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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78화 (478/624)

제478화

477화-파종(播種) (2)

“그래서 만귀단을 네가 맡겠다고?”

저녁 시간.

술병을 들고 만귀단 건물을 찾아온 남궁선은 술자리에서 꺼낸 설천위의 말에 미간을 찡그렸다.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해?”

“뭐, 안 될 이유는 없잖아요?”

“없긴 뭐가 없어? 있다 못해 넘치는 수준이구먼.”

혀를 찬 남궁선은 한숨과 함께 술잔을 들었다.

“패력단주를 주축으로 만귀단 해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대놓고 동조하진 않지만, 다른 단주들 중에서도 동조하는 인간들이 몇 명 있는 것 같고.”

“창천단은요?”

“우리는 뭐, 하나도 걱정 안 해도 된다…… 고 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네.”

씁쓸하게 웃으며 술을 들이켠 남궁선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숨결을 따라 싸구려 화주의 술 냄새가 퍼진다.

“창천단이라고 해도 모두가 남궁세가의 인물들로 채워진 건 아니야.”

“그렇겠죠.”

인원이 몇 명인데.

대대로 단주는 남궁세가에서 맡고 있고, 간부의 절반 정도가 남궁세가 출신이지만 창천단 내부의 비율을 보면 남궁세가 사람들은 2할이 채 되지 않는다.

당연하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남궁세가를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창천단에 소속되어 있는 남궁세가 출신의 무인들은 젊거나 애초에 파견 느낌으로 지내다가 자리를 잡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전대 창천단주도 그렇고, 현재의 창천단주인 남궁선도 창천단에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않아서 이 정도지, 구색만 갖출 땐 1할도 안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

창천단주는 남궁세가이지만, 창천단은 남궁세가의 것이 아니다.

남궁선을 향한 충성심으로 움직이지만, 그들이 남궁세가의 전력은 아니라는 소리다.

어디까지나 무림맹 소속.

구파일방이 괜히 몸을 사리는 게 아니었다.

패력단, 창천단, 암은단, 만독단.

구단(九團)에서 무려 4곳이 특정 가문에서 대대로 단주 자리를 이어 오고 있음에도 괜히 구파일방이 아무런 불평불만도 없는 게 아니었다.

그것이 그 가문의 힘이 아님을 알기에 자신들끼리 뭉친 선검단과 적수단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괜히 무림맹에 힘을 더할 바엔 외부에서 이익을 챙기겠다는 계산인 거다.

겉으로만 화합하고 있는 오합지졸.

그게 무림맹의 실체이고, 그 결과가 지금 또다시 드러나고 있었다.

“불만이 들끓고 있어. 이번 사태에 위기감을 느낀 거겠지.”

술사들의 배신으로 단숨에 무림맹 전체가 위험에 빠졌다.

겁먹고, 그 해결책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다만.

“머저리 같은 녀석들……. 술사를 늘려야지 어떻게 줄일 생각을 하는 건지.”

한숨을 내쉬며 술을 마시는 남궁선의 한탄에 설천위는 웃으며 고기를 집어 들었다.

“뭐, 공포 앞에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하겠어요?”

“이성적인 사고를 떠나 너무 멍청하잖아…….”

술사의 배신.

즉, 술법에 당해 이런 위기를 겪었다면 당연히 술사를 늘려서 대비할 생각을 해야지.

배신의 위험이 있으니까 줄여야 한다고?

대체 이게 무슨…….

한숨과 함께 술잔을 내려놓은 남궁선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네가 만귀단을 맡겠다고 한다? 어림도 없는 소리 같은데.”

“에이, 그럼 뭐 만귀단 술사들을 전부 백화단으로 보내게요? 지금 백화단의 규모도 줄여야 한다고 소리치는 인간들인데?”

피식 웃으며, 술잔을 든 설천위는 술잔을 돌리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뭐, 애초에 그 인간들 생각은 딱히 아무런 상관도 없지만요.”

“그럼, 여론을 개무시하고 그냥 진행하겠다고? 단주들 사이에서도 불만을 품는 자들이 나올 거야. 단주 회의에서 부결되면 그냥 끝이라고.”

“에이, 누님도 참 그런 걱정을.”

일단 창천단과 백화단은 자신의 편.

남은 건 6명 단주들의 표와 맹주의 허가다.

맹주야 뭐, 맡긴 일이 있으니 통과만 되면 당연히 이쪽의 손을 들어 줄 테고.

초생단이야 설란 누님이 있으니 설득의 여지가 있고.

암은단은 뭐, 이쪽도 문제없고.

일단 자신도 단주이니 표가 한 개 있으니까.

그럼 거의 확실하게 가져올 수 있는 표가 다섯이다.

아홉 중에 다섯이다.

만귀단은 무조건 흑룡단이 흡수할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

만귀단을 흡수한 다음이 문제였다.

‘명분이 없단 말이지.’

술잔을 입술에 대고 홀짝이며 설천위는 창밖을 바라봤다.

만귀단의 흡수?

당연히 할 수 있다.

들끓는 여론?

원하는 바다.

다만, 그렇게 흐름을 꿈틀거리게 만들어도 이쪽이 움직일 명분을 잡지 못하면 말짱 꽝이다.

옛날에 맹주가 줬던 권한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것보다 좀 더 깔끔한 방법을 쓰고 싶은데.

‘……유 매가 싫어하니까.’

그냥 일 다 끝나고 무림맹을 박차고 나갈 각오로 하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일을 다 끝내고도 무림맹에 남으려면 역시 그럴싸한 명분이 필요했다.

여론을 잠재우고, 이쪽의 일 처리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그런 명분.

“흠.”

“헹! 너도 걱정되긴 하나 보구나?”

“뭐가요?”

“만귀단 흡수. 역시 그냥은 힘들다니까?”

“에이, 표는 이미 거의 확보해 놓은 상태라니까요. 누님, 저 안 도와줄 거예요?”

“그야 도와주긴 하겠지만.”

한숨을 내쉬며 남궁선은 술잔을 꺾었다.

“밑에서 너무 반대하면 나도 좀 힘들다고!”

“에이, 단주 말에 누가 반대를 그렇게…….”

……할 수 있지.

응.

“좋네요. 반대.”

“응? 뭐가?”

“역시 누님은 똑똑하다니까.”

“에?”

술기운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남궁선을 보며 피식 웃은 설천위는 술잔을 쥐고 흔들며 웃었다.

“반대하는 인간들은 세상천지 어디에도 있는 법이죠.”

* * *

“이야~! 독하다, 독해! 이래도 안 접어?”

만귀단의 정원.

몽둥이로 자신의 손바닥을 툭툭 때리며 웃는 설천위의 모습에 암영의적이 미간을 찡그렸다.

[또 무슨 헛소리냐.]

“아니, 그냥 한번 해 보고 싶어서.”

유저들 뒤통수를 부수는 게임사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고 할까.

나는 실제로 뚝배기를 깬 거지만, 뭐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많이 깨졌었지.

내 지갑이랑 같이.

과거의 쓰디쓴 기억을 떠올리며 설천위는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돈 나와라, 뚝딱!”

빡!

[칵!]

오! 돈은 안 나오지만, 알찬 비명은 나오는구먼.

게임사는 이렇게 유저들의 뒤통수를 후리면 돈이 나오던데.

무려 2주나 거듭된 대화로 살짝 맛이 간 설천위는 히죽히죽 웃으며 몽둥이를 어깨에 걸쳤다.

“참 독해, 우리 흑암.”

[누가, 우리 흑암이냐……!]

“아직도 말할 기운도 있고.”

[크흐흐…….]

과연 괜히 연옥에서 버틴 괴물이 아니라 이거지?

실제로 가 본 적은 없지만 연옥은 지옥과 지상의 중간으로 진짜 법이고 뭐고 없는 무법지대라고 했던가.

괴이와 괴이가 먹고 먹히는 진짜 지옥.

그곳에서 수백, 어쩌면 수천 단위로 버텼을지도 모르는 괴물인데 뚝배기 찜질 며칠 했다고 설득에 성공하는 게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겠네.

“내가 참 물렀지. 폭력 정도에 굴할 리가 없는데 말이야?”

[……어떤 설득도 없이 2주간 머리를 깬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암영의적을 가볍게 무시한 설천위는 흑암지규군에게 다가갔다.

“뭐, 일단 당신을 마무리 지어야 할 때가 온 건 맞아.”

만귀단 내부도 수습할 겸, 돌아오는 흑룡단원들도 기다릴 겸 해서 시간을 끌었지만, 이제 슬슬 끝맺음을 지어야 할 때가 왔다.

‘슬슬 녹기 시작했네.’

명불허전이라고 해야 하나.

봉인된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힘을 쏟아 내고 있다.

이쪽에서 계속 수복을 하고 있음에도 얼음이 서서히 녹고 있는 게 보일 정도다.

힘없이 늘어진 고개와 달리 아직도 강렬한 눈빛을 쏟아 내고 있는 흑암지규군을 보며 설천위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몽둥이를 없앴다.

“마무리 짓자. 슬슬 끝낼 때가 됐어.”

[크흐, 포기한 게냐? 역시 인간이 맞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소와 함께 천천히 고개를 든 흑암지규군은 강렬한 눈빛으로 설천위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소멸하더라도 연옥과 지상은 연결될 것이고, 하늘은 반드시 열릴 것이다……!]

저주의 말을 쏟아 내며, 흑암지규군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자연으로 돌아가. 네놈이 발버둥 치는 꼴을 구경해 주마.]

당당하게 자신의 죽음을 말하는 흑암지규군을 보며, 설천위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누가 그렇게 해 준대?”

흑암지규군의 머리를 붙잡은 설천위의 입꼬리가 악당처럼 비틀렸다.

“다루기 어려운 힘이니 웬만하면 외부에 남겨서 부리고 싶었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면 어쩔 수 없지.

“네가 자초한 길이다.”

뿌득!

흑암지규군의 머리를 붙잡은 설천위의 손이 강력한 악력으로 그 머리를 찌그러트렸다.

“안에서 선배들한테 인사 잘하도록.”

[그아아아아악!!]

뿌드드득!

기어코 머리를 완전히 으깨 버린 설천위는 동시에 흑암지규군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혼은 물론이고, 그의 영력과 그의 영력으로 만들어 낸 육신까지.

전부.

패도(覇道) 앞에 꿀리지 못할 존재는 없으니.

마지막 발악으로 튀어나온 용암과 닿은 얼음에서 올라오는 수증기 속에서 설천위는 가볍게 숨을 골랐다.

“후. 뭐, 일단은 이 정도로 할까. 안에서는 뭐, 적당히 하라고 전해 주세요. 나중에 내가 직접 처리할 테니까.”

[오냐.]

아무래도 한번 완전히 죽여야 다룰 수 있을 것 같으니, 천천히 두고 흡수해야지.

뚝배기를 두들겨 패면서 많이 약화시켜 놨으니 내면세계에서 교육하는 데도 그리 큰 힘은 안 들겠지.

이제는 텅 비어 버린 얼음덩어리를 손짓으로 녹여 버린 설천위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가자.”

일을 마무리했으면, 보고하러 가야지.

* * *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니?”

초생단(草生團)의 본관(本館).

오랜만에 동생과 마주한 설란은 동생이 꺼낸 이야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너, 알고는 있니? 초생단 내부의 의견이 어떤지.”

“뭐, 해체를 지지하는 방향이죠?”

“그래.”

초생단은 중소 문파 혹은 낭인 출신의 무인들이 모인 곳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중에서도 하급.

즉, 무인으로서는 밑바닥에 가까운 이들이 모인 곳이란 소리다.

물론 대주급 이상의 간부는 다른 구단(九團)에 밀리지 않는 실력자들뿐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숫자가 상당히 적었다.

하급 무인이 많고, 그들을 이끌 상급 무인은 적은 형태의 조직.

보통은 한 개 대(隊)가 50명 내외, 적을 땐 서른 명 안팎까지 줄여 운용하는 다른 구단(九團)과는 운영 방식 자체가 다르다.

최소 80명, 많으면 120명 이상을 한 개 대(隊)에 넣어 운용한다.

무림맹의 규칙상 대주급 이상은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이 필요하지만, 조장 정도는 실력과 상관없이 임명할 수 있다.

초생단은 들에 자라는 풀이다.

혼자 자라서는 그 땅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뭉텅이로 자라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풀.

그리고.

들 전체를 뒤덮을 수 있는 풀.

그렇기에 다른 단(團)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차이점이 하나 있다.

“여론이 움직이지 않으면, 단주님 또한 움직이지 않아.”

초생단은 무리다.

거대한 풀의 무리.

그중 가장 우뚝 선 풀의 뜻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누울 수밖에 없는 무리.

“그리고 솔직히 단주님도 만귀단 해체를 바라는 눈치이시기도 하고.”

“……그게 무슨 소리야?”

초생단주 구목은 우둔해 보여도 상당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인물일 텐데?

설란의 말에 미간을 찡그린 설천위가 되묻자, 설란은 한숨과 함께 찻잔을 집었다.

“술사로 이루어진 조직을 없애고, 아예 통합되길 바라시는 것 같아.”

“……과연.”

필요성은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으니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자?

만귀단을 해체하고 술사들을 다른 구단(九團)에 나눠 편입시키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자는 거군.

여태까지는 협력의 형태로 협업하던 것을 아예 합쳐서 항상 같이 움직일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자는 뜻이네.

‘합리적이네.’

과연 구목이라고 해야 하나.

나쁘지 않은 방식이다.

무인의 입장에선.

“술법에 대해 모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술사는 안타깝게도 무인과 다르다.

인간의 역량에는 한계가 있고, 같은 인간을 상대하는 무인과 달리 술사는 인간을 뛰어넘은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

협업은 필수이고, 생존이다.

뿔뿔이 흩어지면, 죽도 밥도 안 되고 그대로 무너진다.

소수의, 진짜 단주급의 술사가 아닌 이상 제대로 된 괴이를 만나는 순간 그냥 무너질 거다.

그러니.

“설명하고, 설득할 시간이 필요하겠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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