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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70화 (470/624)

제470화

469화-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 (4)

“흡!”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강렬한 열기에 급히 입가를 가린 남궁선은 성화린을 잡은 손에 힘을 더하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무슨?”

타오르는 대지, 코를 찌르는 유황 냄새.

이게 실제가 아니라면 뭐가 실제란 말인가.

화산에 직접 올라도 이 정도로 강렬한 자극은 느낄 수 없을 거다.

경지에 오른 그녀의 육체는 고작 화산의 열기 따위에 덥고, 유황 냄새 따위에 코가 따가운 수준은 지났으니까.

혼에 직접 스며드는 것 같은 강렬한 화산의 환경은 도저히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게, 진짜 술사들이 사는 세상인가…….”

남궁선의 중얼거림에 성화린은 그녀의 팔을 쥐고 고개를 들었다.

“그래. 이게 자성영역(自省靈域). 영적인 깨달음으로 품은 자아(自我)를 밖으로 드러내는 힘.”

“……언니도 쓸 수 있어요?”

“나도 쓸 수 있지. 이런 무식할 정도의 규모로는 무리지만.”

인간의 정신력과 영력에는 한계가 있다.

웬만큼 강한 술사도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펼치는 자성영역은 고작해야 건물 두 채 정도의 크기다.

이렇게 넓은 땅 전체를 먹어 치우는 자성영역은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힘이다.

그리고 그런 힘을 썼다는 건.

“……위험해.”

“위험하죠?”

그럼 전장에 있는데, 안 위험한가?

고개를 갸웃하는 남궁선의 물음에 성화린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지금 적이 자성영역을 발동했다는 것 자체가 위험 신호야.”

“어떤 의미로요?”

“여태까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든 혹은 사용할 여건이 되지 않았든 숨겨 둔 수를 꺼내는 의도는 뻔하잖아? 사람과 다를 바 없어.”

숨겨 둔 패를 꺼낸다.

정말로 적과의 전투가 힘에 겨워서 꺼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맹주와 동수를 이룬 시점에서 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은 굳이 무리해서 자성영역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적당히 떨쳐 내고 도망치면 그만이니까.

공간 전체를 먹어 치우는 자성영역은 도주와는 맞지 않는 힘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굳이 자성영역을 꺼낸 걸까?

맹주와 여태까지 싸우면서 그런 기색을 하나도 내비친 적 없으면서?

“확실하게 죽일 생각인 거야.”

죽여야 할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이려면 이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성화린의 말에 고개를 치켜든 남궁선은 맹주의 바로 곁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설마!”

“그래, 저 아이들을 죽이기 위해 이 공간을 만들어 낸 거야.”

말을 하면서 성화린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아이가 직접 피땀을 흘려서 영력을 가르친 아이들.

품은 영력은 술사의 그것에 미치진 못하지만, 정확한 활용법을 아는 저들의 검과 도는 악귀라고 할지라도 벨 수 있는 힘을 품게 됐다.

그런데 그 결실이 만개하기도 전에 이런 식으로 꺾이다니.

“우리가 움직여야 해.”

어느새 꽤나 안정이 됐는지 자신의 발로 굳게 선 성화린이 양손을 자신의 앞으로 모았다.

“언니!”

“……원화(元化)의 술(術)은 안 쓸게. 대신 확실하게 너희를 보조해 주겠어.”

호흡을 가다듬고 영력을 끌어올린 성화린은 주변에 적당히 흩어져 있는 단주들을 바라봤다.

저들이라면 무기에 영력을 깃들게 해 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저 거인을 무너트릴 수 있을 거다.

설령 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토대가 되는 산이 무너진다면 그 힘이 약해지겠지.

이 자리에서 소멸시킬 순 없겠지만, 이쪽을 처리할 생각을 접게 만들 순 있을 거다.

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도 목적이 있어서 아득바득 현세에 강림한 것일 테니까.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필요 이상의 무리는 하지 않을 거다.

그러니 지금.

‘지금뿐이야.’

속일 수 있을 때, 영력을 쥐어짜서 어떻게든 변수를 만들어 내야 했다.

단주들이 모인 지금, 적이 자성영역까지 펼치면서 눈앞에 집중하고 있는 지금.

지금이야말로 유일한 기회다.

‘짜내……!’

그러니 어떻게든……!

“아아, 완전 개판이네요.”

생명을 비틀어 영력을 쥐어짜려던 순간, 성화린은 지척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휙 하고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아, 당신이 백화단주인가요?”

“정체는 제가 물었을 텐데요.”

펼치려던 술법조차 접고, 경계하면서도 성화린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느새 검을 뽑아 든 남궁선이 그녀의 목에 겨누고 있었으니까.

“나도 궁금하네. 누구?”

“……살벌하네요. 뭐 상황이 상황이니 이해하지만요.”

왜 이럴 때 온 걸까.

한숨을 푹 내쉰 여인은 풍만한 가슴을 강조하듯 팔짱을 끼고 대답했다.

“주인님, 그러니까 설천위 공자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천위 아니, 흑룡단주가?”

예상치 못한 인물의 언급에 남궁선과 성화린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그 자식은 실종돼서 약혼녀가 그를 찾으러 전국을 누비고 있는데, 이런 여자를……?

“아우!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성공했으면 몰라, 실패해 가지고 있는 자존심, 없는 자존심 다 구겨졌는데!”

남궁선과 성화린의 눈에 담긴 감정을 읽어 낸 여인 요려는 발로 땅을 차며 씩씩거렸다.

“주인님이 최대한 빠르게 도착하라고 해서 죽어라 달려왔더니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와 보니 무림맹은 결계로 닫혀 있지, 그런 후 결계가 사라졌나 싶었더니 웬 무시무시한 악귀 하나가 도주하지.

어떻게 눈치를 보며 스멀스멀 들어왔더니 경비가 개판이어서 그냥 영력이 가장 요동치는 곳으로 직진해 왔는데, 이건 뭐 신화에나 나올 법한 괴물이 떡하니 버티고 있지.

“괜히 따라간다고 했어…….”

그냥 거기서 죽을……. 그건 아닌가?

음음.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죽어서도 이승에 있는 게 낫지.

지옥에 가면 저런 괴물들이 득실거릴 거 아니야?

설천위한테 죽었으면 지옥도 못 갔겠지만.

“그래서, 흑룡단주가 당신을 왜 보낸 거죠? 도움 요청이라면 상황이 이러한지라 한참 뒤에야…….”

“아뇨. 뭐, 그런 용건은 아니고요. 음…….”

성화린의 대답에 살짝 몸을 흔든 요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하면 죽을 것 같은데, 멈추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말을 걸었어요.”

“……언니!”

요려의 말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남궁선이 날카로운 눈으로 성하린을 쏘아봤다.

요려가 진짜 설천위의 부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저 말이 사실이라면 방금 성화린은 아닌 척하면서 자신이 죽을 술법을 펼치고 있었단 소리가 아닌가.

남궁선의 날카로운 시선에 움찔한 성화린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손을 들었다.

“그래도 해야 해. 지금 안 하면 저 위에서 싸우는 아이들이 죽어……!”

“우리가 갈게! 여기에 단주가 몇 명인데……!”

성화린을 말리면서도 남궁선은 이번엔 아까처럼 적극적으로 성화린을 말리지 못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사지로 향하는 사람의 눈을 하고 있는데, 어찌 말린단 말인가.

자신의 힘으로 억지로 찍어 누를 순 있겠지만.

그 결과, 정말 성화린이 걱정하는 대로 위에서 싸우는 세 아이 중 누군가가 죽으면 그땐 어찌한단 말인가.

‘……비겁하네.’

스스로의 마음속에 깃든 모순에 남궁선의 입가가 자조적으로 일그러지는 순간.

“아, 그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요려의 느긋한 음성에 남궁선의 고개가 격하게 돌아갔다.

“방법이 있는 거야?”

“제가 뭐, 방법이 있다는 건 아니고요.”

어깨를 으쓱인 요려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저쪽은 이미 늦은 것 같아서 안 말렸거든요.”

* * *

“하악! 하악!”

거친 숨을 내뱉으며, 소윤혜는 비릿한 피 맛을 느꼈다.

열기에 갈라진 목 안에서 올라온 피가 혀에 닿아 나는 맛.

피부는 어느새 바짝 말라서 갈라지기 시작했고, 시야는 조금씩 흐려진다.

‘……이런 환경에서 술사가 싸울 수 있는 거야?’

그야말로 인간의 체력을 극한까지 시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건.

그저 적이 이 일대를 자신의 공간으로 바꿨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인간은 생존을 위협당하는 수준에 놓인다.

설천위가 몇 번이나 경고한, 진짜 찾아올 재앙들.

이게 그 이유구나.

설천위가 이를 악물고 몸을 만들어 무(武)의 경지를 끌어올린 이유.

영력을 다루는 인간이어서는 동렬에 서는 것조차 불가능하니까.

영력을 다루는 초인 정도는 되어야 같은 선상에 서서 싸울 수 있으니까.

“후우.”

겨우 호흡을 진정시킨 소윤혜는 도(刀)를 쥔 손에 힘을 풀었다.

딱딱한 참격으로는 절대 베지 못한다.

쪼개는 것은 안 된다.

부드럽게.

정말 베어 낸다는 결과만을 담아야 한다.

탈력(脫力).

몸에 힘을 빼며, 소윤혜는 집중에 들어갔다.

모든 것은 쏟아 내는 일격을 위해.

“흐읍!”

소윤혜의 상태를 확인한 주현운은 곧바로 움직임을 바꿨다.

소윤혜를 지키는 형태로.

여태까진 맹주가 거세게 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을 뒤흔들면 그 사이를 파고들어 찌르는 형식으로 싸웠지만, 소윤혜가 저렇게 나온 이상 이쪽도 방식을 바꿔야 한다.

주현운과 거의 동시에 문율 또한 검을 휘두르는 방식을 바꿨다.

다만, 여태까지 그가 휘두르던 것과 달리 지금 그의 검은 극한의 쾌를 품고 움직이고 있었다.

‘상황만 맞으면 진짜 어마무시한 속도로 성장하네.’

누구보다 무(武)의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빠르게 문율의 변화를 알아챈 주현운은 피식 웃으며 검을 움직였다.

문율은 가진 재능의 영향 때문인지 전투에 들어가면 사람이 완전히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도 한 가지 성격이 아니라 여러 가지 성격으로.

아마 수십 종류의 무학을 보고 배우면서 그 안에 담긴 시초의 뜻을 헤아리는 과정에서 그 성격까지 받아들여서 그런 것일 거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영향을 크게 끼치는 건 설천위의 패도이지만.

아무튼, 그런 문율이니만큼 지금 상황은 거대한 대해에서 큰 범선에 탄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것도 엄청난 순풍을 맞이한 범선.

눈앞에서 현경급 고수의 무학을 두 눈으로 새기고 있는데, 어찌 발전이 없을 리 있겠는가.

자신도 계속해서 쾌(快)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있는 상황인데, 문율은 더하겠지.

미친 듯한 속도로 검을 휘두르고 있는 문율을 보며 어깨를 으쓱인 주현운은 다시 자신의 역할에 집중했다.

소윤혜가 먼저 일격을 박아 넣는 역할을 자처한 이상, 이쪽은 이쪽대로 할 게 많았다.

‘확실히 맹주님의 공격은 별 타격이 없어.’

밀리고 깨지긴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재생한다.

인간의 형태를 한 적에게 깨진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진짜로 몸이 깨지니 뭐 어쩔 수 있나.

아무튼.

맹주와 싸우면서도 끊임없이 이쪽을 관찰하고 있으니 이쪽이 움직이면 적도 반드시 움직인다.

중요한 것은 순서.

소윤혜의 일격을 적이 방어할 수 없도록 적의 방어를 먼저 빼내는 것이 중요했다.

속도는 이쪽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으니 단 한 번.

딱 한 번의 틈만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소윤혜의 도(刀)는 확실하게 놈에게 닿는다.

그 한순간의 빈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주현운은 강기(罡氣)를 끌어올렸다.

다만, 여태까지 끌어올리던 것과는 다른 강기다.

화강(化罡).

아직은 미숙한 기술이지만, 적의 주의를 끌기엔 충분하겠지.

“흡!”

기세를 끌어올린 주현운이 도약했다.

괴조에서 뛰어오르는, 그야말로 자살행위와도 같은 도약.

하지만 그렇기에 단숨에 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의 곁에 도달한 주현운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천무(天武)]

하늘의 무를 담는 오만한 마음이 깃든 검.

영력까지 품은 그 공격을 적의 심장에 꽂을 수만 있다면 확실하게 적을 죽음으로 이끌 수 있는 일격이었다.

그렇기에.

[카핫!]

맹주를 향해 용암을 터트리는 것과 동시에 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은 양팔을 움직였다.

그 손에 맺히는 영롱하게 빛나는 흑요석.

흑요석은 날카롭긴 해도 그리 단단한 광물이 아니거늘.

카가가가가가각!

대체 어떻게 막는 거냐.

검과 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의 흑요석 방패가 부딪친 순간, 치솟는 불똥에 이를 악물면서도 주현운은 몸을 비틀었다.

키이이이잉!

몸을 비틀어 길을 여는 순간, 쾌속의 검이 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의 눈을 찌른다.

단숨에 왼쪽 눈을 잃었음에도 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은 웃음을 터트리며 양팔을 휘저었다.

찔러 넣은 검이 흑요석에 뒤덮이는 모습은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였지만, 충격에 튕겨 나온 주현운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악신참수(惡神斬首)]

모든 것을 끝내는 단죄의 도(刀)가 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의 목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훤히 드러난 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의 목에 그 참격이 닿는 그 순간.

[인간은 여전히 어리석구나.]

화산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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