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72화 (472/624)

제472화

471화-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 (6)

“……생존자는?”

“절반이 안 됩니다.”

정근각(正根閣)의 대회의실.

총군사(總軍師), 제갈진천의 대답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만귀단(萬鬼團).

무림맹의 구단(九團) 중에서 백화단과 함께 괴이(怪異)의 대응을 전담하는 이들이다.

평범한 학사들에겐 무림인조차 공자가 멀리하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이지만, 무림인들에게 괴력난신은 진짜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다.

검과 주먹이 통하지 않는,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

불가해(不可解)한 괴물들.

그것은 죽은 자의 원혼일 수도 있고, 자연에서 만들어진 영물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무림인의 힘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존재들을 괴력난신이라고 칭한다.

그렇기에 보통의 사람들은 평생을 살면서도 그것을 보거나 겪는 일이 거의 없다.

그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진 존재이기에 괴이(怪異)라 부르는 것이다.

다만, 그렇기에 항상 존재하나 모든 괴이가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었다.

드물게 강한 원한을 품은 악귀가 그 원한의 대상이 되는 인간을 해하는 경우가 가끔 있을 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괴이는 흔치 않았다.

그럼에도 무림맹은 그런 괴력난신을 처리하기 위한 부대를 무려 두 곳이나 상시 운용하고 있었다.

절의 스님들도 있고, 무림을 누비는 도사들도 있는데.

무력 단체인 무림맹이 괴이를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무력대를 무려 두 곳이나 두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사천맹조차 그리 많지 않은 단들 중 술사를 위한 단체 한 곳을 만들었을 정도다.

즉,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림맹의 수뇌부라고 칭해지는 자리에 있는 이들은 알고 있었다.

괴이(怪異)라는 것이 마냥 무시해선 안 될 힘이라는 사실을.

술법(術法)이라는 것이 그저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설에나 나올 법한 진법(陣法)과 대법(大法)이 실존함을.

그들 모두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만귀단주도, 부단주도 죽었는데 이 책임을 누가…….”

“죽지 않았습니다.”

불만스럽게 인상을 쓰던 패력단주 황보중은 자신의 말을 끊는 목소리에 와락 얼굴을 구겼다.

“죽지 않았다? 이 일이 끝나고 만귀단주가 목숨 이외의 방법으로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오?”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

그 안에 담긴 일렁이는 살의에 대회의실의 분위기가 단숨에 싸늘하게 바뀌었다.

은은함을 품고서 숨통을 조이는 살의는 패력단주라면 보통 흘리지 않는 살기다.

그가 이렇게까지 한다는 점에서 그의 분노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그 누구도 알 수 있었지만, 그 살의를 직접 받는 백화단주는 한 점 흐트러짐도 없이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부하의 책임을 묻는 거라면,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만귀단주가 평생을 쌓아 온 업적을 뭉개 버릴 정도인가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요? 만귀단의 부단주가 적과 내통해서 맹 전체의 손발을 묶은 것은 물론이고, 만귀단의 절반이 죽고 남은 자들의 절반도 사경을 헤매고 있거늘!”

눈을 부라리는 패력단주의 기세가 흉흉하게 휘몰아친다.

맹주의 앞이란 것을 잊었나 싶을 정도로 그의 분노는 거셌지만, 백화단주는 그 분노를 담담하게 받아 냈다.

“패력단주님은 모르시는 것 같지만, 목을 자른다고 죽은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보이고,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막는 일이지요.”

자신을 무식한 무뢰한으로 취급하는 백화단주의 언행에 패력단주가 거칠게 의자를 박차려는 바로 그 순간.

“그만들 하시게.”

부드러운 바람이 패력단주의 어깨를 눌렀다.

동시에, 책상 아래에서 부적을 쥐고 있던 백화단주의 손마저 누른 맹주는 허허롭게 웃으며 수염을 쓸었다.

“패력단주의 말도 일리가 있고, 백화단주의 말도 일리가 있지.”

“패력단주님의 의견은 전체적인 무림맹의 사기 유지를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군(軍)의 기본이지요.”

“백화단주의 의견은 실리를 챙기는 것이지요. 잠깐 출렁일 뿐인 사기를 위해 앞으로 수천이 더 죽게 될지도 모르는 정보를 버리는 건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맹주의 말에 총군사 제갈진천이 말을 보태자마자, 팔짱을 끼고 있던 창천단주 남궁선이 백화단주의 편을 들었다.

자신을 공격적으로 바라보는 창천단주의 눈빛에 총군사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군사 된 입장에서 둘 모두를 챙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 모두를 말이오?”

총군사의 말에 초생단주 구목이 미간을 찡그렸다.

“만귀단주에게 가진 정보를 다 토해 내게 한 뒤에 처형할 셈이오?”

정말 실효성 높은 방식이지만…….

도저히 정파의 인간들이 취할 방식은 아니었다.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구목의 의견에 몇몇 단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읽은 총군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아닙니다. 애초에 만귀단주님은 부하의 관리에 실패했다는 잘못만 있을 뿐 그 이상의 잘못은 없지 않습니까?”

“부단주에게 죄를 전부 뒤집어씌우고, 만귀단주는 살리겠단 소리요?”

“뒤집어씌우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그가 모든 죄를 지었지요.”

담담한 총군사의 대답에 몇몇 단주들이 침음을 삼켰다.

사실 이게 가장 맞는 방법이긴 했다.

단주라는 전력도 잃지 않으면서 일의 마무리 자체는 깔끔하게 할 수 있으니까.

만귀단주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아예 안 나오진 않겠지만, 그 정도의 불만은 적당히 다독이는 것만으로 충분히 무마할 수 있다.

그렇게 회의 분위기가 만귀단주는 살리는 쪽으로 흘러갈 때, 여태껏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만독단주 당천기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이 일을 무사히 끝맺음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 아니오?”

“……그렇습니다. 만귀단주님을 살리는 것도, 정보를 얻는 것도 그분을 저 봉인 속에서 꺼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지요.”

만독단주의 지적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총군사는 이 자리에 유일하게 있는 술법 전문가를 바라봤다.

“백화단주님, 언제쯤 저 봉인에서 만귀단주님을 꺼낼 수 있겠습니까?”

“……그건.”

총군사의 질문에 입술을 깨문 백화단주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꺼낼 수 없어요. 만귀단주님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저 안에 봉인된 괴이를 소멸시킬 준비를 한 뒤에 봉인을 열어야 합니다.”

백화단주의 말에 총군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히 말해서, 지금은 봉인된 존재를 막을 방도가 없으니까 봉인을 풀 수 없단 소리가 아닌가.

“봉인의 유지 자체는 긴 시간 가능합니까?”

“……길어야 열흘. 짧으면 닷새예요.”

“짧군요.”

짧다.

너무도 짧다.

진법에 일가견이 있는 만큼, 술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긴 준비 시간을 요하는지 아는 총군사는 결국 미간을 찡그렸다.

“백화단주님께 어떤 지원을 해 드리면 가능하겠습니까?”

“…….”

말을 이어 나가지 못한다.

침묵을 지키는 백화단주의 모습에 총군사의 미간은 더욱 깊게 패었다.

지원을 약속해도 힘들다는 소리는 애초에 백화단주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소리가 아닌가.

“허허, 그 아이들이 몇 년 정도만 시간이 더 있었어도 가능했을 터인데.”

“그 아이들이라면, 그 친구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분명 딸아이와 함께 학관을 다녔던 아이들이라고 했지.

기억을 떠올린 총군사는 전장에 섰던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헛웃음을 삼켰다.

‘화경급 고수가 셋이라.’

그것도 이제 막 학관을 졸업한 학생들이.

남궁선이 나왔을 때만 해도 시기가 맞아 이번에는 남궁세가가 날아오르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설천위가 나왔을 때는 역시 설가라고 생각했다.

보통의 주기보다 빨랐지만, 뛰어난 인재가 자신의 능력을 꽃피운 것이니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런데.

‘……셋 다 설 단주의 휘하에 들어가기를 지망했다고 했나.’

흑룡단 입단을 방해할까 봐 자신들의 경지까지 숨기고 졸업했다고 했다.

생각하니 헛웃음이 절로 나올 것 같았다.

설천위.

본인의 강함도 기이할 정도인데, 그 주위로 모이는 강자들의 숫자가 이상할 정도로 많다.

맹주가 일 년 안에 벽을 깰 거라고 확신한 유예린.

삼 년 안에 넘을 거라고 대답한 서하영.

자신조차 뛰어넘을 거라고 확언한 철백.

그 외에도 진즉 무림에 이름을 날리고 있던 무해대사나, 거철도 정규철, 뛰어난 자질의 여웅.

흑룡단의 전력은 숫자만 부족하다 뿐이지 이미 기존의 구단(九團)에 버금간다는 이야기가 알음알음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이번엔 화경급 고수가 갑자기 셋이나 합류한다고?

서하영이나 철백을 빼고 유예린만 화경에 도달했다고 해도 무려 다섯이다.

무림맹에 단주를 맡고 있는 화경급 고수가 일곱인데, 무려 한 단(團)에 다섯이나 되는 화경급 고수가 모였다는 소리다.

거기다 영력을 다루기까지 한다니 마치.

‘……준비한 것 같군.’

생각을 이어 나가던 총군사는 이내 도달한 결론에 살짝 한기를 느꼈다.

만약, 설천위가 이렇게 될 미래를 미리 알고 인재를 모으고 있었던 것이라면…….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 인가.’

설천위를 향한 경계심을 바짝 올리면서 총군사는 고개를 들었다.

백화단주가 스스로의 무능력함을 침묵으로 인정한 이상, 이 이상 회의를 이어 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일단 회의를 끝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옳았다.

“그럼, 회의는 이것으로 끝내고…….”

“아, 저! 저요~! 의견 있어요~.”

“……누구시오?”

순간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가라앉힌 총군사가 기세를 끌어올렸다가 한순간에 가라앉히는 단주들을 느끼고 마른침을 삼켰다.

‘단주들도 모르고 있었다고?’

어떻게 돼먹은 은신 능력인가…….

“저는 주인, 아니 흑룡단주님의 부하입니다!”

“……흑룡단주님 말입니까?”

“네! 으음,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부채로 입가를 가린 요려는 풍만한 가슴을 흔들며 웃었다.

“며칠 정도만 끌어 주시면 우리 단주님이 해결해 주실 것 같은데요?”

* * *

촤악!

녹옥빛으로 일렁이는 액체가 쏟아진다.

그 안에서 빠져나온 여인은 깡마른 몸을 천으로 감쌌다.

“또 깎였네.”

분명 젊어 보이는 외모였지만, 너무나도 말라서 40대를 넘긴 것처럼 보이는 여인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동굴 구석에 있는 침대에 앉았다.

“후우, 후우.”

고작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는 데 한참의 시간을 허비한 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만귀단주, 늙은 생강이 맵긴 매워.”

그걸 생기를 태워서까지 막다니.

술법이 끝나면 며칠이나 살 수 있으려나?

아니, 애초에 좋지 않은 몸 상태로 무리를 했으니 봉인이 깨지면 바로 죽을 수도 있겠네.

우리 화린이가 참 슬퍼하겠어.

입꼬리를 비튼 여인은 앙상한 손으로 침대 옆의 탁자를 더듬었다.

몇 번 더듬은 끝에 탁자 위의 곰방대를 잡은 여인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거기에 불을 붙였다.

“후우.”

폐부로 파고드는 강한 진통제에 뿌옇던 시야가 조금 돌아오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여인은 웃었다.

“뭐, 그래도 계획은 거의 성공했으니까. 설령 화린이가 다시 원화(元化)의 술(術)을 쓰더라도 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은 소멸시킬 수 없겠지.”

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연옥으로 통하는 문을 여는 데 도움을 준다.

만귀단주의 상태를 봤을 때 채 보름도 버티지 못하고 봉인은 깨질 것이고, 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은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싸웠던 그 어린 녀석들도 지금은 회복에 집중하고 있을 테니까.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무림맹은 그에 대한 반발로 내부의 간자를 잡기 위해 더욱 열을 올릴 테고, 그만큼 외부 활동은 줄어들겠지.

그러니 황실의 상태를 파악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뒤일 거다.

물론.

“후우, 우리 천위가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데…….”

뭐 일단 임시 조치는 취해 놨으니까 어느 정도는 시간을 벌 수 있…….

“커허어어어거걱!”

연기를 뿜어내던 입에서 갑자기 피가 솟구친다.

혼이 일그러진 것 같은 반응에 언여휘는 직감했다.

어딘가에 펼쳐 놓은 자신의 술법이 파훼됐다.

그것도 완벽하게.

이쪽이 심어 놓은 혼의 파편마저도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았다면 이 정도 반동은 말이 되질 않는다.

“끄윽!”

바닥에 쓰러져 질척이는 핏물을 손으로 짚고 겨우 몸을 일으킨 언여휘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리고.

“히히, 히히히히히! 이 앙증맞은 괴물 녀석이……!!”

광소를 터트린 것과 거의 동시에 불끈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설천위에게 심어 놓은 악의(惡意)가 깨끗하게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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