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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83화 (483/624)

제483화

482화-청아와 신입 (4)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래요.”

“왜? 평소에도 이런 느낌이잖아?”

“정파의 거목이라는 양반이 자랑이네요.”

현청의 지하.

은밀하게 잠입한 청아와 설천위는 축축한 지하실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대체 왜……!”

“직원 복지?”

“그건 또 무슨 헛소리예요…….”

이 인간, 요즘 들어 헛소리가 더 늘었어…….

한숨을 푹 내쉰 청아는 자신의 앞을 걸어가는 주인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저 때문에 그 사람이 더 고생하는 건 싫어요.”

풀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청아의 모습에 설천위는 피식 웃었다.

“고생은 무슨 고생?”

“부려 먹을 생각이잖아요!”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몰라?”

“죽은 사람이 뭘 먹어요!”

“어허, 사람이란 마음의 양식을 먹으며 살아가야 하는 법이야.”

살아서도, 죽어서도.

자신을 쏘아보는 청아의 눈빛에 피식피식 웃으며 설천위는 가볍게 그녀의 머리를 토닥였다.

“뭐, 그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도착했다.”

지하실의 가장 안쪽.

여태까지 지나온 길이 그냥 감옥이었다면, 이곳은 감옥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더럽고 지독한 곳이었다.

가볍게 지풍으로 제압한 간수들을 지나쳐 설천위는 감옥 앞에 섰다.

“연화.”

“……누구?”

희미한 목소리.

고개를 든 몸은 힘이 없었으나, 눈빛만큼은 또렷하기 그지없었다.

푸른빛이 도는 군청색의 머리카락.

잘 먹지 못해 앙상해진 몸으로도 감출 수 없는 미모.

그리고 그런 외모를 전부 잡아먹는 고고한 눈동자.

“주, 주인님. 이, 이 사람?”

“우리 단의 부단주가 될 사람이지.”

“미, 미쳤어요?! 저, 저 눈!”

당황한 청아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설천위는 가볍게 감옥의 쇠창살을 우그러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연화, 영입 제안을 하러 왔다.”

“……필요 없어.”

“응?”

“갇힌 몸이라고 해도 더러운 일에 손을 담글 생각은 없거든.”

당차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연화.

앞으로 묶인 두 팔과 두 다리가 무색할 정도로 그녀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뜻을 세우고 있었다.

“딱 봐도 어디 사파의 거물 같은데, 꺼져.”

“오.”

“그러니까 평소에 좀 잘하라니까…….”

‘오’는 무슨 ‘오’야.

감탄할 때냐?

히죽 웃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주인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청아는 이내 떨리는 눈으로 연화를 바라봤다.

본 순간, 알았다.

이 인간은 흔히 말하는 저주받은 인간이다.

“어차피 날 끌고 갈 능력도 없을 테니, 꺼져.”

“응? 아아, 그것들 말인가?”

당차게 대답하는 연화의 모습에 피식 웃은 설천위는 자신을 노려보는 혼들을 바라봤다.

[이 아이는 내 거야!]

[내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고!]

[내 딸을 만나서……!]

악을 쓰는 혼들.

그들 대부분은 미련과 아집으로 혼탁하게 변해 있었다.

악귀가 되기 직전의 존재들.

아마 보통의 사람들은 저들의 집념에 닿는 순간, 공포로 거품을 물고 기절할 거다.

현령이 연화를 붙잡아 놓고도 아무것도 못 한 이유이기도 하고.

“사람끼리 대화하는데, 잡귀가 끼어들지 마라.”

[히, 히이익!]

[괴, 괴물!]

하지만, 그건 보통의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설천위가 눈을 부릅뜨는 것만으로 모든 혼들이 단숨에 물러났다.

“이, 이게?”

“고작해야 잡귀들이지.”

순식간에 자신의 등 뒤로 숨은 혼들의 모습에 연화가 당황했지만 설천위는 별거 아니라는 듯 웃으며 손을 저었다.

“연화, 네 체질은 무공을 익히는 것으론 해결할 수 없다.”

“……아니, 할 수 있어.”

“마음 약한 네 스승은 그리 말해 줬겠지만, 안타깝게도 안 그렇거든.”

간수들이 앉던 의자를 술법으로 당겨 온 설천위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무공을 익히면 가능은 하지. 한 화경쯤 되면 심상의 벽을 한 번 허무니, 저런 잡귀들 정도야 얼마든지 털어 낼 수 있을 거다.”

“그럼 화경에 오르면 될 일이야.”

“무리야. 너, 무공의 재능이 나랑 비슷하거든.”

‘……지는 화경에 올랐으면서.’

왜 남은 무리라고 하는 거야?

설천위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은 청아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어이가 없는 건 없는 거고, 주인의 일은 방해하지 말아야지.

[으음, 확실히 근골이 영 안 좋구나. 이 녀석만큼은 아니지만…… 웬만한 노력으론 대성은 무리겠어.]

그런 설천위의 말에 소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설천위는 환골탈태도 거치고 해서 적당한 수준의 무골은 됐지만, 처음에 만났을 땐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이었지.

설천위의 육체는 단련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천마가 개조했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처절함을 넘어 가학적일 정도의 호된 수련을, 근골은 안 좋은 주제에 이상한 회복력을 가진 설천위에게 무리하게 쌓아 올리는 방법으로 겨우 만들어 낸 육체다.

보통 이 정도 무골이라면 설천위가 한 수련은 하는 도중에 죽는다.

“한 칠십 년쯤 수련하면 화경에 도달할 수 있을 거다. 그 전에 악귀에게 먹혀서 죽거나 늙어 죽거나 하겠지만.”

“……아니. 난 할 수 있어.”

이를 악물고 고개를 치켜드는 연화의 모습에 설천위는 다시금 피식 웃었다.

“그건 네 생각이고. 뭐, 생각을 어떻게 하든 자유지만 나는 좀 더 옳은 길을 알려 줄 수 있지.”

단숨에 흑도(黑刀)를 만들어 낸 설천위가 연화의 포박을 끊어 냈다.

“어떤 길이 맞을지 한번 두 눈으로 직접 봐 보는 게 어때?”

* * *

“뭐? 은검(隱劍)? 그게 누구든 신성한 재판의 현장에 이딴 횡포를 부리다니! 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겠구나!”

갑자기 쳐들어온 유예린을 향해 호통을 치는 현령의 두 눈에 끈적한 욕망이 출렁거렸다.

유예린의 미모를 확인하니 앞에서 굴러다니는 구도문주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저 여자를 손에 넣어야겠다는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리고.

‘혀, 현령님! 으, 은검입니다!’

머리가 하반신에 달린 현령과 달리 목 위에 달린 부관은 귓속말로 그를 만류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머리가 하반신에 가 있으니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리겠는가.

달라붙는 부관을 밀쳐낸 현령은 입술을 축이며 손을 들었다.

“포졸은 지금 당장 저 계집을 포박하라!”

현령의 지엄한 지시에 포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유예린을 포위…… 하진 않았다.

‘미친놈!’

‘지금 구도문주가 어떤 꼴인지 눈에 안 보이는 거야?’

하반신에 피가 쏠린 현령은 지금 뇌가 텅텅 비어 버렸지만, 포졸들은 아니었다.

유예린이 집어던진 사내의 얼굴을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그 옷과 검만으로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무려 일류 고수인 구도문주가 아닌가!!

멋모르고 이 도시에 들어왔던 흑도 무리를 혼자의 힘으로 박살을 내던 구도문주다.

그런 인간이 저렇게 개떡이 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자신들이 상대가 될 리 없지 않은가.

“뭣들 하느냐! 당장 저년을 포박하래도!”

주제 파악이 빠른 포졸들이 머뭇거리자, 현령은 다시 한번 크게 호통을 쳤다.

“나는 황제 폐하께 이 도시의 통치를 명 받은 현령이다! 감히 누가 내 말을 거역하는 것이냐!”

두 눈을 치켜뜨고 바락바락 고함치는 현령의 모습에 포졸들이 머뭇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일단 자신들은 관졸이 아닌가?

아무리 무인이라고 해도 막 죽이진 않…….

“제 경고를 너무 쉽게 무시하는군요.”

“아?”

싸늘한 유예린의 목소리와 함께 얼이 빠진 신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내, 내 손이!!”

“분명히 말했을 텐데요. 섣불리 움직이면 사지 중 한 곳을 자르겠다고.”

난리를 치던 현령이 팔꿈치 위로 사라진 자신의 오른팔을 붙잡고 악을 썼다.

언제 잘렸는지도 몰라서 뒤늦게 찾아온 고통에 침과 눈물을 흘리며 몸을 비트는 모습은 처절했으나 그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해 줄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조, 조졌다!’

‘제대로 미친년이야!’

현령의 손을 잘라 버리다니.

보통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관인을 건드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것도 아닐 테고……!

“자, 다시 말씀드리죠.”

모두가 겁에 질려 떨고 있을 때, 가볍게 손뼉을 친 유예린이 단숨에 주위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은은한 내공이 실린 박수 소리에 시선을 돌리던 이들마저 유예린을 바라보게 된 상황.

“혈교와 내통해 일반 백성을 빼돌리던 간악한 죄인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인간의 법도란 참으로 억울하다.

법치(法治)는 그 무엇보다 공정하고 평등해야 할 통치 방식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법치(法治)란 죄인에게도, 피해자에게도 공정해야 하기에.

죄를 뒤집어쓰는 또 다른 억울함을 막기 위해, 피해를 입었음을 피해자가 입증해 내지 못할 경우의 억울함을 감내해 내야 한다.

이건 인간 사회이기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억울함이다.

인세(人世)에 억울함이 없는 법치(法治)란 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억울한 일은 증거를 가지고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 법(法) 이외의 힘으로 짓눌러졌을 때 생기는 억울함이다.

권력(權力)이란 것이 끼어드는 순간, 법(法)은 만드는 자에게 유리하고 또 법(法)을 어기는 자에게 유리하다.

처벌을 위해 죄인의 죄(罪)를 입증해야 하는 것은 피해자이고.

처벌을 위해 죄인의 죄(罪)를 규정해야 하는 이는 권력자이기에.

9할 9푼의 인간이 공명정대하다고 하더라도.

1푼의 인간이 썩어 빠져서 법을 이용하는 순간, 반드시 억울한 사람은 생겨나기 마련이다.

억울함을 넘어서 한이 맺히는 사람이 생겨난다.

속에 쌓인 멍울을 풀지 못해 죽어 가는 사람이 생겨난다.

그렇기에.

“가끔 사파(邪派) 같은 짓도 나쁘지 않군요.”

유예린은 기꺼이 악(惡)이 되기로 했다.

칠흑을 그 몸에 두른 흑룡(黑龍)이 되기로 했다.

차고 넘치는 증거와 억울한 피해자들을 법이 외면한다면.

내가 외면하지 않으리.

그것이 법치(法治)에선 범법(犯法)으로 규정되는 일이라면.

나 또한 법 이외의 힘으로 그것을 합법(合法)으로 바꿔 주면 될 일이다.

“여러분들에게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어느새 현령의 코앞에 도달한 유예린은 현령의 혈을 짚어 지혈을 해 주는 것과 동시에 주변에 있는 이들을 둘러봤다.

“악(惡)을 뿌리 뽑는 일에 협력해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악(惡)의 일부가 되어 검의 심판을 받으시겠습니까?”

“네, 네년이 뭐라고 지껄이는 것이냐! 이 나라에서 백성들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지엄하신 황제 폐하께 임명받은 나 같은 자들뿐이다……!”

잘린 팔을 부여잡은 현령이 속에 있던 말을 순식간에 쏟아 냈다.

살기 위한 발악이다.

황제 폐하가 자신의 뒤에 있으니 빨리 참회하고 물러나라는 협박.

그 협박에 유예린은 입꼬리를 올렸다.

비틀린 미소.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한, 마치 붉은 초승달과도 같은 미소와 함께.

검이 번뜩였다.

“말을 하는 것도 몸을 움직이는 것에 속해요.”

입도 몸이니까.

“끄아아아악!!”

팔꿈치 아래로 잘렸던 팔이 팔꿈치 위까지 한 번 더 잘린 현령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발버둥 치는 현령의 머리를 그대로 발로 밟은 유예린은 지그시 현령의 머리를 누르고 주위를 둘러봤다.

“당신들이 황금과 거짓된 보고로 황제 폐하의 눈과 귀를 막았듯이, 저 또한 막을 수 있습니다.”

담담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죽은 이의 말은 염라께 닿지만, 황제 폐하껜 닿지 못하는 법이지요.”

무림의 전통, 살인멸구(殺人滅口)라고 들어는 봤나?

* * *

“……이, 이게?”

설천위에게 끌려 나오듯 감옥을 나온 연화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 옳은 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답답한 길은 아닐 거다.”

조용히 건물 안으로 들어와 벽에 기댄 설천위는 얼이 빠진 연화를 보며 피식 웃었다.

“네가 가려는 길이랑은 잘 타협하면 꽤 잘 맞을 것 같은데, 어때?”

입꼬리를 올리며 묻는 설천위의 말에 대답하지도 않은 채 멍하니 유예린을 바라보던 연화가 중얼거렸다.

“……멋져.”

한눈에 반한 소녀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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