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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79화 (479/624)

제479화

478화-파종(播種) (3)

“그래서 이렇게 나를 찾아왔나?”

초생단 안쪽에 있는 연무장.

홀로 수련하던 구목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몸의 땀을 천으로 닦아 내며 몸을 돌렸다.

“허허, 술사랑 무인은 다르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구목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놓아 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서 차를 마시던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술사들은 상당히 나약해서 흩어 놓으면 죽어요.”

“흐하하! 무슨 어항에 키우는 물고기를 말하는 것 같군.”

웃음을 터트린 구목은 대충 벗어 놨던 상의를 다시 걸치고 탁자 위에 턱 하니 팔을 올렸다.

“그래서, 진짜 원하는 게 뭔가? 단순히 만귀단의 해체를 막는 것만으로는 자네가 원하는 걸 이루진 못할 것 같은데?”

돌리지 않고 직진.

단숨에 본론으로 들어오는 구목의 행동에 설천위는 피식 웃으며 찻잔을 내려놨다.

“흡수. 제가 만귀단을 흡수할 겁니다.”

“그렇다면 해체를 굳이 반대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흡수할 거라면, 그냥 해체하고 흡수하면 될 터인데?

구목의 물음에 설천위는 담담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망한 다음에 흡수하는 것과 망하기 직전에 구해 줘서 흡수하는 건 전혀 다르니까요.”

“과연.”

충성도의 문제인가.

설천위의 말에 그 의도를 짐작하고 구목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귀단의 술사들을 흡수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없던 충성심이 생기는 것은 아닐 테니, 그들에게 은혜를 입혀 충성심을 높이겠다.

그런 계획인가.

고개를 주억거린 구목은 이내 다음 질문을 꺼냈다.

“이번 사태로 술사의 필요성은 확실하게 알았네. 하지만, 우리 초생단은 술사와는 연이 먼 곳이지.”

술사와 무인이 협업하는 경우는 대체로 술사가 상대할 수 없는 무력을 무인이 채워 주기 위한 경우가 많다.

애초에 술사가 나서야 할 일이 의뢰로 들어오면 대부분의 경우 무인이 아니라 술사에게 의뢰가 가니까.

여하튼, 이런 협업에서 술사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무력이다.

머릿수를 채우는 무인이 아니라.

초생단은 필연적으로 술사와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초생단의 대부분은 술사와 함께 일을 해 본 경험조차 없었다.

그들의 조력을 받아 본 기억도 없으니, 이번 사태로 일어난 위험에만 집중해 그런 위험 요소는 아예 치워 버려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 것이고.

“이번 사태로 확실하게 알았네. 앞으로의 싸움에는 술사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여태까지 싸워 왔던 혈교조차 술법을 다루기에 애를 먹었는데, 이제 싸울 적들은 아예 본격적으로 술법을 중심으로 하는 것들이다.

무인만으로는, 게다가 머릿수 채우기에 가까운 초생단의 단원들만으로는 반드시 벽에 부딪힌다.

무언가를 강렬하게 원하는 구목의 눈빛에 설천위는 미간을 짚었다.

“……누님한테 속았네요.”

“흐하하하! 자네의 누이이면서 이 초생단의 부단주 아닌가?”

애초에 진심으로 만귀단 해체를 주장할 생각이 없었구먼?

우리 누님, 연기 잘하네.

“원하는 게 있으시군요.”

뭐, 애초에 원하는 게 거래라면 그에 응해 주면 될 일이지.

하여튼 초생단주, 생긴 건 곰인데 하는 짓은 여우라니까.

철백이 단주가 됐으면 딱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네.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하네. 지속적이고 확고한 협업. 우리 단원들에게 술사의 도움이 필요할 때 확실하게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아군이 필요하네.”

“그건 이전에도 하던 일 아닌가요?”

“술사는 인원이 적지. 정말로 확실한 정보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아.”

하물며 전체적으로 무력이 약한 초생단의 지원 요청?

자원할 술사는 거의 없을 거다.

“그 확실한 정보를 얻는 과정에선 항상 희생이 따라오지.”

씁쓸함이 담긴 구목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모든 술사들이 사명감에 움직이는 건 아니다.

무림 전체에서 의뢰가 들어오니 바쁘기도 바쁠 테고.

초생단의 협력 요청은 진짜 확실한 경우가 아니라면 동행하지 않는 거겠지.

그러나 확실한 정보를 얻으려면 그만한 희생이 뒤따른다.

초생단주는 그 희생이 싫은 거다.

“좋습니다. 다만, 그건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라면, 우리의 힘이 필요한 경우를 말하는 건가?”

“예. 세상살이 어찌 될지 모르니까요.”

피식 웃으며, 설천위는 가볍게 손으로 탁자를 두들겼다.

“추가로 당연히 단순 파견은 안 됩니다.”

“물론이네. 최소한의 증거는 가지고 파견을 요청하지.”

“아뇨. 그런 얘기가 아니라요.”

마침 잘됐다.

다른 단과 어떻게 협업해 나갈지 고민이었는데.

만귀단은 흑룡단과 섞이는 과정에서 충분히 훈련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백화단은 아니지.

지금부터 술사들에게 필요한 건 단순한 술법적 역량이 아니다.

“합동훈련. 합동훈련을 주기적으로 실행하자는 것이 이쪽의 조건입니다.”

좋은 기회가 왔으면 잡아야지.

* * *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정근각의 대회의실.

단주들이 전부 모인 그곳에서 총군사가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먼저, 이번 회의의 핵심 안건은 만귀단의 존폐 여부입니다.”

“당연히 해체해야지.”

총군사가 말을 꺼내자마자 입을 연 패력단주가 삐딱한 자세로 다른 단주들을 훑어봤다.

“부단주의 배신으로 무림맹 전체가 위험에 빠졌소.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 있소이까?”

“틀린 말은 아니지.”

패력단주의 발언에 만독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술사들은 자신들의 영역이 있다는 핑계로 너무 제멋대로 행동하는 면이 있지.”

“제멋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이쪽의 행동을 여러분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만독단주의 말에 최근 몸 상태를 회복한 백화단주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자신들만의 영역이 있다는 건 핑계가 아니라 사실이죠. 제가 만귀단주님의 비도술에 왈가불가하면 납득하실 수 있나요?”

술사들에겐 술사의 방식이 있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무인이 뭐라고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백화단주의 그런 물음에 만독단주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 비도술은 모두가 볼 수 있지만, 악귀라 불리는 것들은 모두가 볼 수 없지. 그 차이가 있지 않소?”

너희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우리가 어떻게 아냐.

만독단주의 물음 속에 담긴 속내를 파악하고 백화단주는 미간을 찡그렸다.

“알지 못한다고 겁내며 그저 밀어낼 생각이신가요? 어린애도 하지 않을 우행(愚行)이군요.”

“어린아이라면 배워 나가면 되지만, 안타깝게도 전장에서 가장 두려운 건 알 수 없는 아군일세.”

불신(不信).

만독단주의 눈에 깔린 그 불신에 백화단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맞는 말이지. 당장 이번 일만 해도 술사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그렇게 된 것 아닌가?”

만독단주에 동조한 패력단주가 입꼬리를 비틀며 그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미지의 아군만큼 위험한 건 없지. 만귀단을 해체하고, 백화단도 감찰에 들어가야 하오.”

“지금 백화단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알 수 없으니 조사해야지. 당연한 것 아니오?”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패력단주의 목소리에 백화단주가 탁자 아래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는 그때.

“에이, 우리 패력단주님 그렇게 안 봤는데 상당한 쫄보이시네.”

“뭐, 뭐라고?”

이 대회의실에서 생전 처음 듣는 천박한 단어에 패력단주가 당황하는 것도 잠시,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설천위가 빙긋 웃었다.

“모른다고 피하면 문제가 해결되나요? 뭐, 상대방 검술을 모르니까 어이쿠 모르겠습니다, 하면 검이 알아서 피해지던가요?”

“지금 어디서……!”

“망발 같은 소리는 그만하시고. 거참,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본론으로.”

패력단주의 말을 끊어 낸 설천위는 상석에 앉아 있는 맹주를 바라봤다.

어떤 식으로 일이 진행돼도 상관없다는 듯한 잔잔한 표정.

그런 맹주와 두 눈을 마주친 설천위는 입꼬리를 올렸다.

“만귀단, 제가 거두겠습니다.”

폭탄 발언.

여태까지 진행된 회의 내용을 전면 부정하는 그 제안에 즉각 반응이 터져 나왔다.

“하! 지금 무슨 헛소리를!”

패력단주가 살벌한 기세를 뿜어내며 소리쳤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수용할 생각 따위 없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기세.

거기에 더해.

“흑룡단주는 너무 자신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군.”

만독단주마저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자 회의실 안 공기는 텁텁함을 넘어서 매캐할 정도가 되었다.

순식간에 뒤바뀐 회의실의 공기.

하지만, 그 속에서 대부분의 단주들이 자연스럽게 기세를 흘려 내며 방관했다.

설천위가 무슨 의도로 저리 움직이는지 지켜보겠다는 듯.

그리고.

‘히히, 재미있네.’

‘하아, 무슨 생각인지…….’

설천위에게서 사전에 전해 들은 창천단주와 백화단주가 속으로 고개를 젓는 사이.

“자기 과신은 능력이 없는 사람들한테 쓰는 말이죠.”

설천위는 자신을 노려보는 두 사람을 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술사는 필요합니다. 제대로 된 훈련을 거친 술사는 앞으로도 훨씬 더 많이 필요하게 될 겁니다.”

“그건 술사들이 주장하는 이야기 아닌가? 자고로 단련된 무인은 괴이의 영향을 덜 받는 법.”

“이쪽에 영향을 주는 술법이라면 그 술사를 죽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패력단주와 만독단주의 대답에 설천위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여러분이 허접한 놈들만 만나서 그렇고요. 얼마 전에 상대했던 흑암지규군도 우리 애들이나 맹주님이 상대해서 감을 잘 못 잡으시는 것 같은데.”

입꼬리를 비튼 설천위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흑암지규군 같은 녀석 하나 더 나오면 단주님들 정도면 죽어요.”

“뭐라!”

설천위의 도발에 즉각 반응한 패력단주가 벌떡 일어섰고, 만독단주의 손이 한순간에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에이, 구라 같아요?”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격렬한 반응에도 웃음을 잃지 않은 설천위가 손가락을 까딱이는 것과 동시에.

[크르르르르…….]

흑룡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설천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패력단주의 기세를 밀어내고, 만독단주의 독기를 찍어 누른다.

“살아 있는 나도 무(武)와 술(術)을 동시에 손에 넣었는데, 수천 년 처박혀 지내던 녀석들 중에 그게 안 되는 놈들이 몇이나 될까요?”

당장 흑암지규군만 해도 대인전 능력이 조금 부족할 뿐이지 실제 사람을 죽이는 능력만큼은 연옥에서도 인정받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분출을 시작하면, 도시 한둘 정도는 그냥 불태워 버릴 수 있으니까.

“오만하구나!”

일순간 기세에 밀린 것에 분노한 패력단주가 기어코 움직였다.

거칠게 올라선 다리가 탁자를 딛고 그 거구의 육체가 떠오르는 순간.

“그만들 하게.”

한 줄기의 바람이 회의실의 기세를 거둬 냈다.

맹주의 기세에 흐트러진 기세가 사그라들고, 얌전히 기세를 거둔 설천위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맹주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설천위와 눈이 마주친 맹주는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돌려 다른 단주들을 둘러봤다.

“이야기가 너무 과열되는 것 같으니 내가 이쯤에서 정리하겠네.”

분위기를 한 번 바꾼 맹주는 담담한 목소리로 회의를 이끌었다.

“양쪽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니, 일단 큰 흐름부터 정하도록 하지.”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한 맹주는 가만히 지켜보던 총군사에게 눈짓했다.

“흑룡단주님과 패력단주님의 의견이 서로 극과 극에 있는바, 두 분의 의견을 큰 줄기로 잡겠습니다.”

가볍게 헛기침을 한 총군사는 담담한 시선으로 단주들을 바라봤다.

“그럼, 흑룡단주의 의견에 찬성하시는 분들 거수해 주십시오.”

총군사의 말과 함께 손들이 올라온다.

“반대하시는 분 거수해 주십시오.”

마찬가지로, 담담하게 일을 진행하며 수를 헤아린 총군사는 이내 결과를 알렸다.

“찬성 다섯, 반대 둘, 무효 둘로 흑룡단주의 안건이 통과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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