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0화
479화-청아와 신입 (1)
흑룡단이 만귀단을 흡수한 지 일주일.
드디어 흑룡단이 무림맹에 복귀했다.
“……그래서 만귀단과 합쳤다고요?”
“응. 단주 하나에 부단주 셋으로 갈 거야.”
“좋아요. 뭐 그것까진 알겠어요.”
조직 두 개가 서로 합쳐졌으니, 내부적 변화가 필요한 거야 당연하지.
당연한데…….
“근데 왜 제가 부단주예요?!”
“유 매는 내 부관을 하기로 했으니까?”
“아니, 그러니까! 주 공자랑 문 공자! 거기다 소 언니도 화경이라면서요!”
아직 초절정밖에(?) 안 되는 자신이 왜 부단주가 돼야 한단 말인가!
복귀하자마자 인사 명령이 떨어진 서하영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쪽팔리게 인맥으로 부단주에 올랐다는 소문이나 돌 텐데……!”
이미 화경이라고 동네방네 소문 다 났더만! 걔들 두고 내가 부단주가 되면 무슨 이야기가 나오겠냐고…….
거의 울먹거리듯이 반대하는 서하영의 모습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아니라는 걸 증명하면 되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웃으며, 설천위는 옆에 서 있는 철백을 바라봤다.
“그렇지?”
“……천위, 넌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경향이 있어.”
“에이, 뭐 늦다 빠르다의 차이지, 어차피 다 화경 정도는 오를 텐데 무슨 상관이야?”
“천위, 방금 내가 한 말 듣긴 한 거냐?”
이건 뭐 소귀에 경 읽기도 아니고.
한숨을 내쉰 철백은 고개를 저었다.
“뭐, 받아들여. 그게 빨라.”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는 말 아나?
“무슨 억지를……!”
“안 돼! 바꿔 줄 생각 없어! 돌아가!”
“뭐라는 거예요!”
장난스럽게 고개를 젓는 설천위의 모습에 서하영은 다시 한번 발끈했지만, 설천위는 진짜로 그녀의 의견을 받아 줄 생각이 없었다.
“소 누님을 포함한 셋은 따로 별동대를 만들 거야. 부단주 자리는 무리라고.”
“그렇다고…….”
“부단주의 자격 조건은 이미 해결된 상황인데, 안 될 게 뭐 있어?”
“자기가 주변 시선을 신경 안 쓴다고 다른 사람도 그런 줄 아는 벽창호가……!”
“어허, 안 돼! 돌아가!”
“꺄아아! 말이 안 통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트는 서하영의 어깨를 작은 모습으로 현신한 청아가 두들겼다.
“포기하면 편해요!”
“뭘 포기하니…….”
“뭐든요!”
“얘는 멀쩡하던 애가 주인 닮아 가…….”
한숨을 내쉬면서도 청아를 끌어안는 서하영.
그리고 이내 포기했는지 침묵과 함께 평온을 얻어 가는 서하영의 모습에 다른 이들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받아들일 거면서 부질없는 반항은 왜 그렇게 하는지…….
“그래서 다른 부단주는요?”
“남은 한 명은 철백으로 할까 했는데……. 아무래도 철백은 부단주 그릇이 아니라서.”
지금 흑룡단에 필요한 부단주는 단주가 부재 시 단을 이끌 수 있는 인물이다.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서하영을 앉힌 이유도 그 때문이고.
서하영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선하고 포용력이 있어서 아랫사람들이 잘 따르는 인물이다.
단주의 부재 시에도 충분히 단을 이끌 수 있는 재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하영이 부끄러워하는 무력은 그녀가 충분한 동기만 얻을 수 있다면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할 수 있는 문제고.
오히려 이번 일로 성장이 더욱 가속화될 확률이 높았다.
여러모로 사랑의 매…… 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느낌의 인사다.
다만 철백의 경우에는 전투에서 최전방에 서는 유형의 무인이다.
부단주를 맡기려고 한다면 맡길 수야 있겠지만,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철백은 그냥 서하영 직속으로 둘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남은 문제는 다른 부단주들의 공석인데…….
“두 자리는 생각해 둔 게 있어. 바로 채울 건 아니고, 천천히 채울 거야.”
미친 듯이 달려왔으니 잠깐 정도는 정비할 시간을 가지는 게 맞겠지.
뿌려 놓은 씨앗이 발아하고 자라날 시간도 필요하니까.
마침 때가 좋다.
“부단주 자리 하나는 술사에게 줄 거야.”
“예?”
“만귀단엔 지금 부단주를 맡을 역량의 술사가 없을 텐데요?”
전부 다 중상에다 사망자가 워낙 많아서 만귀단의 전력은 반절 이하로 급감한 상태였다.
수습하기도 바쁜데, 부단주까지 맡을 수 있을 정도의 인재는 없는 걸로 아는데?
“외부에서 모셔 와야지.”
“외부에서요? 술사 중에 아는 사람이 있나요?”
“뭐, 비슷하지.”
상대방은 날 모르겠지만.
접근할 만한 여유가 없어서 여태까지 방치했지만, 슬슬 접근할 때가 되긴 했다.
육도(六道)의 주인공 중 하나.
무해와 달리 기이한 조건으로 인해 난이도가 매우 높은 극악의 주인공.
주인공들 중에서 단둘뿐인 술사 중 하나이며, 정파에 소속되어 있는 인물.
그리고.
“꺼내 올 수 있으려나…….”
유일하게 시작점이 감옥인 인물이기도 하다.
* * *
“외부로 나가신다더니?”
“아아, 준비가 좀 필요하거든. 아직 흑룡단을 정비할 필요도 있고.”
흑룡단의 집무실.
재건 중인 만귀단 건물을 뒤로하고 그곳에서 업무를 보던 설천위는 삐딱하게 고개를 돌려 청아를 바라봤다.
“청아야.”
“네?”
힘을 아끼기 위해 작은 몸으로 현신해 열심히 빗질을 하는 모습.
남자를 유혹해 그 정기를 흡수하던 악귀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귀여운 모습이다.
너무 귀여워서 남녀노소 다 홀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기에 설천위는 씁쓸한 미소로 물었다.
“잊지 못했지?”
“…….”
침묵.
대답하지 못하고 빗자루를 꽉 쥐는 청아의 모습에 설천위는 가볍게 그 머리를 두드렸다.
“그래, 잊을 리가 없지.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청아를 지배하고, 흡수하면서 청아의 내면의 기억을 읽은 설천위다.
손휘 같은 인간의 한을 풀어 줄 생각은 없지만.
“이제 슬슬 풀어내자. 언제까지 원한을 품고 살 순 없으니까.”
“……알고 계셨어요?”
청아의 떨리는 목소리에 피식 웃은 설천위는 천천히 일어나 창문으로 향했다.
“여태까진 바빠서 처리 못 해 줬지만, 이젠 할 때가 됐지.”
뭐, 이것도 핑계지.
여유가 있어서 해 줄 뿐인, 그런 이기적인 인간의 핑계.
하지만.
“확실하게 매듭짓자. 그래야 다음으로 이어지지.”
그리고.
“어르신도요.”
[……나는.]
“됐어요.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이번 일이 전부 끝나면 깔끔하게 해결될 테니까 그냥 지켜보고 계세요.”
말을 잇지 못하는 현태중에게 대충 손을 휘저은 설천위는 창밖을 보며 쓰게 웃었다.
“천마 할배는요?”
[아직도 생각에 잠기신 모양이다.]
“거, 죽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을 깊게 하면 안 좋은데.”
최근 들어 부쩍 말수가 줄어든 천마를 떠올린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연옥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때가 되면 다 알아서 말해 주겠지.
천마신교를 재건해 달라는 소원 같은 건 안 빌겠다고 했으니까 믿어야지 뭐.
우물거리며 자신의 뒤에 서는 청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설천위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혼을 다루며 살아가기로 한 이상,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문제다.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할 것인가.
사람 대 도구로 대할 것인가.
[생각이 참으로 복잡한 녀석이구나.]
만귀단주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속내를 들켰으니 기분이 묘하다고 해야 하나.
“전 제 사람에겐 한없이 무른 타입이라서요.”
[넌 가끔 알 수 없는 단어를 쓰는구나. 다만, 네가 걱정하는 건 그리 깊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설천위의 말에 대답한 만귀단주는 자신은 이루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며 웃었다.
[죽은 이에게는 원한만큼이나 은혜도 깊게 새겨지는 법이니라.]
진정으로 괴이를 다루는 술사는 힘으로만 억압하지 않는다.
만귀단주의 조언에 설천위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맞는 말이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는 사례도 있고.
‘……어떻게 빼 오지?’
문제는 그 사례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점 정도?
* * *
“어으, 독해.”
“독한 게 문제요? 나는 저런 괴물한테 집착하는 어르신이 더 무섭구먼.”
호북성 북쪽의 작은 도시.
외부와 큰 연결점이 없는 이곳은 현령의 작은 국가였다.
대지주의 딸과 결혼해 돈과 권력을 전부 손에 쥔 현령의 작은 국가.
현령의 말은 거의 법이나 마찬가지였고, 그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반반한 건 맞지만 아예 건들지도 못하는데, 어찌 아직도 포기를 안 하시는지…….”
지하 감옥을 지키는 병사들은 혀를 차고 있었다.
첩을 들이는 거야 자유지만, 하필 원해도 이런 여자를 원하다니…….
현령의 독특한 취향 때문에 대체 몇 사람이 고생하고 있단 말인가.
“……밥.”
“어이쿠!”
순간,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기겁한 병사가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그 안에 갇힌 사람은 미동도 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밥.”
“그, 그러고 보니 밥을 아직 안 줬군.”
“내 재빨리 가져오지.”
엉덩이를 털던 병사는 재빨리 도망치는 동료를 붙잡을 때를 놓치고 후회했다.
‘나만 두고 가지 마……!’
저런 괴물이랑 단둘이라니……! 악귀에 홀리기라도 하면 어쩌라고!
밀려오는 공포에 다리를 떨면서도 병사는 일단 몸을 돌려 자리를 지켰다.
보지만 않으면 홀리지 않겠지……!
이 자리를 비웠다간 현령이 크게 화를 낼 테니 그 뒷감당을 하는 것보단 떨면서 자리를 지키는 게 더 나았다.
처자식을 먹여 살릴 돈은 벌어야 하지 않겠는가.
병사가 이를 악물고, 자리를 지키는 사이.
그의 뒤쪽에 있는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은 주린 배를 움켜잡았다.
‘……배고파.’
죄수들의 힘을 빼기 위해서라지만, 하루에 한 끼는 너무하지 않나.
흘러나오려는 한숨을 참으며 소녀는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으려나.’
이번에는 탈출하기 꽤 힘들 것 같은데.
잡혀 오기 전, 현령과 함께하던 무림인을 떠올린 소녀는 갑갑함에 눈을 감았다.
불의(不義)를 못 참고 덤비는 이 성격을 어떻게든 해야…….
[괜찮니? 역시 내가 도와주마! 잠깐만, 몸을 넘기면…….]
[어허! 내가 더 낫지! 내가 금방 탈출시켜 주마! 내 손재주면 이런 감옥 문 여는 건 일도 아니야!]
……성격이 아니라, 이 시끄러운 인간들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데.
사방에서 떠드는 혼들의 수다에 절로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면서도 소녀는 혼들을 쫓아낼 수가 없었다.
그 변태 같은 현령이 접근할 때마다 열심히 쫓아내 준 게 이 혼들이니까.
이 혼들이 없어지면 이 한 몸 지키기도 힘들어질 확률이 높았다.
‘……탈출 방법이나 생각하자.’
꼬르륵.
‘……배고파.’
탈출에 성공하면 나중에 반드시 돌아와서 현령 놈의 머리카락을 죄다 뽑아 버릴 테다.
* * *
“이래도 되는 걸까요?”
“어, 되지?”
가도 위.
유예린과 함께 걸어가던 설천위는 유예린의 걱정에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
“내가 없어야 벌레 놈들도 제대로 움직여. 우리에게도 시간이 필요하지만, 녀석들에게도 시간을 좀 줘야 해.”
“그거야 그렇지만, 아직 부단주도 한 명밖에 없는데…….”
“서 소저가 죽도록 고생하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 약한 무해대사는 알아서 도와줄 거야. 다음에 돌아가서 쓱 임명하면 돼.”
그 착한 스님이 서하영이 혼자서 고생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진 않을 테니까.
그쪽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다.
“진짜 문제는 우리지.”
“조사 결과, 공자가 말한 곳에 소녀가 갇혀 있는 건 확실해요.”
“그래?”
벌써부터 갇혀 있단 말이야?
아니면 어떡하나 했는데,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본래라면 주현운에게 도움을 받아 탈출하지만, 그건 거의 육 개월 뒤.
미리 구할 수 있으면 구해서 데려가는 게 맞겠지.
“하지만…… 이분 정보만 보면 무인인데, 술사에게 부단주를 맡긴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아, 조금 사정이 있는 사람이거든.”
……설천위의 주인공 버전 같은 느낌이랄까?
뭐 속내를 보면 상당히 다르지만.
술사의 재능을 두고 무공을 익힌다는 점은 비슷하지.
“아무튼 반드시 필요해. 그리고 마침 그 현령에게도 볼일이 있거든.”
게임 속에선 놈의 악행을 떠드는 설정으로 그냥 지나갔지만…….
“아무래도 그 녀석이 확실한 것 같아서 말이야.”
내 사람의 복수는 내가 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