 확인한 노인이 두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네, 네년은! 내, 내놔라! 내 생기를 내놔!”

발악하듯 손을 허우적거리는 노인.

하지만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육체는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핏발이 선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에 청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흑도를 치켜들었다.

두 손으로 손잡이를 역수로 쥐어 그 칼끝이 노인을 향하게 한다.

“무, 무슨 짓이냐!”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았기에 노인의 눈은 순식간에 공포로 가득 차올랐다.

이대로 가면 죽는다.

그런 위기감을 느끼자마자, 노인은 발버둥 쳤다.

어떻게든 몸을 뒤집기 위해 애를 쓰고, 어떻게든 침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

삶을 향한 지독할 정도의 갈망 덕분일까.

요지부동이던 노인의 몸은 천천히 침상을 반쯤 벗어날 정도까지 움직였다.

그리고 한참 동안 검을 치켜든 채 노인을 바라만 보던 청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 때.

“그, 그 사내놈은 네년 때문에 죽은 거다! 네년이 순순히 따라오기만 했었어도! 죄를 지은 괴물을 숨겼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 내 잘못이 아니야!”

발악하듯 소리치는 노인의 목소리에 청아의 떨림이 멎었다.

차분해진 호흡.

차가워진 눈동자.

“안……. 읍!”

소리치며 말리려는 연화의 입을 틀어막은 설천위는 기막을 펼친 채 조용히 지켜봤다.

자신의 주인이 기막을 펼친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청아는 천천히 노인에게 접근했다.

아직 침상을 채 내려가지도 못한 노인을 향해 다가간다.

“꺼, 꺼져라! 꺼져! 이 악귀 놈아!”

그런 청아의 모습에 겁먹은 노인이 계속해서 발버둥 쳤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침상을 반쯤 벗어나는 것이 고작이었다.

몇 호흡이 지나가기도 전에 노인의 위에 검을 세운 청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흡!”

도를 내리찍었다.

섬뜩할 정도의 예기를 머금은 칼끝이 단숨에 꿰뚫고 지나간다.

베개를, 침상을.

노인의 머리 바로 옆을.

“……나는, 너를 죽이지 않을 거야.”

나는 괴물이니까.

그 사람과 살아갈 때 맹세했으니까.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그 사람의 곁에서 인간으로서 살아갈 것이라고.

그 모든 것이 눈앞의 노인 때문에 허망한 꿈이 되었지만.

그렇기에 자신은 더더욱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지금의 주인이 준 두 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죄를 저지르지 않을 거야.”

괴물이기에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이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단속하고, 경계할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두고 갈게.”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恨)이 증오로 바뀌지 않도록.

내가 그들의 곁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내가 사람처럼 살 수 있도록.

“여기서 끝이야.”

이 자리에 내 멍울을 두고 가리라.

천천히 떨어지는 청아의 손을 따라 흑도가 부서져 간다.

파편이 되어, 가루가 되어, 이내 허공으로 흩어진다.

마치 그녀가 품고 있던 칠흑 같던 증오처럼.

“어, 언니!”

어느새 설천위의 손에서 벗어난 연화는 그 모습에 감격했다.

“언니?”

그리고 연화의 반응에 청아는 당황했다!

갑자기 다가와 언니라고 부르는 연화의 모습에 청아가 어색하게 되물었지만, 연화는 거칠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네! 언니요! 언니로 모실게요!”

“그 부단주가 되실 분이 저를…….”

“언니!”

“……마음대로 하세요.”

“네!”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한 연화의 반응에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인 청아는 그대로 연화의 손에 이끌려 방을 나갔다.

이 자리에 그녀를 더 두지 않겠다는 듯 연화는 거침없이 그녀를 끌고 방을 나갔다.

그렇게 청아와 연화가 나가고, 혼자 남은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허허, 저 아이를 시험한 게냐?]

[참, 부하를 깊게 믿는 건지 아니면 그냥 무식한 건지…….]

악귀가 왜 악귀던가.

사람을 잡아먹는 존재니까 악귀다.

그리고 식령이란 그런 악귀를 술사가 제어하는 것이다.

당연히 가장 첫 번째 조건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주인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해하는 경우가 분명히 있겠지만, 조금 전과 같은 상황은 다르다.

순전히 자신의 원한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상황.

아마 죽였다면 청아의 한은 풀릴 수 있지만, 그녀가 쌓은 살업은 언젠가 그녀를 무겁게 짓누를 거다.

영적인 존재에게 업(業)이란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니까.

“아니, 죽이라고 준 건데요.”

[……뭐라?]

“에이, 그럼 죽이라고 칼을 쥐여 줬지, 침대에 구멍이나 뚫으라고 칼을 쥐여 줬겠어요?”

헛웃음을 지으며 손을 휘적거린 설천위는 천천히 노인을 향해 다가갔다.

“청아가 깔끔하게 처리하고 과거의 원한은 청산해라. 뭐 그런 뜻으로 쥐여 준 거죠.”

[그게 무슨 헛소리냐! 저 아이가 사람을 죽인 살업에 짓눌려 완전히 일그러지면……!]

“내가 감당할 건데, 무슨 소리예요?”

선업(善業)도, 악업(惡業)도, 살업(殺業)도.

전부 자신의 지시와 허락 아래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짊어질 문제다.

“내 명령에 따르고, 내 지시를 따르는 이가 저지른 모든 일의 결과는 내가 책임집니다.”

그렇기에 따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따르게 하는 것이다.

내가 걷는 패도(覇道)는 그런 길이다.

어떤 업보(業報)든 간에 피하지 않는다.

내 뒤를 따르는 이들의 죄라면 나 또한 책임질 것이고.

내 뒤를 따르는 이들의 업이라면 나 또한 짊어질 것이다.

“그게 내가 가는 길이거든요.”

노인의 앞에 도착한 설천위는 그대로 노인의 목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뭐, 그런 의미에서 이번만큼은 살려 주마.”

청아가 하기 힘들다고 하면, 내가 대신 처리해 줄 생각이었지만…….

청아 스스로 죽이지 않고 용서하고 떠나기를 선택했다면.

죽이지 않아야지.

암.

“죽지 않고 여생을 후회 속에서 죽어 가게 해 주마.”

“끄어어어억!”

노인의 앙상한 몸을 타고 흐르는 흑룡이 그 혼과 육신을 헤집는다.

신경이 갈가리 찢기는 듯한 끔찍한 고통에 노인의 눈이 돌아가고 입에서 거품이 흘러나왔지만…….

“여기까지.”

노인은 죽지 않았다.

흑룡이 죽음 직전에 멈춰 섰으니까.

노인을 대충 침상 위에 던진 설천위는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털었다.

“그럼, 남은 삶을 실컷 즐기다 가쇼.”

혼조차 찢어지는 고통을 마음껏 누리다가 지옥으로 가면, 거기선 또 색다른 체험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두근두근한 여생이 되겠어.

노인을 두고 히죽히죽 웃는 설천위가 방을 떠났다.

그리고.

‘……보통은 식령의 살업을 대신 못 짊어진다, 이놈아.’

그 뒷모습을 만귀단주 오윤이 황당한 얼굴로 바라봤다.

* * *

“저라고 살인을 즐기는 건 아닙니다.”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유예린은 벌벌 떨고 있는 이들을 둘러봤다.

“혈교와 내통한 자들이 있는 건 맞지만, 아닌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요?”

유예린을 바라보던 시선이 조금씩 옆으로 향한다.

“그러니 당당한 사람은 정의를 위해 손을 들고 입을 열 겁니다. 타인의 죄를 고하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겠죠.”

은은한 유예린의 목소리가 펴져 나간다.

귓가로 스며드는 듯한 목소리에 눈치를 보던 이들의 눈동자가 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설마 저놈이?’

‘저, 저……!’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 불신이 가득 차오르고.

“제, 제가 알고 있습니다! 저기 양가 놈이 얼마 전에 뜬금없이 땅을 샀습니다!”

“네, 네놈이라고 다르더냐?! 네놈은 얼마 전에 금두꺼비를 사지 않았느냐! 그게 네놈의 급여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저, 저는 현령의 죄를 알고 있습니다!”

“저놈의 죄를 고발하겠습니다!”

순식간에 도떼기시장처럼 시끄러워진 재판장.

그곳에서 유예린은 고개를 돌렸다.

“참으로 보기 좋은 광경이네요.”

어느새 현령의 옆에 서서 그의 상처를 지혈한 유예린은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현령을 보며 웃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 이런 입을 놀리는 게 무서우신가 보군요.”

움찔!

입을 놀렸다가 팔이 잘렸기 때문인가.

그리 똑똑해 보이지 않음에도 현령은 스스로 입을 닫았다.

하지만.

“네, 네년……. 황제 폐하께서 이 오만을 두고 볼 것 같으냐……!”

서서히 고통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까.

이내 현령이 억눌린 목소리로 유예린을 협박했다.

그리고.

“두고 보겠지요. 증거와 증인이 넘쳐날 테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유예린의 기세에 압도되어 공포에 벌벌 떨고 있는 현령의 머리에 발을 올린 유예린은 그 머리를 지그시 누르며 웃었다.

“우리는 황제 폐하께서 임명한 당신을 끌어내릴 생각이 없어요.”

그것이 매관매직으로 얻은 관직이라도 해도 말이다.

단지 그 자리를 깨끗하게 치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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